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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의 형님》全部章節:第 881 章 - 第 890 章

890 章節

제881화

혼인 성지가 불타 없어지자, 새 황제가 고개를 들어 고준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사람의 마음이란 한번 틈이 벌어지면 다시 메우기 어려운 법이지.”“앞으로도 오늘과 같을지는 짐도 장담할 수 없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선제와는 다른 길을 걸을 생각이야.”“자네는 응어리를 내려놓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게.”“짐의 이 말을 자네가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 주게. 짐의 뜻을 그들도 알도록 말이야.”고준형이 몸을 일으켜 두 손을 맞잡아 예를 올렸다.“신, 명심하겠습니다.”새 황제도 일어나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자네와 짐은 언제까지나 둘도 없는 벗이네. 자네에게 반역할 뜻이 없는 한, 짐도 결코 자네에게 칼을 겨누지 않을 것이야. 만일 짐이 그 약속을 저버린다면, 칼 아래 죽는다 해도 달게 받겠네.”제왕의 약속은 천근의 무게를 지녔다.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조원서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고준형도 믿었다.그러나 앞으로 어찌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고준형은 여전히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예.”……유씨 저택.유소영은 남방성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짐을 꾸렸다.어머니와 아버지의 유해를 한 무덤에 합장하고 제를 올려야 했고, 송씨 가문 군사들의 병권도 당분간 그녀가 맡고 있었으니 반드시 남방으로 가야 했다.앞서 한 차례 꾸려 둔 덕에, 이번에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얼추 채비를 마쳤다.유소영은 딸아이를 품에 안고, 오래 살아온 이 저택을 아쉬운 듯 한 번 둘러보았다.강주 옛집만큼의 정이야 아니었으나, 이곳에도 적지 않은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이번에 떠나면 아마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유성천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하, 결국은 떠나야 하는 게지.”그는 이번에 유소영과 함께 먼저 남방성으로 가 누이와 매제의 무덤에 제를 올린 뒤, 선나라로 건너가 맏딸 유설요를 만나고, 새로 시작할 만한 장사가 있는지도 알아볼 참이었다.유소영의 눈빛이 잠시 무거워졌으나, 이내 미련을 떨치듯 몸을 돌려 마차에 올랐다.막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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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유소영은 부모님을 합장한 뒤, 몇몇 장군들과 함께 제를 올렸다.그녀의 눈빛에는 짙은 슬픔이 어려 있었다.권력 다툼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가족이 이렇게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지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이제 원수는 갚았다지만, 마음속 한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시월의 남방성에는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불어, 유소영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말려 주었다.그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유성천과 함께 자리를 떴다.유성천은 뒤돌아 누이와 매제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아픔과 비통함이 서려 있었다.그해 그는 힘도 지위도 없는 미천한 처지라, 송씨 가문이 신왕에게 화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감히 관아에 고발하거나 맞설 수 없었다.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카딸을 데려다 정성껏 기르는 것뿐이었다.다행히 소영이가 그 아픈 기억을 잊고 지낸 덕분에, 그 역시 애써 지난 일을 묻어 두고 살 수 있었다.허나 하늘도 송씨 가문의 억울한 사정이 이대로 묻히는 것을 차마 두고 보지 못했는지, 소영이는 결국 신왕에게서 진상을 밝혀내고 잃었던 기억까지 되찾았다.그녀가 끈질기게 파헤친 끝에 마침내 이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졌고, 진짜 배후였던 신왕도 마땅한 벌을 받았다.그가 보기에, 큰 원수를 갚았다 한들 소영이는 그리 기뻐 보이지 않았다.떠나간 사람은 결국 돌아오지 않는 법이었다.원수를 갚는 것 또한, 그저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이른바 정의라는 것도, 특히 뒤늦게 되찾은 정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오직 남겨진 이들만이 모든 일이 끝난 뒤의 공허함 속에서, 떠나간 이들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유성천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시월이 지나자, 세월은 마치 장마철에 불어난 강물처럼 유난히 빠르게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 다들 설을 준비하느라 분주해졌다.유소영은 유호진과 여러 장군들에게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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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번외][송서아의 시점]내 이름은 송서아다. 외조부의 성을 따랐다.어머니는 외조모를 따라 유씨 성을 썼고, 아버지는 고씨 성인데 누구의 성을 따른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우리 가족은 저마다 성이 다 달랐다.이는 참으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물론, 흔치 않은 것은 성씨뿐만이 아니었다.내 아버지도 남들의 아버지와는 달랐다.아버지는 늘 자신은 어머니에게 장가들어 온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본래 돌아갈 집이 없었는데, 어머니와 내가 아버지에게 집을 만들어 주었다고 말이다.사람들은 다들 아버지가 딱하다고 했다.사내로서 저 지경이 되다니, 사내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들 했다.내가 이 말을 아버지께 그대로 전했더니, 아버지는 웃으셨다.아버지는 어머니와 나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니, 남들이 뭐라 하든 들을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조금도 딱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을 내가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하셨다.우리는 남방성에 살았고, 나는 병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그들은 우리 집 대문을 지키기도 했고, 성 안을 순찰하기도 했다.내가 조금 더 자라자,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진영에 가셨다.두 분은 앞으로 내가 여장군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유호진 외숙도 늘 내게 말 타는 법과 활 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하지만 나는 아직 말보다도 키가 작았고, 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나는 거의 매일 진영에 갔다.가끔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외조부와 외조모께 제사를 지내러 가셨다.부모님이 말씀해 주지 않으셔도, 나는 외조부와 외조모가 나쁜 사람들의 손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여장군이 되어야만 나 자신도, 부모님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장군들은 늘 부모님께 아들을 하나 더 낳으라고 권했지만, 두 분은 끝내 그러지 않으셨다.두 분은 나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셨다.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아끼셔서 그런 것이라는 걸.아버지 말씀으로는,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적에 하마터면 크게 다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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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고장훈의 시점]나는 어려서부터 내게 형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형님이라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보내졌고,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후작부의 하인들은 하나같이 내가 세자가 되어 훗날 후작부를 이어받으리라 여기고 있었다.그런데 그해, 줄곧 밖에서 자라 오던 형님이 돌아왔다……처음에는 그를 그리 위협적인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형님은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았고, 바깥출입도 거의 하지 않았다.그런 사람이 나와 겨룰 재간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점차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형님의 재능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그를 신동이라 치켜세우며 앞날이 창창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본래 후작부에서 가장 촉망받던 이는 나였건만, 어느새 형님의 명성에 가려지고 말았다.사람들은 나를 그저 고준형의 아우라고만 불렀다.내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나는 그 때문에 형님이 미워졌다.차라리 그때 형님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늘 생각했다.부모님께 자식이 나 하나뿐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특히, 형님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했다.형님은 겉보기와 달리 그리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몰래 나를 자주 벌하곤 했고, 심지어 자신의 호위들을 시켜 손을 쓰게 하기도 했다.내게 잘못이 있었다 해도, 형님이 나를 그렇게 대했어서는 안 됐다.나는 형님을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그리고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임유정을 형님이 부인으로 맞아들인 뒤로는, 그를 더욱 증오했다.임유정은 재상부의 귀한 딸로, 여느 여인들과는 달랐다. 온화하고 아름다우며 학식까지 갖춘, 내가 꿈에 그리던 배필감이었다.형님이 임유정을 부인으로 맞았을 때, 나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이 평생 그를 결코 용서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제 목숨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유정을 부인으로 맞아 훗날 홀로 남게 한단 말인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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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유설요의 시점]나는 아버지가 미웠다.고모 때문에 우리 온 가족의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사무치게 미웠다.송씨 가문에 변고가 생긴 뒤, 아버지는 사촌 동생 소영이를 집으로 데려와 기르셨다.그저 거두어 기르는 정도였다면, 식구 하나 늘어 밥상에 수저 한 벌 더 놓는 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사촌 동생이 몰고 온 것은 끝없는 화근이었다.그 아이가 들어오면서 우리 집의 평온은 산산이 깨어졌다.당시 어머니는 몸에 아이를 배고 계셨는데, 신왕의 추격을 피하느라 온 가족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그 길에서 우리는 숱한 재앙을 겪었다.산적을 만나 노잣돈을 몽땅 빼앗겼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배 속의 아이를 잃으셨다.우리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사촌 동생을 지키는 데만 온 마음을 쏟으셨다.사촌 동생은 기억마저 잃어, 이 모든 재앙이 자기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그 아이가 내 옷자락을 붙잡고 언니 하고 부를 때면, 나는 그 아이를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그러나 이성이 나를 다잡아 주었다.눈앞의 이 아이는 어쨌든 내 혈육이자 송씨 가문의 유일한 핏줄이었으니까.고모부 송청명은 실로 대단한 대장군이셨다. 설령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남이라 해도, 송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만큼은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해야만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그러나 나는 끝내 사촌 동생을 친동생처럼 대할 수 없었고, 그 아이가 우리 가족에게 안겨 준 그 상처도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이 집안에서 이토록 뒤틀린 마음을 품은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어머니는 배 속 아이를 잃고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촌 동생을 더욱 애틋하게 여기셨다.오라버니도 마찬가지였다. 늘 사촌 동생이 참으로 안타까운 아이라며, 우리가 몇 배로 잘해 주어 그 아이의 잃어버린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 주어야 한다고 했다.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이 숨 막히는 집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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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고준형의 시점]나는 어려서부터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른 아이들은 곁에 부모가 있었지만, 내 곁에는 오직 하인 하나와 스승님뿐이었다.스승님은 내력으로 내 병을 치료해 주셨고, 무공도 가르쳐 주셨다.내 마음속에서 그분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훗날에야 알았다. 그분이 정말로 내 친아버지였다는 것을.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뒤, 나는 한동안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세상 사람들 눈에 나는 그저 사생아일 뿐이었다.열두 살 되던 해, 아버지는 떠나셨다.나는 후작부로 다시 거두어졌다.나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후작부에서 살아가야 했다.친어머니에게는 이미 또 다른 아들이 있었다.배다른 아우 고장훈.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가 내게 품은 적의를 알아챘다.그는 내가 자신의 것을 빼앗을까 봐 두려워했다.그리고 그 두려움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나는 몸이 약하고 병치레도 잦았지만,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충용 후작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후작부의 세자가 되었다.내 병은 사실 꾸며낸 것이었다.나는 문밖을 거의 나서지 않았다. 후작부는 물론 바깥세상 사람들과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내가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뜻밖의 변고가 일어났다.나는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어머니는 예전에 썼던 수법을 되풀이해, 고장훈과 내 명목상의 부인인 임유정이 후계를 잇게 했다.사실 나는 이 두 사람의 일에 개의치 않았다.그때는 딱히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제수 유소영이 나를 구해 주었다.그녀는 나를 서서히 깨어나게 해 놓고는, 낮이고 밤이고 고장훈과 임유정이 방 안에서 벌이는 일을 듣게 했다.나는 유씨가 다른 속셈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나와 혼인해 세자 부인이 되고자 하는 줄은 몰랐다.나는 그녀의 계산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겪은 고통을 알고 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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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사씨 조모의 시점]나는 사씨 일족의 흥망성쇠를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그 대가로 나는 남편과 자식들을 잃었다. 사씨 가문이 피바다로 변한 광경은 남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악몽이 되었다.그날, 궁중에서 비보가 전해졌다.내 외손자가 태자로 책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신하들과 결탁해 반역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황제는 크게 노하여 직접 태자의 목을 베었다.내 딸은 자식을 잃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큰 병을 얻었다.딸의 고통은 남편의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돌아온 것은 더욱 잔혹한 살육뿐이었다.머지않아 모자의 시신은 본보기로 삼기 위해 궁문 앞에 내걸렸다.그 차디찬 봄날, 황성에는 대숙청이 몰아닥쳤다.조정은 반역자를 잡아들이고 사씨 가문을 벌하였다.황제는 태자의 반역을 뒤에서 조종한 가장 큰 세력이 사씨 일족이며, 태자의 외숙인 내 아들 사영진이 그 원흉이라고 말했다.나는 당연히 내 아들을 믿었다.관군들이 사씨 가문에 들이닥쳐 영진을 붙잡아 갔다.그때만 해도 영진은 태자와 사씨 가문의 결백을 증명할 증거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왕의 음험함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윗자리에 앉은 자의 악독한 계략이며, 사씨 가문을 쓸어버린 뒤 그 재산과 인맥을 빼앗으려는 짓임을 짐작했다.영진은 옥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당했다.그들은 영진에게 죄를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지장을 찍으라고 강요했다.그가 따르지 않자, 억지로 독약을 먹였다.나는 온갖 수를 쓰고, 사람들 앞에 무릎 꿇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은 끝에야 겨우 영진을 옥에서 빼낼 기회를 얻었다.영진을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사씨 가문의 혈통을 보전하고자, 나는 영진을 선나라 밖으로 내보냈다.그 후, 사씨 가문은 참혹하게 멸문을 당했다.하룻밤 사이 살아 있던 이들이 모두 시신으로 변했고, 사씨 가문의 현판은 부서져 불탔으며, 저택 안의 물건은 모조리 몰수당했다.영문도 모르는 백성들은 황실의 선동에 휩쓸려 사씨 가문이 백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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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그러나 영진은 마음이 약해졌다.그는 나더러 그리하지 말라고 만류했다.영진은 그 아이가 자신의 몸속 독약을 대신 받아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했다.설령 그 아이의 어미를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미워한다 해도 그 아이만큼은 엄연한 제 자식이며, 비록 원치 않게 얻은 아이라도 아버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적어도 아이의 몸에 옮겨 간 독만큼은 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하는 수 없었다.어차피 지금 사씨 가문은 기반이 불안정하니, 영진이 돌아온다 해도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할뿐더러, 도리어 조정의 앞잡이들에게 발각될 위험만 커질 터였다.나는 영진이 계속 양나라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고, 서신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영진은 내력을 소진해 가며 그 아이의 목숨을 붙들어 두었다.영진이 보내오는 서신들을 통해, 나는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나는 그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그 아이는 약 먹는 것을 싫어했고, 쓴맛을 무서워했다.또한 글 쓰기를 좋아했으며 필체도 제법 훌륭했다.무공에도 제법 재능이 있었다……가까운 핏줄이라서였을까. 아니면 오랜 세월 나를 짓눌러 온 고독과 슬픔 탓에 위안이 절실했던 것일까. 나는 차츰 그 아이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영진이 그 아이의 초상화를 보내왔을 때, 나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영진의 어릴 적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나는 그 아이에게 중경이라는 자를 지어 주었다.나는 그 아이가 제 아비를 닮아 총명하고 강직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제 몸을 잘 보전하여 무탈하기를 바랐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그 아이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그 아이에게도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았다는 것을......훗날 그 아이는 반드시 사씨 가문으로 돌아와야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제 아비의 사명을 이어받아, 사씨 가문을 짊어질 운명이었다.영진은 고준형이 열두 살이 될 때까지 곁을 지켰으나, 끝내 황제의 앞잡이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그는 준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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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유연정의 시점]나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오라버니가 집안의 장사를 물려받았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방을 떠돌며 살았다.그때는 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오라버니는 장사를 도맡는 한편 나까지 돌보느라 혼기를 자꾸 놓쳤다.나는 오라버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자라서는 함께 장사를 도우러 다녔다.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명을 만났다. 그와 가까이 지내며 서로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나는 두 번째 집을 얻었다.그곳은 우리 부부만의 집이었다. 사계절 내내 봄처럼 따뜻한 남방성에서 얻은 집.청명은 송씨 가문 군사들을 이끌고 양나라의 남쪽 국경을 지켰다.나는 그가 얼마나 고된지 알고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여느 평범한 여인들처럼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기르며 살았다.혼인한 지 일 년 만에, 우리는 딸 소영이를 얻었다.소영이가 태어나자 집안에는 웃음과 생기가 넘쳐났다.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그날, 청명은 손님 한 사람을 집으로 데려왔다.그 손님은 언변이 뛰어났고, 몸에 밴 기품만 보아도 명문가 출신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나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온몸이 불편하게 긴장되었다.그는 성정이 온화한 청명과는 달랐다. 눈빛에는 살기와 냉혹함이 서려 있었고, 몸에서는 언제나 희미하게나마 피비린내가 풍겼다.나는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그러나 청명은 오히려 그와 죽이 잘 맞아, 두 사람은 자주 한자리에 모여 나랏일과 군사 배치를 논하곤 했다.나는 청명을 이해했다.그는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도 평생 남방성에 눌러앉아 뜻을 펴지 못한 채 답답해했다.그러니 뜻이 통하는 벗 하나를 얻은 것은 청명에게 크나큰 위안이었을 것이다.하지만 바로 그 벗이라는 자가 청명과 아무 죄 없는 장병들을 모조리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나는 그날의 끔찍한 대학살의 현장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진영 안은 온통 피비린내로 뒤덮였고, 나는 소영이를 꼭 끌어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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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그 무수한 낮과 밤 동안, 나는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살았다. 이미 수도 없이 죽었다 살아난 것이나 다름없었다.몇 해 동안, 내 머릿속에는 죽음과 소영이에 대한 그리움밖에 없었다.신왕은 내게 살아갈 의지를 심어 주려 했다. 아니, 정확히는 송씨 가문 군사들의 병권을 손에 넣기 위해 소영이를 대신할 아이를 데려왔다.나는 그 아이가 내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늘 그 아이와 접촉하기를 거부했다.나는 한시도 쉬지 않고 죽을 기회를 찾았다.모든 것을 체념한 척,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는 척했다.나를 지키던 몸종이 방심한 틈을 타, 나는 비녀를 가슴에 찔러 넣었다.그때 나는 마침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마침내 청명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지쳐 있었다.내가 나약했음을, 더는 버틸 수 없었음을 인정한다.소영이를 오라버니께 맡겼으니, 이제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었다……그러나 신왕은 끝내 나를 살려 냈다.이번에는 설요까지 데려왔다. 바로 내 조카딸이었다.설요가 어찌 그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신왕은 이미 모든 패를 쥐었다는 듯 말했다. 설요를 붙잡았을 뿐 아니라 소영이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잡아 올 수 있다고 말이다.나는 두려웠다. 눈앞이 캄캄할 만큼 절망스러웠다.나는 갖은 방법을 다 써 보았으나, 하늘을 찌를 듯한 신왕의 권세 앞에서는 끝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에게 내 모든 저항은 한낱 부질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설요를 위해, 나는 굴욕스럽게 살아가야만 했다.나는 산송장처럼 신왕부에 머물며, 얌전히 그의 다섯째 부인 노릇을 했다.내 한평생은 이대로 끝나겠구나 싶었다.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죽은 남편에 대한 지조도 지키지 못했고, 딸을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끝내 구해 내지도 못했다.하지만 하늘은 그래도 나를 가엾이 여겨 주었다.그가 소영이를 다시 내 눈앞에 데려다준 것이다!하늘도 알 것이다. 딸을 본 순간, 오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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