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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줘》全部章節:第 581 章 - 第 590 章

799 章節

제581화

마지막 요리가 식탁에 올라올 때쯤, 하도진의 부모가 집에 들어섰다.그러자 가사도우미가 곧바로 다가가 두 사람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아버지, 어머니, 저희 왔어요.”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바로 걸음을 멈췄고 서로 잠깐 눈을 마주쳤다.민하윤은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께 인사하려 했다.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채선화가 먼저 민하윤의 말을 끊었다.채선화는 미간을 찌푸린 채 민하윤을 한번 훑어보고는 거의 반사적으로 내뱉었다.“넌 왜 여기 있는 거야?”절대 반갑다고 할 수 없는 채선화의 말투였다.민하윤은 그대로 굳어 버렸고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하도진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더니 수저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새빨간 혼인관계증명서 두 권을 꺼내 식탁 위에 툭 올려놓았다.“하윤이가 자기 집에 온 건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요?”김옥자는 잽싸게 증서 두 권을 낚아채 앞뒤로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사진이 참 잘 나왔네. 보기도 좋고... 경사가 났네!”“그럼요. 할머니의 손자는 어떻게 찍어도 잘생겼잖아요.”하도진은 채선화의 굳은 얼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정작 어머니인 채선화가 화가 나서 말도 못 하고 있는데도 하도진은 능청스럽게 농담을 이어 갔다.민하윤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하도진이 민하윤의 손목을 붙잡아 다시 의자에 앉혔다.“앉아서 밥이나 먹어. 두 분께서 나이 합치면 백 살도 넘는데 네가 밥까지 챙겨 드릴 필요는 없어.”그때 하준혁은 채선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손 씻고 밥이나 먹자.”채선화는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식탁에 앉았다.하도진이 민하윤에게 새우를 까 주고 반찬까지 챙겨 주는 모습을 보자 채선화는 기분이 더 상했다.“저 이제 못 먹겠어요.”민하윤은 산처럼 수북해진 그릇을 난감하게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하도진은 간장 새우 한 접시를 전부 까서 민하윤의 그릇에 쌓아 놓았다.어른들이 다 보고 있는 앞이라 민하윤은 더 부담스러웠다.하도진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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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민하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 얘기는 지난번에 했잖아요. 제가 나중에 은퇴하면 그때 한가한 사모님이나 할게요.”그러자 하도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민하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알겠어. 결국 넌 그 답답한 직장을 못 떠나겠다는 거잖아. 그럼 더 얘기할 것도 없네. 계속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근해. 편하게 살 수 있는데도 굳이 고생을 사서 하겠다니...”하도진은 말하며 그대로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또 대화가 틀어질 것 같자 민하윤은 다급히 하도진의 소매를 붙잡았다.민하윤의 목소리는 몹시 초조했다.“우리 이 일로 또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좋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요. 그런데 도진 씨는 왜 자꾸 저를 집 안에만 가둬 두려고 해요?”“안 돼.”하도진은 차갑게 민하윤을 보았고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의 다정함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네가 좋아하는 게 일이야? 아니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야? 민하윤, 오늘까지도 넌 밖에서 미혼인 척하고 있잖아.”“아니라고요!”민하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반사적으로 부정했다.하도진은 갑자기 민하윤의 손목을 움켜쥐고 위로 들어 올렸다.아무것도 끼지 않은 민하윤의 약지는 희고 매끈했다.“아니라고? 그럼 결혼반지는? 왜 안 끼고 다녀? 네가 결혼한 걸 남들이 아는 게 그렇게 싫어?”민하윤은 억울하고 화가 났다.“제가 미혼인 척한 게 아니에요. 반지 다이아가 너무 커서 눈에 띄고 괜히 말이 나올까 봐 그런 거예요. 남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은 게 제 잘못이에요?”하도진은 차갑게 웃더니 민하윤의 턱을 잡아 들었다.“잘못이 아니지. 네가 뭘 하든 네 자유니까. 예전에는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없다고 생각했어. 반지도 결혼식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해 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결혼식도 싫다고 하고 반지도 안 끼고 다니네. 결국 그냥 나 혼자서 들떠 있었던 거잖아.”하도진은 손을 거칠게 놓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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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하도진은 잠시 멍해 있다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헝클어진 머리까지 더해지자 하도진은 온몸에서 축 처진 기운이 흘렀다.“싸웠어?”김옥자는 단번에 하도진의 속내를 알아챘다.그러자 하도진은 고개를 저었다.“할머니, 예전에 제가 다시 시작하자고 했을 때 하윤이가 거절했잖아요. 그때 하윤의 말이 맞았을지도 몰라요. 다시 만나 봤자 결국 예전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거라고요.”김옥자는 찻잔을 내려놓고 홀로 풀이 죽어 있는 하도진을 바라봤다.“후회하는 거야?”“후회는 안 해요. 그런데 자꾸 싸우고 생각이 부딪치니까 지쳐요.”“도진아, 넌 성격부터 고쳐야 해. 우리가 너를 너무 귀하게만 키웠어.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야.”김옥자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서로 사랑할 때야 뭐든 좋고 마음도 넘치지. 그렇다고 사랑을 믿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건 아니야. 칼처럼 날카로운 말이 계속 쌓이면 아무리 깊은 사이도 견디지 못해.”하도진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저는 그냥 하윤이가 저랑 좀 더 함께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매일 일만 하니까 제 옆에 있는 시간이 손에 꼽힐 정도예요.”“정말 그것뿐이야?”김옥자는 새로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끓는 산샘물이 찻잎 위로 부어지자 집 안에는 은은하고 달콤한 차향이 퍼졌다.“그게 전부는 아니에요.”하도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하윤이는 너무 좋은 사람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넘볼까 봐 겁나요. 너무 좋아서... 제 곁에만 붙잡아 두고 싶을 정도로요.”“도진아, 하윤이는 네가 기르는 새가 아니야. 연못 속에 키우는 잉어도 아니고 별장에 심어 놓고 구경하는 꽃도 아니야.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란 말이지.”김옥자는 하도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윤이는 자기 삶을 가진 독립된 사람이야. 넌 하윤이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을 못 믿는 거야. 사랑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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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그러자 이남주는 눈을 흘기며 작게 투덜거렸다.“차라리 전부 버리지 악마한테는 절대 안 줘요. 제가 힘들게 번 돈인데 아깝게 왜 그러겠어요!”민하윤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송 부장님은 명문대 출신에 매너도 좋으시잖아요. 부서 간의 협업으로 몇 번 같이 일해 봤는데 성격도 괜찮으시던데요?”이남주는 눈을 거의 천장까지 굴리더니 민하윤의 옆에 바짝 붙어 억울함을 쏟아 냈다.“그건 하윤 씨 앞에서만 그런 거예요. 그 사람은 진짜 인간미가 없다니까요. 제가 말씀드리는데요...”임형섭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그 순간,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임형섭은 민하윤이 일부러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3명의 은행장과 S급 고객들은 일등석을 이용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일반석에 탔다.일행이 탑승구로 향하던 중 공항 한쪽이 갑자기 술렁였다.많은 사람이 휴대폰을 든 채 한 사람을 둘러싸고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누구예요?”“그 역사극에서 송낙 공주 맡았던 배우 있잖아요. 얼마 전에 엄청 핫한 드라마 말이에요.”“아, 기억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청춘 드라마에도 나왔죠? 연기 잘하던데요.”“요즘 진짜 잘나가잖아요. 전에는 연기는 잘해도 작품 운이 없어서 잘 못 떴는데.”“작년에 영화제에서 주연상도 받고 몇 년째 연말 특집 무대에도 나오더라고요.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뜨는 건 좋은 일이죠.”민하윤은 동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VIP 탑승구 앞에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눈부신 여배우를 바라봤다.백누리가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다.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커리어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민하윤이 탑승구를 통과하자 휴대폰이 진동했다.백누리였다.[야, 너 공항이야?]민하윤은 조금 놀랐다.이 정도면 정말 통하는 게 있는 건가 싶었다.민하윤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응, 나 방금 널 봤어. 이제 완전 연예인 포스 나더라.]백누리가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매니저가 탑승구에서 널 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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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그 순간, 씁쓸한 미소가 민하윤의 입가에 번졌다.그때 수화기 너머로 백누리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근데 대표님은 왜 일등석에 계세요?”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심하다는 듯 백누리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제가 일등석에 안 타면 조종석에 타야 하나요?”“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요. 두 분이 왜 따로 앉았나 해서요. 설마 또 싸우셨어요?”하도진은 ‘또’라는 말에 제대로 찔렸고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백누리를 바라봤다.“그렇게 한가해요? 궁금한 게 왜 이렇게 많아요? 그냥 하윤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래.”그러자 백누리는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돌렸고 속으로 하도진을 신나게 욕해 댔다.마침 기내 방송에서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꿔 달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백누리는 전화를 끊으려다 손이 미끄러져 그만 스피커폰을 눌러 버렸다.“민 부장님, 정말 우연이네요. 우리 좌석이 바로 붙어 있네요. 이것도 인연인가 봐요.”한 젊은 남자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일등석 전체에 울려 퍼졌다.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백누리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백누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얼굴이 잔뜩 굳은 하도진과 눈이 마주쳤다....“민 부장님, 저 기억 안 나세요?”젊은 남자는 조금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고 민하윤은 잠깐 멈칫하다가 눈앞의 인턴을 알아봤다.2년 전 서북 지역 실사에 함께 갔던 프로젝트팀의 막내였던 서용우였다.“기억나요. 서...”“서용우예요.”서용우가 재빨리 자기소개를 덧붙여 민하윤의 난처함을 자연스럽게 덮어 줬다.“저 이제 정직원이 됐어요. 지금은 마케팅 부서로 옮겼고요.”서용우는 먼저 자신의 근황을 풀어놓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어느새 비행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비행기가 진도국제공항에 도착할 무렵, 민하윤은 원치 않게도 서용우가 골든 브리티시 쇼트헤어 두 마리와 랙돌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운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서용우는 예전처럼 활기차고 친화력이 좋았다.민하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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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서 비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하도진의 말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한번 안 와 보시랍니다.”민하윤은 깊게 숨을 들이켰지만 말이 목에 걸린 듯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그 순간, 손에 쥔 카드키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또 다른 할 말이 있나요?”“대표님께서 휴대폰 전원을 켜 두라고 하셨습니다. 연락이 안 돼서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이동하세요.”서 비서는 민하윤이 카드키를 도로 떠넘길까 봐 겁이라도 난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그때 마침 은행에서 준비한 버스도 도착했다.직원들은 줄을 맞춰 차례로 올라탔고 서용우는 민하윤의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민하윤을 찾고 있었다.민하윤은 카드키를 가방에 넣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검은 차는 여전히 길가에 서 있었고 짙은 갈색 선팅 너머로는 안에 앉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민 부장님, 괜찮으세요? 아까 그 사람은 왜 찾아온 거예요?”서용우는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민하윤을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차 왔으니까 가요.”민하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서용우를 안심시켰다.“하윤아.”그때 S급 고객들과 함께 비즈니스 차를 타고 떠나야 했을 임형섭이 갑자기 나타났다.“네? 임 행장님, 무슨 일이세요?”임형섭은 잠시 굳었다가 입을 열었다.“앞쪽 비즈니스 차량에 자리가 남았어. 같이 타고 갈래?”“아니에요.”...서 비서는 백미러로 뒤를 재빨리 훔쳐봤다.하도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얼굴이 서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대표님, 호텔로 출발할까요?”그 순간, 하도진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하도진은 조금 전부터 멀리서 벌어지는 상황을 전부 보고 있었다.임형섭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으로 금속 난간을 짚은 채 몸을 숙여 민하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 물러서지 않고 대치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젊은 남자도 서 있었다.기껏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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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민하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훤칠하고 마른 모습의 임형섭이 점점 멀어지더니 끝내 작은 검은 점처럼 보이지 않게 됐다.서용우는 생수병 뚜껑을 정성스럽게 따서 민하윤에게 건네며 말했다.“민 부장님은 임 행장님이랑 아주 친하세요? 사실 저는 임 행장님이 좀 무서워요. 3명의 은행장님 중에 제일 젊으신데도 이상하게 앞에만 가면 긴장된다니까요.”민하윤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미안한데 저 혼자 좀 있고 싶어요.”서용우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방을 메고 앞쪽 빈자리로 옮겨 앉았다.그러고는 뒤돌아보며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하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저 빵이랑 초콜릿도 있어요. 배고프시면 말씀하세요. 이제 방해 안 할게요.”서용우는 마치 작은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따뜻하고 활기차면서도 눈치까지 빨랐다.서용우는 정말 그 뒤로 민하윤을 건드리지 않았다.민하윤은 창가에 기대앉아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버스 두 대가 호텔 로비 앞에 나란히 멈췄을 땐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바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긴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한순간에 씻어 주는 것 같았다.직원들은 로비에 모여 체크인 순서를 기다렸다.멀리서 민하윤을 발견한 이남주가 거의 날아오다시피 달려왔다.그러자 민하윤은 반사적으로 아랫배를 감쌌다.다행히 털털한 이남주는 민하윤의 작은 동작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우리 회사는 너무 짜요. 두 명이 한 방이라니요. 출장비는 대체 어디다 쓰는 거예요? 하윤 언니, 우리 둘이 같은 방 써요. 네?”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주머니 속 카드키가 손끝에 닿는 순간 황급히 다시 고개를 저었다.오늘 밤에 민하윤은 자기 방에서 자지 않을 수도 있었다.아무리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움직인다고 해도 같은 방을 쓰는 사람까지 속이기는 어려웠다.그러니 아무래도 혼자 방을 쓰는 편이 가장 안전했다.이남주는 순식간에 울상이 됐다.“뭐예요? 된다는 거예요? 안 된다는 거예요?”그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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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문자 한 통 안 보내는 게 걱정하는 건가?’민하윤은 자기가 대체 뭘로 화가 난 건지도 모른 채 휴대폰을 가방에 던져 넣었다.그러더니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올라갔다.민하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샤워부터 했다.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에 온몸이 땀으로 끈적거렸다.입었던 치마를 세탁 바구니에 던지는 순간, 서 비서에게 받은 카드키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민하윤은 몇 초간 멈춰 서서 바라보다가 못 본 척 몸을 돌렸다.침대에 누운 민하윤은 다음 날의 일정을 간단히 확인했다.오전에는 협력사와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점검한 뒤, e스포츠팀 훈련 기지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홍보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오후에는 은행 측에서 리스크 적격성 평가서를 작성하고 절차에 따라 회계 내역을 검토한 뒤 최종 위험도를 산정해 e스포츠 기지의 예상 투자 수익을 1차로 평가할 예정이었다.그때 백누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두 사람은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행기 이륙 전에 벌어진 해프닝 얘기가 나왔다.“야, 네가 그때 못 봐서 그렇지... 스피커폰이 켜지는 순간 우리 하 대표님의 얼굴이 아주 살벌했다니까? 눈빛으로 사람을 찔러 죽일 기세였어. 내가 운이 좋아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연예면 1면에서 내 은퇴 기사를 봤을걸?”그러더니 백누리가 신이 나서 물었다.“근데 그 연하남은 뭐야? 누나라고도 안 부르고... 야망이 좀 있어 보이던데?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야? 요즘 애들 진짜 용감하다니까. 직장에서 대놓고 상사한테 들이대다니 말이야. 혹시 너한테 무슨 특혜라도 받고 싶은 건가?”백누리는 사석에서 말에 거침이 없었다.방송에서 보이는 화려하고 우아한 톱스타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언론 인터뷰에서도 말수가 적은 편이라 팬들은 백누리가 평소에도 조용하고 도도할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실제로는 민하윤조차 백누리의 엉뚱한 발언에 자주 놀랄 정도였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용우 씨는 날 민 부장님이라고 불렀어. 네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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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어느새 분위기는 점점 묘하게 달아올랐다.민하윤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고 천장의 불빛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실크 잠옷도 어느새 벗겨져 있었다.하도진의 입맞춤은 점점 깊어지나 민하윤은 감당하기가 벅찼다.“안 돼요.”민하윤은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하도진을 밀어냈지만 소용없었다.민하윤도 다급한 나머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자꾸만 하도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도진 씨, 정말 안 돼요. 제발요.”“왜 안 돼?”그러자 하도진은 동작을 멈췄다.이마에 내려온 하도진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있었다.하도진은 깊고 검은 눈으로 민하윤을 바라봤다.굳이 고집스럽게 이유를 듣겠다는 눈빛이었다.민하윤은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임신했어요.”“뭐라고?”그 말에 하도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긴 목소리로 되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임신했다고요. 두 달 됐어요.”입술을 깨문 채 대답한 민하윤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하얀 피부에는 얇은 땀이 맺혀 있었다.“언제 알았어? 병원에도 다녀왔어?”하도진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으로 민하윤을 바라봤다.민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니에요. 언제 말해야 할지 몰랐어요. 원래는 진도에서 돌아가면 말하려고 했어요.”하도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 샤워 좀 하고 올게. 지금은 얘기할 상태가 아닌 것 같아.”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하도진의 말뜻을 알아차린 민하윤은 얼굴이 노을처럼 새빨개져서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욕실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민하윤은 간신히 정신을 추슬렀고 바닥에 떨어진 잠옷을 주워 입더니 가방에서 검사 결과지를 꺼냈다.민하윤은 불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앉아 기다렸다.그 순간,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민하윤이 거의 잠이 들 무렵에야 하도진은 헐렁한 샤워 가운을 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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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민하윤은 정말 많이 지쳐 있었다.긴장이 풀리는 순간 팔다리에 힘이 쭉 빠졌고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졌다.잠에 빠져들 무렵 하도진이 무언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너무 졸린 나머지 무슨 말인지 확인할 기력조차 없었다.몽롱한 의식 속에서 민하윤이 느낀 건 자신을 단단히 끌어안은 하도진의 품과 가볍게 스쳐 간 입맞춤뿐이었다.다음 날 아침, 민하윤은 몸을 뒤척이며 다시 잠들려다가 번쩍 눈을 떴다.그러더니 곧장 휴대폰을 더듬어 시간을 확인했다.‘9시 40분이야?’민하윤은 화들짝 몸을 일으켰지만 하도진이 손목을 붙잡고 허리를 끌어안아 다시 침대에 눕혔다.“뭐가 그렇게 급해?”하도진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금만 더 자. 아직 시간 많아.”민하윤은 몇 번 몸부림쳤지만 하도진의 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이러지 마요. 10시에 로비에 모이기로 했어요. 정말 늦어요.”민하윤은 부탁하듯 말하며 허리를 감싼 두 손을 떼어 내려 했다.그때 하도진이 갑자기 눈을 떴다.새까만 눈동자가 민하윤을 똑바로 응시했다.“네가 계속 일하겠다는 문제 말이야. 이제 나한테도 협상할 권리가 생긴 거 아니야? 조금이라도 다시 얘기해 볼 여지가 없어?”“네?”민하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멈칫했다.“이제 임신했으니까 일을 쉬고 집에서 편하게 태교하는 건 어때?”하도진의 말투는 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하도진은 손을 들어 민하윤의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네 인생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려는 건 아니야. 다만 우리는 상황이 좀 특별하잖아. 어렵게 찾아온 아이고 우리한테 정말 소중하고 의미도 큰 아이니까. 당분간 일을 쉬는 것도 생각해 보면 좋겠어.”“하도진 씨.”민하윤이 갑자기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성까지 붙여 또렷하게 하도진의 이름을 불렀다.“응?”“에스티 그룹은 국내 최정상급 상장기업이고 수많은 업종에 투자하고 있죠. 계열사만 천 곳이 넘고 그중 업계를 대표할 만한 우수 기업도 100곳이 넘어요. 전체 직원은 수십만 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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