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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1화

유소영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머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는지요?"고 부인은 조금도 좋은 기색 없이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꾸짖었다."네가 감히 날 속이려 들어?""내가 사람을 시켜 알아봤다. 요 며칠, 너와 준형이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더구나! 단 한 번도 말이야!"유소영의 안색이 굳어졌다.확실히 거짓말을 하긴 했다.고 부인의 추궁에 그녀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썩 무릎 꿇지 못해!" 고 부인은 화가 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이 앙큼한 것! 정말 마음 놓을 수가 없게 만드는구나!준형이의 아이를 낳으라는데 그게 억울하기라도 하다는 거야?……황궁.조회.대리시 관원들이 연명으로 고준형을 탄핵하며, 이삭을 체포한 행동이 규정에 어긋난다고 고발했다.고준형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관원들도 적지 않았다."이삭이 조정의 관원을 해치려 했으니 당장 체포하는 게 마땅하오!"왕위에 앉은 황제가 사태를 수습했다."이삭을 체포한 일은 짐이 이미 알고 있었다. 짐이 윤허한 일이다! 만약 이삭이 결백하고 잘못이 없다면 자연히 풀려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자가 군량 횡령 사건에 가담하고 형부 관원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대들 중 누구든 다시 그를 위해 선처를 구한다면 같은 당파로 간주하여 함께 형부에 가두고 심문하겠다!"황제의 옹호 덕분에 조정의 분쟁은 잠시 가라앉았다.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이었다.조회가 끝난 후, 이황자가 고준형을 불러 세웠다.이황자는 사람을 너그럽게 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성격이 너무 유순한 탓에 폐하의 마음에 들지 않아 줄곧 냉대를 받아왔다.그는 그것이 익숙해져 조회에서도 의견을 내는 일이 드물었다.오직 고준형과 함께일 때만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그가 주의를 주듯 말했다."부황께서 지금은 세자를 감싸며 뭇사람의 반대를 물리치고 군량 횡령 사건을 조사하게 해주셨소.""그러나 자네도 잘 알다시피 어떤 것들은 누르면 누를수록 더 거세게 튀어오르는 법이지.""부황께서 기한을 정해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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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후작부, 영향원.고준형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뙤약볕 아래 서 있는 유소영이 보였다. 그녀의 안색은 창백하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아민은 정청 문밖에 무릎을 꿇은 채 안쪽을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마님, 제발 아씨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요!”안에서 매서운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시끄럽다! 꿇어앉히지도 않고 그저 규율 좀 익히라고 세워뒀을 뿐인데, 그게 사람 잡을 일이더냐?“고준형은 성큼성큼 다가가 유소영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는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그녀를 끌어냈다.유소영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세자?”분명 관서에 계셔야 할 시간인데?아민은 세자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이내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확인하고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정청 안.고 부인은 고준형을 보자마자 대뜸 화부터 냈다.“이 불효막심한 녀석! 네가…….”“어머니, 이 사람을 탓하지 마십시오. 제 잘못입니다.”고준형은 차분한 어조로 고 부인의 말을 끊으며 유소영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고 부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불같이 화를 냈다.“내가 쟤를 괴롭히기라도 했다는 게냐?”“그럼 너희는 무슨 짓을 했고!”“마음 잡고 아이를 갖겠다고 약조해 놓고는 감히 이 어미를 속여! 성현의 책을 읽었다는 놈이 고작 어미를 이렇게 대접한단 말이냐!!!”유소영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시어머니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일이 어디 당장 서두른다고 될 일인가.고준형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원치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요 며칠 범인을 잡느라 부상을 입어 마음은 굴뚝같으나 몸이 따르지 않았을 뿐입니다.”고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준형이, 너…… 다친 게냐?”고준형은 유소영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못 믿으시겠다면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십시오.”고 부인은 정말로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그도 그럴 것이,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그녀는 즉시 하인을 불러들였다.이내 하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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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유소영은 강회산의 장부에 얽힌 사정을 빠짐없이 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자신의 추측까지 덧붙여서 말이다.이야기를 전해 들은 유 대감의 표정이 복잡하게 가라앉았다.“그렇다면 그 당시에 네 오라버니를 핍박하고 모함한 주모자가 임 재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냐?”유소영으로서도 심증일 뿐이었다.그러나 현재의 증거가 가리키는 바에 따르면 확실히 임 재상이 가장 혐의가 짙었다.유 대감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세자께서 이미 증거를 잡으셨다면서 어찌하여 당장 잡아들이지 않는 게냐? 한번 심문해 보면 그자인지 알 수 있을 텐데!”유소영이 설명했다. “임 재상은 권세가 드높은 분이에요. 조정에서 형부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터라, 함부로 재상을 구금하여 심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어찌 그것이 함부로 구금하는 것이란 말이냐?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냐!”유 대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유소영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 “세자께도 다 계획이 있으실 거예요.”유 대감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이제는 기승전결 세자 이야기로구나! 좋다! 네가 그분을 믿는다면 이 아비도 믿으마!”유소영의 얼굴에 쑥스러운 기색이 스쳤다.“아버지도 참,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유 대감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앞으로 세자께서 어떻게 파헤치실지, 얼마나 밝혀내실지 지켜봐야겠구나.”……형부.심문실 감옥 안.이삭은 형틀에 묶인 채 고준형을 향해 악을 썼다.“화는 처자식에게 미치지 않는 법이거늘! 볼일이 있으면 나한테 올 것이지! 처자식을 면회시켜 자백을 받아내려 하다니, 꿈도 꾸지 마시오!”고준형의 눈빛은 평온했다.“장부는 누구에게 넘기셨습니까?”이삭의 손에 있던 그 훼손된 장부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날 밤 장부를 빼앗은 뒤, 누군가에게 넘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내가 숨겼소! 세자는 절대 못 찾을 거요!”이삭이 소리쳤다. “어서 형벌을 가해 보시오! 이곳 형부는 내게 세자보다 훨씬 익숙한 곳이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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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후작부.영향원.고 부인이 물었다. “장훈이는 요 며칠 계속 진영에서 묵고 들어오지 않은 게냐?”국씨 어멈이 고개를 숙였다.“예, 그렇습니다.”고 부인은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며 눈가에 조소를 띠었다.“예전에는 임유정을 그리도 좋아하더니 벌써 싫증이 난 게야. 그 점 하나만큼은 지 아비와 똑같구나.”그녀가 충용 후작과 막 혼인했을 때도 꿀처럼 달콤했으나, 지금은 원망만 남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민씨 그 여우년과 그 배 속에 든 아이까지 참아내야 하다니!후작부의 작위가 그 늙다리 차지가 될 것을 생각하니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절대로 그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게 둘 순 없었다!“준형이의 상처는 의원이 뭐라고 하더냐?”고 부인은 그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일이 터지다니.심지어 준형이가 스스로 상처를 낸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국씨 어멈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며칠만 지나면 완치될 것이니 부부간의 합방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월하각.고준형이 돌아오자 유소영은 저녁 수라를 올리라 명했다.“세자, 이삭이 오늘 자백했나요?”고준형은 그녀와 이 문제를 논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아직이오. 그러나 이미 동요하고 있소.”유소영은 결과가 더 중요했다.지금으로서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그렇다면 아직 임 재상이 배후라고 지목할 수 없는 건가요?”“그렇다고 할 수 있소. 그러나 그 장부는 이미 중요한 죄증이니, 이삭의 진술이 없더라도 그 단서를 쫓아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거요.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하오.”유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긴 줄로 대어를 낚는다는 말이군요. 너무 일찍 낚싯대를 들어 올리면 물밑의 고기가 놀라 달아날 테니까요.”고준형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아주 둔하진 않군.”유소영은 그 말이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순간 분간이 가지 않았다.이윽고 고준형이 침상을 바라보았다.“어머니께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셨으니, 이후로는 그리 심하게 감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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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유소영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이 부인, 그런 일은 제게 물으실 게 아닙니다.”류아연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고 세자에게 물을 수 있었다면 굳이 세자 부인을 불러냈겠습니까?”유소영은 침묵을 지켰다.그녀가 알기로는 강회산의 장부에 이 좨주의 이름은 없었다.그러나 사건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장부에는 없지만 실제로는 가담한 이삭 같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부인에게 이 좨주가 틀림없이 무사할 것이라고 확답할 수 없었다.류아연은 유소영의 반응을 예상한 듯했다.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그저 나른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밖의 전기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어렴풋한 비애가 서려 있었다.“우리 같은 여인들이야 좋은 낭군 만나기를 바랄 뿐이지요. 사내는 여인의 하늘이라는데, 그 하늘이 무너진다면 여인이 어찌 살 수 있겠어요?”유소영은 대꾸하지 않았다.이 세상 이치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았다.류아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더니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재혼을 해서도 고 세자 같은 사내에게 시집갔으니 부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하지만 난 세자 부인이 부럽지 않아요. 내가 보기에 고 세자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겸손해 보여도, 뼛속 깊은 곳은 누구보다 오만한 사람이거든요.”“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부인이 나를 사모님이라 불렀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나으리와 혼인한 후 고 세자가 문안을 왔을 때도 나를 사모님이라 높여 불렀던 게 생각나는군요. 하지만 그때 난 분명히 봤어요. 그의 눈에 서린 냉담함을 말이예요. 그는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겁니다.”“그는 은혜를 갚으려 세자 부인과 혼인한 것이니, 딱 세자 부인이라는 자리만 줄 뿐 그 이상은 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어떤 것들은 세자 부인이 직접 쟁취해야 해요.”그녀는 갑자기 화려한 겉치장을 씻어낸 듯, 평소의 요염함은 온데간데 없이 진중하게 충고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변했다.유소영은 진지하게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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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서재 안은 죽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고준형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석심.""예!""물러가라.""……알겠습니다!"석심은 쌩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눈치 빠르게 방 문까지 닫아주었다.유소영은 진지한 얼굴로 고준형을 빤히 응시했다."세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고준형 역시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중하고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제정신이오?"유소영은 의아했다.취한 것처럼 보이나?"세자, 저는 아주 멀쩡합니다." 유소영이 한 걸음 다가서자 그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되었다.고준형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옥석처럼 맑고 투명한 눈동자였다."아이는 권력 쟁취의 도구가 아니오. 이 점을 분명히 알겠소?"유소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럼, 세자께서는 동의하시는 겁니까?"겉으로는 침착하고 태연해 보였지만, 소매 속의 손은 꽉 쥐어져 있었고 심장은 쿵쾅거렸다.아이를 낳는 문제를 여자의 입으로 먼저 꺼낸다는 것이 아무래도 좀 민망했다.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반드시 마주하고 계획해야 할 일이었다.세자에게 시집을 온 순간부터 돌아갈 길은 없었다.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상, 끝까지 올라가야만 했다…….짧은 침묵 속에서 유소영은 많은 생각을 했다.그녀는 초조하게 고준형의 대답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온화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인은 내 정실이오. 그런 일에 굳이 내 동의는 필요 없소."유소영은 순간 멍해졌다.무슨 뜻이지? 그러니까 동의한다는 건가?고준형은 무심하게 문서를 펼쳐 들며 말했다. "먼저 돌아가시오. 이것들을 처리하고 안방으로 가겠소."유소영의 마음이 복잡해졌다."예."서재를 나오자 밖에서 아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어떻게 되셨어요, 아씨?"아민은 아씨의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세자의 생각은 알 수 없었다.그녀의 눈빛에는 기대와 걱정이 섞여 있었다.유소영은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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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방 안.유소영은 막 목욕통에서 나와 몸을 닦던 중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아민이라 생각한 그녀는 침의를 걸치며 물었다.“어때, 심씨 어멈이 뭐라던? 첫날밤에 주의할 점이라도 일러줬어?”병풍 너머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방금 들린 문소리가 착각인가 싶을 정도였다.유소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레 불렀다. “아민?”“나다.”철렁!유소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어찌 세자가?방금 한 말을 세자께서 다 들으셨단 말인가!?유소영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이 흘렀다.유소영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다듬고 밖으로 나갔다.세자가 탁자에 앉아 그녀가 정리해 둔 점포 장부들을 넘겨보고 있었다.고준형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이 장부들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군. 어릴 때부터 익힌 솜씨 같소.”유소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철들 무렵부터 아버지께 배웠습니다.”고준형은 몇 장을 더 넘겨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항목이 명확하고 깔끔하니 웬만한 회계선생보다 낫소.”유소영은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조막만한 얼굴에 복잡한 감정을 내비쳤다.“세자, 목욕을 하시겠습니까?”고준형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먼저 머리부터 말리시오. 잠시 후 나와 함께 갈 곳이 있소.”유소영은 의아했다.이 늦은 시각에 어딜 간단 말인가?설마 합방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끄는 건가?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유소영은 불만이 없었다.오히려 안도감과 다행스러움이 느껴졌다.그녀 또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유소영은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은 뒤, 면포로 젖은 머리를 조금씩 닦아냈다.청동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정말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된 것이 맞을까?…….깊은 밤, 사방이 고요했다.후작부 후문 앞에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유소영은 고준형을 따라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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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온천 산장.유소영이 앉아서 선향 한 대를 피워서 꺼질 때쯤 기다리자, 고준형이 들어왔다.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마치 불꽃이 튀듯 유난히 귀를 찔렀다."세자……."밖에서 불어온 바람은 다소 후덥지근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고준형은 흰 옷을 입고 있었는데, 차림새가 단정했다.그는 방 안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여인을 바라보더니 꽤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어찌 갑자기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거요?"유소영은 목이 타들어 갔다."이 세상에서 여인이 살아남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저희는 반드시 사내에게 의지해야 하지요. 처음엔 아버지, 그다음엔에는 남편, 훗날에는 아들에게 말입니다."고준형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되물었다."말하자면 부인에게는 이미 아버지와 남편이 있으니, 이제 아들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오?"유소영은 부인하지 않았다.고준형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유소영은 왠지 모르게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두어 발자국 쳤다.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세자가 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그리고 온천욕을 마친 후에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문득 깨달은 것이다…….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듯 격렬하게 뛰었다.애써 억누르려 했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그때, 사내가 입을 열었다."방금 부인이 한 말은 확실히 대다수 여인의 처지가 맞소.""그러나 부딪쳐 보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겠소?"유소영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고준형의 눈빛은 온화했다."부인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오. 만약 정말로 이 아이를 낳는다면 도리어 부인에게 족쇄가 될 것이오."유소영은 더욱 의아해졌다."세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제 청을 들어주기로 한 것을 후회하시는 겁니까?"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그 동작은 부드러우면서도 강압적인 면이 있었다.반응할 틈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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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산장 밖.조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살기가 어렸다.그는 고준형을 똑바로 쳐다보며 성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지영이의 마음의 병이 깊다는 걸 알기나 하오! 나한테 그 아이를 떠넘기고 여기서 유유자적 즐기고 있다니…… 은사를 뵐 면목이나 있소?”고준형의 시선은 평온했다.“강 소저를 잘 돌볼 수 있다고 한 건 조 대인 아니었소?”조담은 참을 수 없어 앞으로 나서며 고준형의 멱살을 잡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억누른 분노가 역력했다.“그렇다고 손을 떼겠다는 게요? 지영이가 지금 자결하겠다고 난리란 말이오. 당장 나와 같이 가야겠소!”고준형은 가볍게 조담의 손을 밀어냈다.“부인과 약조했소. 오늘 밤은 곁에 있어 주기로.”조담이 주먹을 꽉 쥐었다.“고준형! 자네에게 심장이 있긴 한 거요? 지영이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오. 죽을 수도 있단 말이오! 내가 지영이를 잘 아오. 그 아이는 차마 널 죽이지 못해. 그저 해명을, 답을 원할 뿐이오!”고준형의 눈빛은 서늘하고 냉정했다.“의원을 불러 잘 보살피게 하시오. 그리고 전하시오. 그 아이가 죽든 살든 나와는 상관없다고. 허나 그 목숨은 은사께서 지켜내신 것이라고.”조담은 그가 매정한 줄은 알았으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나와 같이 가서 지영이를 봐야겠소. 안 그러면 힘을 써서라도 데려갈 테니 원망 마시오!”고준형의 뒤에 있던 호위들이 일제히 나섰다.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바로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세자, 조 대인. 무슨 일이십니까?”고준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다정한 눈빛으로 몸을 돌렸다.그는 유소영의 걱정 어린 물음에 안심시키듯 답했다. “사소한 오해가 있었소.”조담도 말없이 손짓하여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다.유소영은 방금 두 사람이 주먹다짐이라도 할 기세였음을 눈치챘다.그러나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조담이 그녀에게 직접 말했다.“지영이가 죽음으로 위협하며 세자를 만나겠다고 하오. 의원의 어진 마음을 가진 세자 부인, 차마 그 꼴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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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온천 산장.유소영과 고준형은 함께 석탁에 앉아 있었다.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 “세자, 평생 강 소저를 보지 않으실 작정입니까? 사실 강회산을 참수형에 처한 것은 세자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잘 설명한다면 강 소저도 이해할 것입니다.”고준형은 덤덤히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부인이라면 나를 용서하겠소?”유소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뭐라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방금 제가 한 말은 제 생각만 앞세운 것이었습니다.”“강 소저가 혈육을 잃은 심정은 남이 온전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겠지요.”고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알면 되었소.”진상이 어떠한지는 때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그래서 그는 굳이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남들이 보기에 해명은 변명일 뿐이며, 오히려 오해만 더 키우게 마련이니까.고준형이 유소영을 바라보았다. “술은 잘하는 편이오?”화제가 너무 급작스레 바뀌자 유소영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너무 독한 술만 아니라면 천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죠.”고준형이 고개를 돌려 석심에게 일렀다.“지하실에 가서 술 한 단지를 가져오너라.”유소영은 지난번 친정에서 식사할 때 고준형 앞에서 취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조심하며 많이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러나 술향이 피어오르자, 그녀는 금세 기분이 들떴다.……한 시진 후.마당에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석탁 위는 다소 어지러웠다.유소영은 한 잔 또 한 잔 술을 들이켰고, 어느새 두 볼이 발그레해졌다.고준형은 그녀가 취할까 염려되어 말리려 했다.“이미 반 단지나 마셨…….”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유소영이 웃으며 말했다.“세자, 혹 아까워서 그러십니까? 하긴 술맛이 아주 깊은 것이 꽤 오래 묵힌 듯합니다. 제가 오늘 다 마셔버리면 아까워하시는 것도 당연하지요.”“확실히 오래 묵히긴 했소. 예전에 폐하께서 하사하신 공주이니.”유소영이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폐하께서 술을 하사하셨다고요?”고준형의 눈매에 웃음기가 어렸다.“신기하오?”“예. 아무래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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