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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591 - Chapter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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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1화

“알겠어.”하도진은 민하윤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손을 민하윤의 아랫배 위에 올렸다.따뜻한 온기가 전해지자 민하윤이 의아한 얼굴로 하도진을 바라봤다.“뭐 하는 거예요?”“아기한테 인사하는 중이야.”하도진은 고개를 숙여 민하윤의 배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아가야, 난 네 아빠야.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우리 만날 수 있겠네. 엄마 배 속에서 얌전히 있어.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말 잘 들으면 아빠가 선물도 줄게. 말 안 들으면 태어나서 아빠한테 엉덩이 맞을 거야.”말할수록 하도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일부러 민하윤에게는 들려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민하윤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물었다.“뭘 그렇게 혼자 소곤거려요? 의사 선생님이 지금은 블루베리보다 조금 크고 체리보단 작대요. 아직 말도 못 알아들어요.”“상관없어. 나랑 아기는 통하는 게 있으니까.”하도진은 민하윤의 배를 소중한 보물처럼 살며시 쓰다듬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그러다가 문득 물었다.“넌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민하윤은 잠시 생각했다.“전 둘 다 좋아요. 도진 씨는요?”“일어나자. 지금 10시 13분이야.”하도진은 대답을 피하며 민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민하윤은 그제야 시간을 깨닫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날아가듯 뛰었다.그러자 놀란 하도진이 뒤따라가며 외쳤다.“천천히 가. 내 딸을 배 속에서 롤러코스터 태우지 말고!”민하윤은 이를 닦으며 눈을 흘겼다.체리만 한 아기가 자기 배 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하도진은 문틀에 기대어 흐뭇한 미소로 민하윤을 바라봤다.그 시선이 너무 자애로워 오히려 민하윤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딸이면 누구를 닮을까? 널 닮으면 좋겠어.”민하윤은 양치물을 뱉고 하도진을 흘겨봤다.“거봐요. 결국 속마음이 나왔네요. 도진 씨는 딸이 더 좋은 거죠?”“딸이면 예쁜 원피스도 입히고 머리도 땋아 줄 수 있잖아. 아들도 그럴 수 있겠어?”그러자 민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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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2화

“아, 그리고 더 있어요. 새해 연휴 끝나고 돌아왔을 때 도진 씨가 카페에서 젊은 여자랑 맞선 보는 것도 봤어요. 그 뒤에는 같이 도심까지 쇼핑하러 가서 친절하게 가방도 들어 줬잖아요. 하 대표님은 기억 못 하실 테니 제가 옛날 일까지 들춰 드리는 거예요.”하도진은 어이가 없어 웃으며 손가락으로 민하윤의 콧등을 살짝 긁으며 말했다.“내가 한마디하면 넌 열 마디로 갚아 줘야 직성이 풀려?”그러자 민하윤은 메이크업 브러시를 내려놓고 진지하게 대답했다.“먼저 억지 부린 건 도진 씨잖아요.”“네 선배가 지난번에 나한테 녹음 내용을 보낸 일은? 나 그거 듣고 화나 죽는 줄 알았는데 그 얘긴 왜 빼?”하도진은 생각난 김에 하나 더 따졌다.“그리고 어제부터 파리처럼 네 주변을 맴돌던 그 남자는 누구야? 어디서 본 얼굴 같긴 한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민하윤은 하도진을 힐끗 바라봤다.한 번 본 사람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걸 보니 기억력 하나는 제법 좋았다.“서용우 씨요. 2년 전 서북 지역에서 한밤중에 저를 병원에 데려다준 사람이에요. 도진 씨가 그 사람한테 주먹도 날렸잖아요. 이제 기억나요?”그 말을 듣자 하도진의 기억이 단번에 되살아났다.“아, 걔였어?”하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말했다.“그 자식은 아직도 미련 못 버렸네? 네가 인정하든 말든 난 2년 전부터 그 녀석이 널 보는 눈빛이 수상하다고 생각했어.”“도진 씨랑 말이 안 통하니까 더는 상대 안 할래요.”민하윤은 캐리어에서 갈아입을 옷을 골랐다.“우리 애 엄마, 그 녀석이랑 거리를 좀 둬. 정 안 되면 내가 직접 만나서 얘기할게.”‘애 엄마라니?’민하윤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절대 찾아가지 마세요!”하도진은 여유롭게 두 팔을 끼고 민하윤을 바라봤다.“왜 가면 안 되는데? 내 아이까지 가졌으면서 날 인정 안 해 줄 거야?”하도진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우리 사모님, 나한테 남편 자리도 안 줄 생각이야?”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민하윤은 그 안에 담긴 하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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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3화

삼아 피닉스 호텔 1층 로비.민하윤은 플랫슈즈를 신고 다급하게 로비로 뛰어 들어왔다.동료들은 이미 아침 회의를 마친 뒤 각자 업무와 출입증을 배정받고 차례로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숨을 조금 몰아쉬며 사람들 사이를 살피던 민하윤은 단번에 키가 크고 마른 임형섭을 발견했다.마치 시선을 느낀 것처럼 임형섭도 갑자기 고개를 돌려 민하윤을 바라봤다.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민하윤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임형섭은 S급 고객들의 리조트 이동을 모두 챙긴 뒤 다시 로비로 돌아와 민하윤 앞에 섰다.임형섭의 미소는 여전히 다정했고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마치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앙금도 생기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죄송해요. 제가...”민하윤이 사과를 꺼내기도 전에 임형섭이 말을 끊었다.“괜찮아. 딱 맞춰 왔어. 남주 씨는 3호 차에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면 돼.”그러자 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때 임형섭이 갑자기 민하윤을 불러 세웠다.“하윤아.”민하윤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눈으로 돌아봤다.임형섭은 민하윤과 시선이 마주치자 이유 없이 긴장됐다.두 사람은 더 이상 예전처럼 가깝지 않았다.임형섭은 민하윤이 의도적으로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임형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민하윤도 그대로 가 버릴 수는 없었다.두 사람은 한동안 로비 한가운데서 어색하게 마주 서 있었다.오래 서 있었더니 민하윤은 허리가 조금 뻐근해졌다.“임 행장님, 또 하실 말씀 있으세요?”임형섭은 씁쓸하게 웃으며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온 민하윤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윤아, 나한테까지 그렇게 사무적으로 말할 필요 없어. 우리 이제 일 말고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는 사이야?”“예를 들면요?”“진도에 내 고모할머니 한 분이 계셔. 몸보신과 기력을 회복시키는 데 능한 한의사야.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내가 모시고 가서 한번 진료받게 해 줄게.”민하윤은 무슨 뜻인지 몰라 거의 반사적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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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4화

“빈혈은 핑계였던 거야? 함부로 약을 못 먹는다는 게 무슨 뜻이야?”임형섭이 완전히 오해했다는 걸 알아챈 민하윤은 얼른 설명했다.“아픈 거 아니에요. 몸은 건강해요. 약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건...”민하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말했다.“제가 임신했거든요.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어요. 이제 막 두 달 됐어요.”민하윤은 조심스럽게 배를 어루만졌다.내리깔린 눈매엔 자연스럽게 따뜻한 모성애가 배어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임형섭의 가슴이 세게 저렸다.임형섭은 얼굴빛도 좋지 않았지만 애써 감정을 누르며 물었다.“그 사람도 알아?”“네.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이지만 저희 둘 다 이 인연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요.”민하윤은 잠시 주위를 살핀 뒤 목소리를 낮췄다.“제가 결혼했고 임신했다는 건 은행에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선배도 비밀로 해 주세요.”“그럴게. 일 때문에 부담 갖지 말고 몸부터 잘 챙겨.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하고.”임형섭은 손을 들어 민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하지만 손바닥이 머리 위에 닿기 직전에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놓았다.“네. 고마워요. 선배.”민하윤은 코끝을 훌쩍이며 감정을 가라앉혔다.“선배는 이미 저한테 너무 많이 해 주셨어요.”“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어.”‘이건 전부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임형섭은 뒷말을 끝내 꺼내지 않았고 그저 민하윤이 행복하기만을 바랐다.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하도진의 눈에 임형섭 앞에서 울다가 웃는 민하윤의 모습이 들어왔다.민하윤이 눈물만 보이면 하도진은 이유 없이 심장이 철렁했고 온몸이 불편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눈치 빠른 서 비서는 대표의 시선을 따라 로비 쪽을 한번 보고는 곧바로 업무 보고를 멈췄다.하도진은 고개를 숙여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겨우 감정을 추스른 민하윤은 곧바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임산부는 오래 서 있으면 안 되고 감정이 격해져서도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그러자 민하윤은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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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5화

e스포츠 기지는 해안선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이동 시간이 꽤 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 안 여기저기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민하윤은 심심풀이로 트위터를 훑어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백누리가 말했던 협업 e스포츠팀이 바로 스타 라이트 산하의 골든 ME 팀이었다.브랜드 측은 이미 트위터에서 행사 홍보를 시작한 상태였고 백누리의 팬들과 프로게이머 팬들도 관련 게시물을 공유하며 경품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민하윤은 금세 흥미를 잃고 트위터를 껐고 이어 조용한 카카오톡 대화창으로 화면을 바꿨다.몇 초간 망설이던 민하윤이 먼저 문자를 보냈다.[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요? 은행에서 S급 고객들을 리조트로 모신다던데 도진 씨도 가요?][잘 알려지지 않은 걸그룹도 초대했다던데요. 수상 공연도 있대요.]문자를 보낸 뒤, 약 10분이 지났다.버스는 이미 교외로 접어들었고 창밖으로 통신탑까지 보이는데 하도진에게서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민하윤은 약이 올라 키보드를 거칠게 두드렸다.[저 배가 아파요.]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바로 답장이 왔다.[주소 보내.][많이 아파?]곧이어 하도진에게 전화까지 걸려 왔다.민하윤은 찔리는 마음에 손가락을 깨물었다.그저 답장을 받아내려고 한 말인데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렸다.버스 안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어 통화할 수도 없었다.민하윤은 곧장 전화를 끊었다.[???][주소 보내. 내가 너희 은행장한테 연락해서 행사 바로 취소시킬게.]그 말에 민하윤은 식은땀이 날 만큼 놀라 황급히 답장을 보냈다.하도진에게 혼날까 봐 오히려 먼저 하도진을 몰아붙였다.[사실은... 안 아파요. 거짓말했어요.][누가 제 문자를 회답하지 말래요? 자신 있으면 계속 회답하지 말지 그랬어요?][도진 씨의 속은 정말 좁쌀만 해요. 아니, 좁쌀이 더 넓고 크겠네요!][도진 씨가 왜 삐쳤는지 저도 알아요. 제가 선배랑 잠깐 얘기했다고 그러는 거잖아요?][선배한테 제가 임신했다고 말했어요. 그 얘기만 했다고요!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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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6화

하도진은 기분이 한껏 풀렸다.화면 너머로도 질투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것 같았다.하도진은 일부러 민하윤을 놀리려고 답장을 보냈다.[내가 눈으로만 보고 끝낼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아?]그 말에 민하윤은 속으로 하도진을 한바탕 욕했고 휴대폰을 두드리는 손가락에서 불꽃이라도 튈 기세였다.[하 대표님, 잘 생각하세요. 할머니께서 전해 달라시는데 혹시라도 선을 넘는 짓을 하셨다간...]하도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음표를 보냈다.[?][그랬다간 뭐?]그러자 민하윤도 독하게 나왔다.하도진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두 글자를 보내 버렸다.[이혼.]얼굴이 순식간에 굳은 하도진은 곧장 민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민하윤은 받지 않고 끊어 버렸다.그러자 하도진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듯 계속 전화를 걸었다.결국 민하윤은 전화를 받았지만 입술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첫 번이야.”민하윤이 어리둥절해 되물었다.“네?”“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런 말 두 번 더 해서 세 번 채우면 벌받을 준비해.”하도진은 목소리가 낮았지만 말투가 몹시 사나웠다.하도진이 말하는 ‘벌’이 무엇일지는 대수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민하윤은 임신했다는 걸 믿고 별로 겁내지 않았다.하지만 하도진은 멀리서 민하윤의 속마음이라도 들은 듯 느긋하게 덧붙였다.“의사한테 물어봤어. 초기 몇 달만 조심하면 되고 안정기에 들어가면 괜찮대.”민하윤은 뜨끔했지만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제가 틀린 말한 것도 아니잖아요. 먼저 선을 건드린 건 도진 씨에요.”이번엔 하도진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잠시 뒤 하도진이 화제를 바꿨다.“밥은 먹었어?”민하윤도 역시 상처 주는 이야기를 오래 끌고 싶지는 않았다.연인 사이에서 헤어지거나 이혼하자는 말을 자꾸 꺼내면 결국 관계에도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하도진이 먼저 화해할 틈을 만들어 줬으니 민하윤도 얌전히 받아들였다.“아직 안 먹었어요.”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걔는 그렇게 깍쟁이야? 아침밥도 안 챙겨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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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7화

민하윤은 차창에 기대어 멀리 옅은 안개 속 풍경이 점점 선명해지는 걸 바라봤다.버스가 길가에 멈춰 섰고 눈앞에는 새하얀 제누오 스타일의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이남주는 하품을 하며 잠이 덜 깬 눈을 비볐다.“도착했어요?”민하윤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짧게 대답했다.“네.”건물 앞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이남주는 밖을 한번 훑어보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팬이 왜 이렇게 많아요?”민하윤도 의아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진도의 햇살은 눈부실 만큼 뜨거웠지만 현수막과 응원 피켓을 든 팬들의 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자세히 살펴보니 전부 백누리의 팬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알록달록한 현수막마다 각기 다른 영어 이름이 인쇄돼 있었다.“역시 국내 유일의 상장 게임 회사답네요. e스포츠팀 인기가 이 정도라니요. 요즘 제일 잘나가는 여배우도 밀리겠어요.”이남주는 연신 감탄하며 민하윤의 팔을 잡고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팬들이 유일한 통로를 꽉 막고 있었지만 다행히 스타 라이트에서 마중 나온 직원이 있었다.담당자는 앳된 인상의 인턴이었다.더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는 땀이 가득 맺혀 있었다.여직원은 일행을 로비 옆 휴게실로 안내하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엘리베이터를 수리 중이라서요.”하지만 20분이 지나도록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오후 일정까지 빠듯하게 잡혀 있던 터라 인솔 책임자인 이 행장의 표정도 점점 초조해졌다.이 행장은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다가 생수를 옮기던 인턴을 불러 세웠다.“e스포츠 기지가 몇 층이죠?”인턴은 잠시 당황하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19층입니다.”“뭐라고요?”이 행장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오후 일정은 이미 모두 정해져 있었기에 엘리베이터 수리를 기다렸다가는 오전 행사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한참을 고심한 끝에 이 행장은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다.전원 계단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그러자 이남주는 하마터면 휘청거릴 뻔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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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8화

이남주는 초콜릿 두 개를 찾아내고는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저도 몰라요. 올라가 보면 알겠죠.”이남주는 목소리를 전혀 낮추지 않았다.민하윤이 일부러 휴대폰을 멀리 떼어 놓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하도진에게 그대로 들렸다.‘올라가 보면 안다고?’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이 엘리베이터 앞의 수리 안내판으로 향했다.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휴대폰을 꽉 쥔 채 몸을 돌렸다.“지금 어디야?”“네?”하도진은 얼굴을 굳혔다.명백하게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말했다.“뭘 자꾸 되물어? 지금 어디냐고.”민하윤은 긴장한 채 침을 삼켰다.차마 계단을 오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행사 곧 시작해서 지금 좀 바빠요. 끝나고 제가 다시 연락하면 안 돼요?”하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하도진은 낮게 욕설을 내뱉더니 곧장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구준오는 20층 휴게실에서 고은율과 통화 중이었다.갑자기 하도진의 전화가 걸려 오자 화면을 확인한 구준오의 미간이 꿈틀했다.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은율아, 나 잠깐 일이 생겨서. 이따 다시 연락할게.”전화를 받자마자 하도진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구 대표님, 이제 아주 대단한 분이 되셨네... 전화 연결도 이렇게 어려운 걸 보니...”구준오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또 왜 그러는데? 기분 안 좋다고 나한테 화풀이하지 마.”하도진은 차갑게 웃었다.“헛소리 그만해. 네가 준비한 그 e스포츠 협업 행사는 시작했어?”구준오는 잠시 말이 없었다.“무슨 행사?”하도진의 인내심이 빠르게 바닥나기 시작했다.하도진은 몸을 돌려 옆의 계단실로 향했다.서 비서가 뒤따라왔지만 하도진은 돌아보지도 않고 긴 다리로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며 쏘아붙였다.“네가 은행 직원들을 해안 기지까지 불러서 투자 프로젝트 진행해 놓고 나한테 무슨 행사냐고 물어?”구준오는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아, 그거... 아직 시작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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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9화

순간 말문이 막힌 민하윤은 조심스럽게 이남주에게 물었다.“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이남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무슨 소리요?”민하윤도 확신할 수 없었다.방금 하도진이 욕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됐다.하도진은 분명 S급 고객들을 위해 마련된 리조트에 가 있었다.오늘 하루 일정도 빡빡하다던 사람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었다.민하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남주를 달래듯 웃었다.“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속 올라가요.”이남주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앞서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참았던 불평을 마구 쏟아 냈다.“직장 노예는 역시 달라요. 회사에서만 아부하는 것도 모자라 계단 오르면서까지 상사한테 잘 보이려고 하잖아요. 아까 보셨어요? 이 행장님한테 물 갖다 바치면서 체력이 대단하시다느니 건강하시다느니 말이죠... 19층을 오르고도 안 쓰러지니까 아주 자랑할 기회까지 생겼죠. 하윤 언니가 아까 그 아부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을 못 봐서 그래요. 그렇게 계단을 잘 타면 산이나 오르지 회사에 왜 다녀요?”원래도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실컷 욕까지 퍼붓고 나니 이남주는 녹아내린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그러더니 한 손으로 벽을 짚고 허리를 숙인 채 헐떡이며 손을 내저었다.“잠깐만 쉬었다 가면 안 돼요? 저 진짜 더는 못 올라가겠어요.”민하윤은 위로 길게 이어진 텅 빈 계단을 올려다보다가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그대로 계단에 멈춰 섰다.민하윤이 휴지로 이마의 땀을 닦는데, 시야에 번쩍이는 구두 한 켤레가 들어왔다.민하윤은 미간을 좁히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러자 새까맣게 가라앉은 두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하도진이었다.하도진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꼼짝도 하지 않고 민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건 당장 해명하라는 눈빛이었다.민하윤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날카롭고 깊은 하도진의 시선이 돌멩이처럼 가슴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았다.“아, 진짜 쥐꼬리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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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0화

민하윤은 계속 침묵에 잠겼다.마치 머리를 땅속에 처박고 싶은 사람처럼 고개도 들지 못했다.하도진이 한참 쏘아붙인 뒤에야 민하윤은 불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이제... 다 혼냈어요?”그 말에 하도진의 깊은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하도진은 이유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아?”민하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찔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하윤아, 지금 네 뱃속에는 아기도 있어. 한 몸에 심장이 두 개라고. 너 혼자만 생각하면 안 돼. 19층까지 오르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했어? 네 몸이 그렇게 건강한 줄 알아? 의사가 조심하라고 한 말은 다 잊었어? 나도 찾아봤어. 임신 초기 석 달은 특히 조심해야 해.”하도진의 목소리에 억눌린 감정이 묻어났다.“나도 참고 있는데 넌 왜 말을 안 들어?”하도진은 민하윤보다 한 계단 아래로 내려가 두 손으로 민하윤을 번쩍 안아 들었다.지금 이 순간, 하도진은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처음 엘리베이터 수리 안내판을 본 순간부터 하도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민하윤에게 전화한 것도 그저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어서였다.그런데 민하윤이 자신과 아이를 이렇게까지 소홀히 여길 줄은 하도진도 미처 몰랐다.가뜩이나 가녀린 몸으로 아무 말도 없이 19층을 오르려 했다니 말이다.하도진은 정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하지만 땀에 젖은 민하윤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단단했던 마음이 또 저절로 약해졌다.“제가 잘못했어요. 그래도 몸에 무리하진 않았어요.”민하윤은 작은 목소리로 변명했다.“정말 천천히 올라왔어요. 다른 분들은 벌써 꼭대기까지 갔을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민하윤은 말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하도진이 싸늘한 눈길을 보내자 민하윤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넌 자신이 일반적인 임산부와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하도진은 민하윤을 품에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하윤아, 어젯밤에도 네가 일을 쉬고 몸을 돌봐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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