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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문안은 재빨리 뒤따랐다. 주인은 늘 조용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니, 그가 가는 곳마다 뒷문을 남겨두거나, 일찍이 사람들을 물리고는 했다.계연수는 밤이 깊을 때까지 그를 만나지 못했다.무거운 기분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녀는 한참 침묵하다가 집으로 향했다.예상했던 결과였다.마차가 천천히 저택을 향해 출발하자, 용춘은 안쓰러운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부인은 최선을 다하신 겁니다.”계연수는 그저 막연히 한곳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다짐했다.저택으로 돌아오니 시종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작은 마님, 나으리께서 방금 들어오셨습니다.”계연수는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옥현에 대한 감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마당이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아 그는 안방에 있는 모양이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몸에 걸친 망토를 풀었다.시녀가 따뜻한 물을 가져오자 그녀는 차가운 두 손을 물에 담갔다. 몸이 서서시 따뜻해지기 시작했다.안방에 들어서니 사옥현은 의자에 앉아 서책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계연수를 보자 책을 덮고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지나치게 창백하던 안색은 실내의 따뜻한 기운에 옅은 홍조가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원래 요염함과 청순함을 겸비한 미인이고 평소에 수수한 차림을 고수했지만 얼굴에 약간의 색만 더해도 요염한 미모가 돋보였다.그는 그녀의 편협한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침상 위에선 맑고 고운 두 눈에 이끌려 자제를 잃고는 했다.그는 문득 요즘 너무 바빠서 그녀와 합방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침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도 있고 어젯밤 자신이 오해한 것을 떠올리자, 사옥현의 눈매는 저절로 부드러워졌다.“어디 다녀오느냐?”계연수는 잠시 멈칫했다. 사옥현은 예전에 그녀가 어딜 다녀왔는지 절대 묻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일에 관심을 주는 일이 드물었고 그녀가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계연수는 안으로 들어가며 어머니를 뵙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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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오랜 침묵 끝에 냉랭한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사옥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이미 예전의 계씨 가문 외동딸이 아니었다. 이혼하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비록 외조부 가문에 돌아가 의지하며 살아간다 해도 결국엔 남일뿐이다. 고씨 가문이 그녀를 얼마나 오래 거둬줄 수 있을까? 하물며 고씨 가문도 나날이 몰락해 기반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이혼한 여인을 또 누가 원하겠는가.그를 떠나면 지금처럼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단지 오해 좀 받고 자신이 사촌 오라버니를 도와주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압박하려는 거라 확신했다.그러나 사옥현 스스로도 요 며칠 그녀에게 소홀했던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그녀를 그렇게 홀로 눈보라에 두고 돌아온 일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소홀한 게 맞았다.그리고 어젯밤에도 그녀를 오해했다.사옥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 숙여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연수야, 심통도 지켜야 할 선이 있어. 어젯밤 일은 내가 오해한 걸 인정하 마. 부관에게 제비집과 보신 음식을 마련하라 했으니 당분간은 몸을 돌보고 풍한이 다 낫거든 어머니께 문안드리러 가거라.”계연수는 그가 단번에 승낙할 거라고 생각했다.그가 이명유를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고 단지 명예와 체면 때문에 먼저 얘기를 못 꺼낸 거라 느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제기하여 체면을 세워주었는데 심통이라니.사옥현은 결코 그녀를 이해해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그가 그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녀가 결코 심통을 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그러나 이 지경까지 왔으니 분명히 말해야 했다.계연수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사옥현을 바라보았다.“이혼 일은 사실 오랫동안 고민해 온 것이고 단지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가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나으리와 혼인한지 3년, 나으리께 오해를 받은 일이 수도 없이 많아도 저는 결코 성내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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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이런 네가 어찌 장차 사씨 가문 안주인이 될 수 있겠느냐. 계속 무리한 떼를 쓴다면 사당에 무릎 꿇리고 반성하게 할 수도 있다.”계연수는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비록 사옥현의 무정함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단지 그때 이명유가 일부러 엎질러 버린 찻잔 때문에 3년간 그녀가 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녀가 아무리 잘해도 그의 눈에는 너그럽지 못하고 편협하며 심술이나 부리는 사람으로 비춰졌던 것이다.그녀는 사옥현에게서 느껴지는 반감과 무력함에 그에게 시선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계연수는 한 걸음 물러서며 비틀거리는 몸을 탁자에 기대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사당에 무릎 꿇고 나오면 이혼서를 써주시겠습니까?”사옥현은 그녀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았다. 허약하고 작은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측은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평소 그녀는 집안 일을 아주 잘 처리했고 처소의 시녀들도 예의가 바르며, 어머니를 모실 때도 성심을 다했고 밖에서 귀족들을 만날 때도 단정하고 품위 있었다.그는 결코 그녀와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단지 그녀가 시시콜콜 따지는 것이 짜증났을 뿐이었다.그녀는 계씨 가문에서 총애만 받고 자라 막무가내인 거라 생각했기에 사옥현은 냉대로 그녀의 모난 성격을 고쳐주고 싶었다.그가 나중에 첩을 들이지 않더라도 이렇게 질투가 심하다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사옥현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연수야, 오늘 일은 따지지 않겠다. 며칠 시간을 줄 테니 병치료를 하면서 반성하고 있거라. 다신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말을 마친 사옥현은 계연수를 한번 더 깊게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텅 빈 내실 안에는 또 계연수 혼자만 남게 되었다.그녀는 고개 숙여 그가 찢어버린 이혼서를 바라보다가 주워서 화로에 던져버렸다.계연수는 의자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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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외조부 댁에는 장기간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무 말씀 안 하시더라도 숙모들은 반드시 내켜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아무런 원망이 없었다. 외조부 가문의 사정을 이해하기에, 더욱이 자신이 이혼했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이혼은 그녀의 선택이지 가족을 연루시킬 수는 없었다.첫 번째 점포의 수익은 운영한지 꽤 오래되어 수익이 나쁘지 않았고 두 번째 점포는 운영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수익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그러나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점포 관리인은 계연수가 외할머니께 부탁해 데려온 사람으로 비교적 믿을만했지만 그래도 매 달 장부는 꼼꼼히 살펴보았다.용춘이 등불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계연수는 그제야 그녀가 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피곤한 듯, 이마를 짚으며 용춘에게 물었다.“보신탕은 먹었니?”용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스레 말했다.“이건 나으리께서 드물게 작은 마님을 위해 준비하신 성의인데 만약 나으리께서 아시면 또 작은 마님을 냉대하시지 않을까요?”계연수는 더 이상 이런 걸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장부를 덮고는 피곤한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부드럽고 따뜻한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멍하니 말했다.“지금은 오라버니 일이 가장 걱정이야.”죄명이 너무 크게 다뤄졌고 이미 비틀거리는 고씨 가문까지 말려들까 봐 걱정됐다.그해 일이 터졌을 때, 두 외삼촌은 모두 좌천당했어도 가문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백여 년의 기반이 있기에 수중에 들고 있는 땅과 점포조 많았다.다만 그때 두 외삼촌의 처벌을 가볍게 하려고 곳곳에서 은화를 뿌려 집안 재산의 절반을 탕진했건만,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다.계연수는 문득 그해 어머니와 함께 심씨 어르신을 찾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던 일이 떠올랐다.심씨 어르신은 황제의 스승이니 그가 아버지를 위해 한말씀만 해준다면 관대한 처분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때 심씨 어르신은 승상이 아니었다. 심서준이 관직에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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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따뜻한 손길이었지만 계연수는 저절로 몸이 굳고 역겨움이 몰려왔다.사옥현이 그녀에게 유일하게 냉담하지 않은 때가 있다면 그건 정사를 나눌 때였다.두 사람이 같이 잠드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는 이 방면에서 배려가 없고 거친 편이었다.처음에는 빨리 회임을 하려고 최대한 맞춰주었지만 지금은 그저 밀쳐내고만 싶었다.목덜미에서 뜨거운 입김과 함께 사옥현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연수야, 전에는 내가 네게 소홀했던 것 같구나. 하지만 그랬다고 이혼할 정도까진 아니야. 집안에서 물질적으로 네게 박대한 적도 없고 나와 비슷한 조건의 다른 사내들은 모두 첩을 들이지 않느냐? 하물며 3년간 넌 회임 소식도 없었는데 내가 언제 한번 원망한 적이 있더냐?”“넌 언제까지나 내 정실이다. 이혼은 중대사이니 그런 일로 장난치지 말거라. 올해 설이 지나면 나와 함께 장모님을 뵈러 다녀오자꾸나.”“우리 할머니께선 너를 가장 예뻐해주셨는데 할머니 생신도 다가오는 시기에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건 옳지 않아. 할머니 생신 연회가 지나간 후에 다시 얘기하자꾸나.”말을 마친 사옥현은 다독이듯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사실 방금 사옥현은 서재에서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가 자신에게 이혼을 말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느꼈었다.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사씨 저택에서 호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이혼하고 집에서 나가면 의지할 곳이 고작 고씨 집안뿐인데 무슨 배짱과 용기로 이혼을 요구하는 걸까?그녀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 명의로 점포가 하나 있는 건 알지만 수익이 좀 된다 해도 저택의 호사스러운 생활은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3년 동안 가령 그녀가 약간의 억울함을 겪었다고 해도 그게 어디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인가.사옥현은 평소 자신이 공무에 바빠 계연수에게 소홀이 대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녀와는 반대로 그는 그녀와의 3년간 부부 생활이 꽤 나쁘지 않았다.그녀는 늘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기에 신경 쓸 필요 없었고 시종들도 그녀에 대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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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그녀는 마치 선심을 베풀 듯 하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지난 3년을 회상했다. 그 시간은 마치 음울하고 갑갑한 길고 긴 통로에서 그녀 홀로 미약한 등불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 집에서 줄곧 혼자였다.사옥현은 집안 일에 관심을 주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더욱 관심이 없었다.이곳에 남아 있다면 평생 불행할 것이다.그녀의 결심은 우스개로 치부되어선 안 될 것이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했다.사옥현은 이 정도로 말했으면 계연수도 마음을 풀었을 거라 생각했다.그녀는 이혼하고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평소라면 온순하게 그의 품에 안겼어야 할 사람이 고개도 안 돌리고 품을 빠져나갔다.사옥현은 충격 어린 눈길로 침상에서 일어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계연수는 그대로 침상을 내려 겉옷을 걸치고는 더 이상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분홍색 얇은 비단 잠옷에 머리를 허리까지 풀어헤친 모습은 청순하면서도 요염했다.그녀는 기침을 하고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화를 내는 게 아닙니다. 줄곧 그랬습니다.”계연수는 시선을 아래에 둔 채로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때 혼서를 들고 당신을 찾아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너무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에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 없고 우리 사이에 원망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나으리께서 하루빨리 서명하시고 제가 이 집을 떠난다면 집안은 더 화목할 것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옷깃을 여미고 밖으로 향했다.사옥현은 침상에서 일어나 가녀린 뒷모습이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그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언제까지 고집을 부릴 거지?그는 점점 더 그녀의 속을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부로 지낸지 3년, 예전에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왜 갑자기 소란을 만드는 것일까.우당탕하는 소리가 방 안에서 들리더니 사옥현은 뒤늦게 옷을 걸치고 그녀를 쫓아갔다.밖에 있던 용춘은 내실에서 나오는 계연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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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계연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옷깃을 여몄다. 움직임은 여전히 조용하고 우아했다. 허리띠까지 매고 고개를 든 그녀가 마주한 것은 꾸짖음과 실망이 가득 담긴 사옥현의 눈빛이었다.그 눈빛 속에는 뚜렷한 불만과 경악도 있었다.사실 말하자면 두 사람 사이에 부부의 정분은 별로 없지만 크게 싸운 적도 없었다.그러나 그의 이런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차갑게 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 순간 그녀는 사람이 싫으면 싸움마저 귀찮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그녀는 그동안 받은 냉대와 억울함을 그에게 호소할 마음이 없었다.아마 예전의 사옥현도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다툼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옥현은 늘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은 늘 한켠으로 기울어 있었다.그와 논쟁해 봐야 상처를 다시 후비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그때 그 찻잔을 이명유가 엎질렀다고 말할까? 항상 시어머니께 꾸중을 들었지만 단 한마디도 그에게 말한 적 없다고 할까. 아니면 자신은 결코 이명유를 적대한 적 없다고 말할까.그가 과연 믿을까?그는 믿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예전에 그는 그녀에게 할 말이 없었고 이제 그녀 역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두 사람 다 할 말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단지 그 결말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평화로운 끝이었다.계연수는 한걸음 물러서서 용춘의 손에서 망토를 받아들고 다시 사옥현의 시선을 마주했다.그녀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떼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혼을 바랄 뿐이에요. 내일 다시 이혼서를 써서 서재로 보내겠습니다. 나으리,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사옥현이 비웃듯 말했다.“네가 왜 이러는지 이제야 알겠군. 이런 식으로 나를 협박해 고준을 도와주라는 것 아니냐?”그렇게 말하는 사옥현의 눈빛에는 실망이 가득했다.“연수야, 나는 대리시 관원으로서 공정함을 가장 중시한다. 네 사촌 오라비는 율법을 알고도 어겼으니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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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계연수는 그를 떠날 수 없다.이혼한 여인을 또 누가 받아주겠는가.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떼를 쓰는 거라면 그냥 내버려둘 것이다.한밤중에 나가서 고생하려 한다면 그것 또한 그녀가 하는대로 내버려 둘 것이다.그는 다시는 아량을 베풀지 않기로 했다.자신은 양보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대가족 앞에서 이렇게 제멋대로 굴면 안 된다는 것을 각인시켜야 한다.용춘은 계연수가 방금 한 말을 듣고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서재 안의 화로는 이미 오래전에 꺼져서 들어서자마자 찬 기운이 밀려왔다.용춘은 곧바로 화로에 불을 피웠다.그러고는 손난로를 그녀의 상 위에 놓아주며 말했다.“작은 마님, 나으리와 정말 이혼하시려고요?”계연수는 고개를 들고 용춘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용춘아, 너도 내가 화를 내서 이런다고 생각하니?”용춘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저었다.“작은 마님은 한 번도 화를 내신 적 없으세요.”용춘은 그녀를 잘 알았다.그녀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계연수는 오직 혈육만이 어리광을 받아줄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그리고 사옥현이 제멋대로 구는 자신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았다.사옥현은 한 번도 그녀를 이해한 적이 없었다.그녀가 만약 화를 냈다면 이미 그가 이명유의 이간질로 그녀를 비난할 때 성냈을 것이다. 그녀는 용춘을 끌어 곁에 앉히고 방 안의 배치를 살펴보았다.이제 보니 방 안에 잠잘 곳이 없었다.대나무 침상이 있지만 이불이 없어 추운 날 잠들 수는 없었다.고생하려고 여기 온 것은 아니지만 계연수는 이 저택 안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이 작은 서재 하나뿐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서재 안 모든 물건은 그녀가 마련한 것이고 사씨 가문의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은화를 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개인 재산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그녀는 다시 사옥현과 동침할 생각이 없었다.예전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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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계연수는 약간 불안한 마음에 용춘의 손을 잡았다.처음에 그녀는 사옥현이 흔쾌히 이혼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그가 이명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단번에 거절한 것이 불안하게 다가왔다.그녀는 단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계연수는 용춘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심씨 저택.심서준은 자단목 책상 앞에 앉아 손에 든 서신을 한참 조용히 바라보았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눈을 감으니 눈보라에 살짝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매는 요염하고 맑았으며 얼굴은 어여쁘고 작았다.그녀 곁을 스쳐 지날 때, 또 희미한 기침 소리를 들었다.심서준의 안색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그 여인에게 끌려가는 것이 싫었다.길게 숨을 들이쉰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의자에 몸을 기댔다. 눈앞에 또 하얗고 고운 얼굴이 떠오르고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 같았다.심서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눈을 떴다. 팔걸이를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이때, 밖에서 누가 뵙고자 한다는 전갈이 들려왔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뒤섞였던 그의 표정이 점차 냉정해지더니 일어나서 사람을 들어오게 했다.밖에서 기다리던 부하가 들어와서 작은 소리로 그에게 아뢰었다.“소인이 알아보니 북진부사에서 며칠 전 고준을 잡아갔다고 합니다. 고준은 그날 국자감에서 나와 교외의 호국사에 갔다가 떠돌이 도사와 기문둔갑술을 논하다 마침 그곳을 지나는 행사 교위와 마주쳐 수색을 당했는데 서책까지 발견되어 잡혀갔습니다.”“고준은 문약한 서생이지만 북진부사의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답니다. 책은 주운 것이고 책 속 내용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마 인정하면 형부로 끌려가 죄가 정해질 것이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부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해서 말했다.“소인이 알아온 소식에 따르면 고씨 가문 둘째 부인은 북진부사에서 고문을 담당하는 포졸에게 많은 은화를 뇌물로 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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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다음날 아침, 계연수는 본채로 가지 않았다. 지난번 시어머니께서 병치료를 하라고 했으니 굳이 문안드리러 갈 생각이 없었다.마침 사옥현에게도 미리 말했으니 당분간은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사옥현은 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세수를 마쳤다. 단지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방은 텅 비어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언제부터 계연수가 이토록 사려 깊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까.사촌 오라버니 때문에 자신과 이 지경까지 되다니.그녀는 그의 부인인데 어찌 부군이 사사로이 율법을 어기는 것을 요구한단 말인가.나중에 그의 관직이 더 높아진다면 어쩌면 밖에서 그의 권세로 이익을 챙겨 외가를 도우려 할지도 모른다.그건 사옥현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그의 부인으로서 절대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이번에 계연수의 뜻대로 따라준다면 다음 번엔 사람을 죽이고 도와달라 할 수도 있었다.밖에서 차갑고 습한 기운이 몰려왔다. 사옥현은 밖으로 나와 한참 서 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뒤뜰로 향했다.그는 멀리 서서 작은 서재의 등불을 바라보다가 결국 다시 뒤돌아섰다.그녀에게 먼저 머리 숙이고 싶지 않았다.계연수는 서재에서 아침을 먹었다. 놀랍게도 아침에 어멈은 제비집과 삼계탕을 가져왔다.아침에 무엇을 먹을지는 처소마다 배정하는 것이고 이런 것은 따로 부엌에서 만들어야 했다.계연수는 부엌에 사람을 보낸 적이 없었다.어멈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것들은 나으리의 지시입니다. 작은 마님께서 편찮으시다 하셔서 몸 보신하라고 하셨습니다.”계연수는 밥상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너무 늦게 온 관심은 아무런 동요도 일으키지 못했다.그녀는 사실 사옥현과의 사이에서 크게 다툴 만한 일도 없었고 그가 말한대로 물질적으로 사씨 집안은 그녀를 박대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몸에 배긴 것처럼 자연스러운 편애, 시어머니의 경계하고 꾸짖는 눈빛, 그리고 집안의 다른 사람들의 친한 듯 멀고, 냉담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감. 그들은 모두 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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