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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를 붙잡는 사람: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쓸모없는 존재

신청아는 순간 자기가 잘못한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무심코 흘린 한마디가 송아진에게는 너무 잔인한 진실이 되어 오래도록 상처로 남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신청아가 바란 건 그게 아니었다.그저 송아진이 하루빨리 이 지옥 같은 관계에서 벗어나 마음을 추스르길 바랐을 뿐이었다.신청아는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이해가 안 돼. 결혼할 때도 아무것도 안 받았잖아. 네가 새 회사 지분 조금만 달라 한 게 뭐가 잘못이야?”송아진은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의 텅 빈 손가락을 바라봤다.결혼반지조차 끼워지지 않았던 손가락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곧이어 송아진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때 내가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어. 억지로 매달릴 수도 없는 일이지. 한 번 말했으면 됐어. 두 번, 세 번 말하면 그건 그냥 내가 스스로 창피해지는 거잖아.”신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런데 왜 송지연한텐 그렇게 많은 지분을 줬을까. 너한텐 한 푼도 안 주면서...”“그거야... 송지연을 좋아하니까 그렇겠지...”송아진은 오래전부터 받아들인 잔혹한 진실을 담담히 내뱉었다.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신주현은 정작 자신에게는 한순간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신청아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신주현이 널 좋아했어. 네가 당사자라서 몰랐을지 몰라도 옆에서 보는 난 느낄 수 있었거든. 그런데 지분 문제는... 나도 이해가 안 돼.”송아진은 입꼬리를 씁쓸히 말아 올렸다.“그건 그냥 겉으로 보여주려는 연기였을 거야. 다들 그가 날 아끼는 줄 알게 만들고 실제로는 송지연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지.”신청아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혹시 그 20% 지분에 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무슨 사정? 신주현과 송지연 사이에 숨겨진 건 오직 하나지. 날 죽이려 한다는 거.”송아진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더 묻고 싶던 신청아는 결국 입을 다물었고 더 말하는 건 그저 불을 지피는 일일 뿐이었기 때문이다.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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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생일날의 치욕

편안한 구역을 벗어난다는 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아마 신주현에게 있어서 가장 편안한 구역은 한쪽에서는 송아진과의 결혼 생활을 누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송지연과의 애매한 관계를 동시에 붙잡고 있는 지금의 삶일 것이다.안정감과 자극을 모두 쥔 셈이었다.신청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그때 마침 송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고지훈이네.”송아진은 전화를 신청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역시 네 말대로 오늘은 나를 찾네. 다른 해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올해는 달라. 더는 희망을 주면 안 돼. 네가 대신 전화 받고 난 이미 네 집에서 잠들었다고 전해 줘.”“알았어.”신청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송아진의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다.그날 밤, 송아진은 평소보다 더 뒤척이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꿈속의 열일곱 번째 생일날, 송씨 가문으로 돌아온 뒤 처음 맞이한 생일이었다.평소라면 소인영은 밥상에조차 앉지 못하게 했고 생일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날도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송아진은 평소처럼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학교에서 저택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길을 걷는 게 송아진에게는 거의 일상이었다.송명철의 차는 늘 송지연만 태워 등하교를 시켰고 송아진에게는 탑승할 자격조차 없었다.십여 분쯤 걸었을까.송아진은 길가에 자리한 작은 케이크 가게 앞에 다다랐다.유리창 너머로 진열대에 놓인 케이크들이 보였고 정성껏 장식된 케이크들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평소라면 달콤한 것을 잘 먹지도 못했고 먹을 기회도 없었지만 그날따라 송아진은 이상하게도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아마도 그날이 자신의 열일곱 번째 생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송아진은 가게 앞에 멍하니 서서 한참 동안 창을 들여다보았고 다리에 힘이 빠져 시큰거릴 때까지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그러다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송아진의 콧등이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의 가슴팍에 세게 부딪혔다.“죄송합니다.”송아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예의가 없는 것도 아니라 어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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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생일 케이크

열여섯, 열일곱의 나이는 부끄러움과 자존심이 가장 예민한 시기였다.신주현의 말 한마디는 송아진의 뺨을 단번에 달아오르게 했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모멸감이 몰려왔다.그동안 송아진은 가족의 가난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수치스럽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주현 앞에서는 늘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목구멍이 멘 송아진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비켜 줘. 난 그냥 집에 갈 거야.”“나한테 태도가 왜 그래?”신주현은 긴 팔을 뻗어 송아진의 길을 막아섰다.송아진은 답답함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지만 꾹 참고 용기를 내어 맞섰다.“난 너처럼 한가하지 않아.”그 한마디가 신주현의 신경을 건드렸다.신주현은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그래. 난 너무 한가하지. 네가 어제 바지 흠뻑 젖었을 때 내 외투를 벗어 덮어 준 것도 그렇고 오늘 네가 혼자 생일 보낼까 봐 따라온 것도 다 심심해서 그런 거지.”그 말을 듣는 순간, 송아진은 양심에 찔린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어제 학교에서 신주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송아진은 아마 평생 기억할 굴욕을 당했을 것이다.그런 생각을 한 송아진은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고 이번에는 수치가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송아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괜찮아... 안 와도 돼. 고마워. 넌 그냥 집에 가.”송아진은 신주현의 팔을 밀어내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송아진은 빠르게 걸었고 혹여 신주현이 따라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송아진은 길을 한참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순간, 신주현이 정말로 따라오지 않은 걸 확인하자 이상하게도 또 가슴 한편이 허전해졌다.‘내가 뭘 기대한 거지...’송아진은 쓴웃음을 지었다.신주현이 한 행동은 그저 재벌 집 도련님의 심심풀이였을 뿐이겠는데 송아진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한 게 우스웠다.송아진은 숨을 고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송아진의 옆에 멈춰 섰다.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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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생일 선물

“뭐라고?”“오늘 네 생일이잖아. 뭐 먹고 싶냐고.”“그냥 집에 가서 먹을래.”“집에 가서 뭐 먹는데? 밥그릇 들고 네 방에서 혼자 쪼그려 앉아 생일 밥을 먹는 거야?”신주현의 말은 잔인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소인영은 송아진을 절대 식탁에 앉히지 않았고 늘 밥을 퍼서 자기 방에 들어가 먹게 했다.신주현은 송씨 저택에 몇 번 드나들며 그런 모습을 본 적 없었지만 조금만 물어보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송아진은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렸고 모멸감이 온몸을 파고들면서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그만 좀 고개 숙여. 왜 늘 죄지은 사람처럼 살아? 만약에 날 밥상에 못 앉게 하면 난 밥상째 엎어버렸을 거야. 다 같이 굶으면 되지.”신주현은 오만하게 웃었지만 송아진은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너랑 나는 달라.”송아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뭐가 다르다는 거야? 이제부터 난 네 편이야. 그러니 넌 당당해져도 돼.”“네가... 내 편이라고?”송아진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멍하니 신주현을 바라봤다.신주현은 순간 시선을 피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귀찮네. 난 말 길게 안 해. 대신... 중화요리 먹으러 가자.”“너무 비싼 데는 안 돼.”송아진이 조심스레 대답하자 신주현은 입꼬리를 참지 못하고 말았다.송아진이 신주현의 제안을 결국 승낙한 것이다.하지만 신주현은 겉으로는 일부러 못마땅한 척했다.“참 귀찮네. 내가 돈 낼 건데 네가 왜 걱정이야.”그날 밤, 신주현은 송아진을 유명한 중화요릿집으로 데려갔다.송아진은 배부르게 먹었고 케이크의 달콤함에 마음이 풀렸다.식사가 끝날 무렵, 신주현은 불쑥 작은 상자를 꺼내 송아진 앞에 밀었다.송아진은 면을 먹던 손을 멈추고 상자를 내려다보았다.“나 아직 열일곱인데...”“뭐?”신주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상자를 열었다.“목걸이 하나 선물하는 게 열일곱이랑 무슨 상관이야?”순간 송아진의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순간적으로 그 안에 반지가 들어 있을 거라 착각했다.‘드라마를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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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뜻밖의 고백

송아진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는 멍하니 굳어 버렸다.마치 머릿속이 순간 멈춘 듯, 눈앞의 신주현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주현이가 날 좋아한다고 말한 거야?’송아진은 신주현의 성격상 틀림없이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도대체 나 같은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그런 생각을 하자 송아진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 다시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분명 맛있던 음식이었는데 갑자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신주현은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목소리가 조금 더듬거렸다.“너... 너 지금 헛소리하는 거지?”송아진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신주현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깨달았다.신주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1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신주현이 얼굴을 붉히는 건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송아진은 순간 멍해졌다.“내가 괜한 소리 한 거야. 신경 쓰지 마.”송아진은 너무 제멋대로 굴었다는 생각에 서둘러 해명했다.그러자 신주현은 더욱 얼굴이 붉어진 채 중얼거렸다.“내가 조금 잘해 주니 그게 다 널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그 말에 송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자신의 오해가 신주현을 불쾌하게 했나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송아진은 손을 뻗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벗으려 했다.“뭐 하는 거야?”신주현은 송아진의 행동을 보는 순간, 눈빛이 번쩍이며 목소리가 높아졌다.“누가 벗으라고 했어?”“미안해. 널 불편하게 한 것 같아서. 목걸이는 돌려줄게.”그러자 신주현은 금세 분노를 터뜨리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내가 뭐라 했어? 버리든가 평생 차고 다니라고 했잖아. 벗을 거면 우리 평생 다시 말하지도 말자.”그러자 송아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신주현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행동하는 게 분명했다.그래도 송아진은 더 이상 신주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이 도시에 와서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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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이별

“아니야. 그냥 친구로서 잘하겠다는 거야.”송아진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고 미소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담겨 있었다.그때의 송아진은 신주현이 잠깐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설렜지만 그 마음을 감히 입 밖에 꺼내진 못했다. 혹여나 자기 감정이 신주현에게는 우습고 철없는 존재로 보일까 봐 두려웠다.“좋아. 그럼 우리는 이제 평생 친구야.”신주현은 평생이라는 말을 은근히 눌러 담아 되뇌었다.‘평생이라고?’송아진은 순간 멍해졌다.‘그렇게 긴 시간을... 우리 아직 열일곱인데.’신주현은 언제나 호언장담이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송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좋아. 근데 좋은 친구라면 생일도 평생 같이 보내야 해. 괜찮겠어?”신주현은 일부러 함정을 파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말 속에 뭔가 이상한 뉘앙스가 담겨 있는 듯했지만 송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잠에서 깬 순간, 송아진의 베개는 이미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손은 목에 걸린 목걸이를 꼭 쥔 채 저려오도록 굳어 있었고 마음은 아직 열일곱 살 때의 그 여름날에 머물러 있었다.송아진은 등을 돌리고 몸을 웅크린 채 소리 죽여 울었다. 신청아를 깨울까 봐 숨을 크게 몰아쉬며 겨우겨우 울음을 삼켰다.이 목걸이를 받은 지 아홉 해가 지났다.열일곱 생일날 받은 선물은 지금도 빛을 잃지 않고 눈부셨다.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다고 했으니까.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그 목걸이가 생각보다 훨씬 값비싼 선물이었고 게다가 시중에 잘 나오지도 않는 고급 제품이었다는 것도 후에 알게 되었다.그때는 이미 신주현과 사이가 틀어진 뒤였다.송아진은 솔직히 열일곱의 신주현이 왜 그런 선물을 건넸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왜냐하면 열여섯 살의 신주현이 자신에게 다가온 이유는 오직 송지연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송아진은 휴대폰을 들어 신주현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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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지워진 흔적

송아진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건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신주현의 눈빛이었다. 마치 그 눈빛 속에는 금세라도 분노가 피어날 것 같았다.“도련님, 벌써 돌아오셨어요?”김순자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신주현도 들었을 거라 짐작하며 어색하게 웃었다.신주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송아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옷방을 나가 버렸다.송아진의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지? 단합 대회가 사흘 만에 끝났다는 건가?’신청아의 말로는 일주일은 산에 머무를 거라 했다.송아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고 옷과 몇 가지 소지품을 차례차례 정리하기 시작했다.결혼 생활 2년 동안 새로 산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중 상당수의 장신구는 신주현이 준 것들이었다. 정작 결혼반지나 다이아몬드 반지는 없었지만 일상적인 선물들은 끊임없이 받았다. 그게 송아진에게 더 큰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신주현이 마치 아내에게 줄 마음은 없지만 대신 물질적으로 위로할 수 있다는 식이었으니까 말이다.결국 송아진은 그 모든 장신구를 그대로 두었다. 들고 온 커다란 가방 두 개에는 옷가지와 화장품, 그리고 간단한 생활용품만 담았다.짐을 끌고 거실로 내려오자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신주현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TV 따위는 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꼭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송아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거실을 지나가는 동안 신주현은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송아진은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다.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다.현관 앞까지 짐을 옮기던 송아진은 문득 화실에 두고 온 노트북과 물감을 떠올렸다. 다시 돌아가 챙겨 나오니 손은 가득 차 있었고 가방 두 개까지 더해져 몸이 무거워졌다.그럼에도 거실에 있던 신주현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마치 송아진을 철저히 외면하는 듯했다.송아진 역시 더는 신주현과 얽히지 않기를 바랐다.그러나 신발을 갈아 신고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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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버려진 목걸이

그날, 결국 모든 게 송아진의 집 안에서 드러났다.송아진은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담담히 말했다.“네가 준 장신구랑 보석은 다 옷방에 두고 왔어. 하나도 안 챙겼으니까 이혼하기 전에 직접 확인해. 괜히 나중에 문제 되는 일은 싫으니까.”그 말은 곧장 신주현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얼굴빛이 굳어지고 이마의 핏줄이 불끈 솟았다.신주현이 성큼 다가서자 송아진은 반사적으로 물러났지만 곧 뒤가 벽에 막혔다.빠져나갈 구석 하나 없이 모서리에 갇힌 채 얼어붙은 심장 소리를 자신도 들을 만큼 두근거렸다.“뭐야. 이혼 후에 내가 너한테 보복이라도 할까 봐 두려운 거야?”“그래.”송아진은 턱을 들며 단호히 맞섰다.“이혼하면 곧바로 론든으로 떠날 거야. 여기서 뭔가 빠진 게 있으면 내가 다시 돌아와 처리해야 하잖아. 그게 더 번거로워.”신주현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론든이지 무슨 우주로 가는 것도 아니잖아.”숨을 고르며 이를 악문 송아진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신주현의 강렬한 기운이 송아진의 머리 위에서 내려앉아 온몸을 압박하는 듯했다.송아진은 겨우 용기를 내어 신주현을 올려다봤다.“그럼 이제 확실히 말해. 이혼할 준비는 다 되어 있는 거지?”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끝내 버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너 지금 집 한 채로 날 매수해서 이혼을 받아내겠다는 거야? 웃기지 마.”신주현의 눈빛은 차갑고 경멸로 가득했다.“게다가 내가 그 집을 받으면 넌 고지훈이랑 어디서 살 거지? 고지훈의 집? 같이 대출이나 갚아 주면서?”그 말은 날카로운 손찌검처럼 송아진의 뺨을 때리자 그녀는 얼굴이 굳어지고 피가 가실 만큼 창백해졌다.그러나 송아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어디서 살든 여기보다는 낫겠지. 적어도 이 집에서는 단 하루도 편안하지 않았으니까.”이 집에서의 2년은 매 순간이 괴로움이었다. 그 괴로움은 오직 한 가지... 신주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송아진, 넌 진짜 배부른 줄 모르고 사는구나.”신주현이 거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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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돈과 사랑

송아진의 행동은 신주현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신주현은 마치 자신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숨이 막힐 만큼의 고통이 얼굴에 드리워졌다.신주현은 쓰레기통 속에 처박힌 목걸이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송아진은 신주현이 턱이 부서질 만큼 이를 꽉 다문 걸 똑똑히 보았다.“이건 내 열일곱 살 생일에 네가 나한테 준 선물이야. 그때 네가 말했잖아. 원치 않으면 그냥 버리라고. 지금도 그 말은 유효하겠지?”송아진은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마음속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그때 내뱉은 말은 결국 신주현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신주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그 웃음은 울음보다 더 비참했고 신주현의 잘생긴 얼굴조차 그 순간에는 전혀 빛나지 않았다.“그래. 네가 아직도 내 말을 기억하고 있구나.”“9년 동안 매일 차고 다녔어. 하지만 이제는 필요 없어.”신주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말 한마디에 바로 던져 버리는 거야? 송아진, 넌 정말 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구나.”송아진도 원래라면 맞서고 싶지 않았다.신주현과 부딪힐 때마다 너무 지치고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고 반드시 반박해야 했다.“네가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은 없어. 내가 너를 다시 일어서게 하려고 내 신장 하나를 내줬어. 그렇게라도 너랑 함께하고 싶었고 너랑 결혼까지 했어.”“아무도 널 억지로 신장 내놓으라 한 적 없어. 내가 말렸던 거 기억 안 나?”“말렸다고? 송지연이 건강을 되찾았을 때 네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내가 못 본 줄 알아?”두 사람은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듯 날 선 말만 주고받았다.사랑과 증오, 애착과 상처가 한데 엉겨 붙은 비극 같았다.송아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이아몬드는 시간이 지나면 값도 떨어진대. 9년이나 차고 다닌 거라 이제 별로 값어치도 없을걸. 집을 팔게 되면 그 돈에서 너한테 더 보상해 줄게.”신주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또 돈 얘기군. 넌 나랑 얘기할 때 돈 말고는 할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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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주주와 아내

“그래, 이런 사소한 일은 말할 가치도 없지. 네가 마음에 두지도 않을 거고. 돈 얘기 꺼낸 것도 한 번이면 충분해. 두 번 다시 부끄럽게 말하진 않을 거야.”결혼한 지난 2년 동안 신주현은 차 명의를 죄다 송아진 앞으로 돌려놓았고 값비싼 장신구도 자주 건네주고는 했다. 하지만 송아진은 단 한 번도 먼저 돈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스스로 내준 것과 억지로 달라고 한 것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송아진은 단 한 번 입을 열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거절당해 체면이 구겨진 채 끝났다.“그때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어.”신주현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지며 무언가 설명하려는 듯했지만 송아진은 듣고 싶지 않았다.“너는 뭐든 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겠지. 그만해.”송아진은 숨을 고르며 가방 손잡이를 움켜쥐고는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문득 생각난 듯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어제 신에너지 임원들이랑 산에서 단합 대회 했다면서?”신주현은 부정하지 않았고 잘생긴 얼굴에는 오직 고통의 기색만 어렸다.“근데 말이야. 왜 그 자리에 송지연이 있어야 했을까?”송아진의 눈동자에는 싸늘한 비웃음이 번졌다.이 불편함은 결코 자신만의 몫으로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잠시 스친 신주현의 눈빛에는 미묘한 흔들림이 있었다. 그러나 신주현은 평생 모든 걸 쥐고 살아온 사람이었으니 쉽게 약점을 드러낼 리 없었다.역시나 곧 표정을 회복하면서 입을 열었다.“걔는 주주야. 내가 막을 권한은 없어.”그 말에 송아진은 코웃음을 쳤다.“넌 대표잖아. 누구를 부를지는 네가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잖아. 신주현, 난 제일 싫은 게 네가 이렇게 가식 떠는 거야.”송아진은 결국 신주현의 마지막 남은 가면을 벗겨 버렸고 그녀는 숨이 뜨겁게 치밀었고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송지연이 갖고 있는 지분이 20퍼센트 맞지?”신주현의 미간이 스치듯 좁혀지며 묘한 빛이 번졌다.“걔가 뭘 한 게 있다고?”송아진은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일까 봐 원래 이런 질문을 꺼낼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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