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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Chapters

제561화

그 순간, 민하윤은 작게 신음을 냈다.하도진의 품 안에서 편한 자세를 찾아 몸을 비틀다가 다시 돌아누워 자려는 순간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내려놔요. 혼자 난리 치지 말고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또 그런 생각만 하시는 거예요?”민하윤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주먹으로 하도진을 퍽퍽 쳤다.하도진은 한 손으로 민하윤을 안은 채, 다른 손으로는 분홍색 칫솔에 치약을 짰다.“세수하고 옷 갈아입어.”“도진 씨, 너무 졸려요. 자고 싶다고요. 수면 부족이 얼마나 안 좋은지 못 들으셨어요? 수면 부족이면...”태아의 발달에 안 좋다는 말은 끝내 내뱉지 못했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민하윤은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황급히 삼키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흥미롭다는 듯 민하윤을 바라봤다.“왜 말을 하다 마는 거야? 수면 부족이면 뭐가 어떻대?”“저... 제 뇌 발달에 안 좋잖아요. 잠 부족하면 멍청해진다면서요.”민하윤은 말하는 기세가 약해졌다.거짓말할 때면 늘 그랬듯이 하도진의 눈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하도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민하윤을 한번 훑어봤다.“휴대폰 좀 덜 보고 어이없는 연애 드라마 좀 덜 보면 그게 제일 효과 있지. 근데 너 원래 멍청하지는 않아. 꽤 똑똑한 편이야.”민하윤은 하도진의 말을 들었을 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뒤에 이어진 칭찬을 듣는 순간 기분이 확 풀렸고 속으로는 은근히 뿌듯하기까지 했다.그래도 민하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턱을 조금 치켜들었다.“그건 원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굳이 그렇게까지 칭찬하실 필요는 없는데요?”“그래. 그럼 얼른 씻고 옷 갈아입어.”하도진은 전동칫솔을 민하윤 앞으로 내밀었고 잠깐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덧붙였다.“네가 힘들면 내가...”“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민하윤은 하도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안 그래도 무서웠다.분명 대신 양치해 주겠다는 소리일 게 뻔했다.세수를 마친 민하윤의 얼굴은 민낯인데도 희고 맑았으며 피부는 물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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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하도진은 손에 흰 셔츠를 여러 벌 들고 문틀에 기대섰고 어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나갈 때 입을 거 하나 골라 줘.”그러자 민하윤은 셔츠 더미를 흘끗 봤다.“거기서 거기가 아닌가요? 다 같은 디자인처럼 보이는데요. 저는 오늘 원피스 입고 싶은데요. 우리 어디 나가요? 왜 굳이 흰 셔츠로 갈아입어야 해요? 드레스 코드라도 있나요?”민하윤은 대충 스킨로션만 바르고 선크림까지 마쳤다.선크림은 백누리가 광고하는 제품이었고 성분도 순하고 브랜드도 큰 곳이었다.그날 촬영장에 다녀온 뒤, 백누리의 매니저가 브랜드 측에서 준 거라며 한 보따리를 챙겨 줬고 민하윤은 두어 번 써 보고 자기 피부에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응. 내가 결혼식 안 하겠다는 네 말을 들어줬잖아. 그럼 너도 내 요구 하나쯤은 들어줘야지. 혼인신고 다시 하는 거 말이야.”하도진은 단호한 태도로 말하며 들고 온 흰 셔츠들을 침대 위에 하나씩 펼쳐 놓았다.“하나 골라.”민하윤은 구석에 놓인 넥라인의 블라우스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럼 이걸로 할게요.”그러자 하도진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민하윤이 재혼 신고를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이렇게 얌전히 굴다니?’하지만 하도진은 몰랐다.민하윤으로서는 이제 순순히 다시 혼인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뱃속의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숨길 수 없게 될 테고 아이도 결국 아버지가 있어야 했다.여기까지 왔으니 민하윤도 괜히 버틸 이유가 없었다.게다가 민하윤은 이미 반지까지 받았다.그런 생각이 스치자 민하윤은 슬쩍 하도진의 손을 쳐다봤다.길고 뼈마디가 선명한 손가락, 하얀 피부 아래에는 푸른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그런데 하도진의 열 손가락은 다 비어 있었고 결혼반지가 없었다.민하윤은 코웃음을 치며 침대 쪽으로 가 블라우스를 몸에 대 봤다.그러더니 일부러 퉁명스럽게 물었다.“도진 씨의 반지는요? 왜 안 끼고 있어요? 예쁘고 젊은 여자 앞에서라도 아직 싱글인 척하려고요? 하 대표님은 응대할 사람도 많고 접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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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하도진은 민하윤을 품에 꼭 안고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이제 우리도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잖아. 맨날 그렇게 투닥거리지 좀 말자.”민하윤은 기가 막혀 눈을 흘겼다.“도대체 누가 맨날 그래요? 요즘 성질부리는 건 도진 씨잖아요. 나이 얘기도 못 하게 하고 전 여자 친구 얘기도 못 하게 하잖아요.”하도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민하윤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예전엔 몰랐는데 너 은근히 지난 일을 잘 꺼내더라. 다 옛날얘기잖아. 옛날얘기는 이제 좀 그만하자.”“네.”민하윤은 얌전히 대답했다가도 못내 아쉬운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럼 도진 씨도 앞으로 선배 얘기 꺼내지 마세요.”하도진은 고개를 숙여 민하윤에게 입을 맞췄다.“알았어. 우리 와이프 말 들을게. 그 사람이 널 좋아하면 어때? 그건 그냥 내 안목이 높았다는 뜻이지. 내 와이프가 그만큼 매력 있고 사람 눈길을 힘이 있다는 뜻이잖아.”“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아직도 졸려? 더 잘래?”“저는 안... 읍...”서 비서는 아래층에서 목이 빠져라 계단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대표님이 올라가 사모님을 깨운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 깨우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야?’그래도 서 비서는 큰일을 겪어 본 사람답게 꾹 참고 현관 앞에서 다리가 저릴 정도로 기다렸다.한참이 지나서야 서 비서는 두 사람이 앞뒤로 계단을 내려오는 걸 보았다.하도진은 어딘가 상쾌해 보였고 가늘게 뜬 눈으로 하품하며 계단을 반쯤 내려오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서류는 다 챙기셨어요?”민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서류봉투를 다시 확인했다.하도진이 하는 일을 영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가볍게 웃었다.“왜? 그렇게 나랑 다시 혼인신고를 하고 싶었어? 몰랐네. 우리 민 부장님은 생각보다 더 급했구나.”민하윤은 어이가 없어서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그대로 하도진의 품에 툭 던지고는 몸을 돌려 다시 올라가려 했다.“잘못했어. 급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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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하도진은 문득 민하윤의 손을 감싸 쥐었다가 손끝이 차갑다는 걸 느끼고 눈빛이 달라졌다.“추워?”민하윤이 대답할 틈도 없이 하도진은 운전기사에게 에어컨 온도를 올리라고 했다.서 비서는 눈치 빠르게 바로 앞 좌석 수납함에서 숄을 꺼내더니 포장까지 벗겨 하도진에게 건넸다.민하윤은 어이없어 웃었다.“차에 왜 늘 숄이랑 담요가 있어요? 서 비서님은 무슨 도라에몽 같아요. 없는 게 없네요.”서 비서는 히히 웃다가 고개를 돌린 순간, 백미러 너머로 하도진의 길고 싸늘한 눈매와 정면으로 마주쳤다.그러자 서 비서는 즉시 웃음을 거두고 다시 감정 없는 직장인 표정으로 돌아갔다.그러더니 한 치 오차 없는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사모님,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하 대표님의 배려를 대신 전해 드린 것뿐입니다.”민하윤은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도진 씨의 밑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로봇 같을까?’제대로 된 농담 하나도 못 받는 분위기였다.서 비서는 몰래 백미러로 하도진의 눈치를 보다가 속으로 크게 안도했다.‘큰일 날 뻔했네. 성과급도 지키고 연봉도 지켰어. 괜히 직장을 잃고 고향에 내려가서 엄마랑 농사지을 뻔했잖아.’민하윤은 실제로 조금 추웠기에 숄을 둘러쓰고 잠시 잠이 들었다.이번 임신은 지난번과 달랐다.입맛도 완전히 바뀌었고 체감 온도도 훨씬 낮아졌다.민하윤은 유난히 추위를 탔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건 계속 졸린다는 점뿐이었다.민하윤은 늘 잠이 덜 깬 사람처럼 몸이 무거웠다.눈을 떴을 땐 차가 이미 구청 앞에 멈춰 서 있었고 운전기사도 서 비서도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민하윤은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분명 처음에는 창문에 기대 잠들었는데 깨어 보니 하도진의 품 안이었다.“도착했으면 깨워 주지 그랬어요.”민하윤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러자 하도진은 입꼬리를 올렸다.“깨웠어. 네가 안 일어난 거야.”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렸고 당연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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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하도진은 몇 계단 아래로 내려와 민하윤 앞에 섰고 입가에는 아주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민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하도진을 올려다봤다.“왜 웃어요?”“이번에는 우리가 진짜 해피 앤딩이면 좋겠어.”하도진은 계단 백 개쯤 오르는 걸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예전에 두 사람이 혼인신고 하러 갔을 때는 차를 구청 앞에 세우고 그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그런데 하도진은 지금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장소가 바뀌고 절차가 바뀐 만큼 두 사람 앞에 놓인 미래도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하도진은 더 말하지 않고 아래로 한 계단 더 내려섰다.“잠깐...”민하윤은 단번에 하도진이 자길 안아 들려고 한다는 걸 눈치챘다.그래서 민하윤은 급히 작은 목소리로 애원했다.“사람들 이렇게 많은데... 저를 안아 올리지는 마요.”하도진은 등을 돌리더니 민하윤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안 안을게. 업어 줄게.”“네?”민하윤은 눈을 깜빡였다.코끝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머리 위로는 햇빛이 내리비치고 있었다.민하윤은 그 자리에서 하도진과 잠시 실랑이하듯 버텼다.하도진이 그런 민하윤을 한번 흘겨봤다.“일부러 이러는 거야? 시간 끌다가 점심시간 돼서 창구 문 닫게 하려고?”“진짜 괜찮아요. 이렇게 높은 계단은 그냥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도진 씨가 저까지 업고 올라가면 더 힘들잖아요.”민하윤이 한 말은 진심이었다.괜히 튕기거나 유난을 떠는 게 아니었다.“괜찮아. 그냥 올라와.”하도진은 여전히 단호했다.그러다가 문득 민하윤의 말을 끊고 다른 제안을 던졌다.“아니면 널 어깨에 메고 올라갈까? 그것도 괜찮은데...”민하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한다면 배가 눌릴 것 같아서 더 싫었다.다음 순간, 하도진은 민하윤을 등에 업었다.하얗고 가느다란 두 팔이 하도진의 목을 감싸안자 익숙하게 좋은 향이 코끝을 스쳤다.부드럽게 내려온 민하윤의 머리카락이 하도진의 귓불과 목덜미를 간질였다.하도진은 작게 입꼬리를 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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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도진 씨가 저한테 화를 냈는데 제가 우는 것도 안 돼요? 진짜 너무하시네요. 정말 독불장군 끝판왕이에요.”민하윤은 한참 망설였지만 결국 콧물을 다른 사람 옷에 닦는 짓은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코를 훌쩍이는 민하윤은 더 서러워졌다.하도진은 처음 듣는 이상한 표현에 한숨을 쉬었다.“화를 내지 않을게. 내가 잘못했어. 그만 울어. 이러다 누가 보면 내가 널 납치해서 혼인신고하러 끌고 온 줄 알겠어.”그러자 민하윤은 울먹이며 물었다.“그럼 이제 진짜 화를 안 낼 거예요?”그러더니 홧김에 입을 벌려 하도진의 귓불을 세지 않고 이빨 자국만 남길 정도로 살짝 깨물었다.하도진은 목울대를 한 번 굴리더니 결국 민하윤한테 항복했다.하도진의 목소리도 조금 쉬어 있었다.“화내지 않을 거야.”그제야 민하윤은 더는 말하지 않았고 그저 하도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박하와 차가운 나무 향기가 섞인 익숙한 냄새를 조용히 맡았다.혼인신고 창구 직원들은 슬슬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점심시간까지 이제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들 점심 뭐 먹으러 갈지 얘기하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하나같이 흰 셔츠를 입은 잘생긴 남자를 바라보게 됐다.하도진은 창구 앞에 서서 서류봉투를 내밀고 예의가 바르지만 거리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혼인신고하러 왔습니다.”접수 직원은 하도진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정말 흔치 않았다.“혼자 오셨어요?”직원은 서류봉투 안의 신분증을 꺼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하도진의 옆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두 분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여기 기재 먼저 해 주세요.”다른 창구 직원들도 하나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고 다들 속으로 진짜 잘 어울린다고 감탄했고 심지어 몇몇은 휴대폰까지 꺼내 들었다.혹시 연예인이 아니냐며 몰래 검색까지 해 보는 사람도 있었다.민하윤은 눈가가 아직도 붉었다.창구 직원은 민하윤을 두어 번 더 힐끗 보더니 도장을 찍기 전에 일부러 한 번 더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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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하, 그래서 우리를 여기에 다 불러 모았구나. 축의금 받으려고.”구준오는 피식 웃으며 사진을 눌러 봤다.송지훈은 무심코 입꼬리를 올리며 구이현을 힐끗 봤다.구이현은 얼굴빛이 눈에 띄게 안 좋아져 있었다. 입술은 일자로 꾹 다물렸고 두 손도 힘없이 축 늘어졌다.진호영은 재빨리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자기 휴대폰부터 챙겨 들었다.“이현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졌어?”진호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구이현의 곁으로 다가갔고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구준오도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죄송해요.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구이현은 억지로 웃어 보였지만 손끝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구준오가 낮게 물었다.“어디 속이 안 좋아? 오빠가 데리고 들어갈까?”“괜찮아. 신경 쓰지 마.”퉁명스럽게 잘라 말한 구이현의 얼굴에는 대놓고 자신을 좀 그냥 내버려두라는 짜증이 떠올라 있었다.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구이현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다시 말했다.“오빠, 나 좀 혼자 있게 해 줘. 별일 아니야.”구준오는 뭐라도 더 말하려 했지만 누군가가 구준오의 팔을 잡았다.구이현은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주위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방을 나갔다.“이현이가 왜 저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잖아?”진호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잔뜩 의아한 얼굴을 하자 구준오는 못마땅한 얼굴로 뒤돌아봤다.“방금 왜 날 말렸어?”송지훈은 술 한 모금을 마신 뒤 눈꺼풀을 느슨하게 들어 올렸다.“여자애들은 한 달에 며칠쯤은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잖아. 친오빠라는 사람이 그 정도 개인 공간도 안 주는 거야?”그 말에 구준오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구준오는 다시 자리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가 문득 뒤늦게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 동생이 지금 그런 시기라 안 좋다는 걸 말이야. 친오빠인 나보다 네가 이현이를 더 잘 아는 거야?”그러자 진호영이 눈을 확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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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그러자 구준오는 준호영을 한번 흘겨봤다.“넌 대체 누구 편이야? 그 자식이 내 동생보다 나이가 몇 살은 더 많은데... 늙은 소가 여린 풀을 뜯어 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어?”두 사람이 그런 얘길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서빙 직원이 문을 열자 하도진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 민하윤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오, 형, 축하해! SNS에서 봤어. 완전히 대놓고 자랑하시던데? 형수님, 안녕하세요? 돌고 돌아 결국 진짜 제 형수님이 되셨네요.”술이 둬 잔 들어가자 진호영은 말 조절이 안 됐다.하도진은 혀를 차며 진호영을 밀어냈다.그러더니 민하윤을 감싸듯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네 와이프가 임신했어?”구준오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졌다.그 한마디에 민하윤은 거의 피를 토할 뻔했고 머리 위에서 벼락이라도 친 것 같았다.“뭐야? 초음파 기계도 아니고... 한 번 보고 내가 임신한 걸 안다고?”하도진은 미간을 좁히고 구준오를 봤다.“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민하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서 있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긴장했다.하도진이 그렇게 묻자 민하윤도 바로 귀를 세우고 구준오의 대답을 기다렸다.“그렇게 급하게 다시 혼인신고부터 하고 또 옆에서 조심조심 챙기는 걸 보니까 그런 거지. 방금도 진호영이 스치기라도 할까 봐 경계하던데? 임신이 아니면 뭐겠어?”하도진은 민하윤에게 의자를 빼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하윤이를 다시 아내로 맞은 건 아이 때문이 아니야. 다른 남자가 내 와이프 가까이 오는 게 싫은 것뿐이지. 그게 별문제라고 생각해?”그러자 진호영은 곧바로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문제없어. 당연히 아니지!”민하윤은 그제야 티 나지 않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스타 라이트 게임사와 태유 은행은 거래가 있어서 민하윤도 얼마 전에 구준오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민하윤이 구준오에 대한 인상은 대체로 세 가지였다.첫째는 머리 좋은 사업가, 둘째는 동생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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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어두운 복도에는 홀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한 베이스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구이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화장실에서 나왔고 기분은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었다.그때, 길고 마른 실루엣 하나가 벽에 기대서 있었다.손가락 사이로 다이아몬드 귀걸이 하나를 굴리고 있었는데 끝마다 반짝이는 빛이 튀었다.“울고 나니까 좀 나아졌어?”구이현은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손목을 잡힌 채 벽으로 밀렸다.어두운 복도 조명 아래서 구이현은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고개를 들어 송지훈을 바라보던 구이현은 눈빛과 달리 차갑게 말했다.“우리 오빠가 알면 어쩌시려고요?”송지훈은 시선을 억눌러 거두었다.그러고는 손끝으로 구이현의 눈가를 쓸면서 맺혀 있던 눈물을 닦아냈다.송지훈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난 무서울 게 없어.”구이현은 눈이 붉어진 채 송지훈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저는 오빠 친구의 여동생이에요. 선 좀 지켜 주세요.”민소매의 하얀 셔츠를 입은 구이현을 보자 송지훈의 시선이 하얀 어깨를 스쳤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스커트 아래로 곧게 뻗은 가느다란 다리에서 멈췄다.“그럼 넌?”송지훈은 낮게 웃으며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손으로 구이현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네 오빠는 네가 자기 친구한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걸 알아? 이현아, 네가 마넬에서 굳이 여기까지 날아온 이유는... 내가 꼭 말해 줘야 해?”구이현은 눈가가 더 붉어졌고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으며 몸도 미세하게 떨렸다.오랫동안 숨겨 온 짝사랑이 들켜 버리자 오히려 무서울 정도였다.“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구이현은 황급히 얼굴을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송지훈은 입술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구이현의 볼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용히 귀 뒤로 넘겨주었다.구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진 오빠도 알고 계세요?”구이현은 무의식적으로 송지훈의 셔츠 자락을 붙잡고 있었다.그러자 송지훈은 눈꺼풀을 들어 구이현을 바라보면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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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방금 룸 안에서 주웠어.”송지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둘 사이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꼭 사람 마음을 홀리는 것처럼 들렸다.“이현아, 아직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이제 걔는 다른 여자랑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이제 좀 포기할 수 없겠어?”송지훈은 연한 파란 셔츠에 회색 니트를 겹쳐 입고 있었다.깨끗하고 단정해서 대학생처럼 보였지만 몸에 밴 지적인 분위기가 너무 짙어서 구이현은 그런 ‘모범생’ 타입이 늘 조금 어려웠다.구이현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아직은... 많이 힘들어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도진 오빠의 삶에 제가 끼어들 일은 없어요.”송지훈은 구이현을 가만히 바라봤다.목울대를 한 번 굴리더니 오랫동안 마음속에 눌러 두었던 말을 끝내 삼켰다.구이현은 고개를 들어 송지훈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제 비밀은... 지켜 주실 거죠?”그러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또렷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오빠.”그러자 송지훈은 티슈를 내밀었다.“응. 눈물 닦고 일단 들어가자. 다들 아직 기다리고 있어.”구이현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네.”송지훈이 물었다.“예전에는 왜 네 오빠한테라도 한번 부탁해 보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도진의 가까이 있으면 기회도 먼저 잡을 수도 있었잖아.”하지만 구이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제 오빠는 절대 안 받아들일 거예요.”송지훈은 고개를 돌려 구이현을 바라봤다.“왜?”“저랑... 도진 오빠는 10년 8개월이나 차이가 나요. 오빠는 제가 그렇게 나이 많은 남자랑 만나는 걸 절대 허락 안 할 거예요.”말한 사람은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 마음에는 다르게 들렸다.송지훈은 씁쓸하게 웃으며 걸음을 멈췄고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그럼 너는? 너도 나이 차이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해? 상대가 너보다 나이가 많이 많아도 괜찮아?”구이현은 의아한 얼굴로 뒤돌아봤다. 그러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저는 나이 차이를 별로 신경 안 써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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