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꼭 움켜쥐었다. 신주현이 화면을 볼까 싶어 아무 말 없이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외할머니.”“아진아, 이렇게 늦게 전화해서 방해한 건 아니지?”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송아진의 코끝이 순간 시큰해졌다. 평생 가족에게 버림받으며 살아왔던 자신에게 아직 ‘가족’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기뻤다.“방해라니요. 언제든 전화 주세요. 무슨 일이세요, 외할머니?”“네 외삼촌이 네 자료를 다 준비해 놨단다. 론든에 오면 바로 세인트 마틴 미대에 들어갈 수 있어. 이제 네가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만 챙기면 돼.”비자 서류라면 호적등본과 결혼증명서까지 필요했다.송아진은 낮에 배수연이 했던 ‘아기 신장’ 이야기가 떠올랐고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외할머니 제가 빨리 준비할게요.”“그리고... 이혼도 서둘러. 네가 남성에서 고생하는 거 다 알고 있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루라도 빨리 널 내 곁에 두고 싶어.”“걱정하지 마세요. 두 달 안에는 정리할게요.”이혼 숙려기간이 한 달이다.송아진은 더 늦출 수 없었다.“그래, 우리 착한 아진아.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을게.”전화를 끊고 몸을 돌린 순간, 송아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어붙었다.문가에 신주현이 서 있었다. 회색 잠옷을 대충 걸친 채, 드러난 쇄골과 굳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두 달 안에 뭘 정리하겠다는 거야?”송아진은 관절이 하얗게 질릴 만큼 휴대폰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신주현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공부 때문에 그래. 말해도 넌 몰라.”말을 마치자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다음 순간 신주현이 허리를 끌어안아 몸을 붙잡았다. 그의 턱이 신아진의 목덜미에 닿으며 목소리가 낮게 파고들었다.“아진아, 너한테 비밀이 생겼네.”송아진은 곧장 ‘아기 신장’ 이야기가 떠올리며 차갑게 받아쳤다.“너도 비밀 있잖아. 네 비밀이야말로 더 크지 않아?”신주현은 부정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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