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도착했을 때, 심서준은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얼마나 먼저 와 있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계연수가 이렇게 가까이서 심서준을 바라본 것도 꽤 오래만이었다. 이만큼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훌쩍 더 자라 있었고 예전보다도 훨씬 준수해 보였다. 경성에서 심서준이 지나가는 곳마다 여인들이 앞다투어 시선을 던진다는 말이 괜한 소문은 아니었다. 그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면 사람들 또한 이유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그 당시 심서준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연수는 단 한 번도 그의 속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차갑고, 높고, 손이 닿지 않는, 나이가 들수록 그녀는 그 앞에서 점점 더 위축되었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심서준은 마치 구천 위의 신불 같았다. 칠정도 없고 희로애락도 없으며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심판하는, 감정 없는 대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앞에 서면 누구나 저절로 몸가짐을 가다듬게 되는 것 같았다.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는 순간마다 계연수의 마음은 이유 없이 흔들렸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그날, 심서준은 그녀의 허리에 찬 옥패를 가리켰다. 그가 건넸던 그 옥연환이었다. 선물이라 하기엔 애매한 물건.그는 옥패를 가리키며 앞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차고 다니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말에 계연수는 그가 옥패를 준 것을 후회하는 줄 알고, 가슴이 조여 오는 듯 불안해져 급히 옥패를 풀어 그에게 돌려주려고 했다.그녀의 반쯤 뻗은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추위에 얼어 손끝이 붉어져 있었지만 심서준은 그것을 받아 들지 않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그 옥패는 그녀의 생일 선물이라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거든 그 옥패를 지니고 찾아오면 그가 한 번은 도와주겠다고 했다.그날, 열여섯의 심서준은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와 몸을 숙였고, 귀 가까이에서 낮게 말했다.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고. 아무리 큰 부탁이라도, 설령 약조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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