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린 남자 대신, 그의 형이 내 인생을 뒤집어놨다의 모든 챕터: 챕터 91 - 챕터 100

100 챕터

제91화

유조영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다인아, 네가 결혼을 없던 일로 하고 싶다고 해도 이런 일은 마주 앉아서 하나하나 분명하게 정리해야 해.][네가 파혼하겠다고 한다고 바로 끝나는 일이 아니야. 파혼 같은 큰일은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해야지.]다인도 그 말 자체는 맞다고 생각했다.“어떻게 이야기하고 싶으신데요?”[주소 보내 줄 테니까 거기로 와. 내가 너하고 차분히 좀 얘기하게.]유조영의 말투에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다인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경계하는 듯이 침묵했다.그러다 톡을 열어 유조영이 보낸 위치를 확인했다. 장소는 아주 유명한 식당이었다. 그제서야 다인은 크게 이상한 점은 없다고 여겼다.“알겠습니다.”다인은 그렇게 답했다.30분 뒤, 다인은 직접 차를 몰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식당 건물 아래에 도착하자, 다인은 시윤에게 먼저 위치를 보냈다.[어머님이 파혼 문제로 얘기하자고 하셔서 여기로 왔어요.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메시지를 보낸 뒤, 다인은 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한편, 시윤은 검은색 가죽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그 앞에서 기영준은 놀람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시윤을 노려보고 있었다.“네가 감히 이런 짓을 했다고?”기영준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이 일이 밖으로 새기라도 하면, 우리 가문 체면이 얼마나 구겨질지 알고는 있니?”시윤은 차가우면서도 흔들림 없는 태도로 말했다.“저한테 해결 못 할 일은 없습니다.”“너...!”기영준은 화를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시윤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냉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 모든 걸 이미 계산해 둔 사람처럼 여유를 보이자, 기영준의 화도 반쯤은 꺾이고 말았다.기영준의 이 아들은 18살 때부터 그룹 일을 맡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자기 손으로 거대한 금융 왕국까지 일궈 냈다.일 처리만큼은 언제나 절제되어 있었고, 빈틈도 없었다.무슨 일이든 순서대로 정리해 나갔기에 기영준이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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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다인의 의식은 흐릿했지만, 자신을 안고 가는 사람이 태안이라는 것만큼은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그 사실을 깨닫자 다인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조여 들었다.“너... 뭘 하려는 거야?”다인은 화가 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힘없이 풀어졌고, 다인이 아무리 몸부림치려고 해도 태안에게는 그저 미약한 저항일 뿐이었다.태안은 다인을 안은 채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리고 다인을 내려다보며 비웃듯 말했다.“네가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게, 결국은 내가 널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태안의 입가가 비틀렸다.“오늘 내가 네 바람대로 해줄게. 네가 진짜로 내 여자가 되게.”예전의 태안은 다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어차피 다인은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절대 먼저 떠나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그래서 다인이 화를 내도 태안은 대충 몇 마디 달래면, 결국 다인이 다시 자기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다인이 이토록 크게 등을 돌리고, 결혼까지 없던 일로 하자고 나올 줄은 태안도 예상하지 못했다.어떤 일이 있어도 태안은 파혼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다인을 놓칠 수도 없었고, 한씨 가문의 뒷받침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놔!”다인은 화를 내며 태안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 했다.하지만 약기운이 너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몸은 순식간에 힘을 잃어 갔다.버둥거리는 것조차 어려웠다.손 하나 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그때 다인의 머릿속에 시윤이 스쳤다.다인은 다급하게 태안에게 말했다.“너, 나 안 놓으면... 네 형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형 얘기는 꺼내지도 마!”태안의 눈빛은 음산하게 가라앉았다.태안은 이를 악물며 씩씩댔다. 시윤이 두려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동안 시윤에게 제압되고 맞았던 일은 여전히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다.‘시윤 형이 집안의 후계자면 뭐? 한다인을 감싼다고 어쩔 건데?’자신과 다인이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리면,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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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시윤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풀어 다인의 행방을 찾게 했다.하지만 어디를 뒤져도 다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윤은 곧장 우빈에게 위치를 추적하라고 지시했다.마침 우빈이 결과를 알아냈다.다인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호텔에 있었고, 다인을 데려간 사람은 태안이었다.“지금 바로 가.”시윤이 차에 오르자, 차량은 곧장 호텔로 향했다.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시윤의 핸드폰에 다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짧은 진동음에 시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인아, 지금 어때?”[시윤 오빠... 살려주세요...]다인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섞여 있어서,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호텔에 있는 거야?”다인은 흐트러진 의식을 붙잡으려는 듯 힘겹게 대답했다.[네...]“무서워하지 마. 내가 왔어. 아무 일 없게 할 거야.”시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객실 번호 알아?”[모르겠어요...]다인의 목소리 끝이 금세 젖어 들었다. 머릿속은 어지럽게 뒤틀려 방향감각조차 흐려진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시윤의 목소리를 듣자, 애써 버티고 있던 두려움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다인은 지금 시윤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제발, 빨리 와 주기를...’시윤은 끝까지 다인을 달랬다.[괜찮아, 다인아. 내가 있으니까. 곧 갈게. 절대 너 혼자 두지 않아.]전화를 붙든 채, 시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빈을 돌아봤다. 핸드폰을 쥔 손등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객실 번호.”잠시 뒤, 전화 너머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호텔 객실 안.다인이 핸드폰을 급히 베개 밑으로 밀어 넣었다.그때 욕실 쪽에서 태안이 나왔다.다인은 태안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것도, 지금의 다인에게는 전부 불쾌하고 두려운 것뿐이었다.“기태안, 마지막으로 말할게. 우린 끝났어. 그러니까 나한테 손대지 마.”조금 전 간신히 끌어올렸던 힘마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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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쾅!객실 문이 갑자기 거칠게 걷어차이면서 열렸다.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원래도 힘없이 끊기던 다인의 목소리는 그대로 묻혀 버렸다.태안은 다인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갑작스러운 굉음에 태안이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누구야?”태안은 몹시 짜증이 치밀었다.방금 그 소리에 흐름이 끊겨 버렸기 때문이었다.그때, 한 사람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이닥쳤다.순식간에 달려든 시윤이 태안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잡고 침대에서 끌어내린 뒤, 그대로 복부를 향해 묵직한 발길질을 날렸다.“기태안, 네가 감히...”시윤의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가슴속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태안은 배를 감싼 채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처절했다. 문밖에 있던 우빈과 사람들조차 그 소리를 듣고도 선뜻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시윤의 시선이 침대 위로 향했다.흐트러진 채 떨고 있는 다인을 보는 순간, 시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곧장 침대 곁으로 다가간 시윤이 이불로 다인의 몸을 감쌌다.시윤이 몸을 숙여 다인에게 손을 내밀려던 바로 그때였다.다인은 겁에 질린 채 비명을 질렀다.“안 돼, 안 돼... 오지 마...”“오지 마...”다인의 의식은 다시 흐려지고 있었다.두려움에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고, 입술 사이로는 같은 말만 자꾸 흘러나왔다.그 모습을 본 시윤의 가슴은 세게 조여 들었다.시윤은 미간을 깊게 좁힌 채, 다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다독였다.“나야. 괜찮아, 다인아. 이제 괜찮아.”다인은 시윤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조금씩 진정했다. 눈물 자국이 가득한 작은 얼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웠다.시윤은 몇 번 더 다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다독였다.그러자 다인의 떨림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약기운은 이미 몸속 깊이 퍼져 있어서, 다인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붉고 뜨거웠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형... 왜, 왜 여기 왔어...?”태안은 고통을 참으며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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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태안은 더는 따질 여유가 없어서 이를 악문 채 변명처럼 쏟아냈다.“난 한다인이 좋아. 파혼은 절대 안 돼! 엄마도 절대 안 된다고 했어!”“다인이 원하면, 그 결혼은 끝난 거야.”시윤의 기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시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태안을 똑바로 바라봤다.“선택해. 하나, 얌전히 파혼을 받아들여. 둘, 여기서 끝까지 가든가.”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윤은 태안의 손을 붙잡은 채 힘을 더했다.짧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태안의 비명이 터졌다.“아악!”태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쏟았다. 손끝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목소리까지 떨렸다.“형, 진짜 나 죽일 생각이야? 나 형 친동생이잖아!”시윤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쓸데없는 말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선택하라고.”태안은 시윤의 눈빛에 담긴 기세를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지금 시윤은 지난번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화가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다인이 시윤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받아들일게! 파혼 받아들이겠다고! 그렇게 할게!”태안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급히 외쳤다.지금은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날카로워서, 태안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꺼져.”시윤은 태안을 거칠게 밀어냈다.그리고 곧장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침대 위의 다인을 바라보는 시윤의 눈빛은 깊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방금 전까지 서려 있던 거친 기운은 다인을 보는 사이 흔적도 없이 가라앉았다.태안은 겨우 풀려난 사람처럼 급히 욕실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었다.침대 위의 다인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작은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고, 보기만 해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시윤의 가슴이 꽉 조여 들었다.그나마 다인을 바라보면서 안도할 수 있었다.‘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어.’시윤은 재빨리 다인의 흐트러진 옷차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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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지금까지 시윤에게는 후회되는 일이 딱 두 번 있었다.한 번은 5년 전의 일이었고, 또 한 번은 바로 지금이었다. 시윤은 다인의 뜻을 존중해서, 다인이 직접 태안과의 관계를 매듭짓고 나서야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기로 한 걸 뒤늦게 후회했다.처음부터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드러냈다면, 누가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었겠는가?건민은 잠시 말을 잃었다.“너희... 결혼했다고?”시윤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이상해?”이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다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안의 여자친구였다.건민이 아는 시윤은 늘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그렇다면 결국 시윤은 다인에게...건민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이건 또 엄청난데.’건민은 그제야 뭔가 큰 걸 알아차린 사람처럼 속으로 혀를 찼다.이건 단순히 늦바람이 난 게 아니었다.오히려 오래전부터 마음이 있었고, 오래도록 참고 지켜보다가 결국 여기까지 온 쪽에 가까웠다.건민은 속으로 충분히 놀랄 만큼 놀란 뒤, 돌아가기 전에 시윤에게 만족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남겼다.다인의 몸 상태만이 아니라 마음 상태도 잘 살피라고.밤이 깊어 어느덧 열 시가 가까워졌을 때, 다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다인의 눈빛은 아직 좀 흐릿했다.낯선 듯 방 안을 한참 둘러보던 다인의 머릿속에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깼어?”그때 시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시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인에게 다가갔다.그런데 시윤의 손이 다인의 어깨에 닿는 순간이었다.다인의 온몸이 갑자기 크게 움찔했다. 마치 팽팽하던 신경이 한꺼번에 끊어지기라도 한 듯, 다인의 표정이 곧장 일그러졌다.“안 돼, 안 돼... 날 만지지 마!”“저리 가... 날 건드리지 마...”다인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 머리맡으로 몸을 웅크렸다.무릎을 끌어안고 머리를 깊게 파묻은 채 떨고 있었다. 흐릿하게 젖은 눈에는 공포가 가득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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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다행이었다.정말, 시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이번엔 잘했어.”시윤은 다인의 눈물을 닦아준 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다인을 바라봤다.“앞으로도 불안한 일이 생기면 혼자 끌어안지 말고 나한테 물어. 아니면 나랑 먼저 상의해.”다인은 시윤의 눈빛에서 자신에 대한 걱정과 낯설면서도 요즘 들어 자주 마주하게 된 다정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는 사이에 다인의 가슴 한쪽으로 따뜻한 온기가 천천히 번져 갔다.무엇보다도, 가까이에서 마주한 시윤의 얼굴은 시선을 떼기 어려울 만큼 또렷하고 잘생겼다.그 탓에 다인의 심장은 더 세게 뛰기 시작했다.이번은 전과 달랐다.지금까지 어느 때보다도 더 선명했다.‘이게 정말, 마음이 움직이는 감정일까?’다인 스스로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다인의 표정이 가라앉아 있는 걸 본 시윤은, 다인이 아직도 오후 일을 떠올리며 겁에 질려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 다그치지 않았다.“배고프지? 뭐 먹고 싶어? 내가 해 줄게.”“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알겠어. 일어나서 얼굴만 좀 씻고 와. 금방 준비할게.”시윤은 가볍게 다인의 어깨를 두드렸다.다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뒤에야 시윤은 안방을 나갔다.30분쯤 지나서, 세수를 하고 내려온 다인은 식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식탁 위에는 소고기국수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위에는 계란이 올려져 있었고, 잘게 썬 파가 살짝 뿌려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다인은 놀란 눈으로 시윤을 바라봤다.“이거... 오빠가 만드신 거예요?”시윤은 짧게 대답했다.“응. 외국에 있을 때 3년 동안 자주 해먹었어.”따끈한 국물 냄새가 퍼지자, 비어 있던 다인의 위장도 금세 반응했다.다인은 젓가락을 들고 급히 한 입을 먹었다.“맛있어요.”다인은 놀란 기색으로 시윤을 올려다봤다.진심으로 나온 말이었다.그 한마디를 뱉고 나자, 태안 때문에 남아 있던 불쾌한 기분도 절반쯤은 걷혀 나가는 것 같았다.“마음에 들면 더 먹어. 잘 먹어야, 이제 일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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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어제 일로 충격을 받은 다인이 악몽을 꾸는 듯했다.표정은 몹시 괴로워 보였고, 몸도 자꾸만 가늘게 떨렸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릴 만큼 위태로웠다.시윤은 서둘러 다인을 품에 안았다.그리고 다인의 이마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며 낮게 달랬다.“내가 있잖아. 무서워하지 마. 이제 괜찮아.”깊고 어두운 시윤의 눈빛에는 애써 눌러 참은 감정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윤은 다인을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시윤은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마치 겁먹은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럽고도 끈질기게.다인은 마치 매서운 추위 속을 헤매다 따뜻한 화롯가로 파고든 사람처럼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시윤의 품 안에서 다인의 떨림도 서서히 잦아들었다.작고 여린 몸이 시윤의 품 안에 꼭 들어왔다.가볍고 부드러운 다인의 손은 시윤의 가슴팍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있었다. 시윤의 체온과 익숙한 향을 느끼면서, 다인은 그렇게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시윤은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시윤은 다인을 안은 팔에 더 단단히 힘을 주고, 고개를 숙여서 다인의 이마에 다시 한번, 또 한 번 입을 맞췄다....다인은 푹 자고 나서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어제는 기운이 완전히 빠져 있었는지, 거의 내내 잠만 잔 셈이었다.자리에서 일어난 다인이 씻고 나왔지만, 시윤은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시윤이 이미 회사에 간 줄 알았다.그런데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시윤은 거실 소파 뒤쪽, 통유리창 앞에 서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따뜻한 햇살이 시윤의 몸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원래도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던 사람이었는데, 햇빛까지 더해지자 그 얼굴이 햇빛보다도 더 눈에 띄었다.다인은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봤다.시윤이 통화 중인 걸 보고. 다인은 가까이 가지 않고 멈춰 섰다.그 사이에 상주댁이 다인에게 몸보신을 하라면서 보양식을 내왔다. 아침을 먹고 이것도 꼭 먹으라고 다정하게 권했다.다인은 얌전히 상주댁 말대로 보양식을 먹었다.그러다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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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고작 여섯 살 차이잖아요. 무슨 나이 차가 엄청 나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그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시윤은 원래도 생활 방식이 꽤나 단정하고 올드한 편이었다. 스물아홉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단 한 번도 스캔들 없이 지냈고, 가벼운 소문조차 붙은 적이 없었다. 유흥가를 드나든다는 이야기도, 여자 문제로 입에 오른 적도 없었다.그쪽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시윤은 자기관리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철저했고, 생활도 반듯했다. 그래서 오히려 누군가를 오래 마음에 둔 채 혼자 지켜 온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너보다 나이가 많으면 그걸로 된 거지.”시윤은 입가의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그리고 넌 너무 말랐어. 바람 좀 불면 날아갈 것 같거든. 딱 아이 체격이야.”“어디가요? 나... 발육은 잘 됐거든요.”다인은 발끈하며 가슴을 살짝 내밀었다.“못 믿겠으면 보세요...”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다인은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내가 왜 그걸 굳이 보여 주려는 거야?’순식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민망해진 다인은 몸을 돌려서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시윤이 순순히 놓아줄 리 없었다.시윤은 곧바로 다인의 허리를 감고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자기 품 안에 가뒀다.“뭘 보라고?”남자의 따뜻한 숨결이 다인의 얼굴 가까이 닿았다.다인의 얼굴은 금세 터질 듯 뜨거워졌다.방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다인은 후회막심했다.‘보라고 하다니, 뭘?’‘정말로... 내가 얼마나 괜찮은지 직접 보여 주겠다는 뜻처럼 들렸을 거 아니야?’다인은 입술을 꼭 깨문 채 고개를 푹 숙였다.차마 시윤을 마주 보지 못했다.“내가... 방금 한 말은...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거예요.”시윤의 눈빛이 뜨겁게 가라앉으면서 손끝으로 다인의 턱을 들어 올렸다.“난 아까 네가 더 좋았는데.”시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 떨어졌다.“가령... 한 번 더 보여 준다든지.”다인의 얼굴은 더 붉어져서 귀 끝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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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유조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시윤의 눈빛을 제대로 마주치자 등줄기까지 서늘해졌다.‘설마... 뭘 아는 건가?’하지만 유조영은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유조영은 애써 표정을 굳히고, 다시 날 선 목소리로 몰아붙였다.“시윤아, 네가 능력이 있는 건 나도 알아. 지금 기씨 가문이 사실상 네 손에 달려 있는 것도 맞지.”“그래도 태안이한테 잘못이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망가뜨릴 만큼 손을 써야 했니? 형제 사이 정은 조금도 생각 안 했어?”유조영의 말에는 원망과 질책이 가득했다.방금 전 시윤이 던진 말의 뜻을... 병실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태안은 이를 악문 채 분한 목소리로 내뱉었다.“형, 아무리 그래도 나랑 다인이는 원래 결혼하기로 했던 사이였어. 내가 방법을 잘못 썼을 수는 있어도 다인은 어차피 언젠가 내 아내가 될 사람이었어. 난 그냥 그걸 조금 앞당기려 했을 뿐이야.”유림은 태안보다도 더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맞아요. 태안 오빠랑 다인이는 원래 만나던 사이였잖아요. 다인이도 태안 오빠를 많이 좋아했고요. 어쩌면 이번 일만 지나가면 다인이 화도 풀려서, 괜히 고집부린 걸 그만둘 수도 있죠.”“할 말 다 했어?”시윤은 원래부터 눈매에 싸늘한 기운이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그런 시윤이 시선을 들어 세 사람을 훑는 순간, 병실 안 공기마저 차갑게 식어 버렸다.“다인이는 이미 먼저 파혼 의사를 밝혔습니다. 태안이와의 혼인은 이미 끝난 일이나 마찬가지예요. 남은 건 양가가 앉아서 형식만 정리하는 것뿐입니다.”시윤의 시선이 곧장 태안에게 향했다.눈빛은 날이 서 있었다.“그리고 너...”시윤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상대 동의 없이도 약을 쓰고, 강제로 범하려고 한 건 명백한 성범죄야. 최소 형량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굳이 설명해 줘야 하나?”태안은 눈을 크게 떴다.“형, 다인이 때문에 날 경찰에 넘기겠다는 거야? 내가 그래도 형 친동생인데?”‘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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