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บทที่ 491 - บทที่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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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틀렸어요.”정다슬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돈 있어요. 나보다 훨씬 많아요.”대머리 남자가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정다슬은 다시 집을 가리켰다.“집 면적은 작아도 빚 갚기엔 충분하고도 남거든요.”아무리 그래도 경성 오래된 골목 안 마당이 딸린 집이다. 팔면 꽤 큰 돈이 될 터였다. 은행에 담보로 잡혀 대출을 받아도 빚을 청산하기엔 충분했다.정다슬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조금 커진 탓에 대머리뿐만 아니라 2층에 있던 정세종과 김미옥도 그 말을 듣게 되었다.대머리 남자가 입을 떼기도 전에 정세종은 눈이 뒤집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는 정다슬을 향해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팔이 안으로 굽어도 모자랄 판에! 집을 팔면 나랑 네 엄마, 네 동생은 어디 가서 살라는 거야?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라고! 네 엄마랑 내가 고생고생해서 대학까지 보냈더니 보답한다는 게 고작 이런 거야?”결국 온채아 이외의 사람에게 이 꼴을 보이고 말았다. 그 사람이 하필 하지훈이었다.동네 이웃들 같은 사람들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니까. 정다슬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대머리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 제안 꽤 괜찮지 않아요?”“아가씨...”사실 대머리 남자도 이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정다슬에게서 반드시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게다가 정씨 가문이 집을 팔게 만드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울 일이었다.정다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핸드백을 열더니 능숙하게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붉은 입술에 걸린 미소는 지극히 공적인 비즈니스용이었다.“방금 차용증 확인했는데 법적 효력이 확실하더라고요. 만약 정씨 가문이 집 파는 데 협조하지 않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제 명함이에요.”그녀는 대머리 남자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의 셔츠 주머니에 명함을 꽂아 넣었다.하지훈은 돌아서서 대머리 남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걸어가는 정다슬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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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예순이 넘은 사람이 스물 몇 살인 정다슬보다 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도대체 그가 무엇 때문에 가족이 이토록 엉망진창인 여자와 결혼을 하겠는가.더군다나 상대는 하지훈이었다.하씨 가문이었다.하지훈의 아내는 그에게 힘을 보태주는 존재까지는 아닐지언정 그의 발목을 잡거나 하씨 가문 전체의 수치가 될 사람은 절대 아니어야 했다.대학 시절, 하도연이 처음 찾아왔을 때 정다슬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었다.단지 가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왜 자신과 하지훈 사이에 명확한 선이 그어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정다슬은 천진하고 어리석었다.하지만 직장 생활을 몇 년 해보니 이제는 너무나도 잘 이해가 갔다.정다슬이 하도연이었더라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하지훈은 정다슬의 얼굴에 스친 비웃는 듯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내색하는 대신 김미옥에게 미안한 기색을 띠며 입을 열었다.“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저는 생각하시는 것만큼 돈이 많지 않아요.”그는 진지한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저도 그냥 월급쟁이일 뿐이거든요.”그 말에 김미옥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미련이 남은 듯 정다슬을 쳐다보았다.정다슬은 그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절의 의미는 명확했다.김미옥은 눈물을 훔치며 한참 동안 하지훈을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뗐다.“아까 애 아빠가 한 말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 우리 다슬이 착한 애니까... 잘 좀 대해줘요.”그러고는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정다슬은 이미 구부정해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보일 듯 말 듯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딸을 이용하고 싶어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인 척은 하고 싶나 보다.사람이란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다.초가을 밤바람이 불어와 서늘함이 감돌았다. 얼마 후 하지훈은 어색한 침묵을 깼다.“사실 어머님도 널 걱정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하 대표님.”오늘 밤 정다슬의 인내심은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바닥나 있었다. 눈에는 냉정함이 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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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하지만 십여 분 뒤, 눈치 없이 조수석에 올라타는 사람을 본 순간 하지훈의 잘생긴 얼굴은 체면 차릴 것도 없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정다슬은 조수석의 남자를 향해 입술을 살짝 올리며 턱으로 뒷좌석을 가리켰다. “하지훈 씨, 대학 때 본 적 있지?”장현진은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뒤를 돌아보며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저는...”“오랜만이라니 다행이네.”하지훈은 툭 내뱉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차창을 내리고 쌩쌩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안색이 말도 못 하게 어두워졌다. 남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사람 같이 일그러진 얼굴이었다.장현진이라면 자기소개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죽어서 가루가 된다 해도 알아볼 테니까. 당시 장현진만 아니었어도 정다슬과 그렇게 허무하게 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 사이를 갈라놓더니 정작 본인은 홀가분하게 출국해 버렸던 놈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오다니.장현진은 눈썹을 까닥였을 뿐 딱히 민망해하지도 않고 웃어 보였다. “하 대표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정다슬은 대수롭지 않게 맞장구쳤다. “그렇지?”졸업 후 몇 년 동안 정다슬은 직업 특성상 꽤 많은 동창과 연락을 이어오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든 조금씩은 변했다는 게 느껴졌다. 사회에 발을 들이면 누구나 깎이고 다듬어져서 현실적으로 변하거나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데 능숙해지며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오직 하지훈만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였다.장현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가정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참 크죠. 누구나 하 대표님 같을 수만 있다면...”“꿈 깨.”하지훈이 시트에 몸을 파묻고 팔짱을 낀 채 비웃으며 그의 말을 잘랐다. “넌 나처럼 태어날 운이 없었으니까.”검은색 벤틀리가 번잡한 도로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가로등 불빛이 가로수 사이로 그림자를 만들며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뒷좌석에 앉은 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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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온채아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야 성유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성유준의 집요한 시선을 받자 온채아는 도리어 죄책감이 들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온채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말하려고 했어.”설령 어젯밤 성유준이 묻지 않았더라도 온채아 역시 기회를 봐서 그에게 물어볼 참이었다.성유준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언제?”“...”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온채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성유준을 바라보며 공세를 전환했다. “그럼 나한테 어떤 설명을 해줄 생각이었는데?”“어젯밤처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리를 떠나버려 했던 건 아니고?” 온채아는 정곡을 찔렀다.목소리는 이미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서운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성유준은 눈썹을 움찔했다. 온채아를 너무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달랬다. “채아야, 우선 네 생각을 말해줘. 어떻게 하고 싶어?”온채아는 그가 소원희를 감쌀지 아닐지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과한 요구는 아니지?”맑고 단호한 눈동자로 성유준의 반응을 살폈다.성유준은 확신했다. 지금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불쾌한 기색을 보인다면 온채아는 당장이라도 화를 낼 것이라는걸.그리고 그는 온채아의 세상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게 될 터였다. 다시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다행히도 이 문제는 성유준과 온채아 사이에서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성유준은 온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오른손을 올려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과하지 않아. 오히려 너무 가벼울 정도지.”당황한 온채아를 바라보며 성유준은 무심한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밀수했다는 증거를 잡을 방법이 있는데. 줄까? 여러 죄목을 합치면 형량이 꽤 무거워질 거야.”온채아는 멍해졌다.이 답변은 단 한 글자도 온채아의 예상 범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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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온채아는 기분 탓인지 몰라도 성유준의 키스 스킬이 두 사람이 처음 입을 맞췄을 때보다 훨씬 정교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그의 타고난 재능인가...어느 분야에서든 특출난 모양이다.항상 가르쳐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깨우치는 능력을 타고난 듯했다.하지만 확실한 건 이 입맞춤을 통해 온채아의 몸과 마음이 비로소 온전히 안정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유일한 걱정은 오직 그녀의 출생 문제뿐이었다. 부디 그녀의 부모님이 극악무도한 마약 사범만은 아니기를. 만약 그렇다면 온채아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은 아마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부탁이에요. 하느님, 한 번만 더 저를 보살펴 주세요.'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저 이 순간의 분위기에 자신을 내맡긴 채 성유준이 이끄는 대로 몰입하고 싶을 뿐이었다.어릴 적부터 수없이 오빠라고 불렀던 성유준은 정말로 온채아를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했던 모든 걱정과 망설임이 그의 앞에 서기만 하면 전부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온채아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던 탓에 괜한 오해를 키웠던 셈이다. 작년에 성유준이 다시 온채아의 세상에 나타난 이후로 입으로는 늘 얄궂은 소리를 해댔지만 사실 그는 매번 그녀의 편이었다.마음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다행스러움이 밀려왔다. 참 좋았다. 성유준이 망설임 없이 선택해 주어서.만약 온채아가 결혼하기 전 그날 차 안에서 오늘 밤처럼 속 시원히 대화했더라면... 그 긴 세월을 멀리 돌아오지 않았을까.성유준은 온채아가 점차 몸을 늘어뜨리는 것을 느끼고 장소가 차 안임을 고려해 살며시 입술을 뗐다. 그녀가 숨을 고를 수 있게 여유를 준 것이다.이어 성유준은 생각에 잠긴 온채아를 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생각 중이었어.”키스 여파로 기운이 빠진 온채아는 성유준의 품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위로 젖히고 그의 날카롭고 수려한 턱선을 바라보았다. 온채아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잘못했던 건가 싶어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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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아이 하나쯤이야. 성유준은 충분히 키울 여력이 있다.“나였어.”온채아는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체면은 이미 다 구긴 처지였으니.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사랑에 미쳐서 그런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자유?”성유준은 반문하자마자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챘다. 그는 목이 메어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후회가 파도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들었다. 다행히 차 안의 빛이 사라지고 있었기에 성유준의 눈동자에 서린 복잡하고 어두운 감정들을 잘 가려주었다.그때 성유준은 그녀가 정말로 주율천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작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니!성유준은 붉어진 눈시울로 온채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낮게 읊조렸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고생 많았어.”임지연으로부터 성유준이 예전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그녀는 성유준 역시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음을 짐작하고 있었다.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감성적으로 흐르자 온채아는 성유준이 그녀 때문에 자책하는 것을 원치 않아 화제를 돌렸다. “방금 내 질문 하나 대답 안 한 것 같은데?”성유준은 다정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질문?”“할머니의 범죄 증거를 잡는 걸 도와주면 나중에 세상 사람들 말이 아주 많을 텐데 무섭지 않아?”자신의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이라면 온채아는 개의치 않았다.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다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본래 성유준과는 무관한 일이었다.성유준이 온채아가 걱정하는 것을 알아채고 입을 열려던 찰나, 칸막이가 살짝 내려가며 앞좌석에서 성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어르신께서 대표님이 경원으로 이사하신 걸 아시고 벌써 가 계십니다. 저녁 식사도 준비해 두셨다고 합니다.”“알았어.”성유준은 대답하면서도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근심이 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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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온채아는 당연히 이미숙이 자신을 찾아온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맞은편 집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길을 잘못 든 것이라 짐작했다. 사실 이미숙은 온채아의 집에 온 횟수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연세가 있으니 기억력이 예전만 못해 충분히 헷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성유준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 기억력 하나는 끝내주거든.”온채아는 멍해졌다. 성유준과 이미숙이 아는 사이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이미숙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안 틀렸어! 세상에 이런 우연이 다 있니? 내 손주 녀석이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니. 둘이 벌써 아는 사이였...”말을 하던 도중 이미숙의 시선이 성유준과 온채아가 깍지 낀 손에 머물렀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목소리가 딱 끊겼다. “너희 둘...”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놀라움이 더 큰지 기쁨이 더 큰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저한테 소개해 주고 싶다던 사람이 채아 아니었어요?”성유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제가 직접 저를 추천했습니다. 할머니 체면은 안 깎아 먹었죠?”마치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한 태도였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성유준과 이미숙이 어떻게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 성유준 같은 명문가 자제에게 선 자리를 주선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온채아의 머릿속 생각이 엉키고 설켜 갈수록 혼란스러워졌다.정신을 차린 이미숙은 달려와 성유준의 어깨를 퍽 때렸다. 눈을 흘기면서도 입가엔 웃음이 가득했다. “드디어 임자를 만났으면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아무 것도 모르고 나는 네 장가 문제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쳤는데!”이미숙이 그토록 걱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재벌가의 패턴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겉으론 멀쩡해도 뒤에선 딴짓을 하고 결혼을 장난처럼 여기는 곳이다. 성유준의 혼사가 정해지지 않으니 혹시나 성유준이 그 더러운 물에 물들어버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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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아니요... 전혀 마음 쓰이지 않아요.”온채아는 이 갑작스러운 역할 변화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자신의 환자가 갑자기 성유준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상황이라니.이미숙은 그제야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더니 성유준을 째려보았다. “너는 채아 손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밥이나 제대로 먹게 얼른 놓아주지 못해.”“네. 알겠습니다.”성유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제야 온채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얼른 먹어. 할머니 손맛이 정말 좋아.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야.”“...”온채아는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어쩐지 예전에 성유준의 집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이미숙이 해준 맛과 너무 비슷하다 싶었다. 알고 보니 정말로 이미숙이 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의 만두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직접 빚었다고 큰소리치더니만.성유준은 온채아의 원망 어린 시선을 느끼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무슨 욕이 하고 싶어서 그래?”“...”그의 할머니가 바로 맞은편에 앉아 계시는데 감히 어떻게 욕을 하겠는가.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이미숙은 성유준의 편을 들기는커녕 온채아를 부추겼다. “욕하고 싶은 거 있으면 참지 말고 다 해. 나한테는 손주며느리 서열이 손자 놈보다 훨씬 높으니까.”이미숙의 말이 너무나 직설적이라 온채아는 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성유준은 호탕하게 웃었다. “할머니께서 허락하셨네. 말해봐. 뭐라고 하고 싶어?”“욕하고 싶은 거 없어.”이미숙의 지지를 얻은 온채아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성유준을 힐끗 째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랑 할머니가 아는 사이인 거 진작 알고 있었지?”성유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정말이지 천 년 묵은 불여우가 따로 없었다.“언제 알았는데?”“M 국으로 출장 가기 전.”성유준은 드디어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는 듯 순순히 털어놓았다. “출장 가기 전날 밤, 네가 할머니가 빚어주신 만두 끓여줬잖아. 기억 안 나?”온채아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성유준에게 만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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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이미숙의 일생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같은 여자로서 그녀는 온채아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비록 상대가 자신의 친손자일지라도 말이다.성유준은 이미숙이 하려는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온채아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훗날 그 일이 불씨가 되어 부부 관계가 어긋날까 염려하는 마음이었다.하지만 성유준은 단 한 번도 그 문제를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애지중지 키운 온채아가 미혼모가 되어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꼴을 보는 것에 비하면 그건 고민의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가벼운 일이었다.성유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채아라는 사람 그 자체만을 원했다.성유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더니 엄숙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는 확신해요. 채아 말고는 다른 누구와 결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저에게는 채아가 채아인 것만으로 충분해요.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요.”며칠 전, 그가 온채아에게 했던 말과 같았다.성유준은 오직 온채아이기에 선택한 것이었다.이미숙은 그 말을 듣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유전자가 꼭 대물림되는 건 아니로구나. 적어도 그 못된 양반은 안 닮았으니 말이다.”마지막에 언급한 못된 양반은 세상을 떠난 성씨 가문의 바람기 다분했던 영감을 뜻했다.성유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진심을 담아 이미숙의 기분을 맞춰주었다.“할머니의 유전자가 너무 강력해서 할아버지의 보잘것없는 유전자를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린 덕분 아니겠어요?”“말이나 못 하면.”이미숙은 콧방귀를 뀌면서도 내심 기쁜 듯 웃더니 성유준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말해봐. 또 나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이러는 거지?”“사실 하나 있어요.”성유준은 사양하지 않고 아주 태연하면서도 뻔뻔하게 본론을 꺼냈다.그 말을 들은 이미숙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연신 그를 가리켰다.“너라는 놈은 정말... 가당키나 한 일이냐... 에휴, 좀 더 생각해 보마!”성유준의 달콤한 말솜씨에 또 넘어갈까 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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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하지훈은 한참 동안 정다슬을 빤히 바라보다가 화를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꼭 장현진이랑 그렇게 게속 엮여야겠어?”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성유준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몇 번 만지작거리고는 온채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답장은 금방 왔다.[방금 다 끝냈어. 이제 샤워하려고.]성유준은 새로 바꾼 그녀의 애칭을 흥미로운 듯 몇 초간 빤히 바라보았다.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름이었다. 더 답장할 생각 없이 그는 휴대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그런데 웬걸, 문을 열자마자 초인종을 누르려던 하지훈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동시에 맞은편 집에서도 쾅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훈의 얼굴에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온채아를 찾아가려던 계획이 방해받은 성유준은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그는 하지훈을 훑어보며 물었다. “왜 왔냐?”“술 마시러.”하지훈은 여전히 짜증 섞인 감정에 빠져 성유준의 노골적인 거부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정다슬이 돌아온 상황에서 밤늦게 성유준이 다시 찾아가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성유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짚었다. “웬 술?”하지훈은 제 집 안방인 양 들어와 거실 슬리퍼로 갈아 신고는 집 안을 한 바퀴 훑었다. 온채아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식탁 위에도 밥을 먹은 흔적은 없었다. 하지훈은 성유준을 돌아보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담아 입을 뗐다.“너나 나나 처지가 똑같은데 술 말고 마실 게 뭐가 있냐?”...성유준은 하지훈이 제대로 상처받은 상태인 것을 보고 동정심을 베풀어 딱히 찬물을 끼얹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신 맥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챙겨 다가갔다. “정 변호사랑 저녁 안 먹었어?”하지훈은 의욕 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먹었어.”그렇군. 먹긴 먹었는데 기분 좋게 먹지는 못한 모양이다. 성유준은 상황을 짐작하고 하지훈에게 술을 따라주며 온채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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