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全部章節:第 571 章 - 第 580 章

629 章節

제571화

선샤인 빌리지가 앞채와 뒤채로 나뉘어 있었다. 진경자가 두 곳의 식사를 모두 책임졌다. 주영도가 구연정을 얼마나 세심하게 챙기고 있는지 강루인은 알고 있었다.왜냐하면 진경자가 매일같이 새로운 식단을 연구했고 그 음식들이 죄다 뒤채로 향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강루인을 홀대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됐던 진경자는 구연정의 음식을 챙긴 뒤에 무조건 강루인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따로 준비하곤 했다.매사 조심스러워하는 진경자를 보며 강루인이 덤덤하게 말했다.“아주머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진경자는 주영도를 대신해 조금이라도 보상하려 애썼다. 하지만 강루인과 주영도는 이미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주영도가 누구에게 정성을 쏟든 강루인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언제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진경자가 입을 달싹거리며 무언가 말하려다 다시 삼켰다. 강루인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몹시 갈등하는 기색이었다.주영도가 강루인을 데려왔을 때 두 사람이 새롭게 시작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상황이 진경자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뒤채로 음식을 배달하며 본 젊은 여인과 주영도의 사이가 평범하지 않았다. 흔히 젊은이들이 얘기하는 커플 같았다.하지만 주영도가 강루인에게 쏟는 관심 또한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주영도는 매일 들어올 때마다 진경자에게 강루인의 상태를 꼼꼼히 물었고 예전보다 훨씬 더 신경 쓰고 있었다.다만 그 관심이 강루인 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진경자는 한 남자가 여자 여러 명을 거느리며 평온하게 지내는 집안을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강루인은 그런 관계를 받아들일 사람이 절대 아니었고 무엇보다 강루인의 마음에서 주영도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명확해 보였다.바로 그때 강루인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전 시어머니 박정금과 마주쳤다. 박정금 역시 집에 나타난 강루인을 보고 흠칫 놀랐다.“너...”왜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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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주영도는 구연정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예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여러 번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의사의 당부 때문에 다시 삼켜야만 했다.이제 막 차도를 보이기 시작한 구연정에게 자극을 주어 다시 발작을 일으키게 할 수는 없었다.주영도가 적당한 변명을 찾아 대충 넘어가려던 그때 구연정의 표정이 급변했다.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불만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쑥스러워하면서 주영도의 옆으로 몸을 숨기며 당황한 기색으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어머님.”구연정이 박정금을 본 적이 있었다. 분명 한 달 전에 봤는데 왜 이렇게 눈에 띄게 늙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리광을 멈추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그 소리에 주영도가 고개를 돌렸다. 박정금이 경악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어머니.”박정금은 구연정이 민망해할 정도로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서야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구연정의 인사를 무시하고 다시 주영도를 보며 말했다.“나 좀 보자.”말을 마친 박정금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박정금의 차가운 태도에 구연정이 나가려는 주영도를 붙잡으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머님이 날 싫어하시는 거 아니야?”‘처음 만났을 때 어머님이 날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싸늘해지셨지?’주영도가 위로를 건넸다.“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그녀를 다독인 뒤 주영도도 따라 나갔다.박정금이 앞채와 뒤채 사이의 정원에 서 있었다. 주영도가 다가오자 바로 본론을 꺼냈다.“저 애가 네가 학교에 데려갔다가 사진이 찍혔던 그 애야?”구연정이 박정금을 보며 늙었다고 느꼈듯 박정금 또한 구연정이 말라비틀어져 생기를 잃었다고 느꼈다.구연정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상태가 훨씬 나빠져 있었다.구씨 가문 때문에 손주를 잃었고 아들은 재혼남이 되었으며 동서에게 온갖 조롱까지 당해야 했다.비록 그 모든 일이 구연정이 직접 저지른 게 아닐지라도 그동안의 일들이 박정금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구연정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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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박정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구연정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계속 끼고 돌 셈이란 말이야?”강루인은 둘째치고 구연정을 옆에 두고 돌보는 것도 박정금은 영 마뜩잖았다. 골치 아픈 일들이며 사람들을 보는 것조차 진저리가 났다. 이들과 얽혀 있으면 평온할 날이 없었고 맨날 시끄러웠다.주영도가 답했다.“의사 선생님 말로는 증상이 점점 호전되고 있대요.”“호전되고 있다는 거지, 완치된 건 아니잖아. 그 애 당장 내보내. 네 할아버지께서도 이미 불만이 많으셔. 다음 결혼 상대는 강루인도, 구연정도 아니니까 둘 다 확실하게 정리해.”“승우는 벌써 선을 보고 있어. 상대가 도씨 가문의 사람이야. 만약 두 사람이 마음이 맞는다면 네 할아버지는 승우를 더욱 신임하게 될 거야.”도씨 가문이라면 주씨 가문과 나름 격이 맞는 집안이었다.박정금은 주영도의 첫 번째 결혼이 엉망으로 끝났기에 두 번째 결혼은 반드시 격에 맞는 집안을 찾아줄 생각이었다.지금 주영도의 곁에 있는 두 여자 모두 박정금의 기준에 미달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녀의 뜻을 알고 있었던 주영도가 이렇게 말했다.“루인이가 아닌 다른 여자랑은 결혼할 생각 없어요.”박정금은 울화가 치밀었다.“루인이는 이제 너랑 엮이는 걸 원하지 않아. 그게 아직도 안 보이니?”주영도가 고집을 부렸다.“재결합해서 데려올 거예요.”이 말이 어머니에게 주는 확답인지, 그에게 하는 다짐인지 알 수 없었다.박정금이 말을 잇지 못했다.‘영도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언제부터 이런 거야? 왜 몰랐지? 루인이랑 그렇게 파국을 맞고도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한다는 게 말이 돼?’“강루인이 누구예요?”박정금이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뒤에서 구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달라진 박정금의 태도가 신경 쓰여 밖으로 나왔다가 우연히 낯선 여자의 이름과 그 여자와 재결합하겠다는 주영도의 말을 들었다.구연정이 원망 어린 눈으로 주영도를 쳐다봤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강루인이라는 여자가 네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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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옆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계속 붙어 있어서 나중에 주영도까지 정상이 아니게 될까 봐 겁이 났다.박정금이 선샤인 빌리지 본관을 지나던 그때 다시 강루인과 마주쳤다.이제 박정금에게는 시어머니의 위세가 없었고 강루인도 더는 며느리였을 때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강루인의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박정금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깍듯하게 대하던 게 습관되었기 때문이었다.박정금이 입술을 달싹였으나 선뜻 말을 내뱉지 못하고 머뭇거렸다.마음 같아서는 강루인에게 악담을 퍼붓거나 돈다발이라도 내던지며 아들 곁에서 당장 꺼지라고 호통치고 싶었다.하지만 박정금도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관계를 끝내지 못하고 상대를 붙잡고 있는 쪽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박정금이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여길 떠나고 싶어?”그 말에 강루인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고개를 들어 박정금을 똑바로 응시했다.“내가 여기서 나가게 해줄게. 대신 약속해. 나간 뒤에는 안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영도 앞에도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나가게 해줄게.”박정금은 주영도가 강루인과 계속 얽히는 걸 진심으로 원치 않았다.지금의 강루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마구 달려들었다. 어느 날 강루인이 미쳐 날뛰어서 주영도의 목숨이라도 앗아갈까 봐 두려웠다.박정금이 주영도보다 훨씬 분별력이 있었고 스스로를 기만하지도 않았다. 강루인이 주영도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한눈에 알아봤고 또 주영도가 강루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여자가 한번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남자 못지않게 독했다.강루인이 다시 확인했다.“절 도와주신다고요? 왜요?”강루인은 전 시어머니인 박정금이 좋은 마음을 품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박정금이 숨기지 않고 본심을 드러냈다.“네가 내 아들을 계속 해치게 내버려 둘 수 없어.”주영도의 몸에 생긴 상처들이 전부 강루인의 소행이라는 것을 박정금도 알고 있었다.그 상처들을 볼 때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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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강루인이 주영도에게 험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걸 본 박정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두 눈에 불쾌함이 스쳤다.하지만 당사자인 주영도는 이미 익숙해진 듯 전혀 개의치 않았다.“말 좀 곱게 해.”그 말에 강루인이 피식 비웃었다.‘본인은 온갖 더러운 짓을 골라 하면서 나더러 말을 곱게 하라고?’주영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어머니, 별일 없으시면 먼저 돌아가세요.”대놓고 내쫓는 듯한 주영도의 태도에 박정금은 기분이 상했다.‘뭐야? 이젠 친어머니인 나조차 눈에 거슬린단 말이야?’하지만 겉으로는 뭐라 하지 않았다. 가기 전 강루인을 힐끗 쳐다본 뒤 자리를 떠났다.주영도는 강루인이 싸늘하게 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경자 아주머니한테서 들었는데 요즘 잘 먹지 못한다며? 입맛이 없는 거야, 아니면 어디가 안 좋은 거야? 가정의를 불러서 검사 좀 해봐야겠어. 몸이 많이 상해서 몸조리 잘해야 해. 자꾸 이렇게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유산한 이후로 강루인은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젊어서 괜찮다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 온갖 병이 도질 게 뻔했다.주영도는 그녀가 나중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강루인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영도가 그녀를 잡았다.“나한테 화가 나는 건 나는 거고 네 몸을 가지고 장난치지는 마.”강루인이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주영도의 손을 뿌리쳤다. 감정을 숨길 생각 따위 없었다.“어쩜 이렇게 매사에 제멋대로야? 제발 부탁인데 내 눈앞에서 꺼져줘. 당신 얼굴만 봐도 진심으로 구역질이 나니까.”‘천신만고 끝에 첫사랑을 다시 찾아왔으면 그 여자랑 알콩달콩 지낼 것이지, 왜 자꾸 날 붙잡고 늘어지는 건데? 두 사람의 숭고하고 깊은 사랑을 옆에서 지켜봐 달라는 뜻이야?’강루인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혐오에 주영도는 가슴이 아렸다. 안색이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난 그저 너한테 보상해주고 싶었을 뿐이야.”위태로운 그들의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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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과거 구연정이 어떤 성격이었는지 강루인은 알지 못했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구연정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 순수함만 가득한 걸 보면 주영도가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강루인이 구연정을 빤히 응시했다.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몹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구연정이 맑고 깨끗할수록 강루인은 점점 못된 생각만 했고 심지어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었다.“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외부인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영도랑 아는 사이야? 아니면 주씨 가문 친척?”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구연정은 눈앞의 강루인에게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적대감을 느꼈다. 이런 마음을 품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속에서 저도 모르게 치밀어 올라 통제할 수가 없었다.강루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궁금해? 나 주영도의 전처야. 연정 씨가 지금 머무는 이 집이 나랑 주영도의 신혼집이었고 연정 씨한테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도 수년간 우리를 돌봐주던 가사 도우미야.”그러고는 하던 말을 잠깐 멈췄다가 서늘한 미소를 띠었다.“궁금한 게 더 있어?”구연정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해갔다. 까만 눈동자에 경악과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 차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뭐라고?”상대의 얼굴에 서린 고통과 슬픔을 확인하자 강루인은 그제야 가슴이 조금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계속하여 말했다.“내가 주영도의 전처라고. 우린 5년 동안 부부로 살았어.”강루인이 한 걸음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구연정과 눈을 맞췄다. 입가에 걸린 미소에 노골적인 악의가 담겨 있었다.“연정 씨가 없던 5년 동안 주영도는 매일 밤 나랑 같이 잤어. 이젠 연정 씨를 잊었고 연정 씨에 대한 사랑이 생각만큼 그렇게 깊지 않아.”“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영도 나한테 프러포즈까지 했어. 내 약혼자라고. 내가 돌아오면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그쪽이랑 결혼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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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구연정이 현재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데다가 강루인의 교묘한 도발까지 더해지자 결국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 주영도가 소중히 간직해온 혼인신고서와 이혼 서류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강루인이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주영도가 이 서류들을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강루인은 지독한 혐오감을 느꼈었다.남들이 보기엔 애틋한 순애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강루인에게는 그저 주영도 혼자만의 감동에 불과했다.과거 강루인이 구연정의 유품을 불태웠던 것처럼 구연정이 직접 그들의 흔적을 없애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서재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아래층에 있던 진경자가 급히 올라갔다. 바닥에 널브러진 종잇조각들과 산산조각이 난 웨딩 사진을 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진경자의 시선이 강루인에게 향했다.“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서재에 보관된 물건들은 주영도가 아끼던 것들이었다. 특히 이 사진을 주영도가 멍하니 바라보던 모습을 진경자는 여러 번 목격했다. 주영도가 강루인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지금 전부 다 망가지고 말았다.이 난장판을 주영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반면 강루인은 그녀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쓰레기를 치우는 중이에요.”진경자가 이게 쓰레기가 아니라 주영도의 보물이라고 말하려다가 강루인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강루인에게는 이것들이 쓰레기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때마침 밖에서 돌아온 주영도가 서재 앞에 서 있는 강루인과 진경자를 발견했다.주영도의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 평소 강루인이 그의 서재에 발을 들이지 않았으니까.강루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주영도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난장판이 된 서재 바닥을 본 순간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주영도가 서재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미쳐 날뛰는 구연정을 덥석 잡았다.“혹시 일부러 꺼낸 거야?”이건 강루인에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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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주영도는 강루인을 놓아주지 않고 대신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 주었다.어스름한 밤의 정취 속에서 주영도의 목소리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제발 나한테 매정하게 굴지 않으면 안 돼? 화가 났다는 거 알아. 화풀이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말리지 않아. 그런데 차갑게 대하지는 말아줘.”“그리고 화풀이를 나한테만 해. 연정이는 건드리지 마. 지금 회복기라 자극을 받으면 회복하는 데 좋지 않아.”강루인이 피식 비웃었다.“마음이 아파?”주영도가 해명했다.“연정이 다 나으면 내 책임도 거기서 끝이야.”그녀가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주영도, 당신 혹시 구씨 가문의 전속 보모야?”‘예전에는 구아정을 책임지더니 이제는 구연정을 책임지네? 걔네들 부모도 남인 당신만큼 이렇게 정성을 다하지 않았을 거야. 아니, 남이 아니라 구신원보다도 더 잘해주는 가족이지. 눈치 없는 외부인인 내가 구연정의 자리를 빼앗은 거야.’주영도가 말했다.“제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나랑 연정이는 이미 과거일 뿐이야. 우리 사이엔 미래가 없어.”그러고는 하던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내 미래는 너야.”그의 눈에 어린 애틋함을 본 강루인은 가소로운 나머지 대놓고 비웃었다.“당신이 이렇게 연기에 소질이 있다는 걸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주영도가 진지하게 말했다.“거짓말 아니야.”지난 세월을 지울 수는 없지만 구연정에 대한 마음은 이미 정리했다. 이젠 강루인과 살면서 예전의 아쉬움을 다시 채워나가고 싶었다.강루인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그 가당치도 않은 자기 감동은 집어치워. 당신은 나랑 잘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 나 같은 여자가 당신의 그 잘난 부귀영화를 내팽개치고 관계를 끊으려 하는 게 못마땅한 것뿐이야.”“당신이 그토록 고귀하게 여기던 자존심이 나한테 짓밟혔다고 생각해서, 내가 무시하는 걸 견디지 못해서 이러는 거라고.”강루인이 주영도의 가슴을 콕콕 찌르며 말을 이었다.“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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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강루인도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한 사람 정도가 앉아 있을 만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았다.구연정의 눈에 서린 경계심과 두려움을 본 강루인이 씩 웃었다.“이젠 연기 그만하려고?”구연정이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정신이 돌아왔으면서 왜 주영도한테 말하지 않았어?”그녀가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강루인은 그녀가 말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갔다.“내 앞에 나타났던 건 내가 어떤 여자인지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나를 치워버릴 수 있을까 방법을 찾기 위해서잖아. 그런데 지금 또 모르는 척을 해?”그 말에 구연정이 즉각 반박했다.“아니야, 그런 거.”그녀는 그저 주영도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구연정의 기억이 끊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했는지 알고 싶었다.그런데 강루인이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예전의 구연정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사람이 시각적 동물이라 아름다운 것에 끌리기 마련이라지만 구연정은 주영도도 그런 남자라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예전에도 구연정보다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자들이 숱하게 주영도를 유혹했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구연정에게만 일편단심인 걸 보면서 겉모습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었다.하지만 5년 만에 ‘깨어난’ 세상은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그녀 자신도, 주영도도 변해버렸다. 그들의 관계에 그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구연정이 고개를 숙여 약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의식을 잃기 전 약손가락에 주영도가 준 프러포즈 반지를 끼고 있었다.반지가 사라진 동시에 주영도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구연정의 눈에 망연자실한 기색이 서렸다. 잠시 잠들었다 깨어났을 뿐인데 어째서 모든 것이 기억과 달라져 있는 것일까?구연정이 눈을 깜빡이며 강루인에게 물었다.“내가 다 회복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어떻게 알았냐고? 눈빛은 속일 수 없거든.’그녀가 제정신인 상태로 강루인을 처음 봤을 때의 눈빛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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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강루인이 구연정의 방에서 나오기 무섭게 앞채와 뒤채 사이에 서 있던 주영도와 마주쳤다.주영도가 강루인과 뒤에 있는 뒤채를 번갈아 봤다.“어디 갔었어?”그의 눈동자에 서린 걱정을 포착한 강루인이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애지중지하는 그 여자의 숨통을 끊어놓으러.”주영도의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해져도 강루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했다.“지금 안 가면 당신 첫사랑 마지막 얼굴을 못 볼 텐데.”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영도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강루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다급하게 달려갔던 주영도가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강루인의 방 문을 거칠게 열고 쳐들어왔다.“앞으로는 말 함부로 하지 마.”확인해 봤는데 구연정이 아주 멀쩡했다. 강루인이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주영도가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말했잖아. 나한테 화풀이하라고. 다 받아줄게. 하지만 연정이는 아무 잘못 없어. 또 다른 피해자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잖아.”강루인이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나도 억울해. 왜 날 끌어들여서 피해자로 만든 건데?”그의 이중잣대는 언제나 이렇게 선명했다.강루인이 주영도의 대답 따위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내가 구연정을 해칠까 봐 그렇게 걱정되면 그냥 날 보내주면 되잖아.”‘마음속에서 첫사랑을 이토록 걱정하면서 전처인 날 여기에 붙들어 둬서 뭐 해?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에 방해만 될 뿐인데.’“밖이 위험해.”“그럼 언제쯤 안전해지는데?”주영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대답을 회피했다.“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더는 영양가 없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강루인이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루인 씨를 또 가둔 거야?”소식을 들은 최지호는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조차 몰랐다.‘예전에도 이렇게 사람을 가두는 버릇이 있었나? 아니면 감금 놀이에 재미라도 붙인 건가?’최지호가 담뱃재를 털며 물었다.“대체 무슨 생각이야?”“네가 그랬잖아. 옆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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