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날 버린 남자 대신, 그의 형이 내 인생을 뒤집어놨다: Capítulo 71 - Capítulo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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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사림은 단정하게 옅은 화장만 하고 있었다. 흰색 새틴 셔츠에 검은색 와이드 슬랙스를 매치한 차림은 군더더기 없이 세련됐다. 간결한 옷차림인데도 분위기는 또렷했고, 눈빛에는 자신감과 여유가 가득했다.다인은 이렇게 일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분명한 여성을 늘 대단하다고 여겼다.먼저 말을 꺼낸 건 사림이었다.“전에 시윤이 다인 씨 얘기한 적 있거든요. 이름 저장도 ‘부탄가스’로 해 놨길래 뭔가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엄청 부드럽고 예쁜데요.”‘저장 이름, 부탄가스?’다인은 의아한 눈으로 시윤을 쳐다봤다. 예전에 저장 이름 얘기가 나왔던 날이 떠올랐는데, 역시 좋은 이름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부탄가스라니.’‘이름조차 제대로 붙여 줄 생각이 없었던 거야?’시윤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사림을 흘겨봤다.“너 진짜 말 잘한다.”사림은 오히려 놀란 표정이었다.“다인 씨, 몰랐어요?”시윤은 사림을 한 번 더 흘겨봤다.다인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사림이 곧바로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다인 씨, 제가 놀리려던 건 아니에요.”사림은 자연스럽고 시원시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시윤이랑 제가 안 지가 벌써 10년도 넘었거든요. 시윤이는 원래도 자기 관리도 철저하고, 연애도 한 번 안 하던 사람이에요.”“그날 제가 전화를 대신 받은 것도 인수합병 건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아서였고요. 근데 받으니까 다인 씨 전화였던 거예요.”“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빨리 혼인신고까지 마쳤을 줄은 진짜 몰랐죠.”사림은 끝까지 거리낌 없이 담백했다.“저도 언제 한 번 시윤이한테 다인 씨 데리고 나와서 다 같이 밥 한번 먹자고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여기서 마주치네요.”다인은 적잖이 놀랐다.‘결혼 얘기까지 했다고?’‘혹시라도 누가 알게 될까 걱정되지도 않을 거야?’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 다인은 살짝 웃으며 맞장구쳤다.“그러게요. 정말 우연이네요.”다인이 조금 불편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시윤이 다인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임미연 씨랑 밥 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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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다인은 속으로도 담담했다. 눈빛도 조금의 흔들림 없이 차가운 기색만 가득했다.“할 말 다 했어?”태안은 다인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태연할 줄은 몰랐기에.예전 같으면 화를 내면서 왜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따지고 들었을 텐데.“말 끝났으면 얼른 꺼져. 여기서 더 추하게 굴지 말고.”다인은 사정없이 태안을 쏘아본 뒤, 미연의 손을 잡고 그대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런데 다인이 물러나려고 했지만 태안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태안은 갑자기 손에 힘을 줘 다인의 어깨를 움켜잡더니, 거칠게 잡아당겨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이리 와. 말 똑바로 하고 가!”다인은 그대로 몇 걸음이나 비틀거리면서 뒤로 밀려났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섰지만, 왼쪽 어깨에서는 날카로운 통증이 훅 치고 올라왔다.“너 미쳤어?”아픈 기운에 이를 악문 다인이, 고개를 돌려 태안을 향해 소리쳤다.다인이 화를 내자 오히려 태안은 속으로 우쭐해졌다.‘그래, 이거였지.’예전에도 다인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늘 제멋대로 화를 냈다. 태안은 그럴 때마다 확신했다. 다인이 아직도 자기를 신경 쓰고 있다고.그 탓에 태안의 기분을 짓누르던 불쾌함도 절반쯤 사라졌고, 말투도 조금 누그러졌다.“내가 인정할게. 전에 공진도한테 네 대본을 유림이 이름으로 넘기라고 한 건 내 잘못이야.”태안은 한 번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근데 네가 전에 유림이 머리를 다치게 해서 꿰매게 만든 것도 있잖아. 뜨거운 물로 유림 가슴을 데이게 한 것도 있었고. 그 두 개면 됐지. 그 정도면 서로 퉁칠 수 있는 거 아냐?”태안은 미간을 문질렀다. 속에 남은 불만을 꾹 누르는 기색이었다.“게다가 공진도도 회사에서 쫓겨났고, 양효찬도 처리됐잖아. 이제 너도 화 좀 풀 때가 됐어.”그러고는 한 박자 쉬더니 덧붙였다.“그리고 내가 그동안 말 안 하고 넘어간 일도 하나 있어.”다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태안을 봤다. 핏기 없는 얼굴에는 의문만 가득했다.“무슨 일?”태안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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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그런데 최근 들어, 다인은 자신을 아껴 주는 마음이 하나 더 생겼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시윤이 건네는 다정함 때문이었다.“이제 그만해!”태안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다인이 고개를 들었을 때, 태안은 유림을 품에 감싸 안은 채 단단히 보호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미연이 휘두르던 가방을 붙잡고 있었고, 고개를 치켜든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눈빛까지 붉게 충혈돼 있었다.“임미연, 나 진짜 오래 참았어. 오늘 제대로 한 번 당해 봐야 네가 선을 알겠지.”태안의 표정은 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눈 밑으로 위험한 기색이 스쳤다. 태안은 그대로 다리를 들어 미연을 향해 걷어찼다.“조심해!”다인은 눈을 크게 뜨고 다급히 미연을 밀어냈다. 그 바람에 태안의 발길질은 그대로 다인의 옆구리에 꽂혔다.“악!”다인은 비명을 지르며 한참 뒤로 나가떨어졌다. 몸이 거의 일 미터쯤 밀려났다.방금 그 한 번의 발차기는 힘이 너무 셌다.“다인!”“다인아!”서로 다른 두 목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하나는 겁에 질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믿기지 않는 충격에 흔들리고 있었다.미연은 그대로 다인 쪽으로 달려들었다. 다인의 상체를 부축해 안으며, 눈가에 금세 눈물이 차오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다인아, 괜찮아? 어디 괜찮아?”“다인...”태안도 유림을 놓고 다인 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미연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태안을 노려봤다. 쉰 목소리로 이를 갈듯 내뱉었다.“다인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절대 가만 안 둬.”태안은 충격에 얼어붙은 데다, 바로 죄책감까지 밀려든 듯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림은 태안이 다인을 걷어차 날려 버리는 걸 똑똑히 봤다. 속은 후련했지만, 그 기분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유림은 얼른 태안 앞으로 다가가더니 미연에게 화를 냈다.“네가 계속 미친 듯이 우리 때렸으니까 태안 오빠가 실수로 다인까지 건드린 거잖아.”유림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따지고 보면 원인은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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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다인의 단호한 얼굴을 마주한 태안은 가슴 한쪽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입가도 제멋대로 몇 번이나 경련하듯 떨렸다.다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태안을 똑바로 바라봤다. 기운은 빠져 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귀를 때릴 만큼 선명했다.“그날 네가 혼인신고하러 안 왔을 때부터, 내가 너한테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부터... 나는 진짜 너 내려놨어.”다인은 잠시 숨을 골랐다. 식은땀이 이마를 적셨다.“5년이야. 나... 이제 지쳤어.”메마른 목소리는 갈라질 듯했지만, 말끝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네가 나한테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으면, 내가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알았겠지. 내가 괜히 떼쓰는 게 아니라는 것도.”다인은 힘겹게 말을 이어 갔다.“맞아. 지난 5년 동안 나는 늘 네 옆에 붙어 있었고, 네 비위 맞추려고 애썼어. 네가 내 단점이라고 말한 건 다 고치려고 했고...”숨을 한번 들이켠 뒤, 다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근데 너는 내가 뭘 얼마나 참고 있는지, 얼마나 애쓰는지 제대로 본 적이 없어.”다인의 눈빛은 점점 더 차분해졌다. 오히려 그래서 더 선명했다.“너는 그냥 네가 이긴 거라고만 생각했겠지.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해서 한없이 작아지고,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얼마나 상처를 입혀도 다 괜찮을 거라고.”다인은 끝내 가장 아픈 말을 꺼냈다.“너는 나를 믿지도 않았고, 아끼지도 않았고, 사랑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내가 왜 꼭 너만 좋아해야 하는데?”그 말을 다 내뱉고 나자, 다인은 기운이 쭉 빠져나간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고, 핏기 없는 얼굴로 미연에게 몸을 반쯤 기댔다.“가자...”다인은 힘없이 말했다.미연은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였다. 금방이라도 피가 맺힐 것처럼 붉어진 눈으로 다인을 보다가, 결국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가자.”미연은 다인을 부축한 채 곧장 차에 태워서 자리를 떴다.태안의 머릿속은 그제야 쾅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눈앞이 텅 빈 듯 멍해졌다.태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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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맞아요.”시윤의 눈빛에 맺힌 냉기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시윤은 미연을 바라보며 약속하듯 또렷하게 말했다.“다인이가 이렇게 당하고 끝나게 두진 않겠습니다.”미연은 시윤의 눈을 가만히 마주 봤다. 이상하게도 그 말에 믿음이 가서 미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미연이 본 시윤은 다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그 긴장감은 단순히...집안끼리 맺어진 관계에서 나오는 반응처럼 보이지 않았다....다인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은은한 조명 아래, 다인은 천천히 눈동자를 굴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깊고 짙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깼어?”시윤은 침대 머리를 조금 올려 준 뒤, 몸을 숙여 다인을 바라봤다.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으며, 살짝 잠겨 있었다.“배 안 고파? 어디 더 불편한 데는 없고?”다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멀리 보이는 네온사인이 별빛처럼 번져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몇 시예요?”“9시 반이야.”다인은 천천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시윤의 눈을 마주한 채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근데 오빠, 부탄가스가 무슨 뜻이에요?”목소리는 아주 작았다.작은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조명이 얼굴 위로 드리운 그림자 탓에 물기 어린 눈동자는 더 흐릿하고 위태롭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분위기가 다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시윤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큰 손으로 다인의 이마를 몇 번이나 조심스럽게 쓸어 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거 궁금하면 지금은 푹 쉬어. 몸 좀 괜찮아지면, 그때 내가 말해 줄게.”다인은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너무 없어서 항의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이후 다인은 미연 얘기도 꺼냈다. 그러자 시윤은 미연이 회사 일 때문에 급히 공연에 참여하게 됐다고 알려 줬다. 별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다인은 얌전하게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네...”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뜨이길 반복하더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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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주먹에 실린 힘이 너무 강했다. 태안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유림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큰오빠, 갑자기 왜 태안 오빠를 때리세요?”유림은 크게 놀란 얼굴로 허둥지둥 태안에게 달려갔다. 얼른 태안을 부축하며 다급하게 물었다.“오빠, 괜찮아?”“괜찮아.”태안은 찢어진 입가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유림의 부축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킨 태안은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리고 시윤을 바라봤다. 화도 났지만, 더 큰 건 당혹감이었다.“형, 내가 뭘 잘못했는데?”“네가 더 잘 알겠지.”시윤은 손목을 한 번 비틀어 풀었다.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시선은 태안에게 꽂혔다. 온몸에서 분노가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태안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설마 최근에 밀어 넣은 사업 건들 때문인가?’하지만 태안이 손댄 건 전부 수익이 나는 쪽이었다.생각할수록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태안은 더 답답하게 말했다.“형, 내가 뭐가 잘못됐는지 말로 하면 되잖아. 굳이 손부터 쓸 일은 아니잖아.”시윤은 어두운 표정으로 태안 앞으로 다가갔다. 이어서 망설임도 없이 다리를 들어 태안의 옆구리를 거세게 걷어찼다.이번에는 더 심했다.태안은 몸이 통째로 날아가듯 밀려나더니, 화장대 모서리에 등이 부딪혔다. 앓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병과 화장품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병들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유림은 그 광경에 입도 떼지 못했다.시윤은 음산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태안을 노려봤다.“이제는 이유가 좀 떠오르나?”태안은 화장대를 짚고 겨우 몸을 세웠다. 통증이 몰아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관자놀이와 손등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마저 갈라져 있었다.“형...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차라리 바로 말해 줘.”“아직도 모르겠어?”시윤은 어금니를 다시 한번 꽉 깨물었다. 태안에게 다가서는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압박감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다시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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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말로 하면 되잖아. 꼭 손부터 써야 했어?”태안은 아직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손으로 짚었다. 속으로는 불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동시에 이해도 되지 않았다. 왜 시윤이 이렇게까지 몇 번이나 다인을 감싸는지 너무 이상했다.시윤은 어두운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태안을 노려봤다.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네가 다인을 계속 상처 입힌 일, 그건 한씨 가문이 그냥 넘어간다 해도 나는 절대 못 넘어가.”태안은 시윤의 매서운 눈빛에 눌려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억울한 표정으로 급히 말했다.“형,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또 한 번이라도 다인이 건드리면, 기씨 가문에서 나가.”시윤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차가웠다. 말끝마다 인정사정없는 기운이 배어 있었다.태안은 등골이 싸하게 식는 걸 느꼈다. 원래부터 시윤을 두려워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 공포가 더 선명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태안은 급히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안 그럴게, 형. 다인이한테도 제대로 사과할게.”“그래요. 태안 오빠가 다인이한테 잘 사과하면 되잖아요.”유림은 시윤의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지만,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받았다. 은근히 떠보려는 기색도 섞여 있었다.“원래 둘이 사귀던 사이였고, 다인이도 태안 오빠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분명 용서할 거예요.”유림은 말을 이은 뒤 시윤을 조심스럽게 살폈다.“근데 큰오빠, 이번에 귀국하신 뒤로 다인이 일에 너무 예민하신 것 같아요.”‘사귀던 사이?’시윤의 눈빛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얼음장 같은 시선이 유림에게 향하면서 입가에는 싸늘한 비웃음이 스쳤다.“재주 좋네. 사람 하나 완전히 놀아나게 만들 정도니 말이야.”유림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지면서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태안은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불만만 더 짙어졌다.“유림이 말도 틀린 건 아니잖아. 다인이는 내 여자친구고, 그냥 달래면 되는 일이야. 형이 왜 이렇게까지 난리야?”시윤의 시선이 칼날처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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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어쩌면... 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걸지도 몰라.”유림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단정 짓지 않는 말투였지만, 태안을 바라보는 눈에는 난처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태안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으면서,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었다.“내가 직접 다인한테 가서 똑똑히 물어봐야겠어.”유림은 곧바로 태안을 말리면서 덧붙였다. 시윤만은 절대 자극하지 말고 조심해서 움직이라고, 괜히 일을 더 키우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그런 유림의 태도에 태안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다정하고 속 깊은 동생이라며, 유림 같은 사람은 드물다고까지 말했다.그 말을 들은 유림의 눈가에는 뜻을 이룬 듯한 기색이 스쳐 갔다.태안이 계속 자신을 무조건 믿어 주고 감싸 주기만 하면, 유림은 기씨 가문 안에서 지금의 자리를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다만 아쉬운 건 하나였다.끝내 시윤만큼은 유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새벽이 깊어질 무렵, 다인은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시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사림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사실에 다인은 적잖이 놀랐다.“마 부대표님, 계속 여기 계셨어요?”다인의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다.자리에서 일어난 사림이 물을 따르며 대답했다.“시윤이가 다인 씨 걱정이 많이 됐나 봐요. 그래서 저보고 옆에 있어 달라고 하더라고요.”물을 따른 사림은 침대 머리도 조금 더 세워준 뒤, 컵을 다인에게 건넸다.부드럽고 어두운 조명 아래, 다인은 더없이 창백하고 연약해 보였다. 보는 사람이 괜히 더 챙겨 주고 싶어질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감사해요.”다인은 컵을 받고 천천히 물을 마셨다. 그제야 가슴이 조금 편안해지는 듯했다.“저한테는 그렇게까지 예의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다인이 더 마시지 않자, 사림이 컵을 다시 받아서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근데 태안이 걔도 참, 이렇게까지 욱하는 성격일 줄은 몰랐네요. 이번엔 시윤이가 단단히 혼을 내고 넘어갈 거예요.”사림이 별생각 없이 툭 던지듯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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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인은 확실히 느꼈다.사림은 시윤에게 남녀 간의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사림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했다. 곁에 있으면 기분이 편해지는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고, 그럴수록 다인은 사림이 점점 더 좋아졌다.30분쯤 지난 후, 새벽 네 시 무렵이 되어서야 시윤이 병실로 돌아왔다. 사림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실에서 나가기 전에 다인에게 다음에 따로 식사하자고 했고, 다인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시윤은 사림을 복도까지 배웅했다. 걸음을 멈추자, 사림이 고개를 돌려 시윤을 흘끗 봤다.“마음이 있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시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사림을 쳐다봤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사림은 피식 웃더니 금세 진지해졌다.“다인 씨, 괜찮은 사람이야. 근데 네 동생이랑 예전에 사귀던 사이였잖아. 그런 사람이랑 지금 네가 결혼한 거고. 그러니까 이 일만큼은 네가 끝까지 다인 씨 지켜 줘야 해.”“당연하지.”시윤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다인이가 직접 정식으로 파혼 얘기하고, 그 다음에 결혼을 공개하고 싶어 해. 나는 그 뜻대로 할 생각이야.”사림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윤 같은 사람이 굳이 이렇게 혼인 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시윤이 마음만 먹었다면 진작 정리했을 일이다.사림은 살짝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됐어, 됐어. 연애하는 사람들 머릿속은 원래 이해를 못 하겠더라.”사림은 발걸음을 옮기며 손만 한 번 흔들었다.“난 갈게. 너는 들어가서 다인 씨 옆 잘 지켜.”시윤은 멀어지는 사림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시윤의 눈동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다인은 배가 고파서 귤 하나를 까 먹고 있었다.잠시 뒤, 병실 문이 열리고 시윤이 밖에서 들어왔다. 시윤 특유의 차가운 편백나무 향기가 금세 병실 안을 채웠다.다인은 그 향기를 맡자 고개를 들었다. 시윤이 가까워질수록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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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다인의 뺨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르면서 얼굴 전체가 뜨겁게 익어 갔다. 다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시윤을 바라봤다. 높게 뻗은 시윤의 코끝이 다인의 코와 스치면서, 맞닿은 피부 사이로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퍼졌다.다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결 사이로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가 가득 스며들었다. 시윤은 다인을 단단히 붙잡듯 이끌었지만, 키스하는 동작은 의외로 다정했다. 두 사람의 숨이 얽히고, 다인은 그 흐름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다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숨이 막힐 것 같을 무렵에야 시윤의 입술이 아쉬움을 남긴 채 떨어졌다.“바보야, 아직도 숨쉬는 법을 모르겠어?”시윤이 소리 없이 웃었다.다인은 얼굴의 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맛 괜찮네.”시윤의 눈빛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엄지로 다인의 입가를 천천히 문질렀다.“달아.”다인의 뺨은 더 뜨거워졌다. 정말 불이라도 난 것처럼.흑요석처럼 짙은 시윤의 눈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정신없이 뛰었다. 꼭 작은 짐승이 가슴 안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다인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전에는 왜 몰랐을까요? 시윤 오빠가 이렇게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걸요.”시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검은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번졌다.“우린 법적으로 부부잖아. 그 정도면 당황하게 한 것도 아니지.”다인은 곧바로 받아쳤다.“부부 사이에도 문제가 되는 일은 되는 거, 아시죠?”시윤은 그 말에 미세하게 눈썹을 좁혔다.“그래? 그렇게 말은 잘하면서, 왜 자꾸 남들한테 당하고만 있었어?”말을 마친 시윤은 몸을 바로 세웠다. 여전히 짙은 눈빛에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평소처럼 깊고 차분한 기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자, 다인의 가슴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표정은 차갑고 단호했다.“그건 남이 잘못한 거예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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