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욕하는 거야?”민하윤은 코를 훌쩍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채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그러다가 마주 오던 임형섭과 딱 마주쳤다.임형섭은 몰라볼 정도로 많이 야위어 있었다.아버지가 로젤스에서 세상을 떠난 뒤 임형섭은 오랫동안 휴가를 냈다.지난 3월, 고액 자산가 고객의 수억 원대 신탁 자금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은행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급하게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그 뒤로는 벌써 일곱, 여덟 달 가까이 보지 못했다.임형섭은 예전보다 너무 많이 말라 있었다.전에는 몸에 잘 맞던 캐시미어 코트가 헐렁하게 남아돌았고 눈 밑은 깊게 꺼져 있었으며 턱에는 푸르스름한 수염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임형섭은 원래 누구보다 외모와 차림새를 신경 쓰던 사람이었다.민하윤은 그제야 가족을 잃은 일이 임형섭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깨달았다.“선배, 괜찮으세요?”“응. 다 괜찮아.”임형섭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하지만 사실 지난 시간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부모님은 평생 서로를 아끼며 살아온 사이였다.반평생을 함께 의지하며 지낸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은 어머니에게도 너무 큰 충격이었다.1월 초, 집에서 일하던 필리핀 가사 도우미에게 전화가 왔다.임형섭의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연락이었다.그러자 임형섭은 모든 일을 내려놓고 급히 마넬로 향했다.어머니는 집 근처 한인 마트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다.게다가 임형섭의 어머니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이곳저곳을 헤매다 결국 공동묘지까지 가 버렸다.임형섭이 찾아갔을 때, 평생 단정하고 품위 있게 살아온 어머니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채 차가운 묘비 앞에 엎드려 있었다.그리고 묘비에 박힌 남편의 흑백 사진을 끊임없이 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그건 임형섭의 아버지가 열아홉 살에 유학을 떠났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임형섭은 마넬에 남아 어머니를 돌봤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아침에 혈압약을 먹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같은 약을 두 번이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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