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하지 마!” 하준호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제가 아홉 살 때 있었던 일도 잊으셨습니까?”도현이 오래전 일을 다시 꺼냈다. “할아버지께서 맡긴 회사 일을 성사시키겠다고 저와 중현이를 당시 J시에서 가장 돈 많던 사람에게 넘기다시피 하셨잖습니까. 계약 하나 따겠다는 이유로요.”하준호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그날 저랑 중현이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지 못했으면 그 중년 남자에게 성폭행당했을 겁니다.” 도현은 손에 든 찻잔을 천천히 굴렸다. “그 뒤 중현이는 이틀 밤낮으로 고열에 시달렸고, 깨어난 뒤에는 그날 일을 전부 잊었죠.”“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가 중현이 아픈 틈을 타서 최면을 걸어서 기억을 없앤 것 같습니다.” 도현이 고개를 들어 하준호를 바라봤다.하준호의 눈이 커졌다. 눈 깊숙한 곳에 사나운 기색이 번졌다. “너는 그 일을 다 잊었다고 했잖아?”“그렇게 말해야 아버지가 저를 경계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도현의 입꼬리가 살짝 휘었다. 부드러운 얼굴과 달리 뱀처럼 서늘한 인상이 됐다.그때 중현은 크게 앓아누웠다.도현은 충격을 받아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다.그 사건을 아는 사람은 하준호와 중현, 도현, 할아버지뿐이었다.할아버지는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냈다. 집안 어른으로서 하준호에게 직접 매를 들어 매질할 정도였다. 일이 끝난 뒤 하준호가 도현과 따로 이야기하려 했지만 제대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중현이 고열로 병원에 실려 갔다. 도현은 본가에 남아 할아버지 하권중과 함께 지냈다.집안의 명예가 실추되는 걸 막으려 했던 건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하권중은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머니 이정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도현은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반복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나중에 중현이 건강을 회복해 돌아왔을 때 도현은 중현을 찾아갔다가, 중현이 그날 밤 일을 완전히 잊었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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