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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멀리서도 시선이 닿았다.고영훈은 송서윤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도우미가 귀에 대고 속삭이자 송서윤의 눈빛에 미묘한 파동이 일었다.고영훈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심한 듯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롤스로이스 뒷좌석에 몸을 실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경호원을 더 붙여. 사모님 곁에 사람 비우지 말라고!”한편, 송서윤은 도우미들에게 하루 휴가를 내주었다. 기쁨에 찬 얼굴로 나서는 도우미들을 바라보며 문가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힐끗 보았다.그리고 곧 문을 닫고 조용히 옷을 갈아입었다.다시 계단을 내려올 즈음 마침 로펌 전담 퀵 배달원이 도착했다.그녀는 자선재단에 지분을 기부하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변호인 명단을 새로 수정한 뒤 서류를 전달하라 지시했다.오늘의 그녀는 새하얀 셔츠에 청바지 파도처럼 흘러내린 머리를 말끔히 묶은 포니테일 차림이었다.순간 열여섯 살 첫날 아진시에 도착했던 그때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새로 인테리어 된 집안을 둘러보니, 과거의 흔적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다만 머릿속에서는 웨딩드레스 속 미소 세 식구의 사진 그리고 냉정한 고영훈의 얼굴이 번갈아 스쳤다.송서윤은 달력의 남은 날짜들을 하나씩 그어 내렸다. 펜 끝이 멈춘 곳은 오늘이었다.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조용히 별장을 나섰다.그녀는 대기하던 차량 뒷좌석에 올라앉으며 말했다.“먼저 파출소에 들러서 보석 찾아야 해요.”두 대의 경호 차량이 국가 귀빈을 모시듯 앞뒤로 서행했다.레온 호텔과 파출소를 잇는 대로는 이미 통제된 상태였다.고씨 가문과 정씨 가문의 결혼식, 두 대기업의 임시 휴무 그리고 글로벌 컴퓨터 경진대회 행사에 따른 공식 사절단의 방문으로 온 도시가 들끓고 있었다.경적이 이어지고 사람 물결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송서윤은 잠시 눈썹을 찌푸렸다.“이러다가 늦겠어요. 잠깐 걸어가죠.”단정하고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녀의 걸음은 이미 결심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다.경호원 전원이 차에서 내렸다. 몇 명은 앞장서 길을 트고 몇 명은 그녀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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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기지의 IT 부서 직원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모니터 수십 대가 동시에 켜지며 송서윤이 접속해 있는 네트워크와 빠르게 연결되었다.잠시 뒤, 아진시 전역의 인터넷 시스템에서 ‘송서윤’이라는 이름이 하나씩 사라져갔다.초등학교 성적표, 졸업사진, 결혼등록 기록까지, 온라인에 존재하던 그녀의 모든 흔적이 차례로 지워지고 있었다.그 화면을 바라보던 송서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모건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아진시에 며칠 더 있을 거야. 그동안 다시 생각해 봐. 정 떠나기 어렵다면... 남아도 돼.”송서윤은 손수건을 받고 눈가를 닦았다.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미련은 없어요. 다만 과거와 이별하려니 조금은 낯설 뿐이에요.”모건은 짧게 대답했다.“그래.”같은 시각, 여러 대의 차량이 잇따라 체육센터에 도착했다.고영훈은 아진시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각국의 귀빈을 맞이하고 있었다.두 시간이 지나자, 그는 잠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서윤이는 도착했을까?’하지만 인파가 몰리며 신호가 약해, 경호팀으로부터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불안이 스치자 고영훈은 경호팀장을 불렀다.“사모님 위치 좀 확인해 봐.”“예.”경호팀장이 바로 자리를 떴다.그때, 국기를 단 검은 세단 한 대가 행사장 입구에 천천히 멈춰 섰다.아진시의 정재계 관계자들이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고 대표님, 이분은 저희 정부에서도 십 년에 한 번 뵐까 말까 한 귀빈이십니다.”소개가 이어졌지만 고영훈의 시선은 차량에 머물러 있었다.차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정부 청사로 먼저 가 있어.”“네.”짧은 대답이 바람에 섞여 흘러나왔고 그 순간 고영훈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향했다.차 안에는 파란색 청바지를 입은 여자의 다리만 보였다.결혼 후, 송서윤은 거의 늘 원피스를 입었다.하지만 방금 들은 그 목소리는 너무도 익숙했다.고영훈은 자기도 모르게 한 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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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심건모는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고영훈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서 당황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극히 침착한 무표정이었다.반면 고영훈의 눈은 한 사람만 찾고 있었다.그때였다. 차 안에서 귀에 익은 벨소리가 울렸다.고영훈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차 문을 잡아당기려 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사거리에서 사라졌습니다!”경호원의 다급한 외침이 그의 귓가로 파고들었다.순간, 통화가 신호가 잡히지 않아 통화가 끊겼다. 그러나 신호가 사라진 휴대폰 너머로, 차 안에서는 여전히 같은 벨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고영훈은 손에서 힘을 빼며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곧장 몸을 돌려 차들 사이를 빠져나가 경호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무슨 일이야?”그때 검은 세단은 천천히 차선으로 합류했다.그 차는 유유히 차량 행렬 속으로 스며들며 이미 통제된 도로를 따라 곧게 뻗은 길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그 안에서 송서윤이 조용히 창문을 내렸다.잠시 시선을 두었다. 멀어져 가는 고영훈의 뒷모습과 경호원들과 허겁지겁 움직이는 모습이 차창 너머로 아스라이 스쳐 갔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잠시 바라보다가 곧 창밖으로 내던졌다.‘쾅’ 휴대폰이 아스팔트 위로 튕겨 나가더니 차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사랑하는 아내’라 새겨진 케이스가 한순간에 짓이겨지고 파편이 흩날렸다.그 순간, 고영훈이 걸음을 멈췄다. 마치 무언가를 느낀 듯,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멀어져 가는 국기가 꽂힌 검은 차량, 닫혀 올라가는 짙은 유리창, 그리고 그 안에 탄 여자의 옆모습이 스쳤다.‘포니테일?’그의 시선이 무겁게 흔들렸다.그때, 맞은편 도로에 서 있던 심건모와 눈이 마주쳤다.심건모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담백한 눈빛 끝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가 보였다.“심 국장님,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관계자가 황급히 나섰다.“사모님이 갑자기 안 보이셔서 대표님께서 놀라신 겁니다. 우리 고 대표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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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아직 사모님 얼굴이 인식된 적은 없습니다.”요원의 보고는 침착했지만, 그 안에 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식 시스템이 갑자기 경고를 띄웠습니다. 원본 데이터가 손상되어 얼굴 인식이 불가하다고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혹시 다른 사진 있습니까, 고 대표님?”“잠깐만.”고영훈은 즉시 휴대폰을 꺼내 송서윤의 사진을 전부 전송했다. 싱글 시절의 사진, 두 사람의 커플 사진, 오래된 가족사진까지 단 하나도 남김없이.잠시 후, 요원이 이미지를 시스템에 업로드했다. 그러나 불과 몇 초 만에 경고음이 다시 울렸다.“삐... 삐...”[데이터 손상. 인식 불가.]같은 문구가 반복해서 화면 위를 덮었다.“무슨 일이야?”고영훈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감식 요원이 즉시 답했다.“대표님, 온라인상에서 대규모 해킹이 감지되었습니다. 사모님 관련 모든 사진 데이터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얼굴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사이버안전국과의 공조가 필요합니다.”고영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턱선이 단단히 조여들며 말 한마디 없이 화면을 응시했다.“그전에 확보된 구역은?”“현재 교차로 서쪽 지역은 전부 확인했습니다만 사모님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동쪽 구역은 인력을 동원해 직접 수색하는 중입니다.”“알았어.”그는 짧게 대답하고 바로 지시를 내렸다.“동구 전역을 봉쇄해. 한 블록, 한 블록씩 전부 수색해.”파출소를 나서며 뒤따르는 경호팀장에게 명령이 이어졌다.“모든 언론사에 연락 돌려. 사모님을 찾는다는 긴급 보도를 내. 찾아내면... 사례금은 억 단위라고.”잠시 뒤, 레온 호텔 앞.원래라면 케이원 그룹과 제이 그룹의 결혼식 생중계로 들떠 있어야 할 수십 개의 방송 카메라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속보입니다!”“케이원 그룹 고영훈 대표의 부인, 송서윤 씨가 실종됐습니다!”기자들의 외침이 카메라 앞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시청자 여러분! 아진시 시민 여러분! 사모님을 찾는 데 성공하면 무려 40억 원의 보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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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케이크 먹고 싶단 말이에요!”고하준의 환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윤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지금 레온 호텔에 있는데! 서윤이가... 아들의 생일 파티에 오지 않을 리가 없잖아.’“아빠가 곧 갈게.”고영훈은 짧게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롤스로이스는 거침없이 도심을 향해 달렸다.속도가 높아질수록 그의 숨도 점점 거칠어졌다.“너희는 호텔로 가. 사모님을 보면 즉시 보고해.”명령을 내리자 경호원들이 곧바로 움직였다.그는 몇 명의 인원만 데리고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수 시간의 수색에도 흔적이 없자, 거대한 불안이 그를 집어삼켰다.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은 점점 더 깊어졌다.‘오늘, 서윤이는 분명 하준의 생일 파티에 나타날 거야. 만약 그곳에 오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정부청사다.’롤스로이스가 정부청사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도시 한가운데, 아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구역이었다.게다가 오늘은 각국 정부 고위 인사들이 모인 날이었다.고영훈은 짧게 눈빛을 주었다.경호원 한 명이 즉시 움직였고, 잠시 뒤 청사 전역에 화재 경보가 울려 퍼졌다.사이렌 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지며 출입문이 모두 닫히고 그의 사람들이 정문과 후문을 완전히 장악했다.급히 대피하는 사람들은 한 명씩 얼굴 인식을 거쳐야 했다.그 시각, 회의 중이던 심건모가 침착하게 명령했다.“자료는 전부 금고에 넣고 순서대로 대피해.”보좌관들이 즉시 움직였다.그는 소파에 걸쳐 있던 외투를 들고 연결된 휴게실로 향했다.경보음에 놀라 잠에서 깬 송서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나직이 물었다.“불이라도 난 건가요?”심건모가 짧게 대답했다.“아니. 네 남편이 찾아왔어.”그 말이 떨어지자, 송서윤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눈이 커지며 놀란 기색이 스쳤다.심건모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 외투를 들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그의 손이 잠시 그녀의 어깨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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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가 잇따라 도착했다.겹겹이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정부청사 주변은 순식간에 봉쇄되었다.어둡고 광활한 건물 안으로 사람들의 기척이 스며들듯 번져갔다.경호원들이 단검을 손에 쥔 채 흩어졌다. 한 층, 한 층, 구석구석을 수색했다.누구든 송서윤의 자유를 가로막은 자가 있다면 그들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터였다.“대표님, 이게 정부청사 평면도입니다. 그리고 각국 인사 숙소 배정표입니다.”경호팀장이 서류를 펼쳐 보이며 보고하자, 고영훈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하게 떨어졌다.“심건모 국장이 묵은 방을 찾아내.”몇 초 만에 답이 돌아왔다.“8층입니다!”“몇 명은 나를 따라 8층으로 간다. 나머지는 계속 수색해.”그의 시선이 매섭게 가늘어졌다.심건모의 무표정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고 순식간에 분노가 피처럼 치밀었다.그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송서윤을 눈앞에서 데려간 사람이라면 살아서 아진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고영훈은 경호원들과 함께 두 갈래로 나뉘어 8층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가 숨 막히는 속도로 올라가더니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복도는 긴장으로 팽팽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문이 벌컥 열리며 정장을 입은 여자가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심건모의 보좌관이었다.“국장님, 고영훈의 경호원들이 각 층을 수색 중입니다. 게다가 케이시가 이곳에 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습니다. 8층 양쪽에서 동시에 중앙으로 접근 중입니다.”심건모의 숙소는 바로 그 복도 끝 두 갈래가 만나는 교차점은 가장 위험한 위치였다.“그리고 경호원들 손에는 분명 무기도 있을 겁니다.”보좌관의 목소리가 떨렸다.“국장님, 지금 바로 경찰을 호출하겠습니다.”“안 돼요.”송서윤이 단호히 끊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심건모는 데미스 국장이니 그의 신변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가해진다면 경찰은 주저 없이 발포할 것이었다.하지만 고영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그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그의 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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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차 안에서 봤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송서윤이 아니었다.그 순간, 고영훈의 눈에서 마지막 희미한 빛이 꺼져버렸다.그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숨을 거칠게 들이켜며 등을 돌려 급히 문 쪽으로 걸었다.‘서윤아,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뒤에서는 보좌관의 불만 섞인 고함과 경호팀장의 낮은 사과와 변명이 엇갈려 들려왔다.문을 나서려던 고영훈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방 한쪽, 옷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한 걸음, 두 걸음 그가 조용히 다가가 손을 올렸다.“잠깐만요, 뭐 하시는 겁니까! 거긴 중요한 서류가 보관된 곳이에요!”보좌관이 다급하게 외쳤다.고영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심건모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빛이 공기 속에서 부딪혔다.고영훈은 아무 말 없이 옷장 손잡이를 잡아당겼다.그때, 복도 쪽에서 경호원이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왔다.“대표님! 사모님을 찾았습니다! 사모님 휴대전화 신호가 연회장에서 잡혔습니다!”순간, 방 안의 공기가 풀리듯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영훈의 손이 잠시 멈칫했지만 다음 순간 그는 다시 손잡이를 당겼다.텅 빈 공간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벽면에는 하나의 금고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이런 무례한 짓이 어디 있습니까! 저 안에는 전부 기밀 자료예요!”보좌관이 소리를 높였다.“이건 명백한 주거 공간 침입입니다.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심건모가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그만해.”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입가에 맺힌 피를 손끝으로 닦아냈다. 표정에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고 대표님이 사모님을 찾으신다니 그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 두 번 다시 없어야 할 겁니다.”고영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눈앞의 남자가 내려다보는 그 차가운 눈빛과 오만한 태도는 오히려 그의 분노를 더 자극했다.“아내를 찾고 나서 그때 꼭 국장님을 찾아뵙고 사과드리죠.”그는 냉랭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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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감시 화면이 켜지자, 송서윤이 골프채를 움켜쥔 채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잡혔다.작은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고 눈빛은 결심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다.그녀가 2층에 올라서는 순간 화면이 전환되었다.창가에 서 있는 두 남녀가 보였다. 두 사람은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서로의 손끝을 맞잡은 채로 밀착되어 있었다.“저 사람들... 고 대표님 아니야? 그리고 여자는 곧 결혼식을 올릴 신부잖아!”누군가 외치자, 주변이 즉시 술렁였다.“세상에! 사모님이 현장을 덮친 거야.”“저건... 남편이 자기 여동생이랑...”한 여자가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을 막았다.“그걸 눈으로 본 사모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고영훈은 반사적으로 고하준의 두 눈을 가렸다.‘그날이네!’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그날, 단지 허연수를 혼내주겠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생생하고 들려왔다.그리고 카페 앞에서 마주쳤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화면 속 송서윤은 결국 골프채를 떨어뜨리고 눈물로 젖은 얼굴을 한 채 조용히 돌아섰다.그 뒷모습이 계단 모퉁이를 지나 사라질 때까지 그녀의 절망이 고영훈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는 떠올렸다. 이혼을 외치던 그녀의 목소리, 그 절규 속에 섞여 있던 상처와 분노, 그리고 완전히 무너진 표정까지.죄책감과 후회, 충격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몸이 굳고 숨이 막혀왔고 손끝까지 떨렸다.‘서윤이가 말했었지. 내가 한 번이라도 배신하면 가차 없이 떠나겠다고...’정지욱이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지금 당장 휴대폰 내려놔!”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어 촬영하려 하자, 나서서 제지했다.“촬영 금지! 오늘 이 장면이 단 한 컷이라도 밖으로 새 나가면 가만두지 않겠어! 라이브 중계도 즉시 끊어!”정지욱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형 화면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고영훈은 그 자리에 굳어 섰다.‘서윤이는 다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날 떠난 거야.’그의 목울대가 격하게 떨렸다. 곧 이어진 건, 제어되지 않는 절규였다.“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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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서윤이가... 내가 허연수와 바람난걸, 민지가 내 딸인걸, 불륜이 5년이나 이어졌다는 걸...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면...’고영훈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게다가... 내가 우리 아이를 없앤 일까지 알게 된다면...’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왔다.‘그녀는 절대 날 용서하지 않을 거야.’그러나 그는 결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송서윤을 찾아야 했다.‘찾아내면 돼. 서윤이만 찾으면... 그땐 천 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돼.’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고 기자들의 외침이 연회장을 뒤덮었다.“속보입니다! 고영훈 대표가 전 재산 천억 원을 걸고 전 세계에 사모님 수배령을 내렸습니다!”“정정! 수배가 아니라, 전 세계 수색입니다!”그때 낯선 남녀가 동시에 연회장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멈춰!”남자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울렸다.“영훈아, 그건 안 돼.”고영훈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아버지?”그는 믿기 힘든 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10년 전, 가족과 회사를 버리고 사라졌던 고훈이었다.순식간에 장내가 술렁였다. 하객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고 한정숙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고훈? 당신이 왜 여기에? 그리고 왜 영훈이를 막는 건가?”그때, 옆에 서 있던 강이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그녀는 조용히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이건 송서윤 씨가 남긴 기부 서류입니다. 송서윤 씨 명의의 주식 전부가 자선재단으로 이전됐고 현재 그 재단의 실질적 대표는 제 남편입니다.”그녀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즉, 지금 케이원 그룹의 최대 주주는 저희 남편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고영훈 씨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에요.”“뭐라고요?”정지욱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류를 낚아채 펼쳤다.마지막 장, 그곳에는 익숙한 서명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형님... 형수님의 친필 사인입니다.”그는 떨리는 손끝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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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비행기가 활주로 한가운데서 급히 멈춰 섰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기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잠시 후, 기내 문이 열리자마자 한 남자와 어린아이가 안으로 뛰어들었다.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송서윤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예쁜 이모, 가지 마요... 보고 싶을 거예요.”작은 목소리는 울먹였고 떨림이 묻어 있었다.송서윤은 놀란 듯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끝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방학하면... 그때 이모 보러 올 수 있잖아.”“근데...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소도윤은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송서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아빠는 알고 있을 거야.”그녀는 아이의 통통한 볼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손끝이 닿을수록, 그의 눈매와 코 선이 어딘가 익숙했다. 가슴 깊은 곳이 서늘하게 죄어들었다.소도윤은 고개를 돌려 뒤편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따라 송서윤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기내 문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소주원이었다.“아빠, 방학하면 예쁜 이모 만나러 갈 수 있어요?”소도윤의 목소리에 소주원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송서윤은 멍하니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도윤이가... 선배를 아빠라고 부른다고?’그 순간, 소주원의 머릿속에 며칠 전 박다은과 성준영의 말이 스쳤다.“교수님, 서윤 씨가 고 대표님 곁을 떠난 건 교수님 곁에서도 멀어진 거예요. 이제는 놓치지 마세요. 도윤이를 핑계 삼아 붙잡으세요. 언젠가 서윤 씨는 이 기억을 되찾을 거예요. 도윤이에게 엄마가 생긴다면 그건 그 어떤 보상보다 큰 일이에요.”소주원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 한순간, 송서윤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응, 방학하면... 아빠가 꼭 예쁜 이모 만나러 데려가 줄 거야.”소주원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말했다.소도윤은 금세 얼굴을 환하게 피우며 웃었다.그러나 이내 송서윤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쁜 이모, 왜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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