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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거짓말쟁이의 참회: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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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홍서운은 냉소를 짓더니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과장이 심하군요. 리헬 그룹이야 저희 집안이 건드릴 만한 상대가 아닌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홍씨 가문을 무너뜨리기에는 송 대표님도 무리지 않을까요?”이내 소파에 앉은 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제시하고 싶은 조건이 하나 있긴 해요.”“뭔데?”송여준이 물었다.홍서운은 손을 들어 홍이수를 가리켰다.“앞으로 저 자식이랑 절교해요. 사업적으로도 절대 도와주지 말고 나랑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도록 해요.”“야! 지금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경고하는데, 둘이서 합의 보고 괜히 나 끌어들이지 마.”홍이수가 버럭 외쳤다.홍서운은 무표정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싸늘한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형을 끌어들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지? 난 그냥 형이 송여준 도움 못 받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어릴 때부터 친구를 등에 업고 나랑 가업을 놓고 경쟁했잖아? 그런데 결과는 어때? 송씨 가문이 뒤에 있어서도 승자는 항상 나였지.”홍서운은 소파에서 일어나 홍이수 앞으로 다가왔다.“물론 남의 아내를 쫓아내기까지 했으니 굳이 내가 안 나서도 언젠간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그런데 오늘만큼은 형의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에게 직접 버림받게 하고 싶어.”말을 마친 그는 송여준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자, 선택해보시죠.”송여준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의 반응을 본 순간 홍이수는 눈치챘다.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체념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내가 하늘 씨한테 미안한 짓 많이 하긴 했지. 권아람을 눈감아주고 온갖 악행에 가담한 것도 사실이고.”홍이수는 결연한 눈빛으로 송여준 앞으로 걸어갔다.“그래서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가업 승계에서 물러날게.”송여준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홍이수를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괜찮겠어?”홍이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송여준을 힐끗 쳐다보았다.“응. 가업 경쟁에서 물러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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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송여준은 싸늘한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았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제 말은 상대방이 대표님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행방을 숨긴 와중에 또 찾아간다면 그 사람 입장에선 그냥 방해받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에요.”홍서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정말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라면 그냥 놔주는 게 맞죠.”송여준은 주먹을 꽉 쥐고, 설명하려다 본능적으로 참았다.굳이 이런 것까지 홍서운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이내 등을 돌리고 그를 무시한 채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나도 나름의 원칙이 있어. 너한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홍서운은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어쨌든 제 요구를 이미 들어주셨으니 대표님이 원하는 걸 드리는 게 맞죠. 이 명함에 적힌 주소가 바로 유시훈의 주얼리 회사예요.”말을 마치고는 2층으로 유유히 올라갔다.송여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명함을 꼭 쥐었다.홍이수도 서둘러 다가가 슬쩍 쳐다보았다.“송강 그룹? 진짜 유하늘 오빠가 운영하는 회사 맞아? 하늘 씨한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잖아. 하늘 씨가 재벌 2세라니...”송여준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회사 주소를 토대로 자세한 자료를 조사하도록 했다.5분 후, 그는 비서가 보낸 이메일을 받았다.송여준은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고 난 뒤 표정이 사뭇 착잡했다.“유하늘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어.”홍이수는 당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 곧바로 휴대폰을 건네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유하늘이 주얼리 회사인 송강 그룹의 장녀이자, 국내에 오기 전부터 오빠를 도와 회사를 관리하며 전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그녀의 오빠 유시훈은 그룹사 대표로서 조 단위 자산을 보유한, 송씨 가문과도 맞먹는 인물이다.“어떻게 이런 일이...”홍이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동안 유하늘을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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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송우주를 간호하던 중, 송여준은 깜빡 잠이 들었다.그는 너무 지쳐 있었다. 요 며칠 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유하늘이 떠나고 나서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남긴 이별 편지를 본 이후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해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송여준은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유명 디자이너에게 의뢰한 웨딩드레스를 유하늘에게 선물하고, 결혼식장에 서서 그녀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유하늘의 손을 잡고 깍지를 끼며 고백했다.권아람과 혼인신고 한 건 자기 의사가 아니었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여긴 적도 없다고.유하늘이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혼인 신고서가 비처럼 쏟아졌다.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이 거짓말쟁이야! 이제 와서 그런 말 하면 무슨 소용이야? 여준 씨 아내는 권아람이잖아.”“그냥 권아람과 평생 살아!”송여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고 곧바로 큰소리로 외쳤다.“아니야! 나한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원래 다 털어놓으려고 했어...”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손을 잡고 있던 유하늘도 미소를 잃고, 그대로 송여준 눈앞에서 사라졌다.송여준은 눈을 번쩍 뜨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이내 손으로 얼굴을 닦으려 했지만 차가운 눈물이 손끝에 닿았다.결국 눈을 다시 감고 욱신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심장 박동이 점점 거세졌다.고요한 밤, 그는 혼자서 유하늘을 잃은 상실감을 견뎌야 했다.아침이 되자 의사가 와서 송우주의 머리에 난 상처를 확인했다.“아직 딱지가 앉지 않았네요. 이틀 정도는 안정을 취해야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송여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넌 그냥 입원하고 있어.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오늘 꼭 출국하고 말 거야.”송우주는 초조한 표정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간절하게 애원했다.“아빠, 저도 같이 데려가요. 엄마 만나러 가고 싶어요. 제발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안 돼요. 아직 비행기를 탈 수 없어요.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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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여준아!”송정희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늘 문신처럼 몸에 걸치고 다니던 명품과 악어가죽 가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녀는 다급하게 걸어들어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송여준을 바라보며 울먹거렸다.“진짜로 우주 데리고 출국할 거야? 이런 고생을 겪기엔 아직 너무 어리잖아.”송여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긋 쳐다보았다.“우주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아이예요. 게다가 우리 이미 관계 끊었잖아요. 당신은 더 이상 제 고모도, 우주의 고모할머니도 아니니까 간섭할 자격 없어요.”송정희는 가슴 한쪽이 욱신거리며 저렸다.그녀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동안 유하늘한테 잘못한 건 인정해. 그런데 나도 네 할머니 말 듣고 아람이랑 이어주려고 했던 거야. 그게 그렇게 잘못이니?”“됐고, 불필요한 입씨름하기 싫어요. 이미 돌아간 사람을 방패막이로 쓰지 마세요. 할머니가 살아계신다고 해도 저랑 아이가 친엄마와 생이별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진 않았을 거예요.”송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송정희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 이 지경이 된 건 당신이 훼방 놓은 탓도 있죠. 맨날 하늘이 무시하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안달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신 뜻대로 되지 않을 거예요. 이번에 반드시 찾아서 데려올 생각이에요.”그의 눈빛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내 아내는 하늘이뿐이에요. 이건 아무도 못 바꿔요, 알겠어요?”송정희는 이를 악물고 묵묵부답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송여준은 송우주를 데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거실을 나서기 전 명함 한 장을 휙 던졌다.명함은 그녀의 발치에 떨어졌다.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명함을 집어 들고 확인하는 순간, 송정희는 넋을 잃고 말았다.유하늘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녀의 오빠는 해외에서 이름이 자자한 주얼리 회사 송강 그룹 대표인 유시훈이다. 무려 조 단위 자산을 소유한 재벌로 리헬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또한, 유하늘 자신도 어려서부터 모든 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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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아빠.”송우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여준은 무표정하게 흘끗 쳐다보았다.“할 말 있으면 해.”“엄마가 우리를 만나줄까요? 엄마를 보면 뭐라고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송우주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송여준을 올려다보았다.송여준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착잡하고 심란한 눈빛으로 말했다.“몰라.”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무슨 수를 쓰든 엄마를 데려와서 치료도 해드리고, 앞으로 평생 함께 살아야 해.”송우주의 눈이 금세 빨개졌다.“엄마... 다시 살 수 있을까요?”송여준은 주먹을 꽉 쥔 채 아무 말도 안 했다.두 사람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해외행 비행기에 올랐다.그리고 10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도착지에 착륙했다.송여준은 창백한 얼굴의 송우주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호텔 가서 쉬고 있어. 난 송강 그룹에 가볼게.”“싫어요! 저도 갈래요. 엄마를 빨리 보고 싶어요.”송우주는 송여준의 손을 붙잡고 절대 떠나지 않을 기세로 말했다.송여준은 아들의 기운 없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지금 몸이 너무 약해서 무리야.”“부탁이에요, 아빠...”송우주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떠나기 싫은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송여준은 아무 말 없이 택시를 타고 함께 출발했다.회사 건물에 도착했을 때, 꼭대기 층만 불이 켜져 있었고 나머지 층은 아무도 없었다.송여준과 송우주는 가로등 아래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해외는 날씨가 꽤 추웠고, 급하게 온 탓에 두꺼운 옷을 챙기지 못했다.송여준은 재킷을 벗어 송우주의 어깨에 걸쳐주고 건물 입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유하늘은 둘째치고 유시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결혼한 지 7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처가 일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심지어 그녀가 해외에 가서 가족을 만날 때 어디에 머무는지도 몰랐다.결국 유하늘 혼자 비행기 타고 돌아왔고, 그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동행하지 않았다.이제야 돌아보니, 낯선 땅에서 홀로 유하늘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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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왜, 왜요?”송여준이 그를 힐긋 쳐다보았다.“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토를 달면 되겠나? 기사님한테 피해 안 갈 거니까 얼른 출발해요.”운전기사는 찍소리도 못하고 핸들을 꽉 붙잡은 채 그들을 목적지로 데려갔다.송여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앞차만 주시했다.잠시 후, 차는 한 별장 앞에 멈춰 섰다.그는 손을 들어 운전기사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유시훈이 차에서 내린 후, 돌아서서 현지성에게 몇 마디를 건넨 뒤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서야 문을 열었다.곧이어 문 앞에서 한 그림자가 유시훈을 맞이했다.가녀린 인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송여준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바로 유하늘이었다.드디어,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송여준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얼른 차에서 내려 뛰어갔다.그러나 별장 문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유하늘을 본 건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송여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엄마? 저 사람, 엄마 맞아요? 여기 사시는 거예요?”송우주가 급히 따라와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송여준은 흥분으로 온몸이 떨렸고, 주먹을 꼭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목소리는 어느새 갈라져 있었다.“응, 네 엄마 여기 사셔. 드디어 다시 찾았어. 정말 다행이야!”“우리 얼른 가서 문 두드려요.”송우주가 말하며 길을 건너려 했다.송여준은 즉시 그를 끌어당기며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야.”송우주는 고개를 들고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언제 만나요?”송여준은 고개를 저었다.사실 자신조차도 몰랐다.멀리서 왔는지라 당장이라도 유하늘을 보고 싶었다.지금 길 하나만 건너면 얼굴을 볼 수 있는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그동안 저지른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을까?특히 유하늘이 이렇게 호화로운 별장에 사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송여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유하늘이 막 시집왔을 때 송정희에게 차를 올리던 장면이 떠올랐다.송정희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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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유하늘은 정신을 차리고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야. 방금 어떤 아이가 쓰러지는 걸 봤어. 아빠가 안고 차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아무 일 없으면 좋겠어.”그 말을 들은 유시훈이 멈칫했다.이내 과일 접시를 내려놓고 다가가 발코니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온 다음 유리문을 닫았다.“그냥 낯선 사람이나 애 걱정하는 게 아니라 송우주 생각이 난 거지? 지금 국내에서 사고 났다는데 상황이 어떨지 모르잖아. 마음이 안 놓여?”유시훈이 물었다.유하늘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빠,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해?”“내 말은, 결국 네 배 속에서 나온 아이잖아.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지. 궁금하면 알아봐 줄까?”유시훈이 조심스레 제안했다.사실 송우주가 죽든 말든 그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다만 여동생이 몸까지 안 좋은 와중에 다른 일로 신경 쓰고 정력을 낭비하는 걸 차마 지켜보기 힘들었을 뿐이다.유하늘은 입술을 깨물고 나지막이 대답했다.“아니야, 오빠. 오해야. 국내 생활을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결심이 무색해지잖아. 송우주는 나한테 그냥 남이야. 설령...”이내 멈칫했다. 불길한 말은 입에 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어쨌든 이제 송우주 걱정 안 해. 지금 나 자신 챙기기도 바쁘니까. 게다가 원래 날 엄마로 인정하기 싫어했고, 드디어 권아람이랑 함께할 수 있으니 충분히 만족하며 지낼 거야.”유시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송여준 부자는 어찌 이렇게도 잔인할 수 있는지.그동안 정성껏 보살피며 꽃처럼 키운 여동생이 국내에 간 지 몇 년 만에 이 지경이 되다니.유시훈은 고개를 돌렸다.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하늘의 어깨를 다독였다.“너 파인애플 좋아하잖아. 먹고 자. 난 이만 내려가 볼게. 내일 보양식 사러 갔다가 교수님도 뵙고 오자.”유하늘은 은사님을 보러 간다는 말에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예전에 음악 공부할 때 헬렌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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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고, 무언가에 억눌린 듯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그러다 갑자기 리듬이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정절을 향해 치달으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마치 눈 쌓인 들판에서 움츠러든 씨앗이 때를 기다리다가 폭설 속에서도 스스로 생명을 꽃 피우는 것처럼.연주가 끝나자 주변에서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유하늘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렁거렸다.눈을 뜨고 무대를 바라보자 그녀를 향해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는 헬렌을 발견했다.그 순간, 유하늘은 문득 깨달았다.왜 곡의 분위기가 전후로 그렇게 달라졌는지, 갑자기 운명에 굴하지 않는 기운이 느껴진 이유는 뭔지.헬렌은 진작에 그녀를 알아보았고, 이 공연장에 나타날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모든 염원을 음악에 담아 위로를 건넸다.유하늘은 벅찬 마음에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가 꽃다발을 건넸다.헬렌은 그것을 한 손으로 받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그리고 환하게 웃었다.“어서 와, 하늘아. 이게 몇 년 만이야,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유하늘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금세 눈물이 고였다.그녀는 황급히 눈물을 훔치고 헬렌의 손을 꽉 잡았다.“교수님, 방금 연주해주신 곡... 정말 감사합니다.”헬렌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유시훈에게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눈짓했다.그리고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객석은 텅 비었다.오직 한 사람만이 여전히 구석 자리에 앉아 백스테이지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꿈쩍도 안 했다.송여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착잡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조금 전, 유하늘이 무대로 올라가 꽃을 건네며 헬렌을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걸 똑똑히 보았다.그 순간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결혼 생활 중 첼로나 음악에 관련된 화제를 꺼낼 때마다 유하늘은 두 눈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송여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내 휴대폰을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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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물론 헬렌의 곡에 감명받은 건 사실이었다.최근 며칠 동안 자신을 내려놓고 조용히 삶을 즐기고 있는 듯해도 결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는 뜻은 아니었다.노은결의 전시회에 가서는 앞으로도 꾸준히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그리고 헬렌의 연주를 들을 때는, 만약 은퇴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칭찬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그녀에게는 여전히 삶을 살아가고 싶은 의지와 갈망이 있었다. 단지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 뿐.직면은 곧 선택을 의미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유시훈은 여동생의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이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됐어요. 하늘이도 마음이 복잡할 거예요. 일단 시간을 좀 더 줍시다.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게.”헬렌은 다소 초조했지만 이런 일은 아무리 재촉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한숨을 쉬고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그래요, 밥이나 먹으러 가요. 이 얘기는 그만하죠.”유하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와 함께 백스테이지를 나섰다.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나왔다.맞은편에서 두 소녀가 잔뜩 신이 나서 달려왔다.“헬렌 님, 이분 혹시 선생님 제자인가요?”“설마 첼리스트 엘레나 님? 7년 전에 은퇴하셨다는?”유하늘은 깜짝 놀라며 무심코 물었다.“저를 어떻게 아세요?”앞머리를 내린 소녀가 가슴을 두드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저 완전 팬이에요! 성인이 돼서 첼로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아빠가 저더러 엘레나 님처럼 되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계속 롤모델로 삼아 왔죠.”유하늘은 진심으로 기뻤지만 뒤늦게 수치심이 밀려왔다.커리어까지 포기하고 자신을 푸대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길을 선택한 사람이 과연 누군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결국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내며 말했다.“저를 기억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연주 면에서는 헬렌 교수님이 훨씬 더 뛰어나세요. 저는 첼로를 오래 쉬어서 교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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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그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괜한 착각이라고 자신을 달래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건물 밖, 어두운 인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송여준은 착잡한 표정으로 아직도 유하늘이 첼리스트였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그제야 깨달았다.유하늘과 함께한 7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녀의 과거를 제대로 알고자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이제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내외 삶이 얼마나 다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그렇다면 유하늘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자기 곁으로 왔을 때,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단 말인가!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먼저 말을 꺼내거나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없었다.단지 묵묵히 그의 곁에서 혼자 모든 걸 감당했을 뿐.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유하늘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사랑한 적이 과연 있었을까?송여준은 답답하게 조여오는 가슴을 움켜쥐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내 주먹을 꽉 쥔 채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유하늘은 식사를 마치고 헬렌과 작별을 나눴다.돌아가는 길, 유시훈은 백미러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유하늘을 발견하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었다.“왜? 수술할지 말지 고민 중이야?”유하늘은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오빠는 그 생각밖에 안 해?”“확실한 답을 듣고 싶어서 그래. 너도 알잖아, 이제 딱 사흘 남았어. 수술 최적기를 놓치면 한 번 걸어볼 기회조차 없다고.”유시훈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여동생을 지켜보는 것일 뿐, 어떻게 해야 그녀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더욱이 유하늘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아니다, 너무 깊이 고민하지 마. 난 네 결정 전적으로 존중해. 내 말은 신경 안 써도 돼.”유하늘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를 향한 지나친 걱정 때문에 유시훈이 잔뜩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챘다.이내 생각에 잠기다가 나지막이 말했다.“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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