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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고준형은 차분하게 흑돌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빛은 맑고도 깨끗했다.“신은 그저 은사를 위해 공도를 바로잡고 싶을 뿐입니다.”황제가 한숨을 내쉬었다.“과연 그런 연유였더냐. 그렇다면 무리가 아니로군.”다만 조금 의외였다. 겉보기에 고준형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또다시 바둑돌 하나가 내려앉았다.황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짐의 탄신일 전까지 형부는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짐은 조정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다른 이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고준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예, 알겠습니다.”후작부로 돌아가는 길.고준형의 마차가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혔다.마차 안.복면을 쓴 사람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가주께서 또다시 서신을 보내 재촉하셨습니다.”고준형의 안색은 마치 차가운 연못에 고인 물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강씨 가문 사건은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예, 이미 가주께 서신을 올렸습니다. 가주는 세자의 일을 우선으로 하되, 부디 약속을 어기지 마시고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번 찾아뵙기를 바라셨습니다.”고준형은 입을 열지 않았으나, 그 눈빛만은 무심하고도 싸늘했다.복면인은 감히 더 재촉하지 못한 채 가주의 말을 전하고는 곧바로 마차를 떠났다.…….초왕부.유소영이 초왕부를 나서려던 찰나, 조담과 마주쳤다.조담이 간결하게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형부의 수사 진척에 불만을 품고 고준형을 입궁시켜 하문하고 계시오.”유소영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폐하께서 많이 노하셨습니까?”조담이 엄숙한 표정으로 답했다. “장담하기 어렵소.”그녀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는 잠시 호흡을 골랐다.“폐하께서는 현명하시니 기껏해야 한두 마디 물으실 뿐, 그 일로 벌을 내리지는 않으실 거요.”유소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리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왕세자.”“내게 고마워할 것 없소. 딱히 도움 된 것도 없으니. 고준형 그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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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월하각.유소영은 폐하의 소견에 대해 물었다.고준형은 태연하게 반응했다. “생신 연회 전에는 이 사건의 매듭을 지어야 하오.”“그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것 아닙니까? 시간이 될까요?”유소영은 절로 걱정이 앞섰다.고준형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안색은 침착하고 차분했다.“근래 합동 심문 중에 죄인 몇 명이 입을 열어 임 재상을 지목했소.”“그럼 진전이 있는 것입니까?”고준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진술만으로는 은사께서 당시 임 재상의 명을 받았다는 걸 증명할 수 없소.”유소영의 미간이 좁혀졌다.“지금 사건을 종결하면 기껏해야 평담 전쟁 선에서 마무리될 테고, 임 재상은 막북 전쟁 때의 군량 횡령에 대한 추궁을 피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되면 제 오라버니의 사건도 어영부영 묻히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고준형이 그녀를 응시했다.“비슷하오. 당장은 두 사건을 연결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오. 두 차례의 군량 횡령 모두 임 재상이 배후에서 꾸민 짓임을 증명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평담 전쟁 조사에서 끝날 뿐, 더 깊이 파고들 수 없소.”“단순한 심증만으로 일국의 재상을 조사하겠다고 하면 폐하께서도 허락하지 않으실 테고.”유소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관건은 역시 강 소저에게 있었다. 그녀가 조속히 기억을 되찾아 장부를 내놓는다면...... 아직 늦지 않을 것이다.고준형은 그녀의 표정이 무거워지자 적당히 화제를 돌렸다.“오늘 어머니께서 부인을 찾으셨소?”유소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음…… 예.”시어머니가 물었던 일들이 떠올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준형이 재차 물었다. “부인을 곤란하게 했소?”“아니요.”유소영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오늘 좀 일찍 강 소저를 보러 가시지요. 그런데 세자께선 그동안 장부를 찾으려 시도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강 소저가 장부를 어디에 숨겼을지 단서가 전혀 없나요?”“찾을 만한 곳은 다 뒤져보았으나 단서는 없었소.”유소영이 거침없이 직언했다.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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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비녀가 고준형의 복부를 찌르자, 사방은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특히 곁에 서 있던 이삭의 눈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핏발 선 강지영의 눈동자에는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고 살기가 서렸다.“죽어! 죽어 버려!!!”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고함과 함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고 대인!”이삭은 황급히 강지영의 손을 붙잡고 비녀를 고정해 더 깊이 박히지 않도록 막았다.마당 입구를 지키던 석심도 즉시 달려와 강지영의 어깨를 낚아채고는 그녀를 밀쳐 냈다.강 소저가 갑자기 발악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유소영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호위들이 강지영을 제압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유소영의 귀에 목이 쉰 짐승의 괴성같은 소리가 들려왔다.“죽여 버릴 거야! 죽일 거라고! 이거 놔! 저놈을 죽여야 해!”유소영은 곧장 고준형의 곁으로 달려가 상처를 살폈다.비녀는 제법 깊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먼저 부상 부위를 확인한 뒤, 곧바로 석심에게 지시했다. “조심해서 세자를 부축해라.”이삭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고 대인의 상처가 위중합니까?”유소영은 세자의 상처에 집중하느라 대답하지 않았다.상태를 확인한 그녀는 정확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비녀를 단번에 뽑아냈다.다행히 비수가 아니라서 상처는 크지 않았다. 내장도 다치지 않아 출혈은 금방 잡을 수 있을 터였다.몸종 부용이 뒤따라 나왔을 땐 이미 사단이 난 후였다.그녀는 강지영이 걱정되어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아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벌을 주시려거든 차라리 제게 내려 주십시오! 아씨께서는 병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십니다. 너무 불쌍하신 분이에요…….”부용은 꽤 충심이 깊어 일이 터지자마자 주인부터 보호하려 들었다.그러나 지금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어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유소영은 고준형의 상처를 지혈한 뒤, 침착하게 석심에게 명했다. “세자를 방으로 모셔라. 나는 마차에서 약을 가져오겠다.”“예!”자리를 뜨기 전, 유소영은 강지영을 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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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고준형은 서늘한 눈빛으로 유소영을 뚫어지게 응시했다.“확실한가?”유소영 또한 확신을 가지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그래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다른 원인일 수도 있겠지요. 예전 할머님 별원에서 강 소저가 이유 없이 발작했던 것처럼요. 그러나…….”고준형이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할 말이 있다면 편히 해 보시오.”“제가 의심이 많은 것일지도 모르나, 부용의 신분에 대해 세자께서 알아보신 적이 있으신지요?”“부용을 의심하는 거요?” 고준형이 물었다.“예. 부용은 강 소저를 가장 옆에서 모시니 그 아이부터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고준형의 눈빛이 깊어졌다.“부용은 내가 직접 골랐으나...... 매수당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지. 사람을 시켜 샅샅이 조사하겠소.”말을 마친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세자, 어디 편찮으십니까?” 유소영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걱정스레 물었다.고준형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숨소리가 다소 거칠어졌다.“상처가 갑자기 욱신거리는군. 별일 아닐 거요.”유소영은 즉각 반박했다.“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제가 좀 보겠습니다!”고준형은 허리를 펴며 다가오는 그녀의 손을 밀어냈다. “괜찮소.”마차 안이 어두운 데다 후작부에 거의 다다랐기에 유소영은 더 고집부리지 않았다.후작부에 돌아가서 살피면 될 일이었다.월하각.안방.유소영은 돌아오자마자 고준형을 자리에 앉히고 상처부터 살폈다.고준형은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그녀의 말대로 침상에 앉았다. 이어서 허리띠를 풀고 상의를 허리까지 내리니 복부의 상처가 드러났다.문밖에 서 있던 석심이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안을 훔쳐보았다.그럴 리가 없는데?붕대를 얼마나 꼼꼼하게 감아 줬는데......세자께서 꾀병을 부리시는 건가?방 안.유소영은 얼굴이 다소 화끈거렸다.예전 같으면 딴생각 없이 대했겠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는 엄연한 그녀의 부군이었고 한 이불을 덮고 잠든 적도 있었다…….아무래도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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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고준형의 시선은 담담했다. 마치 깊은 가을 아침 이슬처럼 밤새 맺힌 한기가 녹아내려 온기가 감도는 듯했다.“긴장할 것 없소. 그저 물어본 것이니. 새 붕대를 좀 주시오. 나 혼자 감을 수 있소.”유소영은 그 앞에 서서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제가 하겠습니다.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그녀는 그가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붕대를 가지러 갔다.고준형은 그곳에 앉아 옅은 안개가 서린 듯한 눈빛으로 유소영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붕대가 한 바퀴, 두 바퀴 감겨 나갔다.유소영의 마음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처치를 마친 그녀가 당부했다. “며칠간은 물이 닿으면 안 됩니다…….”고준형은 상의를 걷어 올리며 꽤 자연스럽게 물었다.“목욕은 어찌하면 좋겠소?”“욕조에서 하는 목욕은 안 됩니다. 사람을 시켜 몸을 닦으셔야…….” 말을 잇던 유소영이 그를 바라보며 정색하고 말했다. “제가 시중들 수도 있습니다.”고준형의 얼굴에 어렸던 미소가 살짝 굳어졌다.“그럴 필요까진 없소.”그가 막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눈앞에 불쑥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뒤이어 부드러운 감촉이 입가에 내려앉았다.고준형의 미간이 좁혀지고 동공이 미세하게 커졌다.유소영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기색이었다.유소영은 그의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더 이상의 과한 행동 없이 재빨리 떨어졌다.그녀는 두려움 없이 그 앞에 서서 확고한 눈빛을 보였다.“어젯밤은 경황이 없어 제 마음을 세자께 제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방금 그것이…… 제 대답입니다.”고준형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가 여전히 의외인 듯했다.유소영은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그러면 잠시 후 세자의 목욕 시중은 제가 들겠습니다.”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정형화된 미소를 보며 준형은 깨달았다. 그녀가 또다시 위장을 시작했다는 것을.마치 사냥꾼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그들과 동류인 척 위장하는 토끼처럼 말이다.그러나 그의 눈에 그녀의 방어는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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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고준형의 복부 상처가 욱신거려 왔다.그는 유소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부부 사이니 한 침상을 쓰는 것도 무방하오. 다만 내 몸에 상처가 있어 불편할 듯하니, 요 며칠은 서재에서 묵는 것이 좋겠소.”유소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세자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쉴 테니 세자께서도 일찍 주무십시오. 무리하여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고요.”분명 평범한 위로의 말이었으나, 고준형에게는 어딘가 비꼬는 듯한 어조로 들렸다.그녀가 예전에 장훈에게도 저렇게 대했었나?유소영이 나간 뒤, 고준형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이튿날.이른 아침, 유소영은 석심의 호위를 받으며 대리경 저택으로 향했다.지난밤 강지영이 걱정되어 한참이나 마음을 썼던 탓이었다.오늘 다시 만난 강지영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근심 걱정 없이 마당에서 꽃을 심고 있었다.그 곁을 지키고 있는 몸종 부용의 모습 또한 평온해 보였다.“세자 부인!”부용이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강지영도 자리에서 일어나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유소영은 부용을 물러가게 한 뒤, 강지영과 단둘이 남았다.그녀는 손을 뻗어 강지영의 맥을 짚었다.맥상은 평온했다.강지영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언니, 제가 병에 걸렸나요? 부용이 그러는데 제가 많이 아파서 약을 먹어야 한대요. 그리고…… 제가 준형 오라버니를 찔렀다고…….”고준형의 이야기가 나오자 강지영의 얼굴에 괴로움과 죄책감이 떠올랐다.“고의가 아니었어요! 기억도 안 나요. 언니, 준형 오라버니는 괜찮으세요? 많이 아프신가요?”유소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세자께서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으셨을 뿐이에요. 소저를 탓하지 않으십니다.”강지영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 준형 오라버니가 정말 걱정됐어요. 언제쯤 저를 보러 오실까요? 여기 있기 싫은데…….”유소영은 한동안 그녀 곁에 머물며 상태를 살폈다.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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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유소영은 강지영을 응시하며 차분하게 설명했다.“소저의 부친께서 돌아가신 건 세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죄가 무겁다는 걸 아시고, 조정의 혼란을 잠재우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겁니다. 그러니 이 일을 세자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됩니다.”강지영이 코웃음을 쳤다.“고준형이 말해주던가요?”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유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세자께 여쭤보세요. 두 분 사이에 오해가 쌓인 지 오래되어…….”강지영은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설득을 듣지 않으려 했다.“뭐라 하시든, 장부를 원한다면 제 요구를 들어주셔야 해요.”유소영은 그녀가 요지부동이자 더는 긴말하지 않았다.“알겠습니다. 소저의 말씀을 빠짐없이 세자께 전해드리지요.”말을 마친 유소영은 자리를 뜨려 했다.강지영이 문득 그녀를 불러 세웠다.“고준형을 좋아하세요?”유소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분은 제 부군이십니다.”동문서답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러나 강지영은 총명하니 그 대답의 의미를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었다.대답을 피하는 건 대부분 듣기 좋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니까.…….유소영은 강지영이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았다.그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기다릴 수가 없어 곧바로 석심에게 형부로 가자고 했다.관서 안.유소영은 작은방으로 안내되었다. 침상이 놓인 걸 보니 세자가 평소 휴식을 취하는 곳인 듯했다.잠시 기다리자 고준형이 도착했다.붉은 관복을 차려입은 사내는 관옥처럼 수려한 얼굴이었다.유소영은 그를 보자마자 방문부터 닫았다.고준형은 그녀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일이오?”유소영은 그에게 다가가 시선을 맞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좋은 소식은 강 소저가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는 겁니다.”고준형은 언제나처럼 담담했다.그는 말을 듣고도 평온한 반응이었다.“부인의 침구술 덕분이오. 하지만 부인의 말을 들어보니 나쁜 소식도 있나보오. 맞소?”유소영은 침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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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선나라의 독약이…… 더 있습니까?” 유소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강지영이 세자에게 품은 원한은 단시간에 풀기 어려우니, 차라리 세자가 가사 상태에 빠지도록 꾸미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한이 풀리면 자연스레 장부를 내놓을 테니까!강지영을 아내로 맞이하는 일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니, 그사이에 무슨 변고가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고준형의 시선은 담담했다.“그 여인은 더 이상 실성한 상태가 아니오. 게다가 스스로 가사를 경험해 본 터라, 그리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거요.”유소영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럼 역시 먼저 혼례를 치르시려는 겁니까?”고준형은 말이 없었다. 그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이윽고 그는 찻잔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찻잎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직 대답하지 않았잖소. 내가 어찌 선택하길 바라오?”유소영은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더는 피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저는 당연히 집안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세자의 곁에 여인이 하나 줄어든다면, 그만큼 위험도 줄어들 테니까요.”그 말을 들은 고준형의 눈매에 의미심장한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평안이라…….”유소영은 그와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이 싫었다. 그에게 코가 꿰어 끌려다니는 듯한, 심지어 희롱당하는 기분마저 들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셨습니까?”고준형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긴 손가락으로 찻잔 벽을 감싼 채 눈을 내리깔자, 까마귀 깃털 같은 속눈썹이 반쯤 드리워져 눈 밑에 작은 그늘을 만들었다.“선택을 해야 할 사람은 강지영이지, 우리 두 사람이 아니오.”유소영이 미간을 찌푸렸다.“물론 강 소저도 강씨 가문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라고 있으니, 세자께서 요구를 들어주시든 아니든 장부를 내놓아야겠지요. 그러나…… 혹여 예전처럼 억울함을 푸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세자의 목숨만을 노릴까 염려됩니다.”사람의 마음이 증오에 가려지면 이성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고준형은 꽤 침착했다.“때로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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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조담은 강지영을 만나자 다른 사람들을 전부 나가게 했다.그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지영이 네가 기억을 되찾았다는 걸 알고 있다.”강지영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조담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깊었다.당초 아버지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조담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죽음을 면해주는 성지까지 받아 냈었다…… 고준형이 그렇게 독하게 굴지만 않았어도 아버지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지난 온갖 일들을 떠올리며 강지영은 조담 앞에서 가면을 벗었다.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네, 정말로 다 기억났어요.”다음 순간, 그녀의 안색이 싸늘하게 식었다.“어떻게 아셨나요? 고준형인가요, 아니면 그 부인이 말해 주던가요?”조담은 침착한 얼굴이었다.“고준형 곁에 사람을 심어 두었지. 유소영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네가 과거의 일을 기억해 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서둘러 너를 찾아왔지.”“사람을 심어 두셨다고요?”강지영의 청아한 얼굴에 의혹이 스쳤다.조담은 엄숙한 표정으로 순순히 인정하며 말했다.“그자를 믿을 수가 없어서다.”“일단 긴말은 나중에 하고, 널 데리고 여기서 나가야겠다!”강지영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왜 떠나야 하죠?”동시에 조담에 대한 경계심이 일어 두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었다.조담이 다급한 기색을 보였다.“나를 못 믿는 것이냐?”“설마 지금까지도 나보다 고준형을 더 신뢰하는 거냐? 그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 강씨 가문도 도울 수 없고!”강지영의 눈빛이 단호해졌다.“전 못 가요.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야 해요! 폐하께서 고준형에게 군량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게 하셨으니 이번이 유일한 기회라고요!”조담은 답답하다는 듯 나직하게 꾸짖었다.“어리석긴!”“누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준형에 대해서라면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그가 이번에 명을 받아 군량 횡령 사건을 조사하는 건 은사의 누명을 벗기려는 게 아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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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고준형이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의심을 하지는 않았소?”조담은 그가 건넨 찻잔을 받아 들었다.“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오. 대리경 저택에 경비가 삼엄하다 핑계를 댔으니, 오늘 밤 자시에 다시 잠입해 데리고 나올 참이오.”말을 마친 그가 유소영에게 시선을 돌렸다.“세자 부인은 어찌 이곳에 계시오?”유소영이 차분히 설명했다. “강 소저가 이제 막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뇌의 어혈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혹시라도 무슨 변고라도 생길까 염려되어 왔지요. 조 대인, 혹 강 소저에게 장부를 어디에 숨겼는지 물어보셨습니까?”“물어보았소.”조담은 찻잔을 내려놓더니 고준형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영이가 말하길, 두 사람이 처음 밀회를 즐겼던 장소라 하더군.”유소영은 다소 의아한 기색으로 고준형을 돌아보았다.고준형은 시종일관 태연했다.“난 강 소저와 선을 넘는 짓 따위 한 적 없으니, 조 대인은 날 떠보려 하지 마시오.”조담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명백한 실망의 기색이었다.“설령 진짜 밀회는 아니었다 해도, 두 사람은…….”“조 대인, 본론만 말씀하시지요.”유소영이 참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세자와 강 소저 사이에 개인적인 감정이 없었다지만, 설사 있었다 한들 그들의 과거지사나 애틋한 감정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관심도 없거니와 듣고 싶지도 않았다.오로지 장부의 행방을 빨리 알아내고 그 장부에 연루된 자들, 특히 강회산의 배후에 있는 주모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고 싶을 뿐이었다.조담과 고준형이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방금 말을 끊은 것이 무례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내 조담이 화제를 돌렸다.“음, 그럼 본론을 이야기하지.”“지영의 말로는 장부를 외조부 댁에 숨겼다고 하오.”고준형은 유소영의 찻잔에 차를 채워주며 입을 열었다.“주씨 가문 말이오? 일전에 사람을 보낸 적이 있는데 장부는 찾지 못했소.”“주씨 가문에 밀실이 하나 있다더군.”조담이 다시 유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이 모비의 생신이라 급히 돌아가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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