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린 남자 대신, 그의 형이 내 인생을 뒤집어놨다의 모든 챕터: 챕터 41 - 챕터 50

100 챕터

제41화

시윤의 불룩한 목젖 아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셔츠는 단추가 몇 개나 풀려 있었고, 선명한 가슴 근육 라인이 옷 사이로 어른거리면서 다인의 상상을 자극했다.다인이 직접 해본 건 없어도 남이 하는 건 봤으니까.이 분위기라면, 다인과 시윤은 거의...‘아, 진짜...’‘분명 우리 사이가 좋을 리 없는데, 방금 전에는 어쩌다 그렇게 서로를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을까?’‘설마... 시윤 오빠도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었나?’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섞인 다인이 생각을 굴리던 그때, 시윤의 잠긴 목소리가 다인의 생각을 뚝 끊었다.“뭐야? 무서워졌어?”다인은 역시 고집이 센 편이었다. 미간을 바짝 좁히며 맞받아쳤다.“누가 무서워요? 나 안 무서워요?”“그럼 계속...”시윤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또다시 닿을 듯 가까워졌다.그제야 다인은 정신이 꽤 돌아온 상태였다. 방금 느꼈던 감각이 너무 무섭게 남아 있어서, 다인은 급히 고개를 틀어 시윤의 입술을 피했다.시윤의 눈빛이 한층 어두워지면서 다인을 똑바로 내려다봤다.다인의 손에 쥐고 있던 전화는 오래도록 울리다가 받지 않자 결국 끊어졌다.다인은 어색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우리 아까 그랬던 게, 혹시...’‘너무 이상한가?’몇 초도 지나지 않아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 소리에 다인은 확실히 정신이 들었다. 다인이 서둘러 말했다.“미연이가 나한테 급한 일이 있나 봐요. 나 먼저 전화 좀 받을게요.”분위기가 끊기자 시윤의 눈에 깔려 있던 욕망도 가라앉았다. 시윤은 손을 놓았다.다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시윤은 억지로 하지 않았다.다인은 시윤의 시선이 바뀐 걸 눈치채지도 못한 채 허둥지둥 전화를 받았다.[다인아, 왜 이제 받아? 너 점점 바빠진다? 아까 네 핸드폰으로 걸었을 땐 꺼져 있던데...]미연이 투덜거리며 말을 쏟아냈다.시윤은 아직 다인 위에 반쯤 몸을 걸친 채, 완전히 일어나지도 않았다.그 자세가 다인의 숨을 더 가쁘게 만들었다. 다인은 급히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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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다인은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일어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봤지만 시윤은 보이지 않았다. 다인은 시윤이 회사에 간 줄 알았다.이불을 걷고 막 침대에서 내려서려는 참이었다.그때 안방 문이 열렸다. 시윤이 밖에서 들어오더니 곧장 다인 앞으로 다가왔다.“일어났네.”다인은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시윤이 부드럽게 말했다.“잘 됐다. 일단 뭐 좀 먹고, 손에 약도 바르자.”“네.”다인은 짧게 대답한 뒤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이어서 욕실로 갔는데, 컵 위에 걸친 칫솔을 보는 순간 시선이 멈췄다.칫솔에는 이미 치약이 짜여 있었다.예전엔 다인이 태안을 위해 하던 일이었다.같이 살지는 않았는데도.가끔 다인은 태안이 중요한 회의를 놓치지 않게 하려고, 새벽부터 태안의 집에 가서 아침을 차려놓고 태안을 깨우곤 했다. 치약도 미리 짜두고 그날 입을 정장도 미리 맞춰 걸어두면서, 다인은 ‘잘하는 여자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고 믿었다. 언젠가는 약혼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건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는 일이 된다.하지만 사랑이 아니라면, 결국 다인 혼자 감동하고 다인 혼자 버티는 일이 된다.분명 다인이 태안에게 했던 일들은... 태안에게는 후자였을 것이다.‘참...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거야.’다인이 씁쓸하게 생각하는데, 뒤에서 시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왜 그래. 손 아파?”그리고 시윤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좀더 긴장 쪽으로 기울었다.“도와줄까?”돌아서서 시윤의 초조한 눈빛을 마주한 다인은, 잠깐 멍해졌지만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곧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시윤은 다인을 잠시 살펴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아래에서 기다릴게.”다인은 시윤에게 미소를 보였다.“네.”같이 지내는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다인과 시윤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다인은 이런 조용하고 편안한 날들이 꽤 마음에 들었다. 생활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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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다인은 집에 머문 채 거실 테이블에서 원고를 쓰고 있었다.다행히 손은 크게 다치지 않아서 노트북 키보드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도우미들도 오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고, 상주댁이 과일 접시를 다인 옆에 내려놓았다.“사모님, 과일 좀 드세요.”“감사합니다.”다인이 상주댁을 향해 웃어 보였다.다인은 집안 도우미들에게 늘 예의 있게 대했다. 그래서인지 도우미들도 다인을 존중했고, 자연스럽게 정이 갔다.상주댁이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뭐든 편하게 말씀만 하세요. 저희야 이 집에서 오래 있었잖아요. 근데...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한 사람한테 다정하게 신경 쓰시는 건 처음 봐요.”다인은 툭 내뱉듯 말했다.“사람이 변할 수도 있죠. 예전엔 저한테 되게 차갑게 굴었거든요.”상주댁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대표님이 해외에 계셨던 게 3년이긴 해도, 제가 어릴 때부터 봐온 사람이잖아요. 원래 성격이 좀 무뚝뚝하고 거리를 두는 편인데... 사모님을 많이 좋아하시니까 그렇게 다정하신 거예요.”‘시윤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다인은 그 말이 너무 앞서간 얘기처럼 들렸다.‘이모님도 과하게 해석하시는 것 같은데...’그렇게 정신없이 원고를 쓰다 보니 어느새 오후 네 시를 훌쩍 넘겼다. 그때 다인의 핸드폰이 울렸다.대학 같은 학년의 학생대표였던 장현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장현은 며칠 뒤 학교에서 모교의 확장과 보수를 위한 모금 행사를 겸한 모임을 연다고 하면서, 다인에게 참석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의미 있는 자리라서 다인은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다....밤이 되자 시윤이 회사에서 돌아왔다.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던 중, 다인은 아까 받은 연락을 꺼냈다.“모금 행사 있잖아요. 그때 오빠도 가세요?”“일정을 봐야지.”시윤도 초대장을 받은 상태였다. 시윤 역시 강세대학교 출신이었고, 다인보다 몇 년 선배였다.집에서 시윤은 검은 슬랙스에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단추를 한두 개 풀어 둬서 목선이 느슨하게 드러나 더 편안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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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다인은 자신이 미쳤나 싶었다.정말 잠깐, 시윤이 말한 그 사람이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나인가?’자기애가 고개를 들었던 건 길어야 몇 초였다.곧 마음이 묵직하게 가라앉았고, 다인은 더 묻지 않았다.그런데 사실 다인은 놀란 것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시윤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싫었다.그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아마도 다인은 이미 시윤의 아내라는 자리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생각을 거둔 다인은 아침을 먹고난 뒤 시간을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미연을 공항으로 마중 나가기로 한 날이었다.미연은 오늘 귀국하는데, 도착 예정 시간은 오후 한 시였다. 비행기가 지연되지도 않아서 다인은 예정대로 미연을 만났다.출구 통로에서 미연이 모습을 드러내자 다인이 손을 흔들었다.“여기!”패션 센스가 확실한 미연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다인을 발견하자, 들뜬 얼굴로 캐리어 카트를 밀며 달려온 미연이 다인을 와락 끌어안았다.“야, 자기야!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오랜 시간 쌓아온 사이였으니, 반가움은 연기일 수가 없었다.너무 세게 안겨서 숨이 막히자, 다인은 미연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야... 이렇게 안고 있으면 나 진짜 숨 막혀.”미연은 아쉬운 듯 팔을 풀어주고는 환하게 웃었다.“가자. 네가 밥 사. 비행기 밥 너무 별로였어...”둘은 공항을 나와 미리 대기하던 검은색 밴에 올랐다.다인이 공항에 마중 나가는 걸 알고 시윤이 미리 준비해 둔 차였다.차 안에서 미연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오, 이거 봐. 기시윤이 너한테 꽤 신경 쓰네? 너희 둘 혹시...”말끝이 흐려지더니 미연의 표정과 목소리가 묘하게 변했다.다인은 미연을 힐끗 보고 피식 웃었다.“평소에 소설이랑 로맨스 드라마 좀 덜 봐라...”“아니.”미연은 팔짱을 끼고 천연가죽 시트에 편하게 기대더니 당당하게 말했다.“나 평소엔 액션 영화 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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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다인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웃었다.말로 사람을 꺾는 건 역시 미연이 최고였다.유림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임미연, 그만해. 남 일에 끼어들지 마. 너랑 상관없어.”미연이 비웃듯 받아쳤다.“왜? 그래놓고 인정은 못 하겠어? 그때 그런 짓 할 땐 이미 체면 다 팔아먹었으면서, 이제 와서 뭘 무서워해.”미연은 코웃음을 쳤다.“아, 맞다. 내가 깜빡했네. 이런 건 원래 너 같은 애들이 제일 잘하잖아.”“임미연, 말이 너무 심하네.”유림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끼어들었다. 의리 있는 척 유림을 감싸는 목소리였다정란이었다. 대학 시절 같은 동기였던 그 정란.정란을 보는 다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유림이 다인에게 일을 벌였을 때 정란도 늘 같이 붙어 있었다. 정란이 옆에서 부추기고 맞장구를 쳤고, 필요하면 손도 보탰다.둘은 같은 편인 데다가 같은 부류였다.미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다인 앞을 가로막았다.“너 아직도 기유림 옆에서 꼬리 흔들고 있냐?”미연은 비웃는 목소리로 정란을 찔렀다.“정란, 너 진짜 하나도 변한 게 없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붙어먹는 건 여전하네. 그렇게까지 하다 보면 너도 네가 누군지 잊어버리겠어.”다인은 속으로 조용히 엄지를 세웠다.‘우리 미연이 진짜... 미쳤다. 너무 잘 해.’다인은 마음속으로 미연을 위해 깃발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정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임미연, 지금 뭐라고 했어!”정란의 손이 움찔했지만, 끝내 더 나가지는 못했다.미연이 눈살을 찌푸렸다.“손댈 거면 해. 어디 해봐.”키가 큰 미연은 굽 낮은 부츠를 신고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기세였다. 정란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움츠러들더니 끝내 덤비지 못했다.유림이 이를 갈며 되받아쳤다.“임미연, 우리 란이 보고 개소리를 하는 걸 보니 너도 똑같아. 너야말로 한다인 따라다니는 애 아니야?”유림은 라운드 넥의 홀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쇄골과 팔을 시원하게 드러냈지만,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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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미연이 정란을 거의 눌러놓고 두들겨 패는 걸 보자, 태안의 안색은 바닥에 눌어붙은 검댕처럼 시커멓게 굳었다.“다인아, 네 친구 수준 좀 봐. 당장 그만하게 해. 안 그러면 나 지금 바로 신고한다.”태안은 대놓고 협박했다.솔직히 태안은 여전히 사람을 쥐어짜는 법을 알고 있었다.미연은 공인이기에 경찰과 엮이면 이미지에 타격이 갈 수밖에 없었다.다인은 미연이 자기 일 때문에 문제를 키우는 걸 원치 않았다. 다인은 정란 위에 올라타서 좌우로 주먹을 날리던 미연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됐어. 여기까지만 하자.”미연은 정말로 손을 멈췄다.미연은 일어나자마자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흐트러진 머리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익숙한 동작으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챙겨 썼다. 미연은 다시 늘 하던 대로 차갑고 화려한 모습으로 돌아갔다.하지만 마지막까지 독하게 말했다.“오늘은 봐준다. 또 주둥이 함부로 놀리면, 그 혓바닥으로 다시는 남한테 빌붙지도 못하게 해 주겠어!”유림이 재빨리 정란을 부축해 일으켰다.정란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도 헝클어졌고, 몸도 엉망이었다. 양쪽 뺨은 퉁퉁 부어서 몇 대나 맞았는지 가늠조차 어려웠다.정란은 미연을 가리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신고할 거야! 그렇게 잘난 척하지 마!”미연은 허공에서 두 손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움직일 때마다 뼈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뭐라고?”겁을 먹은 정란은 유림의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태안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기 대표님, 이 여자들 미쳤어요. 임미연이 저를 때린 건 그렇다 쳐도 한다인이 유림이까지 괴롭히려고 했어요.”정란은 숨도 안 쉬고 말을 이어갔다.“둘이 똑같이 독해요. 유림이랑 기 대표님 관계를 두고, 유림이가 천박하게 기 대표님을 유혹했다느니... 듣기도 싫은 말들을 막 했어요.”“한다인 같은 여자는 속이 너무 독하잖아요. 기 대표님이 진짜 한다인이랑 결혼하려면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셔야죠.”미연이 차갑게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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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다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태안은 다인이 찔려서 그런 거라고 단정한 듯 더 몰아붙였다.“지금 이런 꼴로 있는 걸 보니, 너랑 파혼한 게 완전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드네.”“그럼 딱 좋네.”다인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다인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시선은 태안을 똑바로 겨눴다.“나도 딱 원하던 거야. 말한 김에 끝까지 지켜. 괜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아니면 널 더 깔보게 될 테니까 말이야.”말을 던진 다인은 미연의 손을 잡아 끌고 그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매장을 빠져나왔다.태안은 얼어붙은 얼굴로 다인의 등을 바라보면서, 속으로는 이미 계산을 끝냈다.이틀 정도 지나서 기세가 꺾이면, 다인이 먼저 찾아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거라고. 결국 다인은 늘 그렇게 돌아왔으니까.그런데 방금 다인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설마, 진짜 끝낸다고?’그 생각이 스치자 태안의 마음속에서 살짝 두려움이 올라왔다. 태안은 무의식적으로 다인을 따라 나가려고 걸음을 옮겼다.그때 유림이 태안의 손을 급하게 붙잡았다. 유림은 일부러 힘이 풀린 듯 비틀거리며 몸을 기댔다.“오빠... 나 가슴이 너무 아파.”태안은 반사적으로 유림을 붙잡아 세웠다. 그리고 옆에 쓰러질 듯 서 있는 정란을 한 번 보더니, 표정을 정리했다. 태안은 머릿속의 생각을 급히 지웠다.“병원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다인이 미연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 가려고 하는데, 미연이 갑자기 다인을 꼭 끌어안았다. 미연의 목소리에는 아까의 독함 대신 아픈 기운이 실려 있었다.“다인아. 앞으로 어떻게 되든, 난 네 옆에 계속 있을 거야. 네 제일 좋은 친구로, 네 편으로, 네 가족처럼.”그 말에 다인의 가슴 깊은 곳이 시큰해지면서 눈가가 뜨거워졌다.“나도 똑같아.”다인은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미연을 꼭 껴안았다.“앞으로 어떻게 되든, 너는 내 제일 좋은 친구고... 내 사람이고... 내 가족이야.”다인에게 미연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보다 더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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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여보세요?”다인은 화면을 쓸어 받아놓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시윤 오빠, 축하해요. 한번 말해 보세요. 언제 들어오셔서 이혼하실 건데요?”시윤의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설마 내가 한밤중에 전화를 건 이유가 이 여자에게 이혼 얘기를 하려고였다고?’[이유부터 말해.]시윤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다인은 자기가 ‘감정적으로 들이받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그녀는 가볍게 웃어 보이려 애썼다.“어차피 우리 계약결혼이잖아요. 어느 쪽이든 원하면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거고요.”눈에 모래를 맞은 것처럼 따갑고 뜨거웠다. 시큰하게 달아오르는 감각이 자꾸만 올라왔다.시윤의 입가에 자조가 스쳤다.‘고작 하루도 안 됐는데, 이 여자... 태안이하고 다시 화해한 건가?’[결정했어?]시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잠겼다.“네.”다인은 목구멍이 꽉 막힌 것처럼 말을 뱉기가 어려웠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울먹이는 소리를 들킬까 봐 다인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다인아...]시윤이 쉰 목소리로 다인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신호음뿐이었다....시윤은 길고 선명한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꽉 쥐었다. 손등의 힘줄이 도드라지면서,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시윤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때 우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 안 공기가 칼날처럼 차가워진 게 한 번에 느껴졌다.“대표님.”우빈은 본능적으로 긴장했다.‘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표님은 사모님에게 전화하며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그런데 지금은 무슨 일이 터진 사람 같아.’시윤이 차갑게 눈길을 들고 짧게 지시했다.“한다인이 오늘 누구를 만났는지, 뭐 했는지 다 알아봐.”우빈은 고개를 숙였다.“네, 대표님.”‘역시... 원인은 사모님이었네.’...그날 밤, 다인은 뒤척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다음 날 그녀는 눈 밑이 시커멓게 다크 서클이 앉은 얼굴로 원고를 붙잡았다.집중이 되지 않았다. 쓰고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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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다인은 속으로 조용히 결심했다.‘시윤 오빠가 돌아오면, 제대로 물어봐야겠다.’...사흘 뒤, 모금 행사 당일.미연이 직접 다인을 데리러 왔다.장소는 대학 캠퍼스 안이었다. 야외에 무대가 세워져 있었고, 규모가 꽤 컸다. 무대 앞에는 좌석이 길게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얼추 천 명은 앉을 수 있어 보였다.초대받은 사람들은 전부 강세대학교 출신이었다.사업가, 금융권 인사, 업계에서 이름이 돌아다니는 사람들까지. 어디서든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얼굴들이 많았다.현장은 사람으로 빽빽했고,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주빈찬 총장은 무대 아래쪽에 있었다. 학생들이 주 총장 곁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다인과 미연도 그쪽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주 총장은 깔끔하게 넘긴 올백 머리에, 은색테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주 총장은 다인과 미연을 보자마자 알아봤다.“아, 너희 둘이구나. 기억하고 있어.”주빈찬 총장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는 한다인, 너는 임미연. 맞지?”다인과 미연은 의외라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네, 총장님. 맞아요.”다인이 차분히 대답했다.미연은 반짝 놀라며 말했다.“와, 총장님 저희를 기억하세요?”주빈찬 총장은 호탕하게 웃었다.“어떻게 기억 못 해. 너희 둘은 예전에 쌍둥이처럼 늘 붙어 다녔잖아. 어딜 가도 같이 다니고.”주빈찬 총장은 또 웃으며 다인을 쳐다봤다.“그리고 다인이는... 기태안 군을 따라다니던 일로 워낙 유명했지. 대학 4년 내내 난리였으니까, 기억에 남을 수밖에.”‘따라다닌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다인과 태안은 그때 이미 관계를 정리한 게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었다.다만 태안은 밖에서는 둘의 관계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인에게는 늘 같은 말을 했다.‘사업 빨리 자리 잡고, 너 빨리 데려가려고.’‘조금만 기다려.’그때 다인은 대학교 1학년이었고, 태안은 막 졸업해서 GM그룹 산하 지사를 맡은 지 얼마 안 된 때였다.다인은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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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다인은 태안을 보며 웃었다.태안이 얼마나 멍청한지 우스울 뿐이다.‘나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기유림이 중간에 학교를 옮기고, 해외로 도망치듯 떠나게 만들겠어?’그런데도 지난 3년 내내 태안은 그 책임을 다인에게 떠넘겼다. 태안은 다인을 원망했고, 그 원망을 붙들고 살았다.다인이 설명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태안이 안 믿었을 뿐이었다.다인은 태안을 향해 한 마디를 내뱉었다.“나한테 묻지 마. 기유림한테 물어.”다인의 시선이 유림에게 꽂혔다.다인의 말에 태안, 미연, 정란까지 시선이 한꺼번에 유림에게로 쏠렸다.태안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친 유림은 살짝 흔들리면서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곧바로 시선을 내리깐 유림이 부드런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나 해외 간 건 내 선택이었어. 다인이랑은 상관없어. 오빠, 다인이 탓하지 마.”말만 들으면 다인을 감싸는 것 같았다.그런데 묘하게, 더 다인 탓처럼 들리게 만드는 말투였다.정란이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유림아, 너는 너무 착해서 그래. 그때 너 해외 간 거, 한다인 때문이었잖아. 한다인이 네가 있는 걸 못 견뎌서, 너를 몰아냈잖아.”정란의 말은 동요하던 태안의 마음을 단숨에 눌러버렸다.태안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봐. 역시 다인이 거짓말한 거야.’태안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유림은 태안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면서 눈 밑으로 살짝 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곧바로 정란을 나무라는 척했다.“정란아, 그만 말해. 진짜 다인이랑은 상관없어. 그리고... 다 지난 일이잖아.”유림이 그렇게 말할수록 태안은 더 확신했다.다인 때문이라는 확신.어설프게 덮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림자.미연이 더는 못 보겠다는 표정으로 나섰다.“뭐가 ‘다 지난 일이야’야? 너 지금 말 똑바로 해. 너 해외 간 이유가 정확히 뭐였는데?”미연은 유림을 향해 단단히 못을 박았다.“자꾸 다인이랑 상관없다, 다 네 선택이다, 이런 소리하지 마. 너 누구 보여주려고 그렇게 억울한 척하는데?”“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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