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나를 붙잡는 사람: Bab 91 - Bab 100

100 Bab

제91화 만남

신주현이 언제나 지켜 주고 감싸 온 사람은 늘 송지연뿐이었다.지금처럼 송아진이 무너져 내린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신주현은 단 한 마디 위로조차 하지 않았다.아니, 애써 거짓말로 달래 줄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거짓말할 의지조차 없는 건, 그만큼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송아진은 길게 숨을 들이켰다.“괜찮아. 더 묻고 싶은 건 없어.”송아진은 입가에 스치듯 웃음이 번졌고 그 웃음 속에는 자조와 허무가 섞여 있었다.그동안 송아진은 안간힘을 쓰며 신주현의 사소한 말과 행동 속에서 자신을 향한 호감을 찾으려 애써 왔다.하지만 돌아오는 건 점점 더 깊어지는 비웃음뿐이었다.그제야 송아진은 이제는 신주현의 마음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송아진은 조용히 짐을 챙겨 들고 대문을 나섰다.신주현은 쫓아오지도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다.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막았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아마 신주현 역시 손을 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송아진은 차를 몰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낯선 남자의 모습이 현관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혹시... 또 고지훈?’요즘 들어 고지훈의 이름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긴장하게 되는 자신을 느꼈다.그런데 남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스쳤다.송아진은 눈을 크게 뜨고 곧장 달려가 품에 안겼다.“외삼촌?”처음으로 온몸을 파고드는 혈육의 온기를 느낀 순간이었다.그동안 느껴 본 적 없는 피로 이어진 진짜 가족의 기운이 가슴 깊이 벅차올랐다.“정말 오셨군요! 며칠 동안 연락이 없으셔서 바쁘신 줄 알았어요.”처음에는 그저 말뿐인 약속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준 걸 보니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외삼촌은 다정하게 송아진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회사 일 때문에 조금 늦었어. 아진아, 내가 널 데리러 왔어.”송아진은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았다.“삼촌은 사진보다 훨씬 젊으시네요!”송아진이 본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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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작은 희망

“박진성...”송아진은 명함 위 이름을 또박또박 읽더니 환하게 웃었다.“삼촌의 이름은 참 멋지네요.”원래는 그냥 외삼촌이라고 불렀지만 자신보다 고작 열 살 위라는 걸 알고 나서는 입에 붙여 작은삼촌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면 훨씬 젊게 느껴졌다.“이름까지 칭찬해 주다니... 기분 좋네.”박진성이 옅게 미소 지었다.송아진의 얼굴에도 금세 밝은 웃음이 번졌다.“작은삼촌, 혹시 결혼은 하셨어요?”“아직이야.”“그럼 제 친구를 소개해 드릴까요? 아는 사람끼리 이어지면 더 좋잖아요.”박진성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송아진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늘 딱딱한 일만 붙들고 살았던 탓에 이렇게 편안히 웃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그러면 네 친구가 앞으로는 네 윗사람이 되겠네.”“어, 듣고 보니 좀 그렇네요.”송아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신청아였다.강단 있는 여성인 신청아와 능숙한 사업가인 작은삼촌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은근히 생각했다.“일단 됐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요. 작은삼촌,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이 집은 엄마가 제게 남겨 준 집이에요.”문을 열어 들어온 박진성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론든으로 가게 되면 이 집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송아진은 짐을 정리하며 가볍게 대답했다.“팔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두고 싶지만 이혼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려면 집을 팔아 그 돈으로 주현이한테 건네야 할 것 같아요.”“아진아.”“네?”송아진은 순간 놀라서 멈춰 섰다. 작은삼촌이 처음으로 또렷하게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만약 소송으로 가면 상대 변호사는 너 같은 대범하고 순진한 쪽을 제일 반가워할 거야.”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저도 아는데요... 그냥 어떻게든 빨리 이혼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돈은 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모자라면 말해. 내가 채워 줄게.”“작은삼촌의 돈은 쓸 수 없어요. 저번에 보내 주신 것도 아직 안 썼는걸요.”“가족인데 왜. 내가 준 건 이미 네 거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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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연극이 아닌 순간

송아진은 요즘 학교 일로 정신이 없었다.미대를 떠나기 전, 손에 쥔 프로젝트와 과제들을 마무리해야 했고 이혼이 확정돼야만 전학이든 휴학이든 정리할 수 있었다.무엇보다 우선은 이혼이었다.세 번째 날, 송아진은 일찍 귀가해 간단히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작은삼촌과 함께 시내 포시즌 호텔 연회장에서 열리는 경매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작은삼촌이 이미 준비해 둔 드레스가 놓여 있었다.“작은삼촌,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저 모델 대회에 나가는 거 아니잖아요.”송아진은 짙은 남청색의 드레스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끈 달린 디자인은 화려하지도 과하게 격식 있지도 않았지만 품격이 느껴졌고 경매장에 어울리기에 충분했다. 옆에는 누드톤의 끈 달린 하이힐까지 곁들여 있었다.“막상 가 보면 다들 화려하게 차려입었을 거야. 그때 너 혼자 소박하면 더 눈에 띄게 돼.”박진성의 말에 송아진은 바로 납득이 갔다.그도 그럴 것이, 예전 신주현을 따라 수없이 연회 자리에 나갔을 때마다 떠오른 건 한결같은 모습이었다.이른바 명문가라 자처하는 이들이야말로 언제나 화려하게 무장해 있었다.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차려입으면 평범한 군중 속 한 사람일 뿐이지만 괜히 홀로 소박하면 밤새 뒷말에 오르내릴 게 뻔했다.“역시 작은삼촌은 다 생각이 있으시네요.”송아진은 드레스와 구두를 들며 웃었다.“그럼 감사히 입을게요.”작은삼촌 앞에서는 자꾸 좋은 말이 흘러나왔다. 피붙이니까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그런데 신주현 앞에서는 어떻게든 분노를 돋우는 말만 하고 싶었다. 차라리 못처럼 말끝마다 박아 넣어야 속이 풀렸다.옷방에서 갈아입고 나오자 박진성이 전화를 끊으며 돌아보았고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잘 어울리네.”송아진은 일부러 눈을 가늘게 뜨며 농담을 던졌다.“작은삼촌, 혹시 연애 많이 해 보신 거 아니에요? 옷 보는 눈이 이렇게 정확하시다니.”“별소리를 다 하네.”박진성이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대꾸했다.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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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빼앗긴 무대

“네...”송아진은 마음속에 의문이 스쳤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그들한테 배치한 자리는 2열 정중앙이었다.1열은 언제나 주최 측이 비워 두는 특별한 게스트들을 위해 남겨 두는 자리였다.송아진은 괜히 긴장했는데 박진성이 손등을 톡 두드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경쟁 붙을 일은 없을 거야.”엄마는 생전에 이름난 화가는 아니었고 작품도 거의 남기지 않았으니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박진성 역시 굳이 누가 나서서 그 그림을 노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송아진도 곰곰이 생각하니 맞는 말 같아 마음이 조금 풀렸다.그때였다.비어 있던 1열 정중앙에 두 사람이 앉았다.마침 송아진과 박진성 자리의 사선 앞쪽이었다.송아진은 휴대폰으로 신청아와 경매 얘기를 주고받느라 고개를 들지 않았다.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정면에 앉은 남자의 옆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숨이 콱 막혔고 심장이 단단히 조여 오는 듯했다.“신주현...”송아진은 믿기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신주현을 바라봤다.박진성은 곧바로 눈치챘다.송아진의 얼굴에 드리운 공포와 혼란, 그리고 박진성이 예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사설탐정이 보내온 자료와 맞아떨어졌다.“저 사람이 신주현이 맞지?”박진성이 낮게 물었다.송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박진성이 팔을 붙잡아 눌렀다.“왜 도망쳐?”“보고 싶지 않아서요.”송아진은 억눌린 채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이혼하려면 앞으로도 자주 마주칠 거야.”박진성의 목소리는 단호했다.“그림은 포기할 거야?”“분명히 우리랑 그림을 뺏으려 들 거예요.”송아진의 목소리가 떨렸다.“엄마의 마지막 유작이라면 더더욱 그럴걸요. 신주현은 내가 원한다는 걸 알면 기어이 방해할 거예요. 그게 제일 나쁜 성격이니까.”“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신주현은 널 이길 수 없어.”송아진은 숨을 깊이 들이켰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혼란스러웠다.신주현은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언가를 처리하는 듯했고 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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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경매장의 불꽃

송아진은 자리에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로 마음이 복잡해졌다.분명 지금까지는 신주현이 자신이 여기 있는 걸 모를 터였다.‘그렇지 않고서야 왜 굳이 이 그림을 고집하는 걸까?’혼란과 불안이 뒤섞여 숨이 가빠졌고 박진성은 조용히 손등을 두드리며 송아진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신주현이 부른 금액은 이미 그림의 본래 가치를 한참 넘어선 수준이었다.정말 돈이 남아돌아 불태우는 심정이 아니고서야 저럴 리가 없었다.게다가 신주현은 이 그림이 송아진 어머니의 작품이라는 걸 알 리도 없었다.‘그렇다면 신주현은 대체 무슨 이유로 저렇게까지 집착하는 걸까?’그때 박진성이 손을 들어 올렸다.“400억.”그러자 장내가 다시 크게 술렁였다.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작품이 백억 단위로 오르내리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숨을 고르는 사이 신주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그는 바로 송아진을 정확히 발견했다.그러자 놀라움과 불쾌감이 동시에 스친 눈빛이 나타났고 신주현은 경매장에서 송아진을 마주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신주현은 곧 송아진 옆에 앉아 있는 박진성에게 시선이 옮겨졌다.그 순간, 눈빛에 담긴 억눌린 분노가 분명히 느껴졌다.송아진은 신주현이 또 오해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아직 젊어 보이는 작은삼촌과 나란히 앉아 있으니 충분히 엉뚱한 상상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송아진은 그저 눈을 부릅뜨고 차갑게 외면했다.잠시 후 신주현은 고개를 돌려 비서 유성에게 눈짓했다.“600억.”모두가 말문이 막혀 웅성거리던 소리조차 사라졌다.송아진은 숨을 몰아쉬며 박진성을 바라봤다.“그만해요...”이건 그림의 가치를 훌쩍 뛰어넘은 금액이었다.아무리 소중한 엄마의 유작이라 해도 그 이상의 욕심은 위험했다.송아진은 잘 알고 있었다.신주현의 성격이라면, 오늘 이렇게 경매장에서 마주친 것도 모자라 화가 난 상태에서 자신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봤으니 반드시 발작하듯 날뛸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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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충돌

송아진은 주위에서 터져 나오는 추잡한 말들에 눈을 치켜뜨며 길게 숨을 들이켰다.“우리 그냥 가요.”박진성을 향해 낮게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싶었지만 박진성은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네가 힘들면 먼저 나가 있어.”송아진이 이 상황에서 혼자 물러날 수 있을 리 없었기에 그저 이를 악물고 바늘방석 위에 앉은 듯 긴장한 채 자리를 지켰다.가격은 치솟아 어느새 1조 4,000억 원에 다다랐다.그 순간, 주최 측 관계자가 무대 앞으로 다가와 진행자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곧 마이크를 잡았다.“죄송합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 신사분께도 사과드립니다. 원화 소유자의 요청으로 이 작품은 오직 신 대표님께만 판매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그 순간, 박진성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때 신주현은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며 얄밉게도 눈썹을 슬쩍 치켜세웠다.그 눈빛에는 가벼움과 도발, 그리고 뻔뻔한 조롱이 뒤섞여 있었다.송아진은 숨이 막히고 가슴이 쿵쾅거렸다.‘세상에 이렇게 얄미운 인간이 또 있을까.’차라리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결국 그림의 거래 금액은 알려지지 않은 채, 신주현은 뒷무대로 사라져 결제를 진행했다.그 순간 송아진은 직감했다.‘저 사람은 엄마의 유작이라는 걸 알고 일부러 가져간 거야. 분명히 그걸로 날 협박해서 이혼을 막으려는 거겠지.’하지만 송아진은 마음을 다잡았다.‘난 절대 신주현의 꾀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송아진은 박진성과 함께 호텔을 나와 곧장 차에 올랐다.돌아가는 길에서 박진성이 낮게 말했다.“미안해.”“작은삼촌이 뭐가 미안해요. 잘못은 전부 신주현 미친 자식한테 있죠.”송아진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분명 제가 굴복해서 먼저 빌기를 바라는 거겠죠. 천만에.”“늘 그렇게 널 괴롭혔어?”박진성이 물었다.“그래요. 언제나 저를 짓밟고 괴롭히는 게 그 사람의 방식이었죠. 이제는 정말 단 1초도 못 버티겠어요.”그때였다.초록색 스포츠카 한 대가 갑자기 그들의 차 앞을 가로막듯 세워졌다.운전하던 박진성의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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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사라진 증거

신주현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지만 차츰 가라앉히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그러자 신주현의 잘생긴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넌 어떻게 알았지? 그 그림이 송아진 어머니의 유작이라는 걸? 너희 고작 며칠 전 알게 됐잖아.”박진성은 여전히 차분했고 아마도 열 살 위라는 나이 차이 때문인지 마치 어린애를 대하듯 담담하게 말했다.“그 그림은 아진한테 아주 중요한 거야.”그러나 신주현이 박진성을 바라보는 눈빛은 남달랐다. 그저 남의 여자 옆에 붙은 더러운 놈 정도로만 여기는 듯했다.“그림이 필요하다면 직접 나한테 오라 해.”말을 마친 신주현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초록색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사라지자 송아진은 너무나 허무했다. 신주현이 이렇게 쉽게 돌아설 줄은 몰랐다.아마도 오늘은 정말 분노에 치솟아 떠난 것 같았다.박진성이 차에 올라타자 송아진이 물었다.“뭐라고 했어요?”박진성이 씁쓸하게 웃었다.“나보고 더러운 놈이라고 했어.”송아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병이 있나 봐요.”만약 신주현이 박진성이 자기 외삼촌이라는 걸 알았다면 자신을 바보로 여겼을지도 몰랐다.“작은삼촌이라고 말해 주지 그랬어요?”“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서 그냥 가 버렸어. 어린애 같으니라고...”송아진은 이를 악물며 불평했다.“이혼 서류에는 도장도 안 찍고... 엄마의 그림은 강제로 빼앗고... 진짜 미쳐버리겠어요.”‘게다가 경매장에까지 와서는 또다시 그림을 사들여 송지연에게 안겨 주다니...’여기까지 와서도 어릴 적부터 끼고 살던 첫사랑을 챙기다니 분노가 치밀었다.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는 바로 송지연이었다.정말 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송아진은 이내 전화를 받았고 이번에는 송지연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을지 궁금했다.“고마워. 보낸 그림은 아주 마음에 들어.”송지연의 목소리는 건방진 듯 가벼웠고 끝에는 비아냥이 묻어 있었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아진은 날 선 목소리로 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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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지워지지 않는 기억

결국 신주현이 사랑한 건 송지연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송아진을 위해 송지연의 친모와 맞설 수 있었겠는가.그때의 무모함이라는 말이야말로 지금에 와서야 뼈아프게 다가왔다.그날 밤, 송아진은 침대에 누워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머릿속에는 온통 오늘 경매장에서 본 이 맴돌았다.살아 있는 동안 처음 보는 그림이자 세상을 떠난 엄마의 유작을 십수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순간이었다.엄마 역시 한때는 미대에 다니던 학생이었고 대학 2학년 때 큰 상을 받아 이름을 알리며 기대를 모았던 재능의 소유자였다.하지만 불행히도 송명철을 만나 그의 함정에 걸려든 순간부터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은 당당한 화가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있었을 것이다.송아진은 몸을 뒤척였고 눈만 감으면 눈앞에 그림이 어른거려 가슴이 미어졌다.송아진은 그림을 되찾고 싶었지만 손을 뻗기에는 힘이 부족했다.더구나 그 대가가 신주현과의 이혼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림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포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때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고아원에서 송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무렵, 우연히 집 서재에서 엄마가 남긴 그림 몇 점을 발견한 일이 있었다.아마 한동안 잊었지만 어느 날 가정부가 청소 도중 발견해 들고 나왔던 듯했다.그 순간, 그게 엄마의 작품이라는 걸 알아본 송아진은 울면서 송명철에게 애원했다.“제발요. 한 폭이라도 저한테 남겨 주세요.”하지만 송명철은 냉정하게 그림을 팔아치우겠다며 단칼에 잘랐다.열여덟 살의 송아진은 돈이 없었다.밤새 울던 끝에 신주현에게 전화를 받았고 무슨 일인지 묻는 그의 목소리에 마침내 사정을 털어놓았다.다음 날, 그림은 송아진의 손에 돌아왔다.그날, 신주현은 어딘가 어색한 얼굴로 그림을 내밀었다.잘해 주고 싶으면서도 티 내기 싫고 또 무심한 척하면서도 마음은 흔들리는 복잡한 얼굴이었다.“어떻게 구했어?”눈물로 젖은 얼굴로 묻는 송아진에게 신주현은 잠시 멈칫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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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조롱의 불씨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송아진이 엄마의 유작을 몰래 간직한 사실이 결국 소인영에게 들켰고 송명철은 크게 노했다. 사정을 전해 들은 송지연은 곧장 송아진이 신주현에게 매달려 얻은 것이라 여겼고 그때부터 송아진을 철저히 미워하기 시작했다.송명철은 송아진의 눈물 어린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을 불태워 버렸다. 그 순간, 송아진이 송명철에게 품고 있던 마지막 정조차도 함께 잿더미로 사라졌다.박진성은 한 달간 남성에 머물기로 했다.송아진의 이혼 준비를 돕는 이유도 있었지만 운영하는 해외 투자 회사의 프로젝트가 남성에 있어 겸사겸사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그래서 온 하루 박진성은 바빴고 송아진도 학교에 나가 강의를 들어야 했다.그날은 대형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전공 이론 수업이었다.강의실에 들어선 순간, 낯선 기류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이라 여겼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 좌석이 비어 있는 걸 깨달았다.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있었고 대놓고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었다.송아진은 이유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멀리서 송지연이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 낯선 분위기 뒤에는 반드시 송지연이 있다는 게 대충 짐작이 갔다.곧 수업이 시작될 참이어서 송아진은 굳이 따지러 가지 않았다.그때, 예전에 패션디자인과에서 알게 된 후배가 수업을 들으러 들어왔다. 송아진을 보자마자 옆에 앉으며 눈을 반짝였다.“선배, 진짜 대단하세요. 멘탈이 강철이네요.”“나? 무슨 소리야?”“온라인 기사 안 보셨어요? 지금 난리 났는데... 신현 그룹 사모님이 바람을 피운다고 온갖 커뮤니티가 뒤집혔어요.”송아진은 휴대폰을 받아 확인했다.순간 말이 막혔고 어이가 없어 웃음까지 터져 나왔다.“황당하네...”사진 속 각도는 분명 어제 경매장 근처에서 찍힌 것이었다. 옆에 서 있던 박진성과 함께 찍힌 모습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고 모자이크 하나 없는 얼굴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게다가 두 번째 사진은 한참 오래전에 고지훈과 나란히 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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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사라진 소문

송아진은 자리를 박차고 송지연 앞에 섰다.“송아진? 네가 무슨 낯짝으로 학교에 나와? 나라면 당장 숨을 데부터 찾겠다. 창피해서 어떻게 버티냐?”송지연은 앉은 채로 비웃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고 옆에 있던 친구들까지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목마르지?”송아진이 불쑥 묻자 송지연은 잠시 멍해졌다.“뭐?”“내가 묻잖아... 목마르냐고. 너 투석 중이라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신다며. 오랫동안 시원하게 물 마신 적 없겠네?”그 말에 송지연의 얼굴빛이 단번에 하얗게 질렸다. 욕설을 내뱉으려는 순간, 송아진은 물병을 열어 그대로 송지연의 머리 위로 부어 버렸다.“꺅!”송지연의 비명에 강의실을 빠져나가던 학생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몰렸다.“물만으로는 부족하지. 음료수도 오래 못 마셔 봤을 거 아냐?”송아진은 옆에 있던 후배의 밀크티를 집어 들더니 이번엔 송지연의 머리 위로 죄다 쏟아부었다.“송아진!”송지연이 벌떡 일어나는 순간, 송아진의 손바닥이 날아가 얼굴에 꽂혔다.“온라인에서 떠들썩하게 소문 퍼뜨리는 게 그렇게 즐겁더라? 내가 직접 구경거리를 더 얹어 줄게.”머리부터 옷까지 흠뻑 젖은 채 서 있는 송지연은 그야말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늘 공주처럼 대접받던 삶에서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기에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넌 정말 나쁜 년이야. 내가 아픈 걸 이용해서 날 모욕하다니!”송지연은 억울함을 내세워 동정을 사려 했지만 송아진은 단호히 받아쳤다.“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알잖아. 네가 내 신장 덕에 살아난 거. 그런데 또다시 네가 몸 관리를 잘 못해서 병이 다시 도진 거잖아. 기적이 나타난대도 네 더러운 속내는 고쳐지지 않을 거야.”송아진은 빈 밀크티 컵을 송지연의 가슴팍에 던졌다.“받아. 선물이야.”송아진은 속으로 통쾌함이 몰려왔다. 복수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속이 뻥 뚫렸다.송지연이 온라인에서 자신을 모욕했다면 자신도 똑같이 되갚아 준 셈이었다.송아진은 곧장 전화기를 꺼내 신청아에게 연락해서 온라인 댓글들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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