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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를 붙잡는 사람: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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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숨길 수 없는 비밀

송아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꼭 움켜쥐었다. 신주현이 화면을 볼까 싶어 아무 말 없이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외할머니.”“아진아, 이렇게 늦게 전화해서 방해한 건 아니지?”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송아진의 코끝이 순간 시큰해졌다. 평생 가족에게 버림받으며 살아왔던 자신에게 아직 ‘가족’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기뻤다.“방해라니요. 언제든 전화 주세요. 무슨 일이세요, 외할머니?”“네 외삼촌이 네 자료를 다 준비해 놨단다. 론든에 오면 바로 세인트 마틴 미대에 들어갈 수 있어. 이제 네가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만 챙기면 돼.”비자 서류라면 호적등본과 결혼증명서까지 필요했다.송아진은 낮에 배수연이 했던 ‘아기 신장’ 이야기가 떠올랐고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외할머니 제가 빨리 준비할게요.”“그리고... 이혼도 서둘러. 네가 남성에서 고생하는 거 다 알고 있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루라도 빨리 널 내 곁에 두고 싶어.”“걱정하지 마세요. 두 달 안에는 정리할게요.”이혼 숙려기간이 한 달이다.송아진은 더 늦출 수 없었다.“그래, 우리 착한 아진아.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을게.”전화를 끊고 몸을 돌린 순간, 송아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어붙었다.문가에 신주현이 서 있었다. 회색 잠옷을 대충 걸친 채, 드러난 쇄골과 굳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두 달 안에 뭘 정리하겠다는 거야?”송아진은 관절이 하얗게 질릴 만큼 휴대폰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신주현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공부 때문에 그래. 말해도 넌 몰라.”말을 마치자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다음 순간 신주현이 허리를 끌어안아 몸을 붙잡았다. 그의 턱이 신아진의 목덜미에 닿으며 목소리가 낮게 파고들었다.“아진아, 너한테 비밀이 생겼네.”송아진은 곧장 ‘아기 신장’ 이야기가 떠올리며 차갑게 받아쳤다.“너도 비밀 있잖아. 네 비밀이야말로 더 크지 않아?”신주현은 부정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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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첫 만남

“이걸로 끝이야?”“우리 아버지는 돈밖에 모르잖아. 그 프로젝트 하나 날리면 수천억 손해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설마 내가 네 마음속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어?”결혼한 뒤 몇 년 동안 송아진은 늘 신주현 말에 순순히 따르는 아내였지만 임신 얘기가 오간 뒤부터는 달라졌다. 송아진은 더는 참지 않고 틈만 나면 가시 돋친 말로 신주현을 찔러댔다.이상하게도 그렇게 하고 나면 속이 시원했다.송아진은 본래 얌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신주현 때문에 오랫동안 자신을 억눌러왔을 뿐이었다.신주현은 손끝으로 송아진의 부어오른 뺨을 스치며 낮게 말했다.“넌 내 아내야. 네가 아니면 누가 소중하겠어.”송아진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아니지. 진짜 네 아내는 송지연이었잖아.”“아진아, 우리...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자.”“그럼 그냥 말하지 마. 나 아직 열 있어. 잘래.”송아진은 신주현을 밀어내고 그대로 몸을 돌려 이불을 당겨 덮었다....그날 밤, 아마도 고열 때문에 송아진은 깊이 잠들지 못한 채 꿈속을 헤맸다.신주현과 얽힌 지난날의 기억들이 조각난 파편처럼 몰려들어 폭풍처럼 휘몰아쳤고 벗어나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송아진은 신주현과의 첫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신주현을 처음 본 건, 송지연의 16살 생일 파티였다.송지연은 성대한 성인식 겸 생일 파티를 열었고 송명철은 많은 하객을 불러 집안을 떠들썩하게 했다.그 무렵 송아진은 보육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겨우 석 달째였다. 하지만 집에 있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여전히 보육원에서 입던 낡은 옷을 그대로 걸치고 있었다.더 가슴 아픈 건, 그날이 송아진의 생일이기도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뷔페 형식으로 차려진 음식은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다 먹을 수 있었지만 송아진은 감히 손을 뻗지 못했다.송아진은 파티장 한쪽에 내버려진 채, 멍하니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하객들과 부모 곁에서 환영받는 송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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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케이크

검은색 스리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눈앞에 섰다. 분명 송지연의 생일 연회에 초대받은 손님일 것이다. 파티에는 또래 아이들에게도 드레스 코드가 있었는데 여학생들은 드레스를, 남학생들은 정장을 입어야 했다.하지만 그는 격식 있는 차림과 달리 태도는 거칠었다. 한 손에는 케이크 접시를 들고 송아진 앞에 내밀었고 다른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였다.“괜찮아. 필요 없어.”송아진은 얼어붙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혹시 이 남자도 송지연의 편이거나, 방금의 모욕을 이어가려는 또 다른 주동자가 아닐까 두려웠다.남자는 그런 송아진을 보고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뭘 그렇게 겁내? 내가 사람이라도 잡아먹을까 봐?”그러고는 그녀의 앙상한 어깨를 눌러 다시 앉혔다.“송씨 집안 사람들이 너를 굶겼구나. 대나무처럼 말라서.”송아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남자는 케이크를 다시 내밀며 말했다.“먹어. 아까부터 보니까 넌 계속 앉아만 있더라. 한 입도 못 먹고.”“정말 괜찮아.”송아진은 여전히 그가 송지연의 편일 거라 생각했다. 늘 사람들 모두가 송지연 주위에 모였고 여자애들은 그녀와 어울리길 원했고 남자애들은 그녀를 좋아했으니까.그 순간, 송아진의 배가 요란하게 울렸다.남자는 케이크 접시를 억지로 송아진 손에 쥐여주며 퉁명스레 말했다.“시끄럽네. 먹으라면 먹어.”그러고는 옆자리에 털썩 앉아,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기더니 셔츠 단추를 풀었다.“귀찮아 죽겠네. 왜 꼭 이런 데 와서 답답한 정장을 입고 있어야 하는 건지.”송아진은 조심스레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한 입 떴다.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굶주림에 지쳐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송아진은 용기를 내어 남자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근데... 왜 나한테 케이크를 주는 거야?”남자는 갑자기 몸을 숙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독이라도 넣어서 먹이려고.”송아진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했다.그러자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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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무너진 기억들

송아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송아진.”“오, 괜찮네. 이름 예쁘다.”“근데 왜 나한테 케이크를 준 거야?”신주현은 두 손을 머리 뒤에 베고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며 대답했다.“불쌍해 보여서.”“뭐?”“밖에서 네 얘기 어떻게 도는지 알아? 계모랑 동생한테 괴롭힘당한다는 소문이 자자하거든. 오늘도 보니까 한쪽에 앉아 몇 시간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있더라. 옷은 낡아서 헤졌고 치마에는 기름얼룩까지 묻어 있고. 좀 불쌍하더라고. 그냥 동정심 생겨서 착한 일 한 거지.”송아진은 반사적으로 치마 위 얼룩을 두 손으로 가리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이 사람, 말이 왜 이렇게... 대놓고 직설적이지?’신주현이 말을 돌렸다.“너도 대운고 다니지?”“어떻게 알았어?”“봤어. 나 네 옆 반이거든. 앞으로 일 있으면 나 찾아.”신주현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물론 내가 꼭 도와줄진 몰라. 워낙 인기가 많아서 말이야.”그때의 송아진은 신주현이 건방지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하지만 훗날 알게 됐다. 그는 재벌 신씨 가문의 외동아들, 태생부터 모든 걸 가진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을.말과 태도는 가볍게 들렸지만 그 뒤로 많은 해 동안 신주현은 늘 송아진을 도왔다.학교에서 송지연이 일부러 생리대까지 숨겨 동급생들마저 빌려주지 못하게 했을 때, 피가 번져 치마가 젖어버린 순간 신주현은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 자기 교복 상의를 벗어 그녀 허리에 둘러주며 뒷모습을 가려줬다.송아진이 미대 실기 준비를 해야 했지만 송명철은 끝내 반대했고 돈도 없어 물감조차 살 수 없을 때 신주현은 말없이 거액을 건네 학원비를 내주고 최고급 물감을 사주었다.수능을 앞두고 송아진이 고열에 시달리며 새벽에 혼자 약국을 전전할 때 신주현은 감염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다.말로는 늘 옷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은 예쁜 원피스를 잔뜩 사서 건네주던 사람.그 모든 기억이 꿈속에서 한꺼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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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끝낼 수 없는 관계

신주현은 기분이 잔뜩 상해 있었고 송아진도 그 눈빛을 보며 더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알았다.그래서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내가 언제 고지훈이랑 같이 있는 그림을 그렸다고?”정말 기억조차 없었다.“넌 나보다 훨씬 연기 잘하잖아.”신주현은 불만을 감추지 못하며 투덜거렸다. 말뿐만 아니라 손까지 못 참아, 송아진의 허리를 세게 집어 올렸고 송아진은 아릿한 통증에 온몸이 저릿하게 떨렸다.“신주현, 내가 바보로 보여? 네 성격 뻔히 알면서 고지훈이랑 있는 그림을 대놓고 그렸다고? 그게 말이 돼?”송아진은 속으로도 답답했다. 신주현 눈에는 자신이 정말 바보로 보이는 건가 싶었다.“그림 같은 거 증거로 남겼다가 나중에 우리가 이혼이라도 하면 네가 법원에 들이밀 거잖아. 그러면 내가 받아야 할 몫이 줄어들 텐데. 내가 그렇게 어리석을까?”사실 송아진은 단 한 번도 신주현의 돈을 바란 적이 없었다. 다만 말로라도 그를 꼬집고 싶었을 뿐이다.그런데 신주현의 신경이 꽂힌 건 돈이 아니라 ‘이혼’이라는 단어였다. 그는 송아진의 가는 허리를 더욱 세게 움켜쥐며 낮게 으르렁거렸다.“그 두 글자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눈이 벌겋게 충혈된 얼굴은 마치 당장이라도 송아진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 같았다.“넌 정말, 나랑 평생 이렇게 살고 싶어?”송아진이 담담하게 물었다.“넌... 원하지 않아?”신주현은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크게 떴고 눈빛에는 혼란과 두려움이 얽혀 있었다.송아진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매일 마주하는 사람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그게 행복할까? 아니면 네 안에 있는 그 집착 때문에 이혼은 싫고 그렇다고 네가 진짜 좋아하는 송지연은 놓치기 싫은 거야?”어둠 속에서 신주현의 감정은 제어되지 못한 듯 격렬해졌고 억눌린 고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순간 송아진은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 만약 송아진이 신주현과 송지연이 자신의 아이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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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배신의 그림자

신주현은 이제 송아진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화가 나서 던지는 말인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다.“이혼은... 다음 생에서 해.”신주현의 분노로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차분했다.“굳이 이혼 절차를 그렇게까지 알아둘 필요 없어. 어차피 이번 생에는 쓸 일이 없을 테니까.”그 말과 함께 송아진의 손목을 놓고는 등을 돌려 방을 나갔다.잠시 뒤, 그는 호적등본과 결혼증명서를 들고 와 송아진 앞에 내밀었다.“난 이미 비자가 있어. 넌 네 것만 준비하면 돼. 서류 나오면 유성한테 노선 신청시켜서 내가 시간 맞춰 같이 외할머니 보러 가자.”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쉽게 호적등본과 결혼증명서를 손에 넣은 송아진은 잠시 멍해졌다. 신주현은 애초부터 그녀가 자신을 떠날 수 없다고 믿으니 이렇게 쉽게 내준 것이다.송아진은 서류를 받아서 들며 냉소 섞인 말 한마디를 흘렸다.“혹시 그 비행기, 송지연이랑 자주 타던 네 개인 전용기 말하는 거야?”그 말에 신주현은 송아진의 질투를 곧장 눈치챘고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는 송아진이 질투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자신을 그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니까.말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신주현에게 송아진은 다시 비꼬듯 말을 이었다.“그럼 난 안 탈래. 마음에 안 들어.”“알았어. 그럼 유성 시켜서 새로 한 대 사 오라고 하지. 뭐 큰일이라고.”신주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고 금세 기분이 한결 풀린 듯 보였다.송아진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눈을 굴렸다. 그때 신주현이 담뱃갑과 라이터를 집어 들자 송아진은 일부러 비아냥을 던졌다.“지금 애 갖자고 난리면서 담배는 또 피우네? 진심은 별로 없는 모양이지?”신주현은 예전부터 담배를 자주 피웠다. 그 버릇도 사실 송아진과의 관계가 무너지던 시기부터였다.그 말을 듣자 신주현은 망설임 없이 담뱃갑과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좋아. 지금부터 끊을게.”송아진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드레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신주현의 흰색 F8이 굉음을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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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배신의 그림자

신주현이 송지연을 돕는 일은 겉으로 보면 이상할 게 없었다.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혼약이 있었고 오랜 세월 각별히 지내왔으니 주변에서 보아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아마 평소 같았다면 송아진도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괜찮아, 따지지 말자’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넘겼을 것이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송지연은 그녀의 신장을 빼앗으려다 붙잡혔고 경찰에 직접 신고한 끝에 구치소에 갇혔다.그런데 신주현은 뻔히 그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면서도 송지연을 위해 최고 변호사를 붙이고 보석을 추진하고 있었다.‘내 목숨은... 신주현 눈에는 이렇게도 하찮은 건가.’가슴 깊숙이 날카로운 통증이 몰려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송지연이 눈앞에 있지 않았다면 이 고통을 애써 감추지도 못했을 것이다.송지연은 여유롭게 웃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못 믿겠어? 곧 알게 되겠지. 내 변호사가 곧 올 거야. 누군지 보면 내가 거짓말하는 건지 아닌지 알게 될 거라고.”송아진은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감옥이 널 못 가둬도 병은 널 충분히 묶어둘 수 있어.”순간 송지연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고 매섭게 송아진의 허리께를 겨누며 독기를 뿜어냈다.“송아진, 잘난 척하다 큰코다쳐. 네 남은 신장, 아니 네 목숨까지도 어느 날 송두리째 잃게 될 거야. 평생 이번처럼 운이 따를 거라 생각하지 마.”송아진은 차갑게 웃으며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여긴 법이 있는 세상이야. 네가 무슨 짓을 꾸며도 결국 법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지. 물론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겠지. 그러니 나도 보디가드를 붙여야겠네. 늘 곁에서 지켜줄 수 있도록.”송지연은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보디가드? 정말 주현 오빠가 널 지켜줄 거라 믿어? 웃기지 마.”그러고는 입꼬리를 비틀며 독한 말을 던졌다.“네 남편이 내가 무슨 짓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다 알고도 눈감아줬어. 왜냐고? 주현 오빠가 널 아내로 맞은 것도 결국 날 위해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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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돌이킬 수 없는 결별

송씨 집안의 힘으로는 민지호를 직접 불러낼 수 없었다.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 신주현이었다.송아진은 실망이 켜켜이 쌓여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았고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 숨조차 쉬기 힘든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민지호는 송아진을 보자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인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애초에 밖에서 보기에 송아진은 당당한 ‘신주현의 아내’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사랑받는 아내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존중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민 변호사, 저 이제 나가도 되나요?”“네. 주현이가 벌써 차를 보냈어요. 바로 병원으로 모실 겁니다.”그 말은 조금의 배려도 없이, 송아진의 코앞에서 대놓고 내뱉는 것과 다름없었다.순간, 송아진은 뺨을 세게 얻어맞은 듯한 굴욕감에 휩싸였다.송아진은 입을 다문 채 곧장 몸을 돌려 나갔다. 그리고 경찰서 문 앞에서 송명철과 마주쳤다. 그는 송아진이 빨간색 F8에서 내리는 걸 보자 눈을 크게 떴다.늘 얌전하던 딸이 이렇게 화려한 차를 타고 나타난 모습이 낯설었던 것이다.송명철의 날 선 목소리가 뒤를 쫓았다.“거기 서. 이젠 아버지를 봐도 인사 한마디도 안 하냐?”송아진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담담히 대답했다.“비 오는 날 저를 무릎 꿇려 열병 나게 만든 아버지, 마지막 신장마저 송지연에게 주라고 한 아버지... 그런 사람한테 왜 인사해야 하죠?”짧은 한마디가 송명철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그러나 송아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차갑게 그 손을 노려봤다.그러자 송명철의 손은 결국 허공에서 멈췄다.“왜요? 차라리 때리세요. 내일 당장 SNS에 올릴 겁니다. ‘친부의 폭행, 친딸에게 신장을 강제로 빼앗으려 한 재벌가의 민낯.’ 그런 기사로 떠들썩해지면 송호 그룹 주가가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소재 아닌가요?”송명철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르고 이를 악물었다.“송아진... 내가 어쩌다 너 같은 걸 낳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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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내기의 진실

밤, 별장.송아진은 화실에서 학생들을 도우며 한창 바빴다. 이번에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과제를 봐주며 원단과 색상을 골라주고 있었다.송아진의 시어머니 배수연은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데다 애초부터 며느리인 송아진을 곱게 보지 않았다.그날도 학생들이 골라 온 색 조합을 모조리 퇴짜 놓으며 겉으로는 학생들을 탓했지만 사실은 기본적인 색감 감각도 없다는 식으로 송아진을 비아냥거린 것이었다.송아진은 꾹 참았다. 어차피 배수연은 언제나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뭐든 꼬투리를 잡아 괴롭히는 게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곧 이혼할 거라 생각하니 더는 의미를 두고 싶지도 않았다.붓을 들어 캔버스에 색을 입히던 송아진은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손을 멈췄다.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니 신주현이 친구들을 데려와 포커를 치는 모양이었다.그 무리 중에는 송아진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그녀를 두고 ‘말라깽이’라는 별명까지 붙여 놀리고는 했다.송아진은 불쾌한 기분을 삼키며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런데 두 남자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자신 얘기를 꺼내는 것이 들려왔다.송아진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들었어? 주현이가 장인어른한테 한 방 먹였다던데?”“응. 송아진 아버지가 송아진 무릎 꿇리고 뺨까지 때렸다며? 그래서 주현이가 장인어른한테 주던 프로젝트를 바로 끊어버리고 앞으로 신현 그룹이 송씨 집안하고는 단 한 건도 거래 안 하겠다고 잘라냈대. 완전 독하더라.”그 말을 들은 순간, 송아진은 가슴 한구석이 흔들렸다.‘신주현이... 왜 그렇게까지? 송지연이 불편해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은 걸까?’“완전 송아진 편 들어준 거잖아. 주현이가 진짜로 송아진을 좋아하긴 하는 건가?”“말도 안 돼. 너 그거 잊었냐? 고등학교 때 주현이가 송지연이랑 한 내기 말이야.”“아! 기억난다!”남자가 손뼉을 쳤다.“송지연 열여섯 살 생일 파티 때였지. 주현이가 송지연이랑 내기를 했잖아. 아진이를 어떻게든 자기한테 빠져들게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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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집착의 그림자

신주현은 평소보다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송아진은 문득 아침 일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 전용기는 송지연이 탔던 거라 싫다고 했을 때, 신주현이 괜히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아진아, 네 선물이야.”그는 어디선가 두툼한 서류를 꺼내 건넸다. 살펴보니 개인 전용기 구매 계약서였고 소유주 이름에는 분명히 송아진이 적혀 있었다.“이건 네 거야. 오직 하나뿐인 네 전용기. 난 약속은 꼭 지킨다니까.”마치 칭찬이라도 기다리는 듯, 신주현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반응을 지켜봤다.조금이라도 기뻐하거나 놀라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그러나 송아진은 그저 담담히 고개를 들어 바라봤을 뿐인데 신주현의 눈 속에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빛이 어려 있었다.그 눈빛은 마치 진짜 사랑처럼 보일 만큼 자연스러웠다.‘정말 연기를 잘해... 저 눈에서 사랑을 본 순간도 있었는데 결국 다 거짓이었구나.’“마음에 안 들어?”조금 풀이 죽은 신주현은 그래도 송아진을 끌어안고 장난스럽게 어깨에 턱을 얹었다.“전용기 싫으면 말해. 그럼 내일은 요트 사줄까?”송아진은 차갑게 받아쳤다.“비행기든 요트든 너한테는 그냥 일상 아니야? 혹시 다른 여자들한테도 이렇게 사주고 달래왔던 거 아니야?”신주현은 피식 웃으며 고스톱을 치던 친구들을 돌아봤다.“야, 내가 다른 여자들한테 이런 거 사준 적 있어?”그러자 서이안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아진 씨, 맹세코 없어요. 주현이가 여자한테 전용기나 요트 사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곧이어 아까 화실 앞에서 내기 얘기를 꺼냈던 친구까지 거들었다.“말라깽이, 진짜야. 주현이는 너한테만 잘해.”그 말들은 송아진에게 오히려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모두가 내기의 진실을 알고도 신주현이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태연히 그를 감싸주고 있으니.송아진은 속이 울렁이며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제 이름은 송아진이에요. 이름조차 제대로 못 부르면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그렇게 말한 뒤, 송아진은 신주현을 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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