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 법정에 설 때마다 의도적으로 연습해 온 직업병이었다.하지만 하지훈도 이제야 깨달은 건 아니었다.예전에 두 사람이 연애할 때부터 이미 그 조짐이 보였다.정다슬은 주도권을 쥐는 데 능숙했고 관계에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지 물러설지는 오로지 그녀가 결정했다.그들의 만남에서도 정다슬이 먼저 하지훈을 유혹하고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바로 연락을 끊어버린 것처럼.지금 하지훈은 통화를 엿들었어도 전혀 민망한 기색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집 앞인데 뭘 엿들었다는 거야? 네가 날 못 본 거지.”정다슬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한 마디에서 약간의 서러움이 묻어나는 것처럼 들렸다.‘분명 착각일 거야.’태생이 금수저인 하지훈 같은 도련님은 남을 서럽게 하면 했지 본인이 당하진 않았다.정다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일리가 있네요.”그러고는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 뒤돌아 문을 열려 했다.문을 닫으려는 순간, 문밖의 남자가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와 한 손으로 문짝을 막으며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했다.정다슬은 깜짝 놀라 반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더 할 말 있어요?”“나랑은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서, 그럼 장현진은?”느닷없는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정다슬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눈가의 당황함을 감추고 문을 닫으려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현관 신발장에 살며시 몸을 기울이며 붉은 입술을 살짝 올린 채 직설적으로 말했다.“나랑 다시 만나고 싶어요?”“그래.”한쪽은 직설적으로 묻고 다른 한쪽은 숨김없이 답했다.고개를 든 정다슬의 눈에 확신에 차 번뜩이는 하지훈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난 싫어요.”간결한 네 글자로 대화가 끝날 뻔했다.하지만 하지훈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었다. 검은 눈동자로 정다슬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강조했다.“말했잖아, 내가 원한다고. 예전에는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네가 결정했어. 이번엔 내 차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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