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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장 가까운 배신: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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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예!”경호원들이 공항 내부로 들이닥치는 순간, 일렬로 정렬된 군 경비대가 앞을 막아섰다.“여기는 군용 공항이다! 명령 없이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명령이 떨어지자, 밤하늘에 어둠을 가르는 흰색 비행 궤적들이 연이어 그어졌다.전용기들이 하나, 둘 하늘로 치솟아 도시의 불빛 속으로 사라졌다.고영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 안에서 요동치는 건 불안과 광기, 그리고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뚫고 들어가.”고영훈은 단 하나의 단서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아내를 되찾을 수 있다면 이 상황에서는 법도 무의미했다.경호원들은 주저하지 않고 고영훈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군 경비대 쪽으로 밀어붙였다.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된 후, 고영훈은 마치 전장을 헤치듯 혼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관제탑이었다.그곳으로 가면 모든 항로 기록, 탑승 정보,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때, 소주원이 소도윤의 손을 잡고 나오다가 고영훈을 맞닥뜨렸다.“고영훈, 미쳤어? 여기가 어디인 줄은 알아?”고영훈은 시선을 소도윤에게 돌리다가 아이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송서윤이 가장 소중히 아끼던 목걸이였다.“이건... 목걸이는... 서윤이 거야! 서윤이 여기 있는 거지? 지금 당장 데려와!”소주원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이미 고영훈이 연회장에서 송서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나도 몰라. 그리고 알더라도 너 같은 인간한텐... 절대 안 알려줘. 서윤이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그토록 상처 줘놓고... 아직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비켜.”고영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고영훈! 이제 그만하라고! 서윤 씨는 절대 네 곁으로 돌아가지 않아. 현실을 받아들여. 그게 너한테도...”그때 고영훈이 팔을 뻗어 묵직한 주먹으로 소주원의 턱을 그대로 후려쳤다.‘퍽!’소주원은 바닥으로 쓰러졌다.고영훈의 눈빛에는 광기와 절망이 뒤엉켜 있었다. 그는 이미 이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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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고영훈은 경호팀장이 건넨 휴대폰을 받았다.기기 외형은 이미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갈라진 화면 속, 그가 직접 저장했던 애칭, ‘사랑하는 남편’ 여섯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듯했다.“대표님, 유심은 감식팀으로 보냈습니다. 이미 데이터 추출과 복구 작업 들어갔을 겁니다.”경호팀장이 보고했다.고영훈은 잠든 고하준을 품에 안은 채 별장으로 돌아왔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달력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마지막으로 그어진 ‘X’표식은 오늘 날짜였다.그는 송서윤이 처음 그 달력에 ‘X’표식을 그을 때의 표정을 떠올렸다.‘그날도...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걸까...’모든 걸 알면서도 한 달을 버텼을 송서윤을 떠올리니, 송서윤을 빼닮은 고하준의 눈매를 쓰다듬던 손끝이 떨렸다. 가슴 깊숙한 곳이 뻐근하게 죄어왔다.그는 고하준을 이원주에게 맡기고 천천히 위층을 올려다보며 걸었다.1층에서 3층까지, 공간은 그대로였다. 웨딩사진도, 세 사람의 가족사진도 모두 그대로였다.그러나 옷장 안 금고를 열었을 때는 텅 비어 있었다.송서윤의 신분증, 여권, 그리고 가장 아꼈던 루비 목걸이까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그녀는 사진 한 장조차 남겨두지 않고 고씨 가문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고 떠났다.고영훈은 전부를 잃은 기분이었다.침대 위에는 송서윤이 자주 입던 오프숄더 드레스와 체인 팔찌가 놓여 있었다.고영훈은 드레스를 품에 안았다. 옅게 남은 향수 냄새가 그녀의 온기를 전해주는 것만 같았지만,남겨진 공허함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서윤아... 정말 날 떠난 거야? 정말 다 끝인 거냐고... 나도 하준이도 전부 버리고 떠난 거야?’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대표님!”경호팀장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감식팀에서 데이터 포렌식이 완료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한 가지 수상한 점은 확인되지 않은 신원미상의 번호와 몇 차례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고 합니다.”고영훈은 잠시 송서윤의 드레스와 팔찌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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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이건 한 달 전, 허연수가 송서윤에게 보낸 도발적인 메시지였다. 그 일은 송서윤이 떠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영훈은 정민지를 밀쳐내고 허연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단숨에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손아귀에 힘이 실리자 허연수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고영훈의 눈빛에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감히 서윤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착각했어? 네가 어떻게 감히 서윤이에게 그토록 가슴 아픈 모욕을 줄 수 있어?”허연수는 목이 조여오자 고통스레 숨을 내뱉었다.“영훈 오빠... 나, 그런 의도 아니었어...”그러나 고영훈의 머릿속은 이미 기억을 되짚고 있었다. 그는 메시지가 오간 그때,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 즉시 떠올렸다.허연수가 음성 메시지를 보냈던 날, 그는 장모의 제사를 뒤로하고 약기운에 취해 허연수와 별장에 있었다.바로 그때, 송서윤이 골프채를 들고 별장으로 들이닥쳤었다.문자를 보냈던 날에는 허연수가 서지원이 불륜 루머를 흘린 배후가 서지원이라는 사실을 귀띔해 줬던 날이었다. 고영훈은 대가로 허연수에게 블루 스타 목걸이를 선물하고 뜨거운 밤을 보냈었다.그러나 송서윤은 그 모든 장면을 영상으로 보고 있었다.‘연수와 내가 함께 있었던 모습을 전부 보고 있었던 거야. 서윤이는 그날 어떤 마음이었을까...’그 순간, 송서윤의 절망한 얼굴이 떠올랐다.고영훈의 얼굴은 피기가 사라져 서서히 창백해졌다. 심장은 미친 듯 뛰었고 고영훈은 숨을 들이마시며 허연수를 힘껏 밀쳤다.허연수는 거실 탁자 모서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지며 숨이 턱 막혔다.“영훈 오빠... 난 정말 서윤 언니를 다치게 하려던 게 아니었어...”고영훈의 귀에는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당장 바다로 끌고 가. 내 눈앞에서 치워.”그의 말이 끝나자 경호원들이 들어와 허연수를 끌어냈다. 허연수는 과거 물에 던져졌던 기억이 떠올라 공포에 질렸다.숨을 거칠게 내쉬며 몸부림치다 결국 고영훈의 발끝으로 기어 왔다.“오빠... 잘못했어. 미안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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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고영훈이 잠시 멈칫하자, 허연수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듯 그의 발치로 기어가 매달렸다.“영훈 오빠... 언니는 이제 돌아오지 않아. 난 언니보다 젊고 예쁘고 건강해. 이제 언니는 잊고 나랑 행복하게 살아가면 안 돼?”고영훈은 차갑게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 시선에는 연민도 망설임도 없었다.“서윤이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경호원들이 다가와 허연수와 정민지를 강제로 떼어냈다.간절하게 붙잡고 있던 두 손이 떨어지는 순간, 모녀는 울음을 터뜨렸다.“아빠! 제발 엄마를 혼내지 말아 주세요!”“영훈 오빠... 잘못했어... 살려줘...”그 절규는 싸늘한 공허 속에 가라앉았다.고영훈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허연수 때문이야. 모든 시작과 끝이 그 여자였어. 허연수와 민지에게 쏟은 시간만큼 서윤이 곁에 있었다면... 서윤이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이건 전부... 허연수 때문이야!’고영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만.”허연수와 정민지는 살길이 열린 줄 알고 경호원의 손아귀에서 버둥거렸다.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그러나 불과 30분 뒤, 전 세계를 뒤흔드는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시청자 수는 순식간에 수백만, 수천만으로 폭증했다.화면 속, 고영훈은 단정한 슈트를 차려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피로와 후회의 흔적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그 발치에는 정민지를 끌어안은 허연수와 거액 보험증서를 들고 선 서지원이 있었다.고영훈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서윤아, 미안해. 두 사람이 너에게 도발한 것도, 널 속인 것도... 난 아무것도 몰랐어. 알았다면 그 누구도 네게 해코지하지 못하게 했을 거야. 널 다치게 한 건 전부 내 불찰이야.”서지원과 허연수는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서윤아... 용서받을 자격 없다는 거 알아. 그래도... 한 번만 기회를 줘.”고영훈은 말을 이었다.“다시 널 힘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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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10초 전까지만 해도, 라이브 방송 채팅창은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고 대표님은 그저 세상 모든 남자가 한 번쯤 저지르는 실수를 저질렀을 뿐입니다! 사모님, 용서해 주세요!][바람피운 놈은 믿을 게 못 돼. 바람은 한 번 아니면 무한 번이라고! 절대 용서 못 해!][처제랑 바람난 것도 모자라 애까지 있다니? 인간이길 포기한 거 아니야?][배신자는 미련 없이 떠나야죠. 불여우는 반드시 응징해야 합니다. 사모님, 훌훌 털어버리고 새 인생 사세요!][세상에는 착한 남자들도 많아요. 사모님, 제 남동생 소개해 드릴까요?][고 대표님! 사모님한테 버림받으시면 제가 받아줄게요!]각양각색의 댓글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화면이 쉴 새 없이 스크롤 됐다.그러나 정작 소파에 앉은 고영훈의 몸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심장이 요동치며 귓가에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그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를 다시는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여보...”그가 겨우 한 마디 내뱉던 순간, ‘펑!’ 거친 폭음과 함께 손에 쥔 휴대폰이 폭발하며 뜨거운 파편이 튀어 손바닥을 베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순간, 신호 추적용 노트북도 폭파되고 연기가 났다.“고 대표님! 저희가 역추적 당했습니다! 상대가 눈치채고 위치를 감췄어요!”감식 요원이 비명을 질렀다.“게다가 “전자 방호용 자폭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수준은... 실력자 해커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합니다!”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라이브 방송 채팅창이 또다시 폭발했다.[뭐야, 고 대표님이 사모님 위치를 추적했다고?][끝까지 속이고 감시한 거야? 완전 쓰레기잖아!][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해커도 화가 난 거지. 세상에, 이걸 사랑으로 포장한다고? 이건 집착이지!][사모님 잘했어요! 이젠 진짜 벗어나요!]그때, 고영훈의 귓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폭발의 잔열로 귀 안에 이명이 들리고 손끝이 떨렸다.바닥에 나뒹구는 휴대폰 잔해를 바라보며 그는 비로소 송서윤의 마음이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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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사모님이 과연 고 대표님을 용서하실까요?”이혜진이 꺼진 카메라 앞에서 중얼거렸다.“아이만 불쌍해졌어요.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던데요.”...한편, 조용한 병실로 옮겨진 뒤, 주희영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영훈아, 정말 괜찮은 거야?”고영훈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눈이 퉁퉁 부은 고하준을 품에 안고 오랜만에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하준아, 엄마는 널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 절대 버리지 않아. 언젠간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우리 하준이는 밥 잘 먹고 학교도 잘 다니면서 착하게 기다리자. 그래야 엄마가 돌아와. 알겠지?”고하준은 눈물 맺힌 채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의 품에 안겼다.고영훈은 시선을 경호팀장에게 돌렸다.“소주원을 감시해. 그리고 모든 움직임을 즉시 보고해.”송서윤이 가장 아끼던 블루 스타 목걸이를 소도윤에게 줬다는 건 둘 사이에 분명 뭔가가 있는 뜻이었다.“그리고 긴급 보도 하나 내.”“대표님, 어떤 내용으로 보도를 낼까요?”고영훈의 눈빛이 깊게 일렁였다.“내가 임종을 앞두고 아내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으로 보도해.”경호팀장은 고개를 숙이고 곧장 병실을 나갔다.주희영은 아들이 예전처럼 다시 냉정한 얼굴로 돌아온 아들이 오히려 두려웠다.“영훈아, 이제 그만해. 서윤이도 놔주고 너 자신도 좀 놓아줘. 하준이도 있잖아. 언젠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이번 생에 제 아내는 송서윤뿐이에요.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돼요!”고영훈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 눈빛은 서늘하다 못해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어머니라 감히 뭐라 할 순 없지만, 절 약으로 조종한 일은 잊지 않을 겁니다. 이제부터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말아 주세요.”주희영은 억눌러온 분노를 터뜨렸다.“좋아. 그렇다면 네가 나와 인연을 끊기 전에, 고훈이랑 그 뻔뻔한 여자를 케이원 그룹에서 내쫓아!”고영훈의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졌다.“케이원 그룹 따위, 서윤이가 원한다면 내어줄 수도 있어요.”그의 ‘위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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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여론이 분분한 사이, 고영훈과 송서윤 부부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주희영이 해담도에서 아들을 찾아낸 것은 그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퍼진 뒤 석 달이 지나서였다.고영훈은 며칠이고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제대로 잠도 자지 않은 상태였다. 수염은 거칠게 자라 있었고 초췌한 얼굴은 뼈만 남은 듯했다.한때 세상 누구보다 당당하고 단정했던 케이원 그룹 대표의 모습은 이제 흔적조차 없었다.주희영은 그런 아들을 처음 보았기에 가슴이 찢기듯 아팠다.경호원들의 말로는 이미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찾아보았지만 송서윤은 정말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처럼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주희영은 문득 가장 나쁜 가능성을 떠올렸다.‘서윤이는 원래 심장이 약했잖아...’하지만 그런 말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그 말을 들은 순간, 아들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영훈아...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니.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그 애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주희영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애원에 가까웠다.그러나 고영훈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서윤이는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민지를 가장 사랑했던 서윤이가... 이렇게 민지를 두고 떠날 리가 없어요.”그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결혼반지를 문질렀다. 그의 눈빛은 이미 집착으로 굳어 있었다.“서윤이는 결혼반지를 민지 무덤 앞에 두고 갔어요. 그건 분명 돌아오겠다는 신호예요.”주희영은 그 말을 듣고도 더는 설득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하준이가...”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보육원에서 괴롭힘을 당해 밤마다 울고 겁에 질려 있다더라.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고 해. 데려오자, 제발.”고영훈은 냉담하게 말했다.“그건 하준이가 감당해야 할 벌이에요.”“영훈아!”주희영의 목소리가 떨렸다.“하준이가 허연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더라면 서윤이가 의심을 품고 CCTV 영상을 확인하러 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 이런 일도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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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기계음이 섞인 납치범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내일 정오, 현금 10억 가지고 성원시로 와.”고영훈은 숨을 삼켰다.“내 아내를 보여 줘.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겠어.”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차갑게 끊겨버렸다.“영훈아, 제발 직접 가지 마.”주희영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정말 납치라면 진즉 돈을 요구했을 거야. 이제야 협박 전화를 걸어온 건 누가 봐도 수상해. 우리... 경찰에 신고하자.”그러나 고영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는 경호팀장을 향해 짧고 단호하게 명령했다.“헬기랑 돈 준비해.”단 한 줄기 희망,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절대 놓칠 수 없었다.“영훈아,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원한을 샀니... 함정일 수도 있어. 신중하게 결정해.”과거 송서윤이 납치되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 침착했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해 냈다.하지만 지금의 고영훈은 달랐다. 무너진 이성의 잔해 위에 겨우 버티고 있었다.“제발 정신 좀 차려!”주희영의 절규는 바람 속에서 흩어졌고 고영훈은 그녀의 만류를 뒤로한 채 헬기에 올랐다.“큰 사모님, 제가 대표님 곁을 지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주희영도 더는 막을 수 없었다.“조심해. 제발...”그녀는 눈가를 훔치고 등을 돌렸다.시간이 지나도 송서윤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먼저 무너지는 건 그녀의 아들이었다.곧이어 주희영은 전화를 걸었다.“지난번 계획대로 진행해. 섭외된 사람 전부 데려와. 그리고 그중 서윤이와 가장 닮은 여자를 골라보자고.”...납치범이 지정한 장소는 강가의 폐공장이었다.사방이 탁 트여 있어 경호팀은 접근조차 어려웠다.경호팀장은 불안한 눈으로 가방을 들고 말했다.“대표님, 제가 들어가겠습니다.”하지만 고영훈은 말없이 가방을 받아 들고 폐공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고영훈이 들어서자, 반쯤 열린 철문이 닫혔다.그와 동시에 가면을 쓴 남자 두 명이 그를 포위했다.“돈 내놔!”납치범이 총구를 겨누며 소리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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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네가 우리 손자를 감옥에 처넣는 바람에 우리 바깥양반이 충격으로 돌아가셨어. 그러니 넌 내 손에 죽어야 해!”노파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다시 칼을 치켜들었다.그러나 고영훈이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칼이 바닥에 쨍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노파는 뒤로 나가떨어져 철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더니 그대로 기절했다.고영훈은 복부의 상처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가락 사이로 피가 끊임없이 스며 나왔다.그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창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송서윤을 찾을 희망을 잃자, 온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핏발 선 눈동자에 광기가 번져,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망령 같았다. 그 모습은 주변에 있던 이들을 숨 멎게 했다.밖으로 나와보니, 가짜 납치범 두 명은 경호원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고영훈은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을 잃었다. 그는 납치범 한 명의 멱살을 움켜쥐고 거칠게 주먹을 내리꽂았다.피가 튀어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어 보였다.“네깟 것들이 감히 나를 속여?”“대표님! 안 됩니다!”경호팀장의 외침은 닿지 않았다. 지금의 고영훈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납치범의 얼굴은 순식간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피범벅이 됐다.고영훈의 옷자락에도 피가 번졌고 그는 쓰러질 듯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왜 속였어! 왜!”그때 깨달음이 스쳤다.창고 안에서 들렸던 송서윤의 목소리는 짜깁기 된 녹음이었다.배경에 깔려 있던 연주곡은 고영은의 결혼식에서 들었던 바로 그 곡이었다.고영훈은 그 목소리가 녹음된 거란 걸 모를 리 없었다.그럼에도 그는 믿고 싶었다. 속임수라도 좋으니, 송서윤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그때 노파가 절규했다.“성원시 여씨 가문을 기억해? 고영훈, 네놈 때문에 우리 준기는 감옥에 갔고 우리 바깥양반은 충격을 못 이기고 돌아가셨어!”가짜 납치범 중 한 명이 소리쳤다.“준기는 단지 남자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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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주희영과 정지욱은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병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고영훈은 이미 상체를 일으킨 상태였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막 수술을 마쳐 마취도 채 풀리지 않았는데, 고영훈은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채 모니터에 연결된 검사 설비와 주사기를 거칠게 뜯어내고 있었다.복부에 감겨 있던 하얀 붕대는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그는 이불을 밀쳐내며 바닥으로 내려와 서려 했다.“영훈아, 안 돼!”주희영이 다급하게 외쳤다.“지금 막 상처를 꿰맸잖아! 이러다 과다 출혈로 잘못될 수도 있어! 너... 엄마 겁주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정지욱도 급히 달려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송서윤을 닮은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 다가왔다.“영훈아... 나 이제 돌아왔어. 괜찮...”고영훈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또렷했다.“너는 서윤이가 아니야. 서윤이 자리를 대신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당장 나가.”“영훈아... 다시 잘 봐봐...”“서윤이는 수술을 마친 내 몸에 기대지 않았을 거야. 설령 내가 잡아당겨도 끝까지 버텼을 거라고! 서윤이는 내가 아플까 봐 늘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었어. 서윤이는... 그런 사람이야!”고영훈은 격렬하게 몸부림쳤다.붕대가 터지며 피가 쏟아졌지만, 그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성을 잃고 송서윤의 이름만 외쳤다.“서윤이한테 가야 돼! 지금 당장!”주희영과 정지욱이 동시에 붙잡았지만, 두 사람의 힘으로는 제압이 되지 않았다.다행히 의료진이 달려와 진정제를 투여했다.잠시 후, 고영훈은 눈을 떴지만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눈은 떠 있었으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다.주희영은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한참 침묵하던 정지욱이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케이원 그룹이 아버님, 아니, 고훈... 그 인간 손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형님이 이렇게 무너지시면 이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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