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사랑한다고 말해줘 / Chapter 601 - Chapter 610

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601 - Chapter 610

663 Chapters

제601화

계단실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진 뒤에야 민하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들 갔어요...”말을 끝내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민하윤의 허리를 감싸 품으로 끌어당겼다.하도진의 새까만 두 눈은 깊이를 알 수 없었고 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로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도진 씨, 지금 뭐...”다음 순간, 부드럽고 서늘한 입술이 민하윤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하도진은 깊이 빠져든 듯 입을 맞췄다.한 손은 민하윤의 목덜미를 감싸고 길고 선명한 손가락은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었다.민하윤은 그대로 벽까지 밀렸다.“툭.”하도진이 민하윤을 끌어안은 손이 벽에 가볍게 부딪혔다.두 사람은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지만 뜨겁고 묘한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이건 이자야. 원금은 나중에 받을게.”하도진은 거친 숨을 고르며 민하윤을 똑바로 바라봤다.깊게 가라앉은 눈에는 감추기 힘든 열기로 가득했다.민하윤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엘리베이터는 아직도 수리 중이었다.민하윤은 난감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업무 단체방에서는 이미 각 버스의 탑승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다.오후에도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는데 팀 전체가 자기 한 명 때문에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사실 내려가는 건 별로 안 힘들어요.”민하윤은 비위를 맞추듯 웃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원래 오르막길은 힘들어도 내리막길은 쉽다고 하잖아요.”하도진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민하윤을 한 번 바라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깊은 시선 하나만으로도 민하윤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오늘 또 계단 내려가기만 해 봐.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못 걷게 할 테니까.’시간은 계속 흘렀고 민하윤의 손에 쥔 휴대폰도 쉼 없이 진동했다.민하윤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결국 마음을 굳히고 두 걸음 다가가 두 손으로 하도진의 얼굴을 감싼 뒤, 먼저 입을 맞췄다.부드러운 입술이 닿는 순간 하도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이 먼저 다가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
Read more

제602화

“정 없는 사람 같으니. 내가 고맙다는 말 한마디 받자고 이랬겠어?”하도진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제 발로 찾아온 입맞춤이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서 비서는 로비에서 계단실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하도진을 기다리고 있었다.민하윤이 흐트러진 옷과 머리를 정리하며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오자 서 비서는 뒤쪽을 슬쩍 확인했다.하지만 하도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눈치 빠른 서 비서는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리고 리조트에서 포장해 온 아침 식사를 민하윤에게 내밀며 말했다.“대표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겁니다. 가시는 길에 드세요.”민하윤은 잠깐 멈칫했다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들었다....차에 올라탄 하도진은 앞에서 달리는 여러 대의 비즈니스 버스를 생각에 잠긴 채 바라봤다.“태유 은행 이번 출장 일정표 전부 정리해서 보내 줘.”서 비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도진은 그놈의 S급 고객 리조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흥미도 완전히 식어 버린 채 기사에게 호텔로 돌아가라고 했다.밤 8시가 넘도록 민하윤은 호텔로 돌아오지 않았다.하도진은 샤워를 마치고 가운 차림으로 테라스에 누워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옆에 놓아둔 휴대폰은 계속 알림음을 울렸다.하도진은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확인했다.기다리던 사람이 보낸 메시지는 아니었다.진호영이 만든 카카오톡 단체방의 문자였다. 진호영은 시도 때도 없이 별 영양가 없는 링크와 이모티콘을 보내고는 했다.평소에도 하루 종일 조용할 틈이 없는 단체방이었다.반면 하도진은 좀처럼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소문난 눈팅족이었다.심심한 마음에 대화방을 열어 보니 오늘 가장 활발하게 떠드는 사람은 뜻밖에도 진호영이 아니었다.[구준오: 하 대표님, 엘리베이터 다 고쳤는데 이제 오시렵니까?][진호영: 뭔데? 무슨 일인데? 자세히 풀어 봐.][구준오: 오늘 e스포츠 건물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거든. 바로 수리팀을 부르긴 했는데 행사는 곧 시작해야 하고 은행 사람들도
Read more

제603화

민하윤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당의 뷔페 코너를 둘러봤다.인정하긴 싫었지만 하도진의 말이 맞았다.남아 있는 건 대부분 식어 버린 음식뿐이었다.이남주도 한번 훑어보더니 대놓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이남주는 몰래 민하윤을 끌어당겨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까 보니까 옆에 해산물 바비큐 식당이 몇 군데 있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한턱낼게요.”민하윤은 찔리는 마음에 휴대폰을 꽉 쥐었다.“전 안 갈래요. 별로 입맛도 없고 방에 가서 쉬고 싶어요.”이남주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권하지는 않았다.“그럼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민하윤은 도둑이라도 된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복도 끝에 있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앞까지 간 뒤, 다시 한번 사방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렸다.그러자 문이 금방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민하윤을 안으로 잡아당겼다.하도진은 허리를 숙여 직접 민하윤의 신발을 갈아 신겨 줬다.민하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도진은 민하윤의 몸을 번쩍 들어 현관 신발장 위에 앉혔다.“왜? 나 보고 싶었어?”하도진은 쉴 새 없이 민하윤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넓은 객실 안은 냉방이 강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민하윤은 오히려 몸 안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도진 씨, 얌전히 좀 있어요.”얼굴이 붉어진 민하윤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하도진을 밀어냈다.셔츠의 마지막 단추까지 다시 잠근 뒤 두 팔을 벌렸다.“이제 내려 줘요.”“알겠어.”하도진은 순순히 민하윤을 내려 주었다.다만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손을 잡고 테라스 쪽으로 데려갔다.민하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화났어요?”하도진은 한발 물러난 듯한 태도로 민하윤의 미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 정도는 아니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밤은 깊었고 별빛은 눈부셨으며 멀리서는 파도가 연달아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민하윤은 뜻밖에도 이 고요한 여름밤이 꽤 마음에 들었다.두 사람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었다.민하윤은 하루 종
Read more

제604화

민하윤은 두 손으로 물을 떠 얼굴에 끼얹으며 작게 중얼거렸다.“자든 말든 뭔 상관이래. 안 자고 싶으면 밤새우라지.”그날따라 샤워는 유난히 오래 걸렸다.민하윤은 속으로 시간을 가늠하며 일부러 느릿느릿 몸의 물기를 닦고 가운을 걸쳤다.욕실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정면으로 밀려왔다.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이번 임신은 지난번과 반응이 완전히 달리 유독 추위를 많이 탔다.방 안은 고요했다.조명도 거의 꺼져 있었고 침대 곁의 스탠드 하나만 희미한 노란빛을 내며 조금이나마 온기를 더하고 있었다.‘잠들었나?’민하윤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살펴본 뒤 발소리를 죽여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저기요. 잠들었어요?”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하도진은 민하윤에게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고 어두운 조명 때문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민하윤의 머리카락에서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드라이기로 말릴까 고민했지만 민하윤은 하도진을 깨울까 봐 망설였다.한참 고민하던 민하윤은 차라리 자기 방으로 돌아가 머리를 말리기로 했다.가운을 단단히 여미고 현관에 걸려 있던 하도진의 검은 코트까지 겉에 걸쳤다.민하윤이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순간, 등 뒤에서 차갑고 느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 가?”하도진은 어느새 민하윤의 뒤에 서 있었다.눈꼬리를 살짝 올린 채 묘한 표정으로 민하윤의 위아래로 훑어봤다.민하윤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고 자기가 완전히 놀아난 기분이 들었다.‘그럼 방금까지 자는 척한 거야?’“제 방에 가서 머리 말리려고 했다고 하면... 믿을래요?”분명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도 민하윤은 하도진의 뜨거운 시선 앞에서는 괜히 찔렸다.하도진은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였다.“그래?”민하윤은 착한 아이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하도진은 한숨을 내쉬더니 민하윤의 손을 잡아 다시 욕실로 데려갔다.“뭐 하려고요?”민하윤은 경계하는 눈으로 거울 속의 하도진을 바라봤다.하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드라이기
Read more

제605화

엘리베이터 사건 이후, 태유 은행과 스타 라이트 사이의 협력 분위기는 묘하게 어색해졌다.그래도 진도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저녁, 양측은 무사히 계약을 마무리했다.이남주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영혼 없는 직장인 그 자체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외부 일정을 마친 비즈니스 버스가 호텔 분수대 앞에 멈췄다.사람들이 차례로 내리기 시작했고 민하윤도 막 버스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들뜬 소리가 터져 나왔다.호텔 로비에서 훤칠한 체격에 세련된 얼굴을 가진 젊은 남자들이 무리 지어 나오고 있었다.이남주는 넋을 놓고 남자들을 바라봤다.“이번 출장... 진짜 오길 잘했네요.”민하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저 사람들은 누구예요?”“올해 전국 모델대회를 진도에서 하거든요. 대회 참가자들을 주최 측에서 이 호텔에 묵게 했대요.”이남주는 남자들을 구경하면서도 거울을 꺼내 자기 화장 상태까지 꼼꼼히 확인했다.민하윤은 별 관심이 없어 시큰둥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때 잘생긴 남자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 분수대 곁에 섰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연달아 감탄이 터져 나왔다.민하윤도 소리가 난 쪽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뒤를 돌아보자 푸른 바다와 어스름한 하늘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에는 주황빛 둥근 해가 걸려 있었다.하늘 가득 번진 붉은 노을과 따뜻한 주황빛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동료들은 삼삼오오 프런트에 가방을 맡기고 해변으로 일몰을 보러 나갔다.급한 업무는 일단 끝났다.앞으로는 S급 고객들만 관리하면 됐고 남은 진도 일정은 사실상 자유 시간이나 다름없었다.이남주는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그러더니 갑자기 민하윤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들썩였다.“비장의 무기는 챙겨 왔어요?”민하윤은 눈을 크게 떴다.“비장의 무기요?”“아휴... 참.”이남주는 답답하다는 듯 민하윤을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했다.“그거요. 흰색 레이스
Read more

제606화

하도진은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목 부분 단추 두 개를 풀어 둔 탓에 살짝 벌어진 옷깃 사이로 반듯한 쇄골이 조금 드러났다.같은 검은색의 바지에는 다른 장신구가 전혀 없었다.옷차림은 단순했지만 밋밋하지 않았고 온몸에서 느긋하고 나른한 분위기가 흘렀다.민하윤은 더 확신했다.하도진이 진도까지 날아온 건 일과는 전혀 상관없었다.그냥 휴가를 즐기러 온 게 분명했다.“뭘 넋 놓고 보는 거야?”하도진은 민하윤의 손을 잡아 가볍게 입을 맞췄다.“도진 씨, 좀 조심해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민하윤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다.하지만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도무지 빠져나오지 않자 결국 체념했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지작거렸다.민하윤은 하도진이 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고개를 갸웃했다.“어디 나가요?”“절반만 맞았어.”하도진이 웃는 사이 검은 애스턴 마틴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절반이요?”하도진은 다정하게 웃으며 민하윤을 차 앞으로 이끌었다.그러더니 직접 문을 열어 주고는 고갯짓으로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우리가 같이 나가는 거야.”민하윤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차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차는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고 마치 저물어 가는 해를 쫓는 듯했다.“송지훈이 휴가 냈대. 준오의 동생을 데리고 일부러 진도까지 놀러 왔다더라. 그래서 준오가 밥 산다고 불렀어.”하도진은 자연스럽게 민하윤의 손을 다시 가져와 손가락을 장난스럽게 주물렀다.민하윤은 곧바로 자기 옷차림을 내려다봤다.흰 셔츠 원피스에 립스틱만 간단히 바른 상태였다.“도진 씨 친구분들 만나는 거면 옷이라도 갈아입어야 하지 않아요? 화장도 거의 안 했는데요.”하도진은 웃으며 민하윤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안 그래도 돼. 지금도 너무 예뻐.”민하윤은 반신반의했다.임신 초기라 입맛도 별로 없고 추위도 잘 탔지만 아직 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몸매도 여전히 가늘어서 어느 각도에서 보든
Read more

제607화

“그래. 술은 안 마신다 치고 코코넛 주스는 괜찮겠지?”구준오는 곧바로 자세를 낮추며 직원을 불렀다.“코코넛 주스 두 잔 주세요.”그러더니 구준오는 술잔을 든 채 의자 등받이를 짚고 진지하게 말했다.“오늘은 제가 사과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 더운 날에 19층까지 걸어 올라가게 한 건 확실히 잘못했어요.”민하윤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계획대로만 되는 일은 없잖아요. 구 대표님께서 전부 책임지실 필요는 없어요.”“역시 제수씨가 속도 깊고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니까요.”구준오는 웃으며 말하면서도 슬쩍 하도진의 눈치를 살폈다.“문제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린 사람이 있다는 거죠.”민하윤은 곧바로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하도진의 손끝을 살짝 꼬집었다.그러자 하도진은 못 이기는 척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어. 이 일은 이제 넘어갈게. 더는 따지지 않을 테니까.”그러고는 구준오를 바라보며 덧붙였다.“앞으로 태유 은행이랑 협력할 일도 많을 텐데 우리 와이프 잘 좀 챙겨 줘.”화가 거의 풀린 하도진은 마지못한 듯 잔을 들어 구준오와 부딪쳤다.직원이 코코넛 주스와 함께 메뉴판을 가져왔다.하도진은 메뉴를 꼼꼼히 살펴보다가 생선회나 차가운 해산물 요리가 많다는 걸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제비집죽 하나하고 코코넛 치킨 수프 하나 주세요.”평소라면 메뉴판을 이렇게 진지하게 볼 하도진이 아니었다.하도진은 몇 번이나 앞뒤로 넘긴 끝에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 두 가지를 골랐다.민하윤은 하도진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기에 메뉴판을 받아 들고 채소 요리 몇 가지만 추가했다.그 모습을 보다 못한 구준오는 메뉴판을 하나 더 받아 몇 페이지에 걸쳐 요리를 줄줄이 주문했다.“그만해. 우리 몇 명 되지도 않잖아.”송지훈은 음식 낭비를 싫어해 곧바로 구준오를 말렸다.구준오는 손을 내저으며 메뉴판을 직원에게 건넸다.“너한테 진짜 고맙네. 모처럼 휴가까지 냈는데 우리 이현이 데리고 진도까지 와 줬잖아.”송지훈은 잠깐 멈칫하다가 웃었다.“별말을 다 하
Read more

제608화

민하윤은 말없이 웃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거뒀다.고개를 돌리는 순간, 하도진의 깊고 새까만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뭐가 그렇게 웃겨?”하도진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민하윤의 입가에는 하얀 코코넛 밀크가 조금 묻어 있었고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하도진은 느긋하게 등받이에 기대앉았다.눈꺼풀을 들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던 하도진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구준오에게 멈췄다.하도진의 깊고 묘한 시선을 느끼자 구준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하도진이 저런 눈으로 빤히 쳐다보니 구준오는 온몸의 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하도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아니. 그냥 이렇게까지... 눈치 없는 사람은 오랜만에 봐서 그래.”그 말이 떨어지자 구이현의 손이 움찔했다. 그러자 숟가락에 담긴 국물이 살짝 튀었다.송지훈도 미간을 좁히며 하도진을 바라보며 더 말하지 말아 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구준오는 주변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깜짝이야. 계속 그렇게 쳐다보길래 나한테 반한 줄 알았잖아. 그런데 내가 뭐가 눈치 없다는 거야?”구준오는 일부러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한 척하자 하도진은 차갑게 웃었다.“꺼져. 난 너한테 관심 없어.”구준오는 어이없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농담도 못 받아 주냐?”“그래서 어쩔 건데?”두 사람이 또 말싸움을 시작할 것 같자 민하윤이 얼른 끼어들었다.“저 조금 배고픈데요. 이제 음식 내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그 말을 듣자 하도진은 곧바로 구준오에게 쏟아붓던 공격을 멈추더니 몸을 돌려 직원에게 음식을 빨리 내달라고 재촉했다.식사를 마친 뒤, 일행은 차례로 식당을 나섰다.구준오는 원래도 접대를 마치고 뒤늦게 도착했고 식사 중에도 술을 몇 잔 더 마신 탓에 지금은 발도 제대로 못 가눌 만큼 취해 있었다.“이현아, 차 왔어. 가자.”구준오가 구이현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송지훈이 재빨리
Read more

제609화

구이현은 아직 어렸기에 민하윤도 정말로 구이현과 하나하나 따질 생각은 없었다.두 사람은 서로 말없이 거리를 조금 둔 채 계단 위에 서 있었다.구이현은 몇 번이고 옆쪽 기둥 너머를 바라봤다.하지만 보이는 건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의 뒷모습뿐이었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그저 하도진의 얼굴이 썩 좋지 않다는 것만 어렴풋이 보였다.구준오는 오랫동안 치열한 사업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사람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데 능했고 인간관계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능숙하게 풀어 갔다.겉으로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 보였지만 진심으로 가까운 친구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하도진과 송지훈, 진호영이었다.구준오의 부모님은 늘 사업으로 바빴다.열 살이나 많은 구준오가 구이현을 직접 키우다시피 했고 구준오의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구이현을 친동생처럼 아껴 줬다.어릴 적에 양 갈래로 묶은 머리끈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멘 책가방, 반짝이는 큐빅이 가득 박힌 공주 드레스와 휴대용 게임기까지 어린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건 거의 모두 구준오의 친구들이 돌아가며 사 줬다.다들 외동아들이라 형제자매가 없었고 구이현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어렸다.그래서 모두가 구이현을 친여동생처럼 귀여워하고 챙겼다.하도진이 알게 됐다면 이제 모두에게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시간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흘렀다.구이현은 긴장한 나머지 손으로 옷자락을 계속 쥐어뜯었고 눈을 내리깐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민하윤은 구이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달랬다.“걱정하지 마세요. 도진 씨도 선은 지킬 거예요.”그 말에 구이현의 불안이 조금 가라앉았고 마치 누군가 안심하라는 약이라도 먹여 준 듯했다.하지만 자존심 센 아가씨 성향인 구이현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구이현은 새침하게 코웃음을 쳤다.“저도 알아요. 굳이 말씀 안 하셔도 돼요.”민하윤은 더 이상 괜한 친절을 베풀지 않기로 했고 한가롭게 휴대폰을 확인했다.마침 백누리에게서 메시지
Read more

제610화

송지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도진을 바라봤다. 맑은 눈동자 안에는 쉽게 읽히지 않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아직 고백하고 중이야. 이현이는 어리고 연애 경험도 없잖아. 너무 서두르면 겁먹고 도망갈까 봐 조심하고 있어. 그래도 내가 어떤 마음인지는 이미 알아. 난 이현한테 단순히 외모만 보고 끌린 것도 아니고 잠깐 새로운 느낌 때문에 마음이 들뜬 것도 아니야. 나한테 이현이는 친구 동생이 아니라 이성으로 설레는 여자야.”하도진은 할 말을 잃었다.송지훈의 진지하고 단호한 태도는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하도진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뒤 자욱한 연기 너머로 낮게 욕을 내뱉었고 한숨을 고르고서야 차분히 말했다.“네가 알아서 해. 대신 미리 경고하는데 우리 주변 사람들은 연애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 네 조건이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만날 수 있잖아. 꼭 이현이어야겠어? 잘 생각해 봐. 구이현은 구씨 집안 전체가 애지중지하는 막내야. 네가 정말 걔한테 상처 주면 준오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랑 진호영도 모른 척 못 하고...”하도진은 차갑게 덧붙였다.“그땐 우리 오랜 우정도 끝이야.”송지훈이 갑자기 웃었다.“알아.”하도진은 순간 더 할 말이 없어졌다.“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한마디 욕한 뒤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며 세게 밟아 껐다.하도진이 몸을 돌려 가려는 순간, 송지훈이 앞을 막아섰다.“왜?”“이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해 주면 안 돼?”송지훈은 자존심까지 내려놓은 듯 진지하고 간절한 태도로 부탁했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러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숨겨 달라는 거야?”그 순간, 송지훈의 눈이 환하게 밝아졌고 그제야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앞뒤로 걸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그런데 기다리고 있어야 할 두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하도진은 반사적으로 계단을 내려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그 순간, 하도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차 안에는 텅 비
Read more
PREV
1
...
5960616263
...
6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