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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를 붙잡는 사람: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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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끝내려는 결심

송아진과 신주현은 수없이 서로에게 상처 되는 말을 내뱉어 왔다.하지만 단 한 번도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린 적은 없었다.그런데 오늘 송아진이 던진 한마디는 신주현의 얼굴빛을 확연히 바꿔 놓았다.몇 년을 함께 알아 온 사이였기에 미묘한 변화만으로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송아진은 직감했다.‘이제야 제대로 상처를 받았구나.’그 순간, 송아진은 묘하게도 속이 후련했다.“신주현, 더 독한 말 듣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 네가 이혼하겠다고 고개 끄덕일 때까지 할 거야.”신주현의 눈동자에는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기색이 깔려 있었다.분노를 꾹 눌러 삼키는 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애써 억누르는 듯했다.‘참 잘도 참고 있네.’송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내가 깨끗하게 빈손으로 나가겠다는데도 부족해? 그럼 조건을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뭐든 들어 줄게.”송아진에게 가진 건 거의 없었고 그저 몸 하나와 한 채의 집이 전부였다.그럼에도 송아진은 이를 악물고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내 명의로 된 차들은 다 네게 넘길게. 괜히 네 재산 까먹게 해서 미안해. 다음번에 결혼할 땐 이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신주현은 그 말을 듣자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꼬리가 비틀렸다.“고생이 많네. 벌써 내가 재혼할 걱정까지 해 주다니.”신주현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걱정할 것도 없지. 내가 직접 신부 골라 줄 것도 아니잖아. 송지연만 오래 살아주면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 네 세 번째 결혼식은 누가 와서 축하해 줄까? 결국 집안 망신만 남을 거야.”신주현의 얼굴은 잿빛처럼 굳어졌지만 송아진은 멈추지 않았다.“내 명의로 된 건 집 한 채뿐이야. 엄마가 남겨 주신 유일한 거야.”“그래서?”신주현은 이미 결론을 짐작한 듯 무표정했다.“원래는 차마 집까지 내놓을 수 없었어.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거라서.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 집도 네 앞으로 넘길게.”짧은 순간, 송아진의 코끝이 시큰거렸다.엄마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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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떠나야 할 자리

오늘만큼은 신주현도 끝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사람은 더는 어떤 것도 아끼지 않는 법이다.송아진은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차분한 얼굴을 유지했지만 겨우 회복되던 귀는 다시 윙윙거렸고 귓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혹시라도 청력을 잃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스쳤다.“신주현, 이제는 더 줄 게 없어. 안 되면... 그 집을 팔아서라도 다 줄게.”그 말에 신주현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송아진은 신주현의 분노와 더불어 묘한 무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네가 느끼는 무력감이 뭐가 대수야. 내가 이 세월 동안 견딘 무력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송아진이 말을 이으려던 순간 신주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 집은 네 어머니가 남겨 주신 유일한 거잖아. 그런데 나랑 이혼하려고 그걸 팔겠다니...”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나도 마음 아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네가 이혼을 거부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뿐이야.”“네가 진짜 날 이렇게 보는 거야? 내가 고작 돈 몇십억이 모자라서 이러는 줄 알아?”“몇십억이라도 돈은 돈이야. 워낙 가진 사람이 더 갖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돈이 뭐가 중요해. 너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신주현의 이마에 핏줄이 솟구쳤고 송아진은 귓속의 울림을 무시한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난 빈손으로 나가도 괜찮아. 심지어 엄마가 남겨 주신 집마저 내놓을 테니... 제발 나를 놔줘.”송아진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태도와 단어 하나하나가 신주현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신주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세게 깨물다가 결국 등을 돌려버리더니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가며 쾅 닫아 버렸다.‘이번에는 제발 다시 돌아오지 마.’송아진은 속으로 그렇게 빌었다.예상대로 신주현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 송아진이 퇴원할 때까지도 신주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송아진의 손은 수술을 마친 지 얼마 안 돼 물건을 들기가 쉽지 않았기에 신청아에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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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지켜야 할 선

송아진의 집은 도심 한가운데 금싸라기 땅에 자리한 오래된 아파트였다.세월이 흘러 10여 년은 되었지만 여전히 시세가 높았고 몇 해 전 송아진이 직접 새로 손본 덕분에 집 안은 아직도 반짝였다.그때만 해도 스무 살이 갓 된 송아진은 어릴 적 엄마가 들어 준 보험금이 만기 되자마자 이 집을 고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신청아는 그 돈을 그렇게 쓰는 건 낭비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송아진은 한사코 고집을 꺾지 않았다.이 집은 엄마를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연결고리였기 때문이다.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결정이 오히려 다행이었다.신주현의 집을 떠나야 할 지금 상황에 몸을 기댈 곳이 따로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그동안 일이 많아서 오지 못한지 벌써 보름 남짓했기에 집 안 곳곳에 먼지가 앉아 있었다.고지훈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내가 치울게. 넌 씻고 와. 조금 있다 밥 먹자.”고지훈이 해주는 음식은 늘 맛있었다.그러나 송아진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나중에 가사도우미 불러도 돼. 오빠는 그냥 쉬어.”송아진은 응급실 의사라는 직업은 늘 고되니 드문 휴식까지 자신 때문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고지훈은 단호했다.“신경 쓰지 마. 고아원에 있을 때 네가 아프거나 힘들면 항상 내가 챙겼잖아.”그 말은 틀림없었다.고아원에 들어선 첫해부터 송씨 집안으로 입양되기 전까지 줄곧 고지훈은 곁에서 송아진을 보살폈다.송아진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며 기억을 꺼냈다.“그땐 원장이라는 사람이 여자애들한테 손버릇이 심했잖아. 내가 씻을 때 훔쳐보다가 오빠한테 말했더니 오빠가 가서 두들겨 패줬지. 그때 진짜 무서웠어. 우리 만약에 쫓겨나면 갈 데도 없을 텐데.”그 시절은 송아진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지만 그래도 희미하게 비치는 햇살 같은 순간이 있었다.그 빛은 고지훈 남매와 신청아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특히 남자라는 이유로 고지훈에게는 더 많은 짐이 짊어졌다.송아진은 그래서 진심으로 고지훈의 보살핌에 고마움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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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멀어지는 거리

“지훈 오빠, 날 굳이 기다리지 마. 괜히 오빠 시간만 뺏는 것 같아.”송아진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이혼이 끝나면 난 론든으로 갈 거야. 아마 우리 앞으로는 만나기도 힘들 거야.”고지훈은 피식 웃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드라마 너무 본 거 아니야? 론든까지 비행기 타면 열한 시간 남짓인데 보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지.”송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면서 입을 열었다.“오빠, 난 정말...”송아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지훈이 말을 잘랐다.“됐어. 더 말하지 마. 일단 내가 집 치우고 밥할게. 어차피 네가 곧 론든으로 갈 거라면서? 그럼 마지막으로 같이 밥 한 끼 먹는 게 뭐가 문제야.”그 말에 송아진은 더는 반박할 수 없었다.무엇보다 고지훈이 한 번 마음을 정하면 고집이 워낙 세서 지금 내쫓는다고 순순히 나갈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냥 내버려두자.’송아진은 욕실로 들어가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 거실로 나오자 집 안은 이미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고지훈은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 위에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막상 급하게 사 온 거라 시장만큼 신선하진 않을 거야. 다음에는 내가 시장 가서 갈비 사다가 푹 고아 줄게.”앞치마를 두른 고지훈의 모습은 마치 집안의 가장 같았다.신주현 특유의 방탕한 기운과는 달리 고지훈은 묵직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풍겼다.“그럴 필요 없어. 번거로워.”송아진은 단호히 거절했다. 사실 속마음은 애초에 다음번이 있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신주현을 자극할 만했고 신주현이 알게 된다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뻔했다.송아진은 괜히 신주현을 떠올리며 멍하니 굳었다.‘지금 왜 그 사람을 생각해? 이제는 잊어야지.’“무슨 생각해?”고지훈이 음식을 가지런히 놓으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코끝으로 스며드는 냄새가 송아진의 입맛을 당겼지만 마음은 쉽게 편안해지지 않았다.식탁에 마주 앉으니 묘한 낯섦이 밀려왔다.어릴 적 고아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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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폭풍전야

송아진은 결국 마음을 정리했다.‘신주현도 고지훈도 선택하지 않을 거야.’“이혼했다고 해서 여자가 곧바로 다른 남자를 골라야 하는 법은 없어.”송아진은 잔인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고지훈의 시간을 허비하게 두는 게 더 잔인하다고 생각했다.고지훈의 젓가락을 든 손이 순간 멈췄다.“먹자.”고지훈은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만 짧게 덧붙였다.“시간을 더 줄게.”송아진은 고개를 저었다.“몇 년을 준다고 해도 똑같아.”그제야 고지훈의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흔들렸다.“내 존재가 그렇게 불편해?”늘 자기 기분과 정서를 절제하고 잘 감췄던 고지훈이었는데 이번만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불편해서가 아니야.”송아진은 머리를 움켜쥐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차라리 우리 학과에 괜찮은 후배를 소개해 줄까? 오빠가 빨리 마음을 돌리는 게 좋겠어.”말을 내뱉자마자 송아진은 자기가 너무 가혹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고지훈은 눈가가 붉어졌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선이 흔들렸다.“네가... 다른 여자를... 나한테 소개해 준다고?”송아진은 담담히 고개를 들었다.“오빠도 나이가 있잖아.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제는 아이도 낳아야지. 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오빠가 평생 혼자 살겠어. 더 많은 여자를 만나 보면 내가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고지훈은 쓴웃음을 흘렸다.“내가 평생 여자를 못 만나 본 줄 알아?”송아진은 잠시 멈칫했다.사실 맞는 말이었다. 응급실에서 늘 수많은 여자 의사와 간호사, 환자들을 대하는 사람이니 말이다.“오빠가 너무 고집스러운 거야.”송아진은 도무지 밥이 넘어가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떠났다.그때, 고지훈이 불쑥 송아진을 뒤에서 껴안았다.고지훈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송아진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뭐 하는 거야?”고지훈의 두 팔은 단단히 송아진을 붙들어 숨 쉴 틈조차 없었다.억눌린 고통이 묻어나는 고지훈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귀 옆에서 흘러나왔다.“아진아, 제발 날 미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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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끝내고 싶은 인연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송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사실 송아진 자신도 알았다. 자신의 이런 태도는 좀 심했고 어쩌면 잔인했다.하지만 송아진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빨리 떠나야 했고, 이혼해야 했고,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했다.신주현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송아진과 고지훈이 맞잡은 손에 꽂혀 있었으며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는 고통이 가득 고여 있었다.신주현은 감정이 쉽게 치솟는 사람이었고 특히 송아진을 마주할 때면 더더욱 그랬다.“저 자식이 왜 여기 있어?”시선을 들지도 않은 채, 신주현은 두 사람이 맞잡은 손만 노려보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그 손을 거칠게 떼어낼 것만 같았다.“이 집은 내 집이니 누구를 들이든 내 마음이야.”송아진은 침을 삼키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은 이미 뒤엉켜 있었다.“그러니까... 고지훈은 들여도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지?”신주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그의 눈동자에는 억눌린 고통이 겹겹이 숨어 있었다.송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벌써 몇 번이나 이혼하자고 했잖아. 그런 내가 왜 널 반기겠어?”“잊지 마. 우린 아직 법적으로 부부야.”신주현은 차갑게 송아진의 말을 잘랐다.한 마디 한 마디가 날 선 칼날처럼 송아진의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순간, 송아진의 심장이 움찔했고 고지훈은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이번에는 고지훈이 먼저 말했다.“이혼 신청 중이잖아. 아진이는 당분간 여기서 지낼 거야.”송아진은 그 말이 못마땅했다.고지훈이 마치 틈을 타 끼어드는 것 같아 불편했기 때문이다.송아진은 무엇보다 자신의 이혼 문제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걸 바라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참아야 했다.무엇보다 당장 신주현을 내쫓는 게 중요했으니까.“우리 부부 문제에 네가 뭐라고... 왜 끼어들어?”신주현의 목소리는 분노를 억누르다 못해 거칠게 터져 나왔다.심지어 신주현이 낯설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평소 일할 때 냉철한 모습은 익히 알았지만 송아진에게는 늘 차갑고 무심한 정도였지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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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맞서야 할 순간

송아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구나. 어이가 없네.’아직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는데 신주현은 시계를 흘깃 본 뒤 거의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고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고지훈, 내가 너한테 줄 시간은 3분이야. 안 나가면 널 여기서 당장 끝장낼 방법은 백 가지도 넘어.”그 말이 들린 순간 송아진의 분노가 치밀었다.송아진은 신주현이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가 정말 싫었다.송아진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신주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류층의 삶을 누린 사람이었다.그러니 신주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고지훈 같은 사람을 짓밟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런 차이를 이렇게 대놓고 들이밀며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불쾌했다.마치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이는 절대 좁힐 수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이제 2분 남았어.”신주현은 여전히 모든 상황을 장악한 듯 차갑게 눈썹을 눌러 내리며 말을 이었다.“고지훈, 널 병원에서 몰아낼 수는 없어도 평생 누구 밑에 눌려 살게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야.”송아진은 병원 안의 치열한 경쟁과 파벌 싸움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배경도 없이 자기 힘으로 올라온 고지훈이 그 안에서 버텨온 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신주현이 마음먹는다면 더 잔인한 수를 쓰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송아진은 더는 고지훈이 자신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걸 원치 않았다.“오빠, 먼저 가.”송아진이 단호히 말했다.“아진아...”“내가 가라고 했어.”송아진은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애초에 이렇게 말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기에 한층 더 냉정했다.고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주현을 한 번 노려보고는 의자에 걸쳐 둔 외투를 집어 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현관을 나섰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신주현은 거실로 성큼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꼭 마치 자기 집처럼 말이다.신주현은 두 다리를 벌리고 비스듬히 기대앉아 손짓으로 송아진을 불렀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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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지워지지 않는 흔적

사실 신주현이 화를 잘 내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대답해.”“싫어.”순간 송아진의 팔이 세게 잡아끌리더니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신주현의 품에 안겼다.“뭐 하는 거야!”송아진이 몸부림쳤지만 신주현은 이미 몸을 숙여 그녀를 덮쳤다.“신주현, 당장 놔!”신주현의 붉게 충혈된 눈빛은 통제력을 잃은 짐승 같았고 낮게 갈라진 목소리에는 억눌린 고통이 묻어났다.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휘몰아쳤고 조금 전에 송아진과 고지훈이 손을 맞잡은 장면은 신주현을 완전히 무너뜨렸다.신주현은 송아진이 다른 남자와 엮이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그 자식은 널 만질 수 있는데... 난 안 된다고?”신주현의 목소리는 분노로 터져 나왔다.송아진은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곧 얼굴이 억지로 잡혀 돌아갔다.“날 똑바로 봐.”“지금 억지로 뭐라도 하면 강간이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송아진의 말투는 단호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스멀스멀 스치는 건 죽음 같은 냉기였다.언제부턴가 신주현을 마주할 때마다 온몸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강간?”신주현은 턱을 쥔 손에 더 힘을 줬다.“송아진, 매번 침대 위에서 네가 즐기지 않은 적 있었어? 이제 와서 내가 억지를 부리는 거라고?”“내가 원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억지야.”송아진은 더는 힘겨운 논쟁을 이어갈 기운조차 없었고 매번 신주현과 싸울 때마다 마음도 몸도 지쳐 버렸다.“아니면 네가 지금 원하지 않는 건... 조금 전에 벌써 그런 짓을 해서 그런 거야?”신주현의 질투는 끝이 없었고 송아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이 사람은 상상력도 참 대단하네.’하지만 설명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고 오히려 받아치듯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게 사실이라면 사실이겠지.”신주현은 금방이라도 키스를 퍼부으려 했지만 그 대답을 듣자 갑자기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 멈춰 버렸다.손끝에서 힘이 빠지고 턱을 쥐고 있던 손이 풀렸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소파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쾅!”곧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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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잊어먹은 생일

“왜 그렇게 비밀스럽게 말해? 나랑 신주현은 이제 곧 이혼할 거야. 설령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해도 나랑은 이제 상관없어.”송아진은 자리에 앉아 신청아가 시킨 메뉴를 훑어본 뒤, 자신이 좋아하는 버섯 요리를 하나 더 주문했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바꿨다.“아, 아니네. 다른 세상으로 가면 나랑도 상관있네.”그 말에 신청아가 피식 웃었지만 속으로는 뻔히 알았다. 송아진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신주현이 있었다.사람은 원래 정작에 늪 한가운데 빠져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잠시 후, 종업원이 닭 요리를 두 사람 앞에 놓았다. 송아진이 국자를 들어 국물을 한 모금 마시자 익숙한 향과 맛이 입안을 채웠다.신청아도 국을 들이켜더니 곧장 본론을 꺼냈다.“오늘 신현 그룹의 신재생에너지 팀에서 단합 대회를 갔대. 신주현이 회사 임원들이랑 산속의 리조트로 갔다더라.”“아.”송아진은 담담하게 대꾸했다.“사흘 전에 난 별장에서 짐을 빼고 엄마가 남겨준 집으로 옮겼어. 우리는 사흘 동안 연락도 안 했고...”“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내 예전 비서가 지금 신현 에너지 회사에서 행정직으로 일하거든. 그 친구 말로는 이번 단합 대회에 송지연도 따라갔다더라.”닭국을 떠먹던 송아진의 손이 순간 멈췄고 국자가 허공에서 살짝 떨렸다.신청아는 그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그러나 송아진은 이내 표정을 가라앉히고 아무렇지 않은 듯 국을 다시 들었다.“이혼 얘기가 오가고 있는 판에 송지연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현 그룹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겠지. 곧 내가 안주인이라고 떠벌리면서 과시하려는 거겠지.”신청아가 혀를 찼다.“근데 이상하지 않아? 예전엔 신주현이 그렇게 대놓고 송지연을 내세우진 않았잖아. 그런데 왜 이번에 갑자기 그러는 거지? 너희는 아직 이혼도 정식으로 하지 않았는데...”송아진은 잠시 멈춰 생각하다가 닭고기를 집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글쎄... 아마 나를 자극하려는 거겠지.”“그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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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드러난 진실

송아진은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한숨을 삼켰다.“솔직히 말하면 내가 너라 해도 고지훈이 그렇게 달라붙으면 부담스럽고 힘들 것 같아.”“정말? 네가 이렇게 공감해 주니 다행이네. 괜히 내가 너무 모질게 대했는 줄 알았거든.”송아진은 조금은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사실 마음 없는 사람이 계속 기다리고 매달리면 듣기만 해도 피곤한 일이잖아.”신청아의 말에 송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여러 번 말했는데 지훈 오빠는 도통 들으려 하지 않아.”“그건 그냥 고집이지. 오늘 밤은 우리 집에 와. 남자 없는 네 생일... 우리끼리 보내자.”“그래.”밤이 되자 두 사람은 신청아의 집으로 왔다.신청아는 야식을 준비해 두었고 예전에 함께 보던 드라마를 틀었다.송아진은 오랜만에 편안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좋네... 이렇게 남자한테 시달리지 않는 하루가 제일 좋은 날인 것 같아.’밀크티를 홀짝이며 휴대폰을 넘기던 송아진의 눈에 낯익은 글귀가 들어왔다.송지연이 SNS에 올린 글이었다.[단합 대회에 같이 끼어봤네. 말 나온 김에 나도 작은 주주가 됐어.]사진 속에는 송지연의 셀카가 있었고 옆자리에는 고개를 숙인 신주현의 옆얼굴이 찍혀 있었다.단합대회 자리에 송지연이 앉아 있었고 게다가 신주현 바로 곁이라니... 두 사람은 마치 한없이 친밀한 관계처럼 보였다.송아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지만 글귀를 다시 읽다 보니 묘한 의미가 숨어 있는 듯했다.송아진은 고개를 돌려 신청아에게 물었다.“송지연이 신현 에너지 주식 갖고 있어?”신청아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몰랐어? 원래부터 주주야.”송아진은 순간 굳어졌다.‘그걸 왜 내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지?’신청아도 놀란 표정이었다.“진짜 몰랐구나? 송지연은 신현 에너지의 원래 주주였어.”송아진은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 싸늘해졌고 손에 들린 밀크티조차 맛을 잃었다.그런 모습에 신청아는 미간을 찌푸렸다.“난 네가 아는 줄 알았어. 신현 에너지는 네 남편이 4년 전에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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