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나를 붙잡는 사람: Bab 21 - Bab 30

100 Bab

제21화 케이크의 진실

“가식으로 두 마디 건네고 잘난 척하면서 물러날 구실까지 만들어주면... 내가 그걸 고맙게 받아들여야 해?”송아진의 눈가가 붉게 물들며 날 선 말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런 불평등한 시선이 너무 싫었다. 적어도 신주현이 송지연을 대할 때는 절대 그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는 아니었으니까.“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신주현의 목소리에는 이미 짜증이 묻어 있었다.“달래줘도 싫고 감싸줘도 싫고... 결국 고지훈이 널 대하던 방식이어야만 만족하겠다는 거지?”그의 눈빛은 벌써 붉게 물들어 있었고 분노가 꾹 눌린 채 터지기 직전처럼 보였다. 그때 송아진의 시선이 옆에 놓인 그림 한 장에 머물렀다. 고지훈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그림이었다. 신주현은 그것이 자신과 고지훈을 함께 그린 거라 오해하고 있었다. 해명할 수도 있었지만 송아진은 일부러 침묵했다.‘왜 늘 나만 송지연 때문에 속을 끓여야 하지? 이번에는 신주현도 고지훈 때문에 괴로워하면 좋겠어. 아무 일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편해야, 그제야 조금은 공평해지는 거잖아.’송아진은 고개를 돌려 붓을 들어 색을 다시 섞었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말투만큼은 차가웠다.“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날 달래고 감싸는 척하지 말고 먼저 네 친구들부터 내 이름이나 제대로 부르게 해. 그다음에 얘기하자.”신주현은 그녀가 ‘말라깽이’라는 별명 때문에 화가 난 거라 짐작했다.그렇다면 해결은 간단했다.방금 전 욱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불현듯 죄책감이 스쳤다. 그는 송아진을 안으며 낮게 말했다.“미안해. 다음에 누가 또 그런 말 하면 내가 직접 다리 부러뜨려 버릴 거야.”뜨겁게 밀려드는 체온에 송아진은 더 숨이 막혔다.“너도 예전에는 그렇게 불렀잖아.”입술을 꾹 깨물며 내뱉은 말에 쓴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신주현은 팔에 힘을 더 주며 그녀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그럼 네가 내 다리라도 부러뜨려. 속이라도 풀리게. 응?”예전 같았으면 이쯤에서 풀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날 이후, 무너진 관계는 아무리 달래도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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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내 집에서 나가

송아진의 말끝에는 묘하게 떠보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신주현은 그 뉘앙스를 눈치챘지만 대꾸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전율이 귀끝에서 온몸으로 퍼져 갔지만 송아진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신주현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고 맑으면서도 어딘가 건들거리는 기운이 섞여 있었다.“그때 널 보니까 불쌍하더라. 여린 데다 마른 체구에 맞아도 대꾸 한마디 못 하고.”송아진은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신주현은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우리 어릴 때 네 집에서 만난 적도 있었잖아. 그때는 네 엄마가 살아 계셨고 넌 공주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있었지. 9년 만에 다시 만나니까 궁금하더라. 어떻게 컸을지, 어떻게 지냈을지. 네가 단 걸 좋아하는 거 알아서 케이크도 챙겨 간 거고.”“거짓말.”송아진은 이를 악물 듯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신주현은 잠시 멈추더니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왜 내가 거짓말쟁이야? 맹세컨대 다 사실이야.”“그때는 이미 송지연이랑 약혼한 사이였잖아. 넌 나한테 다가오면 안 됐어.”송아진은 끝내 내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신주현이 스스로 인정할 리도 없었다.그가 아직 자신을 임신시키지도 못했고 아이의 신장을 가지지도 못했으니까.송아진은 언젠가 떠날 순간이 오면 그 모든 걸 폭로하리라 마음먹었다.“그 약혼, 내가 원해서 한 거 아니야. 열몇 살 때 일방적으로 정해진 약속이었어. 나, 반항도 했다고.”‘원하지 않았다고?’그럼 왜 송지연을 기쁘게 하려고 자신을 가지고 놀았을까. 왜 송지연이 병에 걸리자 무너져 내렸을까. 왜 또다시 송지연을 살리겠다고 자기 아이의 신장을 탐냈을까.송아진은 비웃듯 중얼거렸다.“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말 잘한다, 결국은 위선적인 거짓말쟁이잖아.”뜬금없는 비난에 신주현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이렇게 화내니까 좋냐? 날 욕해서 속 풀린다면 더 욕해도 돼.”“미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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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마지막 기회

송아진은 언제나 남들 앞에서는 조용하고 순한 토끼 같았다. 다투는 일도 없고 욕심을 드러내지도 않았다.“허, 토끼도 물 줄은 알았네.”서이안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낮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그녀의 분노를 장난으로 여기는 태도였다.그 무심한 반응이 오히려 송아진의 속을 더 옥죄었다.송지연은 억울한 척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기울였다.“언니 왜 이렇게 사나워? 전에는 날 경찰에 넘기더니 이제는 집에서 쫓아내려고까지 해? 주현 오빠가 그거 허락이라도 했어?”그 옆에서 송지연의 친구가 입꼬리를 올리며 거들었다.“허락 안 했을 리가 있나. 다 알잖아. 어릴 때부터 지연이만 챙기고 누구보다 아껴준 사람이 주현 오빠였다는 거.”송지연은 자신만만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언니 나 여기 들어온 거 주현 오빠 허락받고 온 거야. 그렇지, 주현 오빠?”그 순간 화실 문이 열리며 신주현이 모습을 드러냈다.그가 송지연을 보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송아진은 단번에 눈치챘다.“왜... 네가 허락했어?”사람들 앞에서 굳이 얼굴을 붉히고 싶진 않았지만 오래 눌러왔던 감정은 결국 터져 나왔다.신주현은 송지연에게 짧게 시선을 주고는 곧장 송아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다들 계속 놀아. 방으로 가자.”그는 태연하게 손을 뻗어 송아진을 이끌려 했다.그러나 송아진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그만 나가라고 했어. 다시 말 안 할 테니까 알아들어.”송아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그러자 신주현의 미간이 좁혀졌고 표정은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어갔다.송아진은 그 잠깐의 머뭇거림조차 원치 않았다. 그의 망설임은 곧 송아진의 편을 들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비록 이혼을 결심한 사이라도 이런 수치스러운 자리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송지연이 안 나가면 내가 나갈 거야.”말을 끝내자 송아진은 그대로 현관을 나섰다. 잠옷 차림 그대로 문을 밀치고 나가자 신주현이 급히 뒤를 따르려 했지만 송지연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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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마지막 경고

다른 남자가 물었다.“지연아, 송아진이 신주현한테 직접 물으면 어쩌려고? 처음 다가간 게 너랑 한 내기 때문이었냐고?”송지연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그럴 리 없어. 둘이 정말 뭐든 숨김없이 털어놓는 사이라면 벌써 아이까지 낳았겠지.”송지연은 늘 한 발 떨어져 지켜본 터라 오히려 더 또렷했다. 문밖을 내다보다가 스포츠카가 포효하며 사라지는 소리를 듣자 속이 시원해졌다.‘송아진, 내가 못 누린 건 너도 못 누리게 할 거야.’...신주현이 뛰쳐나왔을 때는 이미 송아진이 차를 몰고 떠난 뒤였다. 한 번도 그렇게 밟아 본 적 없을 만큼 속도를 올리다 보니 잠깐 그냥 들이받고 끝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생각이 기어오르는 순간 겁이 덜컥 나서 속도를 늦췄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는 도시 외곽 호수 앞에 멈춰 있었다.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달리다 보니 머릿속 어딘가에서 여기로 가라는 소리가 들린 듯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와 있었다.여긴 예전에 신주현과 자주 오던 곳이다. 유화 학원이 호수 근처라 수업이 끝나면 신주현이 먹을 걸 사 들고 기다렸고 둘이 호숫가에 앉아 먹으며 이야기하고는 했다.짧았지만 그 시간은 송아진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초여름 밤의 호숫가 공기는 아직 서늘했다. 송아진은 벤치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뒤에서 스포츠카가 울부짖듯 다가오는 소리에 신주현이 따라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송아진이 화를 내면 신주현은 늘 달래러 왔고 달랜 다음에는 또 같은 짓을 했다.돈과 시간을 아무리 쏟아도 마음이 담긴 적은 없었다. 인형 다루듯 일방적으로 말만 쏟아붓고 고개만 끄덕여 주길 바라는 식. 하지만 송아진은 누가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다.발소리가 가까워져 오자 송아진이 먼저 내뱉었다.“더 다가오면 호수에 바로 뛰어든다.”신주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겉옷을 꺼내 송아진의 여린 어깨를 감싸 주었다. 신주현이 그대로 송아진을 끌어안고 옆에 앉았다.“막 열 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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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담배

“그래, 나 미쳤어. 그러니까 제발 떠나지 마. 네가 떠나면 난 더 미쳐.”신주현의 말투에는 묘하게 애교가 섞여 있었다.송아진이 코웃음을 쳤다.“병원에서 다 들었어. 서이안이랑 얘기하면서 ‘송아진이 나를 죽도록 미워해도 감히 못 떠난다’고 했지? 그 말 네가 한 거 맞지? 그런데 내 앞에서는 왜 갑자기 떠나면 안 된다고 해?”신주현은 비아냥을 못 들은 척 더 세게 조여 안고 송아진의 귓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허세였어. 그냥 남들 앞에서 네가 날 안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큰소리친 거야.”송아진은 바로 받아쳤다.“친구들 앞에선 내가 너 없이 죽고 못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더니 정작 내 체면은 하나도 안 세워주지. 내가 송지연 나가라고 했을 땐 왜 못 나가게 막았어. 좀 지나치지 않아?”“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하지만 내기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 지금까지의 다정함은 한꺼번에 색이 바랬다. ‘아기 신장’까지 겹쳐 생각나자 더는 공허한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송아진은 한동안 말없이 그 품에 기대 있다가 오래 묵힌 결심을 꺼내듯 담담히 입을 열었다.“신주현, 나 이혼할래.”그 말에 신주현의 팔이 눈에 띄게 떨렸다.“그만 장난해.”“결혼을 가지고 장난 안 해. 이혼할 거야.”송아진은 힘은 빠졌지만 목소리만큼은 단단했다.이번에는 바로 반박하지 못하고 잠시 침묵하던 신주현이 겨우 입을 열었다.“전용기랑 요트로는 모자라? 그럼 빌딩 하나 더 살까, 아니면 아예 섬을 살까?”“나는 이혼만 하면 돼. 도장 하나 찍으면 끝나는 일이야. 괜히 돈 들일 필요 없어.”결혼한 지 2년이 되도록 송아진은 한 번도 이혼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신주현 눈에는 늘 조심스럽게 이 결혼을 붙들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아이를 갖자고 말한 뒤부터는 바람만 스쳐도 흠칫하는 사람처럼 변했고 틈만 나면 이혼을 말했다. 정말로 자신과의 아이를 그렇게도 원치 않는 걸까.“이혼하면 그다음은? 고지훈이랑 지낼 거야?”“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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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맞서기 위한 선택

평소의 다정함도 애지중지하던 관심도 결국 다 꾸며낸 거짓이었다.신주현은 송아진의 손에서 담배를 낚아채 불을 끄더니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졌다.“다시는 피우지 마.”송아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쏘아붙였다.“왜, 늘 착한 아내로만 보이던 모습이 깨져서 불편해?”“담배는 네 몸에 안 좋아.”참아내던 걱정이 신주현의 목소리 끝에 묻어났다.송아진의 시선이 신주현의 콧등 옆 작은 점에 머물렀다. 괜히 더 시선이 붙잡히는 곳이었다.“결국은 내 몸이 걱정된다는 거네. 좋아, 그럼 내가 몸을 완전히 망쳐 버리면 어쩔래? 애 낳으라는 생각도 못 하겠지?”자신도 미친 생각이라 느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눈과 귀를 닫고 신주현과 송지연의 일을 모른 척했는데 돌아온 건 더 뻔뻔한 욕심과 선을 넘는 행동뿐이었다.“아진아, 제발 그러지 마.”송아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단호히 말했다.“내가 제멋대로 사는 걸 감당 못 하겠으면 이혼해. 아니면 내가 몸을 망가뜨려서라도 네가 바라는 건 절대 못 이루게 할 거야.”“왜 이렇게까지 해야해...”신주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정말 그렇게도 날 떠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열여섯 살 때 내가 내민 케이크를 받아들인 것도 단순히 기댈 사람 하나 필요해서였던 거야? 진심은 없었던 거야?”그 말에 송아진의 미간이 좁혀졌다.“무슨 뜻이야? 네 말은 내가 케이크를 받았던 순간부터 널 이용했다는 거야?”순간 차가운 웃음이 흘렀다.“날 이용한 건 너지. 케이크를 내밀면서 정말 마음에 거리낌 하나 없었어? 진심이었냐고.”신주현은 그녀를 거칠게 놓아버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네 눈에는 어릴 적부터 곁에 있던 고지훈 말고는 누구도 다 거짓으로 보이는 거겠지!”그렇게 소리친 뒤, 송아진 옆에 있던 담배갑과 라이터까지 집어 들더니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는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뒤돌아보았을 땐 이미 그의 하얀 F8은 굉음을 남기며 사라졌고 주차장에는 송아진의 붉은 차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송아진은 곧장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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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감시의 그림자

신청아는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술집으로 들어왔다. 흰색 정장에 타이트한 스커트, 누드톤의 하이힐까지,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목에는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가 느슨하게 걸려 있었는데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오히려 감추려는 티가 더 났다.자리에 앉자마자 신청아는 스카프를 풀어 던졌고 그제야 목덜미에 선명한 키스 자국이 드러났다.송아진은 잔을 채워 위스키를 밀어주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목에 그건 뭐야?”“어제 회사 새로 들어온 인턴이랑 거의 잘 뻔했지. 대학교 3학년짜리 애였는데... 아쉽게도 누구 때문에 쫓아낼 수밖에 없었어.”신청아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송아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넌 여전하네. 돈 밝히고 남자 밝히고.”신청아는 웃음을 흘리며 술잔을 들어 가볍게 입을 적셨다.“왜? 내 그 거지 같은 동생이랑 또 싸웠어?”송아진은 반쯤 비운 술잔을 내려놓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너 우리가 싸우는 꼴을 보니 그렇게 즐거워?”“당연하지. 그놈 아니었으면 네가 날 2년 동안이나 안 봤겠어?”“화 안 나?”“뭐가 화날 게 있어. 누구나 연애에 눈이 멀 때가 있는 거지.”신청아는 담담하게 웃었다가 곧 진지한 눈빛으로 바꿨다.“솔직히 난 네가 빨리 이혼했으면 좋겠어. 그런 음침하고 미친놈은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너한테 살아남는 길이야.”말을 끝내고 고개를 들어 멀리 서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송아진도 따라 바라봤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검은 정장을 입었지만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조폭 같은 기운이 흘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매서운 눈매, 투박한 남성미가 전부 드러나는 얼굴이었다.“새 남자 친구야?”송아진이 물었다.“어제까진 인턴이랑 키스했다면서? 저 사람은 아무리 봐도 대학생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새 남자 친구?”신청아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저 사람은 네 착한 남편이 2년 전 내 옆에 붙여둔 보디가드야. 보호한다는 핑계로, 사실은 내가 뭘 하는지 감시하라고 붙여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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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열두 시의 족쇄

“어젯밤에도 숙취였는데 오늘 또 취하게 할 수는 없죠.”남자는 신청아의 말을 듣지 않은 듯, 제멋대로 단정 짓듯 말했다.‘고집 참 세네.’송아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순간 신청아가 손을 확 밀치더니 술잔을 집어 남자의 얼굴에 그대로 끼얹었다.위스키가 선 굵은 얼굴선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신청아만 바라봤다.“청아 씨, 이제 집에 가셔야 합니다.”“몇 시에 들어가든 그것까지 간섭해?”그러자 신청아가 씩 이를 갈며 대답했다.“네 착한 남편 덕분이지. 밤 열두 시 전에 꼭 집에 들어오라고 지시했거든.”송아진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그 반응을 본 신청아는 코웃음을 치며 날카롭게 말했다.“이제 믿겨? 신주현이 그냥 미친놈이라는 거. 넌 신주현을 너무 몰라. 겉으로는 너한테 다정한 척만 하는 거고 속은 강박증에 찌든 더러운 인간이야.”송아진은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지금껏 자신 앞에서 보여준 건 달콤한 애정뿐이었으니 방금 들은 말이 도저히 현실처럼 와닿지 않았다.하지만 문득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아이의 신장을 원하던 그 광기에 가까운 집착. 그것만은 부인할 수 없이 ‘미친놈’의 모습과 같았다.“근데 왜 굳이 12시 전에 들어오라 한 거야?”송아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신청아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혹시라도 내가 뭘 배우고 오지 않을까 봐. 내게 이득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날까 봐. 결국은 복종 훈련이지. 내 모든 걸 자기 통제 아래 두려는 거야. 한마디로 신현 그룹 지분에는 내가 손끝 하나 못 대게 하려는 거지. 차라리 날 우리 엄마처럼 미치게 만들고 끝내 죽게 되길 바라는 거야. 그런 짓에 있어서는 내 ‘착한 동생’이 최고니까.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송아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맞다. 신주현은 사람을 몰아붙이는 데 있어 누구보다 잔인했다. 자신도 이미 그 끝자락에 서 있었으니까.“만약 네가 12시 전에 안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신청아가 잔을 다시 들어 반쯤 비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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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불편한 귀가

송아진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았고 신주현을 마주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혼자 술을 한 병 더 시켰다.원래 술을 잘 하지도 않았고 평소에는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무조건 취해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취한 뒤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설마 길바닥에서 죽기야 하겠느냐는 심정이었다.요즘 송아진은 자신이 크게 병든 것 같았다. 별안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가 많았다. 다만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기다리고 있기에 간신히 그런 마음을 눌러 참을 수 있었다.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고지훈이 송아진을 보았다. 오늘은 병원 사람들이 마련한 승진 축하 자리였다. 부주임 승진을 축하하는 술자리였고 고지훈은 평소 잘 오지 않던 이런 자리에 드물게 나왔는데 하필 그곳에 송아진이 있었다.송아진은 고지훈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고지훈은 송아진이 괴롭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에 다가가지 않았다. 오래 눌러온 감정은 언젠가는 터져 나오기 마련이고 술은 잠시나마 그런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일 뿐이었다....송아진은 자신이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이 아득한 채 눈을 떴을 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주현의 목소리, 그리고 고지훈의 목소리.꿈인가 싶어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고 다시 눈을 감았다. 사실은 고지훈의 품이었는데도 말이다.저택 현관 앞, 신주현은 고지훈 품에 안긴 채 얼굴을 더 깊숙이 묻는 송아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고지훈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침착하게 말했다.“많이 취했으니 깨어나면 해장국 꼭 끓여 줘. 아진이가 좋아하는 레시피는 휴대폰 메모 상단에 있을 거야.”그 말은 신주현의 신경을 정면으로 건드렸다.사계호수에서 불편하게 헤어진 일만으로도 화가 나 있었는데 지금은 분노가 더 깊게 치밀어 올랐다.“네가... 아진 휴대폰까지 볼 수 있다는 거야?”신주현의 눈빛이 매섭게 가늘어졌다.“넌 못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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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취중 고백

거실은 고요했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날 선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남겼다.신주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아진에게 그림을 부탁한 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송아진의 입에서 직접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고지훈이 알 방법은 없었다.그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자 신주현의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그는 고지훈의 옷깃을 확 놓아버리며 짧게 내뱉었다.“꺼져.”현관문이 쾅 닫히자 거실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신주현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술에 취해 끙끙대는 송아진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곧 시선을 돌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닫히려는 문 앞에서 그는 갑자기 손으로 문을 잡아 막았다. 답답하게 숨을 몰아쉬던 신주현은 다시 거실로 발길을 돌려, 소파에 늘어진 송아진을 거칠게 안아 올렸다.송아진은 희미하게 의식이 깨어나는 듯 몸을 움직였다. 낯설지 않은 체취가 스며든 이불속에 묻히자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맑고 따뜻한 햇살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송아진은 술기운에 흐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신주현, 내 이불 뺏지 마.”그 말에 신주현은 한순간 허탈하게 웃었다. 주먹을 휘둘러도 맞닿는 건 솜뭉치 같은 공허함, 그런 무력감이 몰려왔다.신주현은 송아진을 안은 채 침실로 들어가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놓아주지 않고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어디 가?”반쯤 뜬 눈동자에 술기운이 가득했다. 신주현은 억눌린 숨을 내쉬며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허공만 휘저었을 뿐, 그의 손끝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네가 이혼하자며. 난 옆방 가서 잘 거야.”“그래, 그럼 가.”송아진은 취한 얼굴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마음은 흐릿해도 이혼하겠다는 결심만큼은 선명했다.그 말에 신주현의 심장이 묘하게 쿵 내려앉았다. 그는 몸을 숙여 송아진의 붉어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짙은 불만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아진아, 네가 다른 남자랑 술 마시는 거, 난 싫어.”“내가 누구랑 마셨는데?”송아진이 흘리듯 중얼거렸다.“아, 맞다. 나 신청아랑 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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