고이한은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안경 너머로 드러난 그의 시선에는 분명 서늘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궁금증으로 들끓던 기자들조차 그 분위기 앞에서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용기를 내지 못했다.인터뷰 존을 벗어나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중, 곁에 서 있던 비서 김경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방금 기자들을 제지하지 못해서...”“괜찮아.”짧은 대답과 함께 고이한은 안경을 벗어 정장 안주머니에 다시 넣었다.그러자 조금 전까지 눈빛에 서려 있던 냉기와 날이 스르르 걷혀 나갔고 대신 쉽게 읽히지 않는 깊고 복잡한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김경환은 방금 전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고이한은 기자들의 질문을 막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정면으로 답하지도 않았다. 마치 애초부터 일부러 그들이 묻게 내버려두고 이후에는 스스로 상상하고 짐작하도록 판을 열어 둔 듯한 태도였다.그러나 그가 왜 그런 방식을 택했는지에 대해서는 김경환조차 섣불리 추측할 수 없었다. 상사의 속내는 언제나 한 겹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으니까.한편, 소예지는 실험실로 돌아왔다.이서연이 다정하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막 컵을 받아 들었을 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양정화의 이름이 떠 있었다.“오늘 발표회는 잘 마쳤어?”“네! 아주 잘 끝났어요.”양정화는 개인 사정으로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기에 소예지는 문득 마음 한편이 쓰여 조심스레 물었다.“교수님, 일은 잘 정리되셨어요?”“응, 다 해결됐어. 걱정 말고, 별일 아니야.”양정화는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더 묻는 것은 오히려 실례일 것 같아 소예지는 몇 마디 안부를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이후 그녀는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칸 안에 들어가 문을 닫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안채린과 그녀의 조수였다.“안채린, 진짜 부럽다! 네 신청이 이렇게 빨리 통과될 줄은 몰랐어.”조수의 말에 안채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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