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날 버린 남자 대신, 그의 형이 내 인생을 뒤집어놨다: Capítulo 81 - Capítulo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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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미연은 그 일 때문에 몹시 자책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는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섞여 들려왔다. 한창 일하던 중에 잠깐 쉬는 틈을 내서 전화를 건 게 분명했다.다인은 웃으며 미연을 달랬다.“맨날 네가 나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번엔 내가 너 한 번 지켰으니 됐어.”미연은 훌쩍거리면서 감동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곧장 또 태안을 욕하기 시작했다.[기태안 그 눈먼 새끼가 기유림한테 홀랑 넘어가서 정신도 못 차리지. 너같이 좋은 여자친구 놓친 것도 모자라, 결국 자기 형수로 만들어 놨네. 나중에 피눈물 흘릴 날 꼭 올 거야, 진짜!]다인은 이제 그런 쪽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담담했다.“기태안이 후회할지 말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안 해.”다인에게 태안은 혼인신고하러 나오지 않았던 바로 그날 이미 끝난 사람이었다.다만 다인이 쏟아부었던 감정과 시간까지 전부 헛된 건 아니었다. 그 시간은 결국 다인을 조금 더 단단하고 나은 사람으로 만들 테니까.두 사람은 몇 분 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미연은 제작진으로부터 다시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는 재촉을 받았다. 돌아오면 보자고 말한 뒤,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오후 2시쯤 시윤이 직접 다인을 데리러 와 퇴원 수속을 마쳤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다인의 옆구리는 여전히 욱신거렸다. 발길질을 맞은 자리는 퍼렇게 멍이 올라 있었다. 그 멍이 완전히 빠지려면 며칠은 더 걸릴 것 같았다.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냥 쉬면서 나아지길 기다리는 수밖에.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인은 안방으로 들어가 먼저 샤워를 했다. 시윤은 서재로 가서 일을 보고 있었다.그때 우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당시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을 찾아가 다시 확인했습니다. 사모님이 그때 그 학생을 도와준 건 사실이었고, 사모님은 가해자가 아니었습니다.]우빈은 한 박자 쉬었다가 덧붙였다.[실제 가해자는 기유림하고 정란, 그 무리였습니다.]“예정대로 진행해.”[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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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시윤의 잠긴 목소리가 경고하듯 들려오자, 다인의 생각은 3년 전으로 되돌아갔다.3년 전 그 밤은 태안의 생일이었다.그때는 유림이 아직 출국하기 전이라 기회를 잡았다는 듯 다인에게 계속 술을 권했고, 다인은 거의 만취한 상태가 됐다.정신이 몽롱해진 다인은 시윤을 태안으로 착각한 채 문어처럼 시윤에게 달라붙었다. 다인은 시윤의 얼굴에 볼을 비비며 술주정을 늘어놓았다.그때 다인은 아직 어렸고, 태안과 사귀고는 있었지만 손을 잡는 정도였을 뿐, 더 깊이 가까워진 적은 없었다.그런데 그날 밤의 다인은 유난히 대담하고도 적극적이었다. 다인은 태안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은 시윤에게 매달려서 안아 달라고 졸랐고, 그의 뺨에 입술을 한 번씩 가볍게 찍어 댔다.그러다 끝내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그것은 다인의 첫 키스였다.그리고 그날 밤, 큰일 하나가 벌어졌다.그 일로 인해 시윤과 유림은 차례로 외국으로 떠났고,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생각에서 빠져나온 다인은 저도 모르게 민망해져서,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해명했다.“그날 밤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괜찮아.”시윤은 다인의 등 뒤에 얹은 손에 힘을 주었다. 축축이 젖은 듯 뜨거운 숨결이 다인의 귓가를 타고 스며들었다.“이제 우린 정당하게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 없이, 부부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다인은 멍하니 시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몸은 거의 맞닿아 있어서, 옷 너머로도 서로의 체온이 또렷이 전해졌다. 다인의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요 며칠, 다인의 심장은 자꾸만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시윤의 말을 받지 않고 말했다.“우리는... 아무래도 가짜 부부라고 해야 하잖아요. 그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요?”말을 하면서 다인의 두 손은 시윤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내려고 했다.시윤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시윤은 손에 힘을 더해서 다인을 품 안에 단단히 가뒀다.“내가 한 말, 잊었어?”다인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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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다인은 싸늘한 목소리로 비꼬았다.“진짜 별일이네. 자기 잘난 척밖에 모르던 것들이 사과를 다 하네.”미연이 곧장 말을 받았다.[내가 듣기로는 걔네 지금 꼴이 엄청 안 좋대. 잘린 놈도 있고, 굴리던 작은 회사도 망하고. 자기야, 이거 혹시 너네 집 그 사람이 손쓴 거 아니야?]다인은 예전에 태안이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아마 시윤이 나섰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다인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채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이유가 뭐든, 걔네가 잘못한 건 사실이잖아. 사과 한마디면 다 끝날 거였으면 경찰은 왜 있겠어?]그 사람들만이 아니었다.태안과 공진도가 다인의 원고를 멋대로 가져다 쓴 일에 대해서도 다인은 끝까지 고소를 이어갈 생각이었다.미연은 울먹이는 소리를 내더니,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좋다. 이래야 내가 알던 다인이지. 맞아, 원래 이렇게 해야 돼. 자기야, 진짜 다행이다. 예전의 네가 드디어 돌아왔네.]다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미연이 너무 호들갑이라고 말했지만, 웃으면서도 가슴 한쪽이 아련하게 아렸다.‘그래.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너무 많이 달라졌어.’‘그래도 나는 여전히 한다인이야. 앞으로는 점점 더 괜찮아질 거야.’미연과 통화를 마친 뒤, 다인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사이, ‘쓰레기남’이라고 저장해 둔 시윤에게서 연락이 왔다.[일 끝났어?]계약 이야기는 이미 시윤에게 해 둔 상태였다. 다인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네, 방금 끝났어요.][집에 가는 중이야?][모레 수요일에 우리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아마 널 찾으실 거야. 뭐라고 할지 생각해 뒀어?]다인은 자신도 모르게 기대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드디어 돌아오시는구나.’다인은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네, 알아서 잘 말씀드릴게요.]보내고 난 뒤, 다인은 화면에 떠 있는 저장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시윤과 사림 사이의 일은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된 뒤라, 다인은 곧바로 시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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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유조영에게 기씨 가문 본가에 가서 식사하겠다고 약속한 일은 다인이 시윤에게 반드시 말해 두어야 했다.그날 밤, 시윤은 모처럼 일찍 들어왔다.다인은 그제서야 유조영과 한 약속을 시윤에게 전했다.“응, 네 생각 괜찮아.”시윤은 맑고 단정한 기품을 지닌 채, 다인을 바라볼 때도 늘 그렇듯 부드러운 기색을 잃지 않았다.“무섭진 않아?”시윤에게서는 성숙한 남자의 침착한 무게감이 묻어났다. 어쩐지 사람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다인은 매번 시윤이 자기 마음을 정확히 짚어 주자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안 무서워요.”다인은 오히려 내일, 결혼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할 생각에 마음이 더 또렷해졌다.“내가 잘 말씀드릴게요.”“나도 같이 갈 거야.”시윤은 묻는 말투가 아니었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정한 사람처럼 단호하게 말했다.다인은 잠시 동안 굳은 듯 시윤을 올려다보았다. 잘생긴 얼굴에 오똑한 콧날. 짙은 눈썹 아래 시윤의 검은 눈동자에는 괜한 착각을 불러오게 만드는 다정함이 어려 있었다.“괜찮아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다인은 시윤과 가족들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다인과 시윤이 혼인신고를 마쳤다는 사실은 언제 꺼내 놓아도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아직은 다들 저희 사이를 모르시잖아요. 같이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시윤의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지만 가겠다는 말도, 가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알아서 정리할게.”시윤에게는 단호한 기세가 은근히 풍겨 나왔다. 다인은 평소 시윤이 일을 처리할 때 얼마나 빠르고 매서운지 알고 있었다. 그런 시윤이 자신을 대할 때는 이미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는 것도....다음 날 정오 무렵, 다인은 직접 차를 몰고 기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유조영은 일찍부터 다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조영은 주방에 따로 지시해서 먹을 것을 푸짐하게 준비하게 해 두었고, 다인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잡았다.“이리 와 봐, 내가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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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진심이니?”유조영은 더는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5년 전, 다인과 태안이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조영은 그 관계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그렇지만 두 집안의 협력 관계가 있었기에, 성격이 강하고 눈에 띄는 다인이 탐탁지 않았어도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 뒤로도 유조영은 다인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하지만 태안이 다인과 결혼만 하면 한씨 가문의 지원을 등에 업게 될 것이고, 훗날 태안이 맡은 자회사는 자연스럽게 태안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지금 결혼이 깨진다면, 기철민도 더이상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유조영은 다급해졌다.“연인 사이에 다투고 부딪히는 건 원래 있는 일이야. 다인아, 네가 어떻게 결혼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꺼낼 수 있어? 이건 장난이 아니야.”다인은 유조영이 무슨 말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인의 표정은 싸늘했고, 뜻은 흔들림이 없었다.“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어요. 할아버지도 결혼 취소에 동의하셨어요.”유조영은 다인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걸 보자,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그러자 조금 전까지의 다정한 태도도 더이상 유지하지 못했다.“결혼 취소는 큰일이야. 네가 취소하겠다고 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지난 5년 동안 태안이가 얼마나 네 비위를 맞춰 줬는데, 유림이 귀국한 날 하루 마중 나가고 자리 같이했다고 그게 그렇게 질투가 났니?”“다인아, 유림이는 태안이 친여동생이야. 네가 그렇게까지 유림이를 못 받아들이니까, 3년 전에도 유림이가 결국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니니!”유조영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분노에 휩싸인 유조영은 평소의 단정한 분위기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숨겨 두고 있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다인은 그런 태도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맑은 눈빛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어머님, 드릴 말씀은 다 드렸어요. 아버님과 함께 잘 상의해 보세요.”다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윤의 체면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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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시윤아, 네가 왜 여기 왔니?”유조영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급히 달려왔다.“아니, 네가 왜 동생한테 손을 대. 얼른 놔.”시윤은 아무 표정 없이 태안의 손을 비틀어 붙잡은 채 안쪽으로 한 걸음씩 들어갔다.태안은 시윤에게 제압당한 상태라, 이마에 식은땀이 맺힐 만큼 고통스러워했다. “형, 살살 좀...”입으로는 연신 외치면서도 시윤에게 끌리듯 안으로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던 유조영도 황급히 뒤따라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태안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유조영은 속이 타들어 가는 듯 안타깝고 다급했다.“시윤아, 무슨 말이든 말로 하면 되잖아. 얼른 놓아. 태안이 정말 아프겠다...”“맞아. 형, 아파. 일단 좀 놔...”다인도 다시 거실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시윤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모자를 한 번 차갑게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어머니는 정말 태안이 걱정되시나 봅니다.”유조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태안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욱신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억눌린 짜증을 숨기지 못했다.“내가 다인이 괴롭힌 것도 아닌데, 형은 왜 또 나한테 이래?”“누가 손대도 된다고 했어?”시윤은 태안을 한 번 쳐다봤다. 눈빛에 밴 서늘함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시윤은 다인 앞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분명하게 다인을 감싸는 태도였다.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질 만큼 단단하고 거침없는 모습에 다인의 마음 한쪽이 미묘하게 흔들렸다.다인은 멍하니 시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잔잔한 수면 위로 가느다란 실버들이 살며시 스쳐 가듯이, 다인의 마음에는 가볍고도 여린 파문이 번져 갔다.태안은 기세에 눌린 듯 말을 잇지 못했다.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시윤이 왜 자꾸만 다인을 감싸고 도는지, 왜 매번 이렇게 정확한 때에 나타나는지.‘정말 우연이기만 한 걸까?’그때, 위층에서 아래 상황을 살피고 있던 유림이 태안의 비명 소리를 듣고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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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다인이 당당하게 자기 편에 서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지켜 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윤의 깊은 눈빛 아래로 살짝 만족스러운 기색이 번졌다.유림은 적잖이 놀랐다. 다인이 정말 예전처럼 자신감과 자존심으로 빛나던 모습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네가 감히 나한테 이런 태도로 말해?”유조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다인에게 삿대질을 했다.다인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물러설 생각도 없었다.“존중은 원래 서로 주고받는 거예요. 어머님이 저를 존중하지 않으시는데, 제가 맞서면 왜 그것만 문제 삼으세요?”“정말 안하무인이 따로 없구나.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이분은 우리 엄마야. 네 미래의 시어머니인데, 네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굴어?”태안은 눈을 부릅떴다.“형이 널 감싸 준다고, 할아버지가 널 아낀다고,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아?”태안이 기세 좋게 다인에게 다가들자, 시윤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시윤은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짝!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다인이 손을 들어 태안의 뺨을 힘껏 갈겨 버린 것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라 굳어졌다.시윤의 깊은 눈동자 안에 감출 수 없을 만큼 또렷한 반가움이 드러났다.‘역시, 내 부탄가스 소녀야!’‘점점 5년 전의 한다인으로 돌아오고 있어.’“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해?”다인은 차갑게 태안을 바라보았다. 어금니를 악문 채 다인이 비웃듯 말했다.“내가 널 사랑할 때는, 네가 나한테 얼마나 무례하게 굴어도 참아 줄 수 있었어. 그런데 잘 들어. 나... 한다인은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다인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말끝은 단호했다.“오늘부로 너랑 나는 정식으로 결혼 취소야. 이제 내 인생에서 완전히 꺼져.”그 말을 끝으로 다인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가냘픈 몸은 바람만 스쳐도 흔들릴 것처럼 보였지만, 그 뒷모습에는 쉽게 꺾이지 않는 강단이 서려 있었다.마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설중매처럼, 결코 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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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한씨 가문의 외동딸로 자란 다인은 집안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어머니는 늘 다인에게 말했다.다인은 한씨 가문의 보물 같은 아이고, 식구들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무엇보다도 다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한민수도 다인을 몹시 아꼈다.다인이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는 일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인이 경영에는 흥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자, 한씨 가문의 사업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 두기까지 했다.언젠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다인 곁에 함께 있으면서 돌봐 줄 사람이나 끝까지 아껴 줄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다인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태안은 다인이 직접 선택한 사람이었다.한민수는 태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인이 좋아했기에 끝까지 신중하게 지켜보기만 했고, 탐탁지 않아도 다인의 앞에서 대놓고 반대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다인은 태안과 결혼하기 위해서 할아버지 한민수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태안 씨가 아니면, 저는 평생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결국 한민수도 마지못해 허락했다.그런데 끝내 태안은 다인의 진심을 바닥까지 짓밟아 버렸다.다인의 마음만 우습게 되고 가엾게 남았다.한민수는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태안은 끝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리고 오늘 시윤은 또 한 번 다인을 지켜 줬다.다인은 한참 동안 시윤을 바라보다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오빠는... 나한테 좋은 남편이 되어 주실 건가요?”시윤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시윤은 고개를 살짝 돌려 다인과 시선을 맞췄다. 나지막하게 잠긴 목소리가 차 안에 퍼졌다.“그럴게.”차창으로 스며든 햇빛이 시윤의 얼굴 한쪽에 내려앉았다. 그 빛 아래에서 시윤의 깊은 눈매는 한층 더 부드럽고 다정하게 보였다.다인은 그 검은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다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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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다인은 조금 기대하게 됐다.그녀는 문득 열 살 때 물에 빠져서 호수 밑으로 가라앉을 뻔했던 날을 떠올렸다.그때 다인을 물 밖으로 끌어올린 소년이... 맑고도 서늘한 목소리로 다인을 달래 주었다.“무서워하지 마. 이제 괜찮아.”그날, 다인은 그 목소리만 듣고도 가슴 한쪽이 가볍게 흔들렸다.정신을 차린 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 소년이었다.소년은 또렷한 이목구비에 환한 기운이 감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인이 눈을 뜨자 소년은 눈에 띄게 기뻐하며 안도한 듯 웃었다.그 소년이 바로 태안이었다.태안이 다인을 구해 줬다.그날 이후, 다인의 마음속에는 태안이 자리 잡았다.그리고 이제 다인이 시윤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때 한눈에 마음이 흔들렸을 때와 같았다. 정확히는 목소리 때문에 가슴이 먼저 움직였던 그 감정에 더 가까웠다.다인은 물에서 구해졌던 그때, 소년이 들려준 그 목소리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다.벌써 10년이나 지났지만, 다인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그 목소리는 한 줄기 빛처럼 다인의 사춘기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그런데 그렇게 다인을 구해 줬던 소년은 끝내 다인을 놓아 버렸고, 다인을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생각을 거둔 다인은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믿어요.”“안 믿은 적도 있었어?”다인은 시윤이 여기서 더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대답 못 할 질문은 아니었다.“없어요. 늘 믿었어요.”시윤은 다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 다시 물었다.“늘?”다인은 잠깐 말이 막혔다.시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또 물었다.“언제부터?”시윤은 다인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인 앞에 선 채 몸을 조금 숙여서 시선을 맞췄다. 까만 눈동자에는 다인을 끝까지 들여다보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시윤의 얼굴은 어디서 봐도 또렷했다. 깊은 눈매와 반듯한 이목구비, 몸에 밴 단정하면서도 고귀한 분위기까지.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눈길을 빼앗는 사람이었다.다인은 그대로 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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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다인은 더는 묻지 못했다. 괜히 자신이 의미를 크게 두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났다.시윤은 다인이 시선을 피한 채 일부러 자신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남자의 잠긴 목소리가 조용하게 내려앉았다.“왜 말이 없어졌어?”다인은 시윤을 올려다봤다.하지만 딱 한 번 눈을 마주쳤을 뿐, 이내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는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시윤이 더 캐묻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 다인은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불쑥 말을 꺼냈다.“예전에 기태안이 말한 적이 있어요. 오빠는 그런 사람이라고 했어요. 세상에서 시윤 오빠가 못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요.”하필 이때 태안의 이름이 나온 건, 분위기를 망치기에 딱 좋았다.시윤의 표정은 바로 눈에 띌 만큼 식어 버렸다.다인까지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지, 시윤은 굳어졌던 미간을 천천히 풀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태안이 한 말은 꽤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네.”다인은 아무 이상도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기태안 말이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요. 내 눈에는 오빠가 정말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뭐든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요.”다인은 고개를 들어 시윤을 똑바로 바라봤다.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까만큼 얼굴이 뜨겁지는 않았지만, 눈꼬리에는 아직도 옅은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맑고 흰 피부 위에 번진 그 빛이 묘하게 시윤의 눈에 밟혔다.시윤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인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그러다 조용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여보는 가끔은 정말 좀 둔해.”다인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네?”시윤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다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오늘은 좀 피곤했을 거야. 올라가서 쉬어.”시윤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게 잠겨 있어서 무슨 감정이 실려 있는지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나직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다인은 얌전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세수를 가볍게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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