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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 Chapters

제851화

황궁, 어전 서재.황제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얼굴로 고준형을 바라보았다.“이번에 그대가 큰 공을 세웠다. 허나 선나라에서는 결코 그대를 가만두지 않을 터인데.”고준형은 차분히 답했다.“신은 후회하지 않습니다.”황제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그에게 당부했다.“그대도 짐도 잘 알고 있듯이,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험난한 일이 겹겹이 닥칠 것이야. 그대가 양나라로 돌아온 일을 두고, 조정 안에도 반대하는 자가 적지 않을 테지.”고준형은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황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정녕 사씨 가문과 연을 끊을 생각인가?”고준형이 고개를 들어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이었다.“그렇습니다. 이제 사씨 가문과는 더 이상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황제는 무심한 듯 붓을 들었다.“좋다. 그렇다면 일이 한결 수월해지겠구나.”고준형이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폐하, 옥체를 보중하십시오.”황제가 희미하게 웃었다.“하늘과 다툴 수만 있다면, 짐도 몇 해는 더 살고 싶구나.”“밖에서는 선나라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안에서는 신왕이 야심을 품고 있으니.”“이제 선나라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남은 것은 신왕을 처리하는 일뿐이다.”선나라는 본래 국력이 막강했으나, 이번 전쟁으로 세력이 크게 꺾여 더는 큰 풍파를 일으키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문제는 신왕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황제의 마음속에 큰 근심거리로 자리한 자였다.오랜 세월 양주를 근거지로 삼고 그토록 많은 병권을 손에 쥐고 있으니, 이런 자가 한번 반기를 든다면 나라를 뒤흔들 큰 재앙이 될 터였다.더구나 근래 들어 신왕이 양주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이런 큰 화근은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했다.황제의 눈빛은 차갑고 결연했다. 형제간의 정에서 비롯된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오직 황위를 지키겠다는 결심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두 나라의 화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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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고준형이 손수 죽을 떠 유소영에게 먹여 주었다. 제법 익숙한 손길이었다.그가 유소영의 물음에 답했다.“폐하께서는 신왕을 처리하기로 마음을 굳히셨소.”유소영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황제란 원래 그런 존재였다.어느 신하든 권세가 지나치게 커져 더는 다스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황제로서는 결코 그냥 둘 수 없는 법이었다.다만 지금 신왕이 쥐고 있는 병권의 크기를 생각하면, 황제라 해도 함부로 손을 대기는 어려웠다.신왕 한 사람을 처리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신왕 뒤에 버티고 선 수많은 장병들이었다.까닭 없이 그를 처형했다가는, 자칫 그 장병들이 반기를 들지도 몰랐다.유소영은 여러 생각에 잠겼다.“지금으로서는 신왕의 병권을 조금씩 깎아 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겠군요.”고준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그대가 신왕의 손에서 송씨 가문의 병권을 되찾아 온 것도, 바로 폐하의 뜻과 맞아떨어진 일이오. 하지만 신왕이 쥐고 있는 병권은 송씨 가문 하나에 그치지 않소.”유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염씨 가문도 있고, 선제께서 신왕에게 하사하신 병권도 있죠. 게다가 신왕은 사도 가문까지 노리고 있어요. 사도 장군이 연달아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 것도 다 신왕의 소행이었고요.”고준형이 그녀의 입가를 가만히 닦아 주었다.“사도 장군을 만나 본 적이 있소?”유소영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난번 선나라에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이 사도 장군이었어요. 제가 장여훈을 설득한 뒤로는 사도 장군도 우리와 손잡는 데 동의했고요. 하지만 그분은 워낙 신중한 성품인 데다, 장여훈은 늘 형세를 살피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라, 세 가문이 손을 잡는다 해도 그리 굳건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이번에 장여훈이 그녀를 해치려 했던 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장여훈은 오로지 이익만 좇는 자였다. 오늘은 신왕에게 맞서겠다 해도, 내일이면 신왕의 꾐에 넘어가 갑자기 등을 돌릴지도 몰랐다.고준형이 정색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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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고장훈은 잔뜩 챙겨 온 선물을 들고 유씨 저택을 찾았다.명목은 유소영과 갓 태어난 아이를 살피러 왔다는 것이었다.앞채.유 대감은 몹시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장훈은 사람들이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쉴 새 없이 이것저것 물어댔다. “유 대감, 소영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어째서 장씨 저택에서 나와 친정으로 돌아온 것입니까? 혹시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장씨 가문 사람들이 소영이를 괴롭힌다면 언제든 제게 말씀하십시오. 지금 저도 폐하 앞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는 몸이니……” 유 대감이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고 장군, 내 딸 일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고장훈의 웃음이 순간 굳었다.이내 그의 말투가 낮게 가라앉았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속에는 은근한 위협이 배어 있었다.“유 대감, 장사를 하시는 분이니 이해득실을 따질 줄은 아시겠지요.”“적국의 첩자와 너무 가까이 지내다가는 자칫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유 대감의 표정이 굳어졌다.“고 장군, 그 말은 틀렸네.”“적국의 첩자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고장훈이 노골적으로 말했다. “고준형을 이 댁에 들이신 것부터가 적국과 결탁했다는 혐의를 살 만한 일입니다. 저는 그저 호의로 미리 일러 드리는 것뿐이니……” “그것이 일러 주는 것이냐, 아니면 겁박하는 것이냐?” 고준형이 문밖에서 들어서며 태연히 말을 받았다.고장훈은 그를 보자 표정이 일그러졌다.눈빛에는 깊은 복수심이 서렸다.“네가 아직도 낯짝을 들고 돌아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네가 유소영에게, 그리고 이 유씨 가문에 얼마나 큰 화를 끼쳤는지 알기나 하느냐!”“네가 양나라에 공을 세웠든 말든, 선나라 사씨 가문의 핏줄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준형은 담담히 유 대감에게 예를 갖춘 뒤, 곧장 고장훈의 맞은편에 앉았다.그는 무심한 듯 고장훈을 한 번 훑어보았다. “이토록 오랜만에 보는데도, 너는 별로 달라진 게 없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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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고준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 공손히 예를 올렸다.임문 태감이 침착하고도 또렷한 목소리로 성지를 선포했다.“폐하께서 이르시길, 고준형은 일 년 넘도록 몸을 숨긴 채 양나라를 도와 선나라를 치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니, 이에 특별히 고준형을 승안왕으로 봉하고 봉지와 식읍을 하사하노라……. 아울러 정사를 보필하는 보정 대신의 중책을 맡겨 나라를 바로 세우게 하노라!”임문 태감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읽어 내려갔다.고장훈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귓가가 윙윙 울려, 마치 악몽 속에 빠진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왕이라니?고준형이 왕에 봉해졌다고?!충용 후작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존귀한 자리였다!게다가 보정 대신이라니, 이는 폐하께서 그를 얼마나 각별히 신임하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일이었다!고장훈은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채, 웃는지 우는지 모를 만큼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폐하께서 어찌 이런 성지를 내리실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건 틀림없이 거짓일 것이다!설마 폐하께서는 고준형이 선나라 사씨 가문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잊으셨단 말인가!선나라 사람이 어찌 양나라의 왕이 될 수 있단 말인가!고장훈의 얼굴이 화끈거렸다.임문 태감이 읽어 내려가는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뺨을 후려치는 손길처럼 그를 사정없이 내리쳤다.아팠다.너무 분했다!고장훈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고, 벌겋게 달아올랐다.곁에 있던 유 대감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고장훈처럼 질투와 원한에 사로잡힌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준형을 위해 기뻐하는 마음이 더 컸다. 정확히 말하면, 제 딸을 위해 기쁜 것이었다.어쨌든 부부는 한 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고준형이 선나라 사씨 가문의 잔당이라는 신분은 분명 유소영에게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터였다.이제는 그 걱정도 덜게 된 셈이었다!폐하께서 고준형을 승안왕으로 봉하셨으니, 이제 그 누구도 감히 트집을 잡지 못할 터였다!고준형은 공손히 성지를 받들었다.임문 태감은 몇 마디 덕담을 건네며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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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고준형은 자신의 성씨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고씨든 사씨든, 어느 쪽도 그가 스스로 택한 성은 아니었다.지금 고준형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도 고씨 가문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그저 익숙해졌기 때문일 뿐이었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진정한 고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씨 가문과는 이미 오래전에 연을 끊은 뒤였다.그러니 다시 사씨 성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굳이 말하자면, 그는 뿌리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성씨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자신부터가 그러한데, 아이에게까지 이 의미 없는 성을 물려줄 수는 없었다.그래서 그는 아이가 유소영 쪽의 성을 따르기를 바랐다.유씨든 송씨든 상관없었지만, 물론 굳이 따지자면 송씨가 더 나았다.송씨 가문에는 이 아이가 절실히 필요했으니......고준형은 품 안의 딸아이를 내려다보았다.아직 이렇게나 작아, 세상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다.그저 자신이 아이를 위해 내린 이 결정을, 훗날 아이가 원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유소영은 오히려 시원스레 받아들였다. “그럼 이름은 그대로 송서아라고 하죠.”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 함께 웃었다.......다음 날.조회.고장훈이 문무백관 앞에서 대놓고 이의를 제기했다.“폐하, 고준형은 선나라 사씨 가문의 핏줄이거늘, 어찌 왕으로 봉하실 수 있습니까? 신은 그자의 속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관원들 역시 이 일에 저마다 우려를 품고 있었다.그중에는 나라를 위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이도 있었고, 순전히 질투심에 그러는 이도 있었다.쏟아지는 의혹의 목소리 앞에서, 황제는 반박할 여지조차 주지 않고 딱 잘라 말했다.“고준형은 애초부터 선나라 사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었다! 이는 짐과 고준형이 선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꾸며 낸 일이었다!”그 한마디에 조정 안이 일순 술렁였다.“무엇이라?”그중 가장 크게 동요한 사람은 단연 고장훈이었다.그가 즉시 앞으로 나섰다.“폐하, 고준형의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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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고장훈은 분노에 휩싸인 채 벌떡 일어나 고준형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고준형 곁에 있던 호위가 앞을 막아서며 고장훈을 저지했다.충용 후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준형을 바라보았다.“네가...... 방금 뭐라고 했느냐?”고준형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초대에 응해 후작부까지 온 것은 부자간의 연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 훗날 다시 얽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저는 고씨 가문의 핏줄이 아닙니다.”“당초 고장훈이 밝혀낸 것들은 모두 사실입니다.”“다만 한 가지, 그는 그 뿌리까지는 파헤치지 못했습니다.”“바로 제가 어째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다시 말해 어머니께서 어찌 다른 사내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충용 후작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꽉 움켜쥐어졌다.그렇다면 결국 고준형은 정말 자신의 핏줄이 아니었다는 말인가?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란 말인가!이제야 모든 일이 다시 좋은 쪽으로 풀렸다고 생각했건만!이제야 충용 후작부가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다고 여겼건만!고장훈이 싸늘한 눈빛으로 고준형을 노려보았다.“그만해라! 더는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고준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이 모든 일의 시작은, 씨를 빌린 데 있습니다.”충용 후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준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그해 제가 이미 죽었다고 잘못 판단하셨을 때, 서둘러 임유정과 고장훈에게 씨를 빌리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째서 씨를 빌려야 했겠습니까? 남편에게서는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당시 그리 절박하셨던 것도 스스로 방탕한 길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서 자식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쾅!충용 후작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탁자 위의 찻잔을 집어 들어 힘껏 내던졌다.“닥쳐! 닥치란 말이다!”고장훈이 눈을 부릅떴다.분노가 극에 달해 당장이라도 고준형을 갈가리 찢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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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고장훈도 아니었단 말이에요?!”고준형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유소영은 몹시 놀랐다.이내 그녀는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장훈은 그토록 애를 써서 고준형의 출신을 캐냈고, 이제 충용 후작부가 온전히 제 것이 되었다고 여겼을 터였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늘도 참 짓궂었다.충용 후작은 아마 화가 나 미칠 지경일 터였다.두 아들 모두 제 핏줄이 아니었으니 말이다.유소영은 문득 민심자가 낳은 딸을 떠올렸다.그녀가 물었다. “충용 후작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면, 민심자의 아이는 대체 어찌 된 거예요?”고준형은 담담히 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오. 어쩌면 이십여 년 동안 몸을 조리한 끝에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아이의 출신 역시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을 수도 있지.”유소영의 눈이 흔들렸다.그렇단 말이지……그날, 고장훈이 후작부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도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사람들은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충용 후작이 이 아들과 인연을 끊고 후작 작위 또한 고장훈에게 물려주지 않겠노라 공언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고장훈은 당분간 객잔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그는 여전히 관직을 지니고 있었으니,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다만 충용 후작부의 비호와 작위를 잃은 것은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었다.그는 객잔에서 분을 이기지 못해 마구 화를 냈다.“고준형! 고준형!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이 재수 없는 놈! 애초에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으아아! 네놈이 내 모든 것을 망쳐 놓았어!”자신이 가까스로 한 걸음씩 올라 정점에 닿으려 할 때마다, 고준형은 어김없이 나타나 그를 끌어내리고 산산이 부숴 버렸다.그 사생아 놈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장훈은 그 씨 다른 형님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했고, 제 모친인 영운마저 끝없이 원망했다.그러나 정작 충용 후작부를 원망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모든 일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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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고장훈은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애초에 그가 꿈꾸었던 것은 처첩을 거느리며 호사를 누리는 삶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혈혈단신 홀몸이 되고 말았다!아니, 후작부에서 쫓겨나기만 했을 뿐, 아직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유소영이든 임유정이든, 하나같이 권세를 좇아 자신에게 붙었던 여인들일 뿐이었다! 그런 여인들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그는 후작 작위를 결코 잃을 수 없었다.그리하여 그는 절로 향해, 어머니 영운을 만나러 갔다.영운은 이미 삭발하고 비구니가 된 지 오래였다.거의 이 년 가까이, 충용 후작부에서도 영씨 가문에서도 그녀를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친정에서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은 적은 있었지만, 그녀는 만나기를 거부했다.이번에는 아들이 찾아왔다.고장훈을 원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제 배로 낳은 혈육이었다.영운은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를 만나기로 했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출가한 지 거의 이 년이 다 되어 가건만, 자신은 여전히 속세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고장훈을 마주한 순간, 영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장훈아……”그녀는 아들이 마침내 어미를 떠올리고 찾아온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그녀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고장훈이 차갑게 물었다.“내 아버지는 누구입니까!”영운은 순간 흠칫했다.어째서 저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설마 벌써 제 출생의 비밀을 알아 버린 것인가?영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물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얘야, 잘 지냈느냐?”고장훈은 그녀가 뻗은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분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지 않습니까! 저도 고준형처럼, 당신이 낳아 놓은 사생아일 뿐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영운은 숨이 턱 막혔다.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장훈아, 저들의 헛소리를 믿지 마라. 너는……”“이미 다 압니다! 당신의 잘난 아들 고준형이 증거를 찾아내고 제 친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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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유소영은 복수할 일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요즘은 한가로워진 탓에, 그 생각이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준형이 말했다.“폐하께서 내게 그 일을 언급하셨소.”그 말을 하는 고준형의 표정은 다소 진지해져 있었다. “폐하께서는 나더러 양주를 접수하라 하셨소.”유소영이 놀란 듯 물었다.“곧바로 당신에게 신왕의 병권을 넘겨받으라 하신단 말이에요? 양주 쪽에서 순순히 따를까요?”고준형이 설명했다.“폐하의 뜻은, 신왕이 밖에 나가 있는 틈을 타 양주 쪽에 죄명을 씌워 공공연히 조사하겠다는 것이오.”유소영이 다시 물었다.“그 죄명에 관해 짚이는 것이라도 있나요?”고준형이 천천히 대답했다.“죄를 뒤집어씌우려 들면 구실이야 얼마든지 있는 법이오. 게다가 양주 쪽도 본디 완전히 결백한 것은 아니오.”유소영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조정 안에는 여전히 신왕의 세력이 남아 있을 터인데, 그 많은 입을 다 막아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고준형이 솔직히 말했다.“내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 양주에 가고 나면 그대와 서아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오.”이제 겨우 다시 한자리에 모였는데 또다시 헤어져야 하다니.유소영이 농담조로 말했다.“그 말씀, 아버지께서 들으시면 안 되겠네요.”고준형이 담담히 미소 지었다.“그렇긴 하오. 하지만 역시 그대와 서아를 함께 양주로 데려가고 싶소. 내 눈앞에 두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소.”유소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고준형은 그녀가 내키지 않아 망설이는 것이라 여겼다.그가 제안했다.“우리 혼례를 치른 뒤에 가는 것은 어떻겠소.”유소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혼례요?”고준형이 진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전에 말하지 않았소. 반드시 그대를 다시 한번 성대하게 맞아들이겠다고. 한 가족이 이름도 명분도 없이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오.”유소영은 그 일을 서두를 마음이 없었다.그녀는 혼례 이야기를 슬쩍 피하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제게 한 가지 제안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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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유소영은 산후조리를 마쳤고, 고준형도 곧 양주로 떠나야 했다.고준형은 양주 대영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유소영을 죄인 신분으로 양주까지 압송하기로 했다.압송이라 해 봐야 다 남들 눈을 속이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었다.실제로는 길 내내 고준형이 손수 그녀를 살뜰히 보살폈다. 행여 그녀가 오랜 여정으로 지치거나 물이 맞지 않아 탈이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마차 안.고준형은 손수 유소영에게 말린 과일을 먹여 주며 말했다.“아직도 이리 야위었으니,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프오.”유소영은 마차 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전에 양주에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와 언니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였다.지금 다시 이 길에 오르니, 그때와는 마음가짐이 사뭇 달랐다.어머니의 죽음이 떠오르고, 아버지와 송씨 가문 군대의 참사가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울적해졌다.고준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그러던 중 딸아이가 잠에서 깨어 울음을 터뜨리자,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났다.고준형이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 눈빛에는 갓 아버지가 된 이의 다정함과 애틋함이 어려 있었다.그가 농담 삼아 말했다.“이 아이는 대체 누굴 닮아서 이리 보채는지 모르겠소.”이번 여정 내내, 아이는 유난히 울음이 잦았다.배가 고파도 울고, 마차에 오래 앉아 있어도 울고, 잠에서 깨어나도 울었다.고준형은 귀찮아 하기는커녕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 조그만 몸 어디에서 그리도 많은 눈물이 나는지.유소영이 아이를 받아 안고 젖을 물렸다.동행하는 이들 중 유모도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먹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는 없었다.유소영은 고개를 숙인 채 여리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마음속 울적함과 슬픔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이제 어머니가 되고 보니, 예전에 어머니가 내렸던 그 선택을 한결 더 이해할 수 있었다.품에 안긴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녀 역시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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