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나를 붙잡는 사람: Bab 51 - Bab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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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잘못된 시작

신주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신장을 더 도려낸다고? 그럴 리가 없을 거야. 머리카락 한 올만 빠져도 마음 아파하는 난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아직 마취에서 완전히 풀리지 않았으나 신주현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송아진의 의식은 오히려 또렷해졌다.바로 앞에서 코끝이 맞닿을 듯 다가온 날카로운 콧날 위에 박힌 작은 점마저 선명하게 보였다.분노로 물든 얼굴인데도 신주현은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핏발 선 눈빛 속에서 금이 간 듯한 상처를 읽어낸 순간, 송아진의 가슴은 알 수 없는 통증에 휘감겼다.그런데도 자신을 더 가엾다고 느낀 건 송아진이었다.신주현의 입술은 분명히 움직였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들리지 않았다.송아진은 차갑게 내뱉었다.“신주현, 네가 직접 이 사고에 가담하진 않았을지 몰라도 누가 꾸몄는지는 알고 있잖아.”신주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송아진은 바로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봐봐. 역시 눈치채고 있었네. 내가 네 곁에 계속 있으면 결국 죽음뿐이야.”붉게 충혈된 신주현의 눈빛이 송아진의 시야에 들어왔고 그녀는 숨죽이며 중얼거렸다.“정말 내가 죽길 바란다면... 그냥 그렇게 할게.”“그런 말 하지 마.”신주현이 다급히 손으로 송아진의 입을 막았다.마치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곧 자신을 잃는 두려움처럼 느껴지는 듯했다.그러나 송아진은 막을 수 없었다.“내가 송지연한테 신장을 내주겠다고 했을 때, 그걸 조건으로 너와 결혼했을 때... 우린 이미 끝날 운명이었어. 넌 단 한 번도 내 몸을 걱정하지 않았어. 신장 하나 잃고 나서 내 몸이 어떻게 될지, 그 뒤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잖아.”신주현이 억울한 듯 말했다.“난 네가 신장 기증하는 거 원한 적 없어. 그건 전부...”“그만해. 어차피 지금 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리고 네가 무슨 변명을 늘어놔도 결국 거짓일 뿐이야. 듣고 싶지 않아.”송아진은 단호하게 끊어냈다.“네가 나한테 다가왔던 이유는 단 하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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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깨져버린 약속

이혼 협의서라는 굵직한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신주현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송아진이 고지훈에게 부탁한 일이 결국 협의서를 출력해 오는 거였다는 사실이 선명히 드러났다.“단 1분도 못 기다리겠어?”신주현의 눈빛에는 쓰라린 고통이 번졌다.마취에서 막 깨어난 송아진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자신에게 이혼 서류에 서명하라고 내미는 것이었다.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고지훈에게까지 부탁했다는 사실이 신주현의 마음을 더 옥죄었다.하지만 신주현이 끓어오르는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송아진의 얼굴은 오히려 이미 마음이 죽어버린 사람처럼 담담했다.송아진은 전동 침대 버튼을 눌러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그리고 협의서와 펜을 집어 들고 멀쩡한 왼손으로 삐뚤빼뚤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내 건 다 끝났어. 이제 네 차례야. 지금 서명할 거야? 아니면 집에 가져가서 변호사한테 보여줄래? 어차피 난 빈손으로 나갈 테니 변호사한테 확인받을 필요도 없어.”협의서를 내민 순간, 송아진은 처음으로 이혼 문제를 대놓고 꺼내며 관계의 가면을 벗겨버렸다.신주현 앞에서 얼굴마저 찢겨나간 듯 솔직한 태도로 모든 걸 드러낸 것이다.정작 이 순간 송아진의 마음은 오히려 고요했다.그러나 신주현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신주현은 협의서와 펜을 거칠게 낚아채며 종이에 적힌 송아진의 서명을 훑었다.“오른손도 못 쓰면서 굳이 왼손으로 서명할 만큼 당장 이혼하고 싶어?”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웃음이 신주현의 입술에 걸렸다.물론 신주현이 무슨 말을 하든 송아진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송아진은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내가 죽길 바라지 않는다면 서명해. 오늘 네 눈으로도 봤잖아. 난 사고로 이미 죽을 뻔했어. 우리는 아직 서로를 죽일 만큼까지는 가지 않았잖아?”끝내 참지 못한 눈물이 송아진의 눈가에 맺혔다.어린 날의 기억과 함께 쌓였던 사랑과 애정이 마치 연기처럼 흩어져 가는 순간이었다.그러자 신주현은 협의서를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내던졌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송아진을 내려다보며 분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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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지울 수 없는 빚

송지연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내가 뭘 했다고 그래? 만약 죽은 쥐 사건 때문에 따지는 거라면... 그건 그냥 장난이었어. 송아진을 좀 놀려주고 싶었던 거지. 오빠는 언제나 날 제일 예뻐해 줬잖아. 이런 사소한 일까지 따질 건 아니지?”그러나 신주현의 눈빛에는 차가운 조롱이 어려 있었다.“예뻐해 줬다고? 내가 널 봐준 이유가 뭔지 정말 몰라? 넌 멍청하지 않잖아. 내가 말하는 일이 송아진을 괴롭힌 장난 따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그 말에 송지연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고 두려움이 사무쳤지만 그건 죽음을 마주한 공포와는 결이 달랐다.송지연은 더 이상 새로운 신장 공여자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거부 반응의 위험 또한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송아진이 준 신장은 이미 몸에 적응했고 또 그만큼 확실하고 안전한 대체재는 없었다.그래서 송지연은 몇 번이고 무모한 짓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신주현이 송지연을 거칠게 밀쳐내자 송지연의 연약한 몸은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그러자 송지연은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고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연꽃잎 위의 빗방울처럼 아프게 떨렸다.“주현 오빠, 처음에 날 선택했던 건 오빠였잖아. 우리 집안끼리 약혼도 했었고 우리는 누가 봐도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어. 그런데 왜 하필 그 천덕꾸러기를 사랑하게 된 거야?”송지연은 신주현의 마음이 누구한테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동안 자신을 봐준 건 오직 과거의 그 사건 때문이었다.아무도 모르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다.“천덕꾸러기는 걔가 아니라 바로 너야.”신주현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냉혹하게 떨어졌고 눈에 담긴 건 연민도 애정도 아닌 철저한 냉정과 무시였다.송지연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수치심에 사로잡혔고 이번만큼은 신주현을 붙잡지 못할 것 같았다.송지연은 결국 꺼내서는 안 될 과거를 암시적으로 언급했다.“그때 내가 오빠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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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어머니의 고백

신주현이 힘껏 팔을 뿌리치자 송지연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송지연은 텅 빈 눈빛으로 신주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리란 걸 직감했다.신주현의 마음속에서 남아 있던 미안함조차 이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송지연은 다급했다. 어떻게 해서든 송아진의 나머지 신장을 손에 넣어야 했다.서재 안.배수연은 도면 위에 펜을 놀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신주현이 들어서자 고개를 들며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이게 웬일이니? 결혼한 뒤로는 집에 발길도 끊더니.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야?”배수연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빈정거림이 배어 있었다.송아진을 며느리로 맞이한 그날부터 못마땅했던 마음이 지금까지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회사 일로 온 거라면 허탕일 거야. 네 아버지는 지금쯤 비서 침대 위든가, 아니면 그 여자 연예인... 이름이 뭐더라. 맞아. 임수영... 걔 침대에 있겠지.”배수연에게 결혼은 그저 집안끼리의 거래였다.이미 혼전부터 사생아가 있었던 신명안에게 기대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그녀가 바란 건 오직 하나, 아들 신주현이 후계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뿐이었다.“저는 아버지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 엄마한테 온 거예요.”신주현이 낮게 내뱉자 배수연은 고개를 들어 신주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근데 표정이 왜 그래?”“엄마는 제가 왜 그런지 알잖아요.”신주현이 엄마라고 부르는 호칭에 비아냥이 잔뜩 섞였고 배수연은 연기를 내뿜으며 비웃듯 말했다.“혹시 교통사고 얘기라면... 네가 좀 컸다는 증거겠네. 상황을 눈치채는 감각도, 예민함도 전보다 나아졌잖아.”배수연은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친아들이 엄마한테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엄마, 송아진은 제 아내예요.”신주현의 눈가에 서린 붉은 기운은 분노와 고통이 뒤섞인 흔적이었다.배수연은 연기를 내뿜으며 차갑게 웃었다.“난 네 아버지의 아내야... 부부라는 건 원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야. 이해관계가 끊어지면 언제든 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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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엄마와 아들의 대결

신주현은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을 비웃고 싶어졌다.그렇지만 송아진이 억지로 이혼을 강요당한 거라면 아직 돌이킬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엄마, 다시는 송아진을 건드리지 마세요.”신주현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그 기세에 배수연은 순간 멈칫했다.어릴 때부터 고집 세고 제멋대로이긴 했지만 신주현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대놓고 거역한 적은 없었다.심지어 지금은 협박에 가까웠다.배수연은 담배를 비벼 끄며 눈에 불쾌한 기운을 띄웠다.“주현아, 사랑 타령에 빠져 제정신을 잃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짓이야. 네가 가진 걸 다 잃고 나면 그제야 깨닫게 될 거야. 지금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니 모르는 거지. 너는 네 수준에 맞는 여자를 아내로 들여야 해. 집안과 집안이 손을 잡아야만 지금 네가 지키고 있는 대표 자리도 안전한 거야. 앞에는 신청아 뒤에는 네 아버지 사생아들이 언제라도 널 위협할 수 있는 판국이야.”“엄마, 저는 그 정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신주현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어릴 적부터 방탕해 보였지만 일만큼은 게을리한 적 없었다.아버지와 집안의 뒷받침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은 신주현은 자신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력을 입증해 냈다.특히 자신이 이끈 신에너지 전기차 프로젝트가 성공한 뒤에야 비로소 대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그만큼 어렵게 얻은 자리이기도 했지만 배수연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아들의 성공보다 지위와 신분의 안정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엄마,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면... 그땐 경찰서에서 뵙게 될 거예요.”신주현의 말에 배수연의 손이 홱 올라갔다.따귀가 날아올 줄 알았으나 결국 허공에서 멈췄다.유일한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까워서 손길을 거두는 순간 배수연의 눈에는 답답한 분노와 실망이 얽혀 있었다.“쓸모없는 것...”배수연은 이를 악물고 중얼거리자 신주현은 오히려 비웃는 듯 고개를 숙였다.“만약 제가 친엄마라는 이유로 엄마를 단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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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배신

밤은 이미 깊어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신청아는 여전히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송아진은 차라리 잠시 쉬라고 말하려던 찰나, 신청아가 갑자기 어깨를 톡 치며 화면을 내밀었다.“아진아, 이거 좀 봐. 네 남편 또 바람피우는 중이야.”그러곤 곧 송아진이 지금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신청아는 사진과 함께 짧은 문장을 직접 입력해 보여주었다.그 사진은 바로 신씨 가문의 집사가 보낸 것이었다.한 줄의 글자를 읽자마자 송아진은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송지연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역시나 사진 속 장면이 짐작을 확인시켜 주었다.송지연은 눈물범벅인 얼굴로 신주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작은 몸을 가득 기댄 채 신주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 울고 있었고 신주현은 그런 송지연을 뿌리치지도 껴안지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다음 사진에서는 송지연이 눈가를 붉힌 채 위로 올려다보며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사진을 몇 장 훑어본 송아진의 얼굴은 더없이 어두워졌다.[미안해. 보여주지 말 걸 그랬나 봐.]신청아가 조심스럽게 글을 보냈다.“괜찮아. 이런 꼴은 이미 수도 없이 봤어. 이제는 무덤덤해.”송아진의 입술은 힘없이 움직였다.[정말 자꾸 보면 무덤덤해지는 거 맞아?]신청아는 쓴웃음을 띠며 다시 물었고 송아진은 고개를 들어 신청아를 바라봤다.“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매일 옆에서 옷 벗고 누워 있으면 결국은 아무렇지 않게 되잖아. 똑같아.”신청아는 잠시 멍해졌고 방금 말이 어쩐지 묘하게 가시가 돋은 듯 느껴졌다.“그래서 넌 신주현을 그렇게 바라본 거야? 잘생겼다는 건 나도 인정해.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런데 난 아직도 네가 걔 얼굴에 휘둘리는 줄 알았는데?”문득, 송아진의 머릿속에 신주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아무리 봐도 아름답고 완벽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껍데기 아래 깃든 영혼은 도무지 함께할 수 없는 존재였다.“얼굴 잘난 게 무슨 소용이야. 그 잘난 얼굴은 나만 보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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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생각보다 깊은 오해

송아진은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지만, 신청아는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신주현, 넌 지금 아진이가 못 듣는다고 함부로 하는 거잖아.”“넌 이제 가도 돼.”신주현은 짧게 내뱉으며 냉정하게 신청아의 말을 잘라냈다.막상 병실에 불려 온 지 겨우 한 시간 남짓인데 다시 나가라는 말에 신청아는 못마땅했다.“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 네 아내가 날 불러놓고 넌 또 내쫓고... 잠시 후에 너희들이 다시 싸우면 또 날 불러낼 거 아니야?”신청아의 그 말은 괜한 불평 같지도 않았다.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싸웠고 싸우지 않을 때는 냉전 중이었다.정리하자면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그런 걱정은 네 일에나 쓰고 회사나 잘 지켜. 괜히 입 잘못 놀리다 일자리까지 잃지 말고.”신주현은 차갑게 말을 던졌고 그 말에 신청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세상에서 정말 신주현만 빼고 누구도 신청아를 이렇게까지 화나게 할 수는 없었다.신주현은 마치 하늘에서 일부러 신청아를 괴롭히라고 내려보낸 사람 같았다.신청아는 속이 끓어올랐지만 얼굴에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네가 조금만 손을 놓으면 내 회사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 그렇게까지 날 적대할 필요는 없잖아. 난 네 아내의 친구이기도 하고 너와 한 핏줄인 누나이기도 해. 제발 살길은 좀 남겨 줘.”신주현은 단 한 번 손끝만 까딱해도 신청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그리고 신주현은 실제로 어떤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누나? 그럼 누나는 왜 아진이 앞에서 내가 송지연하고 잤다고 떠들었어? 누나라면서 왜 내 편을 안 들어주고 날 해치려고 하는 거야?”그 한마디에 신청아는 말문이 막혔고 표정이 굳어졌다.아까 송아진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차라리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신주현이 전부 듣고 있었다니. 끝장이구나.’신청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정말 괜히 입 잘못 놀리다가 발목 잡히는 거지.’신청아는 숨을 몰아쉬며 억지로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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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지울 수 없는 집착

신주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지금 상황은 송아진이 억지로 이혼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 스스로 원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스며든 것이다.그렇다면 아직 돌이킬 방법이 있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신주현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어차피 송아진은 듣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신주현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재킷을 벗은 뒤, 유성에게 전화를 걸어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라 지시했다.그러고는 대수롭지 않게 가족용 침대에 몸을 던졌다.VIP 병실의 가족 침대는 환자 침대보다 오히려 넓었고 신주현은 마치 제 집 안방인 듯 대자로 뻗은 채 휴대폰으로 메일을 처리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본 송아진의 가슴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송아진은 허공을 향해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허망한 화만 쌓였다.“너 아까는 그렇게 화내더니... 이제는 또 아무렇지 않은 거야?”송아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지금의 송아진은 마치 발을 동동 구르는 토끼 같았다.신주현은 고개를 들어 잠시 송아진을 바라보았을 뿐, 다시 시선을 내리고는 묵묵히 화면을 만지작 거렸다.‘날 무시하는 거야.’송아진의 속은 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송아진이 말을 걸어도 신주현은 대꾸조차 하지 않다니 결국 자신이 듣지 못하는 걸 이용해 더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신주현, 당장 나가. 널 보고 싶지도 않고 네 몸에 묻은 송지연 냄새는 더더욱 맡기 싫어.”거칠게 토해내는 송아진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서러움이 뒤섞여 있었고 머릿속에는 조금 전 사진 속 장면이 떠올랐다.송지연은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고 신주현은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던 모습이었다.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들끓듯 불편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순간, 송아진의 휴대폰이 울렸고 보니 신주현이 보낸 메시지였다.[흥분하지 마. 네 귀랑 머리 회복에 좋지 않아.]언뜻 걱정처럼 보이는 말이었지만 송아진에게는 마치 비아냥처럼 들렸다.“이혼하자고 했잖아.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매달려? 게다가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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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드러난 상처

신주현이 바짝 다가서자 송아진은 귓가에 전해진 기묘한 전율이 온몸을 감쌌고 작은 몸짓에도 근육이 긴장하며 미세하게 떨려 왔다.원래부터 강렬한 기운을 풍기는 신주현인데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니 더더욱 숨이 막혔다.송아진은 침을 꿀꺽 삼켰고 이 정도로 가까우면 신주현의 낮은 목소리가 귀에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송아진은 동시에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언제 내가 진심으로 잘 지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겠어... 잘 살기를 포기한 건 언제나 신주현이었다고...’“이미 늦었어.”힘겹게 내뱉은 송아진의 말에도 신주현은 태연히 이불을 덮어 주며 중얼거렸다.“그래. 늦었어. 자, 이제 쉬어.”그 태도에 송아진은 비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스스로 상황을 왜곡하며 자기합리화하는 신주현의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송아진은 굳이 더 따져 봐야 의미 없다고 느꼈다.어차피 며칠 안에 이혼 절차가 끝날 테니까 말이다.로얄 아파트.신청아의 집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평당 금값을 자랑하는 초호화 펜트하우스였다.석사 졸업하던 해, 신명안이 선물한 140평이 넘는 집이었다.혼자 살면서 가끔 남자 친구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누구와도 오래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세수를 마치고 흰색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신청아가 슬리퍼를 끌고 거실로 나왔다.현관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자 곧장 눈을 치켜떴다.“벌써 열두 시 반이야. 개도 자겠다. 너는 잠도 안 와?”무심하게 던진 말은 언제나처럼 이광을 향한 투정 섞인 핀잔이었다.늘 이광에게 성질을 부리던 신청아이지만 오늘은 달랐다.조금 전 신주현에게 날카롭게 협박당한 기억에 신청아는 아직 다리가 풀린 듯 힘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오늘 밤에 청아 씨가 남자 데려오지 않는 걸 확인해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이광의 무표정한 대답에 신청아는 비웃음을 흘렸다.‘결국 그것 때문이었구나.’소파에 몸을 던진 신청아는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뻗었다.얇은 잠옷 사이로 드러난 하얀 다리를 힐끗 본 이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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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새겨진 흉터

이광은 진짜로 피 흘려 본 사내였다.그 사실 때문에 신청아는 그가 혹시 원한이라도 사서 쫓기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솔직히 말하는 게 좋아. 아니면 당장 신주현한테 네 계약 해지를 요구할 거야. 하루 종일 싸움질이나 하고 원수투성이인 사람을 곁에 둘 생각은 없거든.”신청아는 어린 시절 가정사 때문에 언제나 자기 보호를 우선시했고 자기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이광 때문에 불똥이 튀는 건 절대 원하지 않았다.그러자 이광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고 이내 짧게 약속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건 없습니다.”“그럼 이 상처가 왜 생긴 건지 설명해. 못 밝히면 오늘 밤은 잠 못 잘 줄 알아. 그냥 둘 다 서서 밤새우자고.”이광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단단히 말려 들어갔다.그 순간 신청아는 이광의 입술이 창백하다는 걸 알아챘고 그건 몸의 상처와 무관할 리 없었다.입은 늘 날카롭지만 마음이 약한 신청아는 결국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룸으로 향했다.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신청아는 이광의 팔을 낚아채며 말했다.“가자. 병원으로.”“청아 씨 몸이 불편하십니까?”이광의 낮고 또렷한 눈빛이 단단한 얼굴 위에서 반짝였다.신청아는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이광의 팔을 이끌어 집을 나섰다.운전은 신청아가 맡았다.이광이 제지하려 했지만 신청아는 콧방귀를 뀌며 몰아붙였다.“지금 네 꼴을 보니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거든? 나까지 같이 죽을 수는 없어. 죽더라도 최소한 인기 많은 스타랑 죽을 거야. 너랑은 손해라고.”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응급실에는 마침 고지훈이 당직을 서고 있었다.“지훈아, 이 사람 등 좀 봐 줘.”신청아와 고지훈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고 어릴 적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친구였다.고지훈은 신청아와 곁에 선 이광을 한 번 훑어보았다.익숙한 얼굴이었고 분명히 신주현 곁을 지키는 보디가드였다.티셔츠를 젖히자 고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너... 설마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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