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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를 붙잡는 사람: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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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불편한 감정

이광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마침 간호사가 들어와 링거를 꽂아 주었다.그 모습을 본 신청아는 문득 장난기가 스쳤다.평소라면 어디를 가든 감시하듯 따라붙고 간섭하기 바쁜 이광이었기에 지금처럼 꼼짝 못 하는 틈에 약간의 앙갚음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신청아는 매만진 손톱을 들여다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아까 인턴이 나보고 술집 가자고 불렀거든? 네가 이렇게 묶여 있으니 더 이상 날 못 막겠지. 다녀올 테니 넌 얌전히 누워 있어. 내가 돌아왔을 때 네가 누워있지 않고 어슬렁거리면 가만 안 둔다?”신청아의 말만 들어도 허무맹랑했고 한밤중에 인턴이 불러낼 리 없다는 걸 본인도 잘 알았다.그저 이광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그 말이 제대로 귀에 박혔는지 이광은 손을 뻗어 링거를 뽑으려 했다.“뭐 하는 거야?”신청아는 단순히 놀려 주려던 거였는데 이광이 정말 목숨이라도 내던질 기세라 순간 당황했다.“가지 마십시오.”탁하고 떨어지는 이광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흐려진 기운이 섞여 있었다.잠깐 눈이 마주친 순간, 신청아는 알 수 없는 열기에 눈길을 피했다.가슴이 조금 불편하게 요동쳤지만 신청아는 곧바로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뭐야? 네가 가지 말라면 내가 안 갈 것 같아?”평소에도 이광은 신청아를 많이 제지하긴 했지만 이렇게 거친 어투를 쓴 적은 없었다.이광은 언제나 절제했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분명 달랐다.“죄송합니다. 청아 씨.”낮게 흘러나온 사과에 신청아는 코웃음을 쳤다.“내가 아직은 네 상사야. 다른 사람이 보면 혹시 내가 네 여자 친구라도 된 줄 알겠어? 네가 말을 이쁘게 하면 안 가 줄 수도 있지. 계속 이런 태도면... 오늘 밤 집에 안 들어가고 그 인턴의 집에서 잘 수도 있겠네?”말끝이 가볍게 휘어지자 이광의 억눌렀던 기운이 다시 치밀었다.“그 남자는 분명히 꿍꿍이가 있습니다. 거길 가면 위험합니다.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어요.”“내가 오히려 인턴을 노릴 수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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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과분한 관심

“청아 씨, 제발 가지 마세요. 그 남자는 너무 위험합니다. 정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 아닙니까.”이광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자 그 말은 신청아의 마음을 묘하게 간질였다.신청아는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가더니 살짝 몸을 기울였다.“모르는 사람이라... 넌 참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네? 그럼 다음에는 네가 나랑 술 마셔 줄래?”“좋습니다.”이광의 단호한 대답에 신청아는 바로 덧붙였다.“근데 난... 술만 마시진 않아. 보통은 같이 자야 끝나거든. 그건 할 수 있어?”입버릇처럼 툭 내뱉은 농담이었지만 이광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놀란 기색과 함께 불편한 기운이 번지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안 됩니다.”신청아는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못 한다고? 그럼 난 그냥 다른 남자한테 가지 뭐. 재미없네.”“안 됩니다.”이광의 목소리가 다시 똑 떨어졌고 그제야 신청아의 눈매가 매섭게 좁아졌다.“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찬바람처럼 날카로운 신청아의 눈빛이 이광을 꿰뚫었다.“네 일이나 제대로 해. 선 넘는 간섭은 필요 없어.”가방을 움켜쥐고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며 신청아는 혀를 찼다.“재수 없이 하루에 병원을 두 번씩이나 오네.”옆 병실.송아진은 팔에 맞은 마취가 풀리며 밀려온 통증 때문에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혹여 숨소리라도 새어 나가 신주현을 깨우기라도 할까 봐 애써 소리를 삼켰다.신주현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그와 단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희미하게 졸음에 빠졌다가 잠에서 깨는 걸 반복하다가 신청아는 결국 화장실에 가야겠다 싶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침대 옆 슬리퍼를 신고 두 걸음쯤 옮기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교통사고의 충격에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건 만두 몇 개뿐이었고 체력도 기운도 바닥이었다.간신히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찰나, 허공이 스르르 흔들리며 몸이 불쑥 들어 올려졌다.“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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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이해할 수 없는 태도

송아진은 화장실 안에 한참이나 머물다 겨우 걸어 나왔다.이상하게도 가슴이 불편하게 뛰었고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이혼 이야기를 꺼낸 건 자신이었고 신주현의 성격상 그건 가장 건드려선 안 될 금기 같은 주제였다.늘 반대해 오던 이혼이었으니 분노할 줄 알았는데 조금 전 신주현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화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송아진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멍하니 서 있던 순간, 화장실 문이 열리며 신주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신주현은 마치 재촉이라도 하듯 송아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언제까지 앉아 있을 거야? 더 늦으면 응급차 부르겠어.”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소리는 아닐 거라 직감한 송아진은 미간을 좁혔다.“뒤돌아 있어. 내가 혼자 일어날 테니까.”하지만 신주현은 가만히 고개를 젓더니 곧장 몸을 숙여 송아진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그리고 자연스럽게 병원복 허리끈까지 매어 주었다.거침없고 매끄러운 동작이었다.송아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우리는 이제 곧 이혼할 사이인데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송아진의 쏘아붙이는 말투에도 신주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굳은 표정으로 받아냈다.이제는 익숙한 말투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모습이었다.예전의 송아진은 절대 이러지 않았다.늘 조용하고 순한 모습이었다.‘생각해 보니 예전의 송아진은 다 연기였던 거야?’송아진을 오래 알았다는 사실이 허망하게 느껴졌다.“이혼을 앞둔 부부라... 새로운 말 만들어 내는 건 잘하네.”무슨 뜻인지 모른 채 송아진은 괜히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돌렸다.그런 반응에도 신주현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송아진을 침대에 눕히려 했다.“교통사고가 나한테 남긴 충격은 너무 커.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이혼해야 해.”송아진은 날 선 눈빛으로 입 모양을 크게 그리며 말하자 신주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네 사정은 다 이해해.”느린 입술 움직임을 읽자 송아진의 눈썹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조금 전까지는 화내면서 내 이혼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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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잊지 못할 아침

송아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씁쓸하게 웃었다.“뭐가 부러운지 모르겠네요.”‘대체 뭐가 부럽단 말이야. 신장을 뺏길 뻔한 게 부러워?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같은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워? 아니면 납치당하고 교통사고까지 겪은 게 부럽다는 거야?’진짜 부럽다고 할 수 있는 건 오직 신주현의 외모뿐이었다.부정할 수 없이 신주현은 정말 잘생겼다.마침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병실 문이 열리며 신주현이 들어섰고 손에는 따끈한 만둣국이 들려 있었다.“신 대표님은 참 다정하시네요. 새벽부터 부인님의 아침까지 챙겨주시고 말이죠.”간호사가 농담 섞인 말로 웃자 신주현은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까지 번졌다.‘칭찬 한마디에도 저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다니.’송아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정말 뻔뻔하네. 그동안 단 한 번도 아침 챙겨준 적 없던 사람이 이혼 서류를 보고 나서야 연기처럼 이러는 거야? 너무 늦었어.”신주현은 조용히 만둣국을 내밀자 따끈한 향이 병실 가득 퍼졌다.송아진은 어제 교통사고와 수술 탓에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오늘은 달랐다.지금의 송아진은 많이 허기진 상태였다.신주현은 고개를 들어 송아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이 두 해 동안은 아침 챙기지 못했지. 하지만 네가 고등학교 다니던 3년 동안, 네 아침밥은 내가 매일 챙겨줬잖아.”송아진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사실이었다.그 시절, 소인영의 학대 때문에 송아진은 집에서 아침을 먹을 수 없었다.겉으로는 어린 나이에 다이어트하라는 핑계를 댔지만 실상은 송아진을 굶기는 일이었다.피골이 맞닿아 있던 송아진인데 무슨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인가.그때부터 신주현은 늘 김순자에게 부탁해 아침을 따로 챙겼다.어떤 날은 만두, 어떤 날은 찐빵, 또 어떤 날은 따끈한 호떡 등 별의별 음식이 다 있었다.소년 시절 신주현의 호의는 단순하면서도 따뜻했다.그 덕분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했던 송아진은 그때 처음 누군가의 온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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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정신과 예약

송아진은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해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기억력은 참 좋네. 그 집은 내가 너랑도 같이 가서 먹었던 곳이잖아. 추억이라고 해봤자 너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 결국 난 네 기억 속에 있지도 않았다는 거잖아.”송아진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신주현은 잠시 멈추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내가 잊은 거네. 내 잘못이야. 다음에는 그 집 걸로 사 올게.”“다음은 없어. 이혼은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아. 서둘러 서명해.”단호히 잘라 말하면서도 송아진은 신주현의 손에 떠밀리듯 만두를 또 한 입 삼켰다.배고픔 앞에서는 누구도 굶을 수 없는 법이었다.“내가 떠먹여 주는 만두를 먹으면서도 네 입에서는 이혼 타령이 끊이지 않네?”“네가 억지로 먹인 거잖아.”송아진의 반박은 아이 싸움 같은 허술한 말로 흘러나왔고 마치 초등학생이 티격태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답답함에 미간을 찌푸리며 송아진은 낮게 내뱉었다.“이혼 서류 전자파일도 보냈으니까 네 변호사한테 빨리 넘겨. 맨날 딴짓만 하지 말고.”긴 말끝에 신주현이 귀에 담은 건 마지막 한 마디뿐이었다.‘역시 아직도 송지연과 얽힌 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거네.’“교통사고 건은 경찰도 조사 중이고 내 사람들도 알아보고 있어. 다만 아직 송지연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어. 증거 없이는 누구도 단정 못 해. 기다릴 수밖에 없어.”송아진은 대충 눈치로 알아듣곤 코웃음을 터뜨렸다.“기다려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우리는 곧 이혼할 거니까 내 일에 네가 끼어들지 마.”“이혼 얘기 이제 지겹게 들었어. 이러다가 귀에 굳은살 생기겠어.”“그럼 빨리 서명해.”“꿈 깨.”“너!”화를 참지 못한 송아진은 만두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며칠째 송아진은 신주현이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늘 회사 일로 바쁘다며 집에도 드물게 들어오던 신주현이었지만 요 며칠은 이상하게 달라졌다.하루 종일 병원에 붙어 있거나 병원으로 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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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의심과 확신

해 질 무렵, 신주현은 어김없이 병실에 나타났다.손에는 따끈한 삼계탕이 들려 있었고 신주현은 언제나처럼 직접 떠먹여 주었고 송아진도 순순히 받아먹었다.귀가 조금 나아져 낮은 소리만 아니면 대체로 들을 수 있었기에 둘 사이는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했다.“신주현.”송아진이 국물을 한 모금 삼킨 뒤 입을 열었다.“응.”신주현은 이미 집에 다녀온 듯 정장을 벗어 던지고 검은색 티셔츠 차림에 흐트러진 머리로 서 있었다.이마 앞머리가 내려와 평소의 까칠하고 위압적인 재벌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쩐지 고등학생 시절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네가 날 그렇게 빤히 보는 건 내가 잘생겨서 그러는 거야?”신주현은 능청스럽게 받아치며 송아진의 입에 닭고기를 집어넣었다.‘정말...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자아도취에 빠져 있네.’송아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아니야. 사실은... 할 말이 있어.”신주현은 국물을 한 숟가락 삼키며 무심한 듯 대꾸했다.“또 이혼 얘기면 집어치워.”“이혼 얘기는 아니야.”아니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신주현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갔다.송아진은 다시 한번 확신했다.‘정신과 예약을 잡은 게 정말 잘한 선택이야. 요즘 신주현의 상태가 심상치 않거든.’송아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게...”“근데 방금 뭐라고 불렀어?”“응?”“또 내 이름을 딱딱하게 부르거나 신 대표님 같은 소리 하면 대화 끝이야.”송아진은 화가 치밀었지만 정신병자 취급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굳이 맞받아치지 않았다.“너도 내 이름만 줄곧 불렀잖아.”“앞으로는 안 그럴게. 그러면 널 그냥... 여보라고 부를게.”신주현은 다시 국물을 떠 입가에 가져갔고 송아진은 입술을 세게 깨물며 용기를 냈다.“내가... 내일 오전 아홉 시 반에 예약을 잡아 놨어. 여기 병원 정신과. 같이 가자.”그 말에 숟가락을 들고 있던 신주현의 손이 순간 멈췄다.신주현의 눈빛이 똑바로 송아진에게 꽂혔다.“내가 아프다고? 그게... 지금 네가 날 걱정하는 거야?”신주현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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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끝나지 않는 말다툼

송아진의 말은 자신만만했지만 그 한마디가 신주현의 표정을 단숨에 굳게 만들었다.어릴 적부터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온 신주현은 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신주현이 화가 나면 모두가 움츠렸고 기분이 좋으면 모두가 따라서 웃었다.그만큼 표정 하나하나가 곧 신주현의 기분을 대변했다.송아진은 단번에 신주현의 눈빛 속 분노를 읽어냈다.정신병자 취급을 받은 사람이 달가울 리 없으니 이해는 갔다.그래도 차마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어서 송아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인정하기 싫은 건 알지만 병은 숨긴다고 나아지지 않아. 검사는 꼭 받아야 해.”그러나 신주현은 그 말은 전혀 들은 것 같지 않았다.귀에 들어온 건 오직 조금 전 송아진이 내뱉은 이혼이라는 말뿐이었다.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진 채 숨을 고르던 신주현은 결국 말을 뱉었다.“그래서 내가 너한테 잘해 주니까 네 눈에는 내가 정신병자처럼 보였던 거야?”송아진은 순간 말이 막혔다.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정작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난 그냥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내가 이혼 얘기를 꺼냈는데 처음에는 화내더니 금세 웃으면서 잘해 줬잖아. 보통 사람이면 상처받고 무너지는 게 정상 아니야?”“그걸 알고도 왜 이혼하겠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 힘들어할 걸 알면서도 말이야.”그 말이 나올 때까지도 신주현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낮아지고 부드러워졌다.송아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용히 답했다.“너랑 계속 사는 건 나한테 지옥이야.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그 말은 신주현에게 치명타였다.신주현은 굳게 다문 입술 끝이 떨렸고 눈가마저 젖어 들었다.“내가 아픈 게 아니라 널 보니까 네가 치료가 필요해 보여.”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차갑게 흩날렸고 신주현은 몸을 돌려버렸다.신현주는 성큼성큼 멀어졌고 송아진의 작은 걸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었다.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은 탓에 숨이 가빠졌지만 끝내 뛰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좋아, 네 말대로 네가 아픈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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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끊이지 않는 불신

“납치 사건이 있었을 때도 똑같이 말했잖아. 다시는 없을 거라고... 그런데 결과가 뭐였어? 바로 교통사고였지.”송아진은 더는 신주현을 믿을 수 없었다.“이번은 달라.”신주현의 미간이 깊이 찌푸려졌다.사실 이번 사고의 배후는 송지연이 아니라 배수연이었고 송지연 쪽은 이제 신주현도 두둔할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배수연은 친어머니였으니 설령 진실을 알았더라도 신주현은 자기 손으로 경찰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신주현이 할 수 있는 건 단지 강하게 경고하는 것뿐이었고 또 이미 그렇게 했다.하지만 이 사정을 송아진에게 밝힐 수는 없었다.송아진은 이유도 모르는 채 차갑게 비웃었다.“다르다고? 이번에도 결국 송지연 때문이잖아? 넌 계속 걔를 감싸고 보호하면서 송지연은 내 신장을 노리고 날 죽이려 드는데 넌 모른 척했지. 송지연의 목숨만 목숨이고 내 목숨은 목숨이 아니야?”송아진의 목소리는 거의 울다시피 떨렸다.송아진은 눈가를 훔치고 고개를 들었다.귀가 조금 회복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이명이 심했고 머리도 팔도 아팠다.하지만 가장 아픈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그 일은 송지연과 상관없어.”신주현의 짧은 대답에 송아진은 미치도록 답답해졌다.신주현의 그 말은 곧 송지연을 끝까지 감싸겠다는 증거처럼 들렸다.송아진은 눈물이 차올라 시야를 흐렸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난 정말 송지연이 부러워. 어릴 때부터 무슨 잘못을 해도 부모도 그렇고 너도 감싸 줬잖아. 우리의 만남조차 송지연을 즐겁게 해 주려다 시작된 거였지...”그 생각이 떠오르자 송아진은 가슴이 쥐어뜯기우는 것처럼 아팠다.“차라리 내가 정신과에 가야 할 것 같아. 네 문제보다 내 문제가 더 심각한가 봐.”송아진은 씁쓸하게 중얼거리고 병실로 돌아가 버렸고 더는 신주현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송아진은 퇴원하면 바로 변호사를 찾아 바로 소송을 걸 작정이었다.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반드시 이혼해야 했다.신주현도 송아진의 병실로 돌아가지 않았고 대신 옆 병실, 이광의 VIP 병실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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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엇갈린 마음

신주현은 눈썹을 지그시 눌러 내리며 미묘한 기색을 읽어냈다.신청아가 괜히 사람을 챙기는 성격은 아니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나 일정한 차가운 기운이 깔려 있었다.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차가움이었다. 그것은 결국 안전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길러진 본능적인 방어였다.신주현은 문득 송아진이 떠올랐다.그 생각이 이어지자 손끝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성가시게 비벼 끄며 불쾌한 마음을 털어냈다.곁에 있던 이광은 곧장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신청아의 굳은 표정을 보자 바로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청아 씨.”신청아의 눈매가 더욱 매서워졌다.“네 몸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겠다면 이 죽도 필요 없어. 차라리 주현한테 줘야겠어.”그런 말투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이광뿐이었다.신주현은 오히려 그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을 포착했고 괜히 장난기가 발동했다.신주현은 태연하게 죽을 받았다.“살다 보니 누나 손맛을 다 보네. 직접 만든 거야?”“그래. 그러니까 제대로 먹어 봐.”신청아의 말은 신주현을 향한 듯했지만 시선은 곁에 선 이광을 눈역겨보았다. 불쾌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이광의 얼굴은 오히려 더 굳어졌고 그런 침묵은 깊은 고통처럼 보였다.신주현은 조금도 연민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자초한 일이라고 여기며 병실을 나섰다.“덕분에 잘 먹을게.”남겨진 공간에는 신청아와 이광만 남았고 신청아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졌다.“환자인 주제에 네가 피우고 싶어서 핀 것도 아니고 신주현이 시켰다고 말까지 한다니... 결국 넌 지금도 신주현의 심부름꾼이지?”이광의 뇌리에는 아까 신주현이 남긴 경고가 스쳤고 그는 손바닥을 움켜쥐며 억눌린 목소리로 답했다.“맞습니다. 저는 신 대표님 일을 대신하는 직원일 뿐입니다.”이광의 그 한마디에 신청아의 얼굴빛은 더욱 싸늘해졌다.평소라면 신청아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던 이광이 이제는 정면으로 거슬렀기 때문이다.“좋아. 그렇다면 평생 신주현의 개로 살아.”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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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끝나지 않는 싸움

“내가 무슨 색 속옷을 입는지까지 연구할 필요는 없잖아?”송아진이 얼굴을 붉히며 따지자 신주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무심히 말했다.“네가 화낼 때면 정말 털이 곤두선 고슴도치 같아.”송아진은 홱 손을 뻗어 속옷을 빼앗았다.이상하게도 손에 쥔 그것이 갑자기 뜨겁게 느껴졌다.“네가 오히려 더 그래.”귀 끝까지 붉어진 송아진은 이를 악물며 되받아쳤다.“그렇게 화났으면 왜 아직도 내 병실에 있어?”“네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아직 있는 거야.”신주현은 태연히 밥통을 꺼내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내가 무슨 계략을 썼다고 그러는 거야?”한숨을 쉬던 송아진은 쓴웃음을 흘렸고 신주현은 느릿하게 죽을 뜨며 말했다.“넌 말과 행동으로 날 자꾸 화나게 해서 결국 이혼을 유도하려는 거잖아. 하지만 난 속지 않아.”송아진은 순간 말을 잃었다.“왜 늘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거야? 난 너를 유도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혼하고 싶다고.”“알아.”“안다고?”송아진은 또다시 허공에 주먹질하는 듯한 허무감이 몰려왔다.“그래도 밥은 먹어야지.”신주현은 그렇게 말하며 죽 한 그릇을 떠 송아진 앞에 내밀었다.“내가 직접 끓인 거야. 맛 좀 봐.”송아진은 그릇을 노려보다가 비웃음을 터뜨렸다.“내 평생 네가 요리하는 꼴은 처음 봐. 네가 음식을 할 줄 안다면 정말 여름에 눈이라도 오겠다. 송지연이 끓여서 네 손에 쥐여 준 거 아냐?”신주현은 묘하게 기분이 풀린 듯 죽을 맛있게 떠먹기 시작했다.“냄새가 좋네. 네가 좋아하는 맛이야.”송아진은 입도 대지 않고 침대에 몸을 누이고 아이패드를 켜서 학교 일을 정리했다.송아진이 먹지 않자 신주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입 벌려.”“신 대표님은 눈치가 없는 것도 병이야. 이렇게까지 하는 게 안 힘들어?”“안 힘들어.”신주현은 태연히 숟가락을 내밀었고 그가 집요할수록 송아진은 더 반감이 치밀었다.이번만큼은 정말 이혼을 결심했기에 더 분노가 쌓였다.결국 송아진은 손으로 숟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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