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 재상부.같은 달빛 아래, 고준형은 서재에 앉아 붓을 들어 서신을 쓰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여섯 글자만을 쓴 뒤 멈추어 버렸다.[소영, 나의 부인]그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채, 그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고, 마음 깊이 숨겨 둔 일들도 많았다.처음부터 그는 유소영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스스로 치르고 있었다……충용 후작부.난향원.영선화는 세상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고장훈은 문득 돼지우리 안의 돼지를 떠올렸다.그가 영선화를 혐오하게 된 것은 자신의 빚에서 비롯되었다.영선화가 아니었다면 그는 전당포에 가서 돈을 빌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마음에도 없는 여인과 억지로 혼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 여인이 마음에 품은 사람은 그의 형님이 아니던가.아니지.아직 그자가 자신의 형님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고장훈은 서재로 가서 임수옥이 그에게 건넨 초상화를 꺼냈다. 사씨 가문의 가주, 사영진의 초상화였다.그림 속 사영진은 희고 단정한 얼굴에, 견줄 데 없이 빼어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고장훈은 고준형과 무척 닮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사영진마저 함께 미워하게 되었다.만약 정말로 사씨 가문의 핏줄이라면, 대체 무슨 자격으로 후작부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단 말인가!세자 자리도, 유소영조차도, 모두 그의 것이 아니었다!……고준형은 서재에서 하룻밤을 잤다.날이 밝자, 심씨 어멈이 그의 세안을 시중들었다.그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세자, 오늘 선나라 사신이 황성에 도착합니다. 누가 오는지도 모르는데, 혹시 무언가 의심하지는 않을지요……”고준형의 표정은 무덤덤하여 마치 세상 일에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그가 나간 뒤, 심씨 어멈은 남아서 자리를 정리했다.책상 위에는 이제 막 첫머리만 적힌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심씨 어멈의 마음에는 괜스레 서글픔이 밀려왔다.——【소영, 나의 부인. 부인이 이 서신을 열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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