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고요했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날 선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남겼다.신주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아진에게 그림을 부탁한 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송아진의 입에서 직접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고지훈이 알 방법은 없었다.그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자 신주현의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그는 고지훈의 옷깃을 확 놓아버리며 짧게 내뱉었다.“꺼져.”현관문이 쾅 닫히자 거실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신주현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술에 취해 끙끙대는 송아진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곧 시선을 돌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닫히려는 문 앞에서 그는 갑자기 손으로 문을 잡아 막았다. 답답하게 숨을 몰아쉬던 신주현은 다시 거실로 발길을 돌려, 소파에 늘어진 송아진을 거칠게 안아 올렸다.송아진은 희미하게 의식이 깨어나는 듯 몸을 움직였다. 낯설지 않은 체취가 스며든 이불속에 묻히자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맑고 따뜻한 햇살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송아진은 술기운에 흐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신주현, 내 이불 뺏지 마.”그 말에 신주현은 한순간 허탈하게 웃었다. 주먹을 휘둘러도 맞닿는 건 솜뭉치 같은 공허함, 그런 무력감이 몰려왔다.신주현은 송아진을 안은 채 침실로 들어가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놓아주지 않고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어디 가?”반쯤 뜬 눈동자에 술기운이 가득했다. 신주현은 억눌린 숨을 내쉬며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허공만 휘저었을 뿐, 그의 손끝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네가 이혼하자며. 난 옆방 가서 잘 거야.”“그래, 그럼 가.”송아진은 취한 얼굴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마음은 흐릿해도 이혼하겠다는 결심만큼은 선명했다.그 말에 신주현의 심장이 묘하게 쿵 내려앉았다. 그는 몸을 숙여 송아진의 붉어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짙은 불만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아진아, 네가 다른 남자랑 술 마시는 거, 난 싫어.”“내가 누구랑 마셨는데?”송아진이 흘리듯 중얼거렸다.“아, 맞다. 나 신청아랑 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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