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재는 손을 놓았다.손끝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심하온의 왼손에 들린 칼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손잡이는 그녀의 손바닥에 남아 있는 마지막 온기마저 얼려버릴 듯했다.병실 안은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심하온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강운시의 스카이라인을 잿빛으로 번져놓았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꺼지지 않는 붉은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덫에 몰린 짐승 같았다.그는 몸을 돌려 문을 밀었다.나무문이 가볍게 흔들리며 ‘달칵’ 소리를 냈고, 그 소리와 함께 죽음 같은 정적이 등 뒤에 갇혔다.복도의 조명은 창백했다. 센서등이 그의 걸음에 맞춰 차례로 켜졌다. 허도영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가 막 입을 열려 했지만, 정윤재에게서 풍기는 살기 어린 기세에 눌려 말을 삼켰다.정윤재는 곧장 테라스로 걸어가 창문을 밀어 열었다.축축하고 차가운 밤바람이 빗방울을 머금은 채 밀려들어 와, 그의 옷깃에 밴 피비린내와 소독약 냄새를 흩트렸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냈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끝으로 몇 번이고 비벼댔다. 담뱃종이는 구겨졌고, 갈라진 틈 사이로 담뱃잎이 새어 나왔다.웅웅...안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두 번 진동했다. 진동은 약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울렸다.차가운 화면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또다시 추적할 수 없는 해외 발신 ‘없는 번호’였다.문자에는 단 한 마디만 적혀 있었다.[하온이는 노을을 보고 있고, 너는 바닷속을 보고 있어.]정윤재는 숨이 턱 막혔다. 손끝이 휴대전화기 화면을 세게 눌러 거의 유리가 깨질 듯했다.노을, 바닷속.이 다섯 글자는 무딘 칼처럼, 그가 감히 떠올리지 못하던 오래된 상처를 거세게 후벼 팠다. 그는 공해의 그 날 밤을 떠올렸다. 칠흑 같은 바닷물이 폐 속으로 밀려들고 고막이 터질 듯 울리던 순간, 손가락 사이로 남아 있던 것은 기포 한 줄기뿐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라앉을 때 남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