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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고준형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치료는 부인에게 맡기겠소.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유소영이 은근하게 물었다. “세자께서 사사건건 숨기시는 걸 보니 제가 투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시나 봅니다?”고준형이 유소영을 응시했다. “당신이 남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고장훈과 이혼까지 하지는 않았겠지.” 유소영이 즉시 반박했다. “아니요, 세자와 장군은… 엄연히 다르지요.” 적어도 세자는 그녀의 정실 자리를 보전해 주고 체면을 지켜줄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자의 냉정함은 고장훈 못지않았다. 임유정을 가차 없이 내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유소영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중 마차가 멈췄다. 고준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볼일이 있으니 부인 먼저 후작부로 돌아가시오.” “네.”후작부로 돌아오니 이미 오시였다. 점심에 심씨 어멈은 어김없이 반찬 세 가지와 국 하나를 올렸다. 유소영은 각각 두 젓가락씩 먹고는 습관처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심씨 어멈이 지적했다. “세자 부인, 어제 점심과 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음식을 너무 많이 남기셨습니다. 유경원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전에는 주방에서 부인의 입맛을 몰라 양을 많이 했다고하나, 오늘 점심은 양을 절반으로 줄여 특별히 조정한 것입니다. 이것조차 다 드시지 못한다면 저도 더는 세자께 숨길 수가 없습니다.”아민이 발끈했다. “감히 세자 부인을 협박하는 거예요?” 심씨 어멈은 변명 대신 공손히 절했다. “세자 부인께서는 낭비하지 말고, 다 들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바로 세자께 가서 벌을 받겠습니다!” 뒤에 있던 하인들도 똑같이 복창했다. 유소영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본래 음식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고, 자신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천재지변으로 굶주리는 백성이 많은데 이토록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심씨 어멈의 이런 방식은 그녀를 몹시 불쾌하게 했다.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마치 세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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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아민이 휘장을 걷어 올리자, 유소영이 즉시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얇은 침의가 드러났다. ‘어째서 갑자기 하혈을 한단 말인가?’아민이 문을 열자 심씨 어멈이 급히 방으로 들어오며 초조하게 말했다. “세자 부인, 노부인께서 직접 난향원으로 가셨습니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인 데다가 세자께서도 자리에 안 계셔서, 유경원에서 무엇을 도와야 할지 몰라 여쭈러 왔습니다.” 유소영이 방 밖을 내다보았다. “이 늦은 시각까지 세자께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나요?” “그렇습니다.”심씨 어멈은 아직 어린 세자 부인에게 대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자께서 굳이 자신을 보내 수발을 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다. 이에 그녀는 적절히 훈수를 두었다. “세자 부인, 마님께서도 이미 난향원에 가셨는데 며느리 된 도리로 가보지 않는다면 좋지 않습니다.” 유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멈 말이 맞습니다.”그녀는 옷을 챙겨 입고 아민에게 머리를 간단히 말아 올리게 했다. 심씨 어멈이 따라나서려 하자 유소영이 제지했다. “난향원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지 모르니, 어멈은 우선 유경원을 지키고 계세요.” “네, 세자 부인.”아민은 여분의 겉옷을 챙겨 들고 심씨 어멈을 한번 슥 쳐다본 뒤 유소영의 뒤를 따랐다. 향설원을 벗어나자마자, 아민이 소곤거리며 투덜댔다. “아씨, 심씨 어멈이 저렇게 서두르는 걸 보니 정말 심각한 상황인가 봅니다. 설마 죽는 건 아니겠죠?” 유소영은 단정 짓지 않았다. 하혈도 상황에 따라 다르고, 지혈만 할 수 있다면 목숨에 지장은 없을 터였다.공교롭게도 그들은 길 중간에서 고준형과 마주쳤다. “세자.” 유소영이 멈춰 서서 예를 갖췄다. 하얀 옷차림을 한 고준형은 어둠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밤중에 자신을 마중 나온 것은 아닐 테고.’ “어디 가는 길이오?” 그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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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임유정은 몸이 완쾌되지 않았음에도 성급히 합방을 시도하다 하혈을 일으킨 것이었다. 증상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출혈이 많아졌으니 실로 위험한 상태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임유정은 회임을 한 상태에서 불임약을 잘못 먹어 큰 타격을 입었고, 보약으로 몸을 회복하던 중이었다.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또다시 큰 충격을 받았으니 그 몸이 버틸 리 만무했다. ‘몸이 불편했다면 고장훈에게 멈추라고 해야지, 어찌 무리하게 합방을 시도했단 말인가?’유소영은 의아했으나, 곧 임유정이 재상부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점과 군량 사건이 떠오르면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친정에서 버림받아, 급히 고장훈을 붙잡으려 했던 것이로구나.’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었다. 이 시대에 여인이 남자에게 의지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임유정처럼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것은 결코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다.쾅! 문이 열리더니 몸종 진수가 달려 나와 크게 외쳤다. “신의께서 선학초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어서 선학초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유소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상황에 선학초를 쓴다고? 임유정을 죽이려는 건가?’ 의원으로서의 본능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선학초를 써서는 안 됩니다.”고 부인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뭐라고 했느냐?” 유소영이 예를 갖춰 답했다. “어머님, 동서가 저런 상태에서 선학초를 쓰면, 지혈이 아니라 출혈을 악화시킬 것입니다.” 진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세자 부인! 둘째 부인께서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전에 두 분께서 어떤 원한이 있었든 지금만큼은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고 부인도 거들었다. “안에 계신 신의는 설 신의의 제자다. 그분이 틀릴 리가 있겠느냐? 유소영, 네가 운 좋게 준형이를 구했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마라.”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유소영은 그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안의 돌팔이 의원이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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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고장훈도 그제야 고개를 들어 멍하니 유소영을 바라보았다. 몸종 진수는 임유정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에 무릎을 꿇었다. “세자 부인! 제발 자비를 베풀어 선학초를 돌려주세요! 정말 돌아가시게 생겼습니다! 세자 부인, 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고장훈은 극도로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그는 손을 내밀며 비굴한 말투로 애원했다. “이리 주시오. 부인을 이렇게 잃을 수 없소.”유소영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여기있는 분들 중 누구도 타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제게 그녀를 살릴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들어가서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출처도 모를 돌팔이 말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저에게 목숨을 맡길 것인지!” 그녀의 눈에 원한이나 감정은 없었다. 그저 눈앞에 놓인 한 인간의 목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보았다. 임유정은 세자 부인으로서 세자의 따뜻한 대우를 한 번도 받지 못한 채 저 압박감 가득한 유경원에서 3년을 버텼다. 후작부의 며느리로서는 그저 후사를 잇는 도구일 뿐, 시부모의 진정한 사랑과 존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인 임 재상에게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딸이었다. 가해자처럼 보였던 임유정도 사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자 부인이라는 자리와 작위에 얽매여, 자신도 모르게 날을 세우는 가련한 존재였다. 같은 목표를 가졌기에 적수가 되었지만, 오직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을 뿐이다.유소영의 기백은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고장훈은 멍하니 서서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고 부인은 그녀가 선학초를 망가뜨릴까 봐 재촉했다. “장훈아, 어서 들어가 물어보거라!” 임유정이 직접 입을 연다면 유소영도 더는 막을 명분이 없을 터였다. ‘간단한 일을 왜 이리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고 부인은 재상부의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절대 유소영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장훈은 즉시 방으로 들어가 유소영의 말을 임유정에게 그대로 전했다. 임유정은 지금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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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마당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유소영에게 쏠렸다. 설 신의 제자라던 자가 갑자기 유소영을 신의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소영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를 내려다보았다.고장훈이 직접 그자의 덜미를 움켜쥐었다. “감히 도망을 치려 해? 병을 고치지 못하니 이제 와서 설 신의 제자가 아니라고 발뺌하는 거냐!” 고장훈은 그가 임유정을 고치지 못할 것 같으니, 거짓말을 하고 도망가려는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고장훈에게 붙들린 돌팔이는 여전히 유소영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가 절규했다. “아닙니다! 전 정말 설 신의 제자가 아닙니다. 여기 계신 부인께서 진짜입니다, 이분이 진짜라고요!”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당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고장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려 유소영을 바라보았다. 돌팔이는 고장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시 유소영의 발치에 엎드려 아첨을 했다. “신의, 접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전에 설 신의와 함께 마을로 진찰을 오셨을 때 저희 어머니를 구해주셨잖아요. 제가 고맙다고 닭 한 마리도 드렸었는데.”고 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아이가 설 신의의 제자라고?” ‘그럴 리가 없다. 일개 장사꾼의 딸이 어찌 설 신의의 제자가 되었단 말인가!’고장훈도 경악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니 그럴듯했다.유소영은 줄곧 노부인의 약을 지어왔고, 당시 수많은 의원이 가망 없다고 그의 형님을 포기했을 때도 그녀가 살려냈었다. 또한 아민이 유소영은 설 신의의 제자라고 직접 말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믿지 않았다. 임유정이 설 신의의 제자는 남자라고 답했기 때문이다.“남자라고… 설 신의의 제자는 남자라고 했단 말이다.” 고장훈은 무언가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리며 유소영을 바라보았다.돌팔이는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렸다. “신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니었는데,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안의 부인께서 하혈이 심하게 하더니 혼절하셨습니다. 정말 해서는 안 될 짓을…”“나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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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고장훈은 앞으로 나서며 고준형을 향해 공손히 청했다.“형님, 통행 패 한 번만 빌려주십시오!”고 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장훈아, 너 정말……”“살려야 합니다!”고장훈은 어머니가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것을 원치 않는 듯 말을 가로챘다. 어찌 됐든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부인은 급히 그를 가로막았다. “그래도 입궁해서 시술사를 불러올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후작부의 추문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될 게야!”임유정이 대량 출혈을 일으킨 것은 장훈과의 부부관계를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이건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후작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망신인 것이다!“차라리 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다시 상의하자꾸나!”고 부인이 말했다.고장훈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그러다간 늦습니다…… 완희가 기다리지 못할 것입니다!”그때 고 부인의 시선이 유소영에게로 향했다.“소영아, 너는 설 신의의 제자이니 여인의 거세술을 분명할 줄 알겠지. 네가 맡아서 하거라!”그렇게만 된다면 양쪽 다 좋은 일이었다. 임유정의 목숨도 구하고, 추문이 밖으로 새 나가지도 않을 터였다. 고장훈도 그제야 정신이 든 듯했다. 왜 멀리서 답을 찾으려 했던가?그 역시 급히 유소영에게 도움을 청했다. “형수님, 제발 완희를 살려주십시오!”유소영은 얼굴을 굳혔다.“이 일은 결코 한두 시진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제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저는 그 분야에 경험이 없습니다. 궁중의 숙련된 시술사들이 저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아까 제가 동서에게 기회를 주었을 때 다들 들으셨다시피 동서는 저를 믿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의원을 믿지 못한다면 후환이 끝이 없을 것입니다.조금이라도 그녀가 생각하기에 잘못된 부분이 생긴다면, 제가 고의로 해치려 했다고 여길 것입니다. 같은 동서지간으로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녀가 저에게 오해와 원망을 품게 된다면 집안이 평안할 날이 없겠지요. 저는 그런 위험을 감당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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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유소영은 이미 임유정의 지혈을 도울 때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난향원을 떠나 채 멀리 가기도 전에 그녀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아씨, 괜찮으세요?”아민은 그녀의 걸음이 휘청이는 걸 보고 급히 부축했다.앞서 걷던 고준형이 그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무슨 일이오?”유소영은 억지로 정신을 차리며 아무 일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입을 열기도 전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아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힘이 세서 아씨를 직접 안아 올릴 수 있었지만, 반응하기도 채 하기도 전에 세자가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유소영을 가로채듯 받아안았다.고준형은 그녀를 안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아민에게 명령했다. “소란 피울 것 없다. 유경원으로 돌아간다.”이게 말이 돼?아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세자, 제가 가서 후작부 전담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고준형은 설명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를 안고 가버렸다. 아민은 당황했다.이걸 따라가야 하나, 아니면 내 멋대로 의관을 불러야 하나? 결국 세자의 호위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유경원 안에 의원이 있네.”아 그렇구나!그제야 안심한 아민이 서둘러 뒤쫓으려 했다. 그런데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세자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세자의 걸음이 이렇게나 빠르단 말인가? 몸이 약하고 병치레가 잦다는 소문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고준형은 유소영을 안고 곧장 향설원까지 돌아왔다. 이를 본 심씨 어멈이 크게 당황하며 달려왔다. “아니, 세자 부인께서 어찌 된 일입니까?” 사고가 난 것은 둘째 부인이 아니었던가? 어째서 세자 부인께서 쓰러지신 건지......혹시 피를 보고 놀라 기절하신 것일까?고준형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녀를 내실로 데려가 침상에 눕혔다. 이내 유경원의 의원이 도착했다. 그는 맥을 짚어보더니 금세 원인을 파악했다. “세자 부인께서는 비위가 허약하여 기혈이 부족한 상태이십니다. 가볍게는 식은땀, 가슴 두근거림, 현기증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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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난향원.충용 후작과 고 부인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씨 어멈 돌아오는 것을 보자 고 부인이 즉시 물었다. “유소영은 어찌 되었느냐?”“세자 부인께서 병으로 쓰러지셨다고 합니다!”“뭐라!” 충용 후작과 고 부인은 동시에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유소영이 임유정의 시술을 맡지 않으려고 꾀병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충용 후작은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내세우며 명령했다.“다시 가서 불러오너라! 이 몸의 뜻이라고 전해라. 설마 감히 시아버지인 내 명을 거역하겠느냐!” “예, 알겠습니다.”향설원. 의원이 유소영을 급히 진료한 후, 아민은 깨끗한 수건에 설탕물을 듬뿍 적셔 아가씨의 입술을 닦아내며 조금씩 흘려 넣어주었다. 방 안에는 둘뿐이라 분위기가 유독 쓸쓸하고 처량했다. 평소 덤덤하던 아민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가씨를 간호했다. 아가씨가 혼절한 상황도 슬펐지만, 그동안 아가씨가 겪어온 서러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탓에 세자와 이곳 유경원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그 옆 월하각.서재 안.호위가 안타까운 마음에 입을 열었다. “심씨 어멈이 아직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연세도 있으신데다, 세자 부인의 일은 꼭 심씨 어멈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않습니까……”고준형은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심하게 책장을 넘겼다. 시선은 여전히 책에 고정된 채였다. “들어와서 말하게 하라.” “예!”심씨 어멈은 무릎이 저려 덜덜 떨며 걸어 들어왔다. 고준형이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어찌하여 무릎을 꿇고 있었느냐.” 그는 그녀를 벌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심씨 어멈은 죄책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세자께서 세자 부인을 보필하라 하셨거늘, 세자 부인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세자 부인께 그 음식들을 다 먹으라고 강요까지 했습니다. 며칠 전이라도 알아챘어야 했는데...... 세자 부인께서 괴로움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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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충용 후작과 고 부인은 몹시 당황했다. 고장훈의 속도가 이토록 빠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고 부인이 멍한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요?” 충용 후작은 어금니를 깨물며 자식을 향한 원망을 삭였다. 그러더니 이내 그 화살을 고 부인에게 돌렸다.“보시오! 그대가 낳은 훌륭한 아들이 어떤 꼴인지! 그놈은 미색에 눈이 멀어 후작부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소! 난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소! 이제는 관여할 수도 없고!” 그는 성을 내며 난향원을 떠나 버렸다. 말 그대로 손을 털어 버린 것이다.고 부인은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화가 치밀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을 떼겠다고? 장훈이가 본인 아들이 아니란 말인가? 일이 터지면 죄다 제 탓으로 돌리지만, 정작 본인은 도망치기에만 급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십만 금의 빚을 졌을 때도 그는 똑같이 굴었었다.……유경원. 유소영이 의식을 되찾았다. 그녀는 속눈썹을 가늘게 떨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민이 감격스러운 듯 그녀를 불렀다.“아씨,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아까 난향원을 나오신 후에 바로 쓰러지셨어요. 의원 말이, 제대로 드시질 못해 몸이 허해진 탓이라더군요……” 거기까지 말하던 아민의 표정이 다시 걱정스럽게 변했다. “아씨, 세자께서 나으리를 모셔오라고 사람을 보내셨어요.”유소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왜 찾으시는데?” 그녀는 메마른 목소리로 답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민이 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며 설명했다.“아씨,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아씨께서 쓰러지신 뒤에 세자께서 이유를 물으셨는데, 제가…… 제가 입을 열지 않았더니 세자께서 바로 나으리를 모셔오라고 하셨어요.” 전말을 파악한 유소영은 그제야 조금 긴장을 풀었다. 유씨 가문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긴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 그녀는 머리가 무겁고 기력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난향원 쪽 상황은 어때?” 그 말에 아민이 분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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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유소영이 다시 물었다. “아니면, 세자께서 이토록 지출을 줄이시는 게 강 소저 때문입니까?”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혼례 예물을 준비하기 위해 평소에 절약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준형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패었다. 강지영 때문이라고? 유씨의 눈에는 병을 고치는 데 그렇게 많은 은전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내가 은전이 없다고 비꼬는 것인가?유소영은 그가 침묵하자 인정하기 부끄러워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장성한 남자가 돈이 없어 사랑하는 여인조차 아내로 맞이하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일 테니까. 사실 유경원의 장부가 어떻든 그녀와는 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을 주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의 삶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저 액땜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유소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제안했다. “세자, 앞으로 유경원의 비용은 제 장부에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평강방에서 삼만 냥을 들여 기관 꽃병을 사신 것도, 조만간 장부실을 시켜 세자께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자께서 그렇게 하신 게 평강방을 폐업하게 한 것이 간접적으로 유씨 가문에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해서 보태주려 하신 것임을 압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뭐든 형편에 맞게 하셔야지요. 제가 며칠 지켜보니 유경원의 형편이 정말 좋지 않더군요. 심씨 어멈과 다른 이들이 입은 옷은 하도 빨아서 하얗게 바랬고, 호위들도 하나같이 뼈만 앙상한 게 딱 봐도 밥을 제대로 못 먹은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후작부에 시집을 온 이상, 마땅히 후작부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지요.”유소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자신이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과도한 절약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괴로운 것보다 남을 괴롭게 만드는 편이 나았다.고준형은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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