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태겸과 예주가 그 집 안에서 저질렀던 일을 떠올리자, 해인은 이제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웠다.그 공간 자체가 이미 불쾌한 기억으로 변해 있었다.그런데 집을 매물로 올린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처음 보는 번호였다.해인이 전화를 받자, 들려온 건 예주의 목소리였다.[고씨 가문에서 언니한테 준 그 집, 팔려고 내놨다면서요?]해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그때 예주가 급히 말을 이었다.[언니, 너무 적대적으로 굴지 마세요. 저도 거기서 며칠 지냈고, 집 상태도 다 알잖아요.][솔직히 말해서 전 꽤 마음에 들었어요. 정말 반값에 넘길 생각이에요? 전 살 생각 있어요.]해인은 그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이 전화는 거래가 아니라 노골적인 도발이었다.해인은 차갑게 웃었다.“뭐야, 고태겸한테 사 달라고 할 생각이야?”예주는 애매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니면...?]“넌 내가 버린 것만 주워도 충분해.”해인의 목소리는 냉정했다.“사고 싶으면 6천억이야. 단 한 푼도 깎아 줄 생각 없어.”예주는 놀라서 소리를 높였다.[뭐라고요? 매물엔 1600억으로 올려놨잖아요. 언니, 지금 제정신이에요? 그 집, 아무리 잘 쳐 줘도 2천억 원 조금 넘는 수준인데, 지금 저를 호구로 보세요?]“정상적인 사람한테는 1600억이지.”해인은 한 박자도 쉬지 않았다.“근데 넌 사람이 아니잖아. 멀쩡한 집에 짐승이 들어온다는데, 이웃들 정신적 피해 보상 정도는 받아야지.”분노에 찬 예주가 소리쳤다.[지금 뭐라는 거예요? 누가 짐승이에요!]해인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전화를 끊어 버렸다....그날 밤, 해인은 5성급 호텔에 방을 잡았다.근처 백화점에서 옷도 몇 벌 사서 당분간 지낼 준비를 했다.회사에서는 이미 신혼여행 휴가를 15일 승인해 줬지만, 이제 남은 건 고작 사흘이었다.해인은 호텔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지루하게 느껴졌다.‘이 결혼휴가라는 것도, 참 우습네.’해인은 휴가를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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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해인은 태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나한테 말해 봐. 거기가 우리 집이라면, 왜 나 몰래 하예주를 들인 거야?”태겸은 잠시 말을 잃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숨길 수 없는 동요가 스쳤다.“너... 다 알고 있었어?”해인은 비웃듯 웃고서 태겸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어?’‘이미 답은 나와 있었지. 이 남자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태겸이 급히 앞으로 나서 그녀를 막아섰다.“그날은 정말 우연이었어. 회식이 있었고,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예주는 운전을 못 하고, 마침 그 집이 근처라서 그냥 날 데려다 준 거야.”“그래서?”해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내가 꾸며 놓은 그 집에서 둘이 밤새 같이 있었던 거야?”고개를 든 해인의 눈시울은 이미 뜨겁게 젖어 들었다.“술 마시면 다 용서돼? 그런 말은 애들한테나 통하지.”‘술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야.’‘애매한 감정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거지. 술은 그냥 핑계일 뿐이야.’태겸이 인상을 찌푸렸다.“지금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그런 일 없었어.”“정말?”해인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았다.“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어?”태겸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날 밤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예주에게 선을 넘은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예주는 그날 태겸에게 고백했다.고백뿐 아니라 정신이 흐릿한 틈을 타 태겸의 무릎 위에 앉아서 키스를 했다.술에 취한 태겸은 예주를 해인으로 착각했다.그래서 망설임 없이 반응했다.어릴 때부터 봐 온 여자였기에 늘 조심해 왔는데, 그날의 ‘해인’은 전혀 달랐다.낯설 정도로 적극적이었고, 억눌러 왔던 태겸의 욕망을 자극했다.술기운에 그녀를 끌어안은 태겸은, 드레스 자락을 밀어 올리며 품 안에 깊게 안았다.‘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정신이 조금 돌아오면서 그제서야 알아차렸다.안고 있던 사람이 해인이 아니라 예주라는 걸.두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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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래서 태겸은 확신했다.해인은 아직 자신을 놓지 못했다고.이렇게까지 공들여 꾸미고 집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결국은 자신이 다시 흔들리길, 자신이 여전히 그녀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실제로 태겸은 흔들렸다.목이 타 들어 가면서, 태겸의 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내가 졌어, 여보.”태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싸우지 말자. 알잖아, 내가 그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우리 다시...”해인의 미간이 단번에 좁혀졌다.그녀는 태겸이 내민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고태겸.”해인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너 지금... 정말 역겨워.”그 말을 남기고 해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뒷마당을 빠져나갔다.태겸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역겹다고?’해인이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해인은 곧장 방으로 향했다. 잠겨 있던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손목에 끼던 수제 팔찌 하나와 시계 하나, 그리고 반으로 깨진 옥 노리개를 꺼냈다.아버지와 두 오빠의 유품이었다.교통사고 현장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의 차가운 몸 위에서 해인이 직접 떼어냈던 것들.해인은 손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작은 상자에 담았다.‘이것만큼은... 더 이상 망가지면 안 돼.’모든 걸 정리한 뒤, 해인은 문을 열고 나왔다.계단 아래에서 고민건이 해인을 보고 웃었다.“해인이 왔구나. 손부터 씻어라, 곧 식사가 준비된다.”태겸은 고민건 옆에 앉아 있다가 시선을 살짝 돌려 해인을 훔쳐보았다.해인은 거리를 둔 목소리로 말했다.“저녁은 안 먹어요. 물건 가지러 잠깐 들른 거예요.”마침 주방에서 나오던 이소정이 얼굴을 찌푸렸다.“네가 좋아하는 갈비찜 특별히 했는데, 이렇게 가는 거야?”현관에서 신발을 신던 해인은 잠시 멈췄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사실... 저... 갈비찜 별로 안 좋아해요.”이소정이 되물었다.“뭐?”“이 집에 처음 들어온 날이었어요. 태겸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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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승아는 해인이 새로운 시작하는 걸 기념하겠다며 저녁을 사 주겠다고 했다.장소는 분위기가 꽤 좋은 고급 일식집이었다.테이블 위에는 연어 사시미가 접시마다 수북이 쌓여 있었다.승아는 그걸 보며 혀를 찼다.“이거, 내가 월급 절반 썼어. 어때, 나 진짜 의리 있지?”해인은 입가에 옅은 웃음을 걸었다. 남자는 떠나갔지만, 적어도 친구는 곁에 남아 있었다.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승아가 물었다.“계속 호텔에서 살 거야? 우리 집이 좀 작지만 괜찮으면 그냥 나한테 와도 되는데.”강씨 집안의 본가 저택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하지만 태겸에게 이끌려 고씨 가문 본가로 들어간 뒤로, 해인은 단 한 번도 그 집에 가지 않았다.그곳에는 가족들의 웃음과 추억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지금의 해인에게는, 그 기억들이 버거웠다.‘나 혼자 그 집에 들어가면... 아마 견디기 힘들 거야.’해인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오늘 오후에 엄마한테 전화 왔어.”승아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도수희 여사님? 그 사람이 아직도 너한테 전화할 얼굴이 있어?”승아는 그 이름만 떠올려도 기분이 상했다.아버지와 두 오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도수희는 해인을 두고 곧바로 재혼했다.미성년자였던 해인은 그대로 방치됐다.가장 힘들 때는 버려 놓고, 이제 와서 무슨 연락이란 말인가?게다가 자기 딸은 버려 놓고 재혼한 남편의 딸은 안하무인으로 키웠다.해인이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엄마가 있는 그 집에 와서 밥 한 번 먹자고 하더라.”“설마 간다고 한 건 아니지?”“당연히 거절했어. 그 집은 내 집이 아니잖아.”“잘했어.”승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고태겸 집안이 불구덩이라면, 그 예씨 집안도 똑같아. 너 이제 어른이야. 다시 남의 집에 얹혀 살 필요도 없어.”예전에 한 번 해인은 예씨 저택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그때 도수희는 이렇게 말했다.“내가 너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막 들어온 집이라 지안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어. 거기에 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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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태겸은 술잔을 내려놓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혼잣말처럼 툭 던졌다.“사진 찍을 줄 알아?”...승아는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고 자리를 떴다.어떤 톱스타가 갑자기 SNS에 글을 올려서,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결혼했고 아이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는 소식이었다.그 여파로 SNS가 마비됐고, 연예계 기자인 승아는 급히 회사로 돌아가 회의에 들어가야 했다.해인은 연어 사시미를 반쯤 먹은 상태였지만, 더 이상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차량 호출 앱으로 택시를 부른 뒤, 길가 가로등 아래에 서서 기다리며 무심코 SNS를 열었다.가장 위에 뜬 건, 윤준이 불과 2분 전에 올린 게시물이었다.[우리 고 대표, 사람 끌어당기는 힘이 장난 아님. 아무나 부러워할 급이 아니지.]사진 속 배경은 화려한 조명과 술잔이 오가는 공간이었다.허리가 드러나는 끈 원피스를 입은 예주가 태겸 옆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태겸을 바라보고 있었고, 눈에는 숨기지 않은 호감과 동경이 담겨 있었다.태겸은 옆얼굴만 반쯤 드러난 상태였다.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흰 셔츠 차림이 지나치게 단정해 보였다. 손에는 와인잔이 들려 있었고, 시선은 예주에게 머물러 있지 않았다.해인은 딱 한 번 보고 바로 화면을 닫았다.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몇 분 뒤, 태겸이 조용히 물었다.“아직 답장 없어?”윤준이 화면을 흘끗 봤다.“없어. 핸드폰이 아주 조용한데.”태겸은 미간을 찌푸렸다.“본 건 확실해?”윤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해인의 프로필을 눌렀다.“그럼 내가 메시지 하나 보내서 떠볼까?”윤준은 빠르게 타자를 쳤다.[태겸이 술 좀 많이 마셨어. 혹시 데리러 올래?]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윤준은 괜히 찔려서 태겸을 힐끗 쳐다봤다.그런데 다음 순간, 태겸이 윤준의 핸드폰을 낚아챘다.화면에는 윤준 역시 차단되었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현이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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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해인은 택시에 막 올라타자마자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위를 묵직하게 누르는 것 같더니, 이내 타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운전기사가 백미러로 그녀를 보며 말을 걸었다.“아가씨, 어디 많이 안 좋아 보여요. 괜찮아요?”해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은 이미 좌석에 기대어 있었다.한 손으로 배를 누르자, 속에서 올라오는 열감이 더 강해졌다.입술을 깨물 만큼 아팠다.“기사님... 죄송한데요...”해인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병원으로 먼저 가 주실 수 있을까요?”“알겠습니다!”기사는 바로 방향을 틀었다.차는 빠르게 움직였고, 채 5분도 되지 않아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해인의 목이 꽉 막힌 듯했다.그녀는 쓰레기통 옆에 몸을 기대고 그대로 구토했다.잠시 후, 누군가 눈앞에 휴지를 내밀었다.“강해인 씨, 이상하지 않아?”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만날 때마다 이렇게 정신없네.”해인은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유호였다.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셔츠 단추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였다.어디선가 막 나온 듯 술 냄새가 가볍게 났지만 많이 거슬리지는 않았다.유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왜 그렇게 봐. 나 못 알아보겠어?”해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에 잠시 말을 잃었다.마지막으로 봤을 때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그때, 내가 이 사람 뺨을 때렸지.’그 생각에 해인의 눈빛이 바로 경계로 바뀌었다.그녀는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그 반응이 재미있는지, 유호는 어깨를 으쓱했다.“나,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한 걸음 다가서는 유호의 눈에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아니면, 내가 뭐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거야?”해인은 웃을 힘도, 받아칠 여유도 없었다.그녀는 휴지로 입가를 닦고 병원 안으로 걸어가려고 했다.하지만 두 걸음도 걷지 못하고 통증이 다시 몰려왔다.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해인은 배를 움켜쥔 채 허리를 숙였다.‘이러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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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해인은 침대에 기대 앉아 유호를 올려다보며 낮게 말했다.“이번엔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말은... 장난이 좀 지나치셨어요.”유호는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뻗었다.“내가 YD그룹 인수 얘기 들은 뒤로, 왜 연락 안 했어?”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명함도 줬잖아.”해인은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그 이유를 정말 모른다고?’‘갑자기 키스해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면서...’‘내가 먼저 연락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해인이 대답을 고르기도 전에, 유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유호의 눈썹이 즉시 찌푸려졌다.자리에서 일어난 유호는 병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할머니.”권영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넘쳤다.[너 이 녀석, 당장 손주며느리 안 데려오면 내가 네 방에 가서 목 매달아 죽을 거야! 그때 가서 네가 시체 치워!][못 들은 척하지 마. 다 듣고 있는 거 알아!]권영자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말을 쏟아냈다.[옆집 손 영감은 벌써 둘째 증손주까지 안았어! 근데 넌 여태 여자 하나 안 데려와! 내가 이제는 많이 바라지도 않아. 여자면 다 돼, 여자면!]유호는 피식 웃었다.“알겠습니다. 며칠 안에 한 명 데려갈게요.”[또 그런 말로 넘기려는 거지? 내가 그렇게 쉽게 속을 줄 알아?]권영자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상관없어. 너 내일 당장 맞선 나가!]최근 유호가 대현과 늘 붙어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때문에 성적 취향에 대한 헛소문까지 퍼졌다.그 얘기를 들은 권영자는 하루 종일 밥도 못 먹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손자가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았고, 항상 대현과 함께였다.권영자는 이미 모임에서 큰소리까지 쳐 둔 상태였다. ‘한 달 안에 손주며느리 꼭 데려온다’고.[내일 운시사에 가서 네 연애운을 빌 거야! 맞선은 무조건 나가!]유호는 짧게 말했다.“끊겠습니다.”[잠깐. 너 지금도 대현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지?]유호는 더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그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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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태겸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태겸은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해인이 돌아온 건가?’급히 일어난 태겸은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문을 열었다.“해...”말을 내뱉으려다가 태겸은 그대로 굳어졌다.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해인이 아니었다.며칠 전 왔던 그 부동산 공인중개사였다.그 옆에는 배가 불룩 나온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목에는 굵은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팔에는 검은 가방을 끼고 있었다.시선을 위로 치켜 뜬 태도까지, 한눈에 봐도 돈 좀 생긴 졸부의 차림새였다.중년 남자의 옆에는 지나치게 노출된 옷차림의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붙어 있었다.노골적인 여자의 눈빛을 보니, 누가 봐도 남자에게 얹혀사는 애인이었다.태겸이 단번에 미간을 찌푸렸다.“왜 또 오셨습니까?”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태겸에게 담배를 내밀었다.“아, 형님. 집 보러 왔습니다. 아직 주무시고 계셨나 봐요.”태겸은 차갑게 말을 잘랐다.“형님이라 부르지 마세요. 그리고 당장 제 집에서 나가시죠.”태겸의 목소리에서 풍기는 기세에, 공인중개사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은 듯 목을 곧게 세웠다.“강해인 씨 명의의 집입니다.”공인중개사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강해인 씨께서 저희 중개업소에 전권 위임을 하셨고요. 제가 고객을 데리고 와서 집을 보여 드리는 건 정당한 절차입니다.”옆에 있던 중년 남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래서 이 집... 파는 겁니까 말 겁니까?”공인중개사는 곧바로 태도를 바꿔 웃으면서 말했다.“팝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내부를 간단히 설명드리죠.”그 세 사람은 그대로 태겸의 침실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태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이 집을 꾸미는 데 해인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그 누구보다 태겸이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고씨 가문에서 결혼 예물로 해인에게 준 집이었다.‘정말로 팔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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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집을 다 둘러본 뒤, 그 중년 남자는 애인을 데리고 나갔다.‘돌아가서 자금 좀 계산해 보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일부러 뒤처져서 나왔다.태겸이 손짓으로 공인중개사를 불렀다.“잠깐만 오시죠.”“아,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태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음부터는 사람 데리고 오지 마세요. 이 집, 제가 사겠습니다.”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잠시 멍해졌다.“네...? 정말이십니까?”태겸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강해인 씨한테 전화하세요. 구매자가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하시고요.”공인중개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갸웃했다.‘이거... 부부끼리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넘기는 거 아닌가?’그럼 자기는 중간에서 수수료만 챙기게 된다.‘역시 돈 많은 사람들 세계는 모르겠다...’공인중개사는 그래도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로 매수하실 생각이신 건지요, 아니면... 제가 그냥 연락만 연결해 드리는 건지요?”오랜 경험상, 두 사람이 다퉜다는 건 명백했다.괜히 헛수고만 하고 수수료도 못 받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태겸은 소파에 몸을 기댔다.“중개 수수료가 얼마죠?”“거래 금액의...”“우선 3천만 원 보내 드리죠. 계약금 성격으로.”그제야 공인중개사의 표정이 풀렸다....그 시각, 해인은 죽을 막 다 먹었고 의사가 회진을 마치고 나가던 참이었다.전화로 단독주택에 관심 있는 구매자가 있다는 말을 듣자, 해인이 차분히 말했다.“지금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바로 미팅은 어렵습니다. 정말 구매 의사가 있다면, 가격 충분히 검토하시고 계약 단계에서 만나죠.”괜히 나가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이미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내놓았는데, 흥정까지 감당하고 싶지는 않았다.통화는 스피커폰 상태였다.부동산 공인중개사가 살짝 태겸을 보면서 눈짓했다.태겸은 테이블 위에 펜으로 짧게 적었다.[3일 후 미팅.]‘3일이면... 돌아오겠지.’지금까지 두 사람이 다툰 적은 많았지만,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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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너 막 헤어졌다고 막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승아는 핸드폰을 쥔 채, 방금 들은 말을 소화하느라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해인이 다짜고짜 ‘주변에 당장 결혼할 사람 없냐’고 묻는 바람에, 놀란 승아는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찬찬히 들어 봐.”해인이 차분히 말했다.“나 장난 아니야. 나 지금 진짜로 결혼이 급해. 가능하면 초고속으로 혼인신고하고, 일 끝나면 바로 정리하는 거야. 보수도 줄 수 있어.”해인은 왜 그런 선택을 하려는지, 이유를 모두 털어놓았다.이야기를 다 들은 뒤, 승아는 한숨부터 내쉬었다.[아저씨는 왜 꼭 네가 결혼을 해야만 회사 지분을 건드릴 수 있게 해 놓은 거야?]“나도 몰라.”[근데 혼인신고부터 해 버리고 회사 팔았는데, 남자 쪽에서 돈 욕심 내면 어떡해?]차에서 내려서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던 해인은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그래서...”해인이 조용히 말했다.“나랑 결혼할 사람은,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딱 그 조건 하나야.”[그럼 딱 한 명 떠오르긴 해.]승아의 눈이 반짝였다.[우리 사촌 오빠야. 올해 서른둘인데 이혼했고 아이는 없어. 유책 사유도 아니고, 최근에 회사 그만둬서 집에 있어.][어차피 너 보수 줄 생각이면, 그 돈 누구한테 가든 상관없잖아? 내가 말 잘해서 할인가로 해 줄게.]잠시 침묵이 흘렀다.해인이 입을 열었다.“좋아. 그럼 내일 아침, 바로 구청 앞에서 만나자. YD그룹 지분 정리 끝나면 바로 이혼하는 거야.”이렇게 쉽게 답이 돌아올 줄 몰랐기에, 승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해인아... 진짜로 그냥 혼인신고만 할 생각이야?]그 누구보다도 승아는 해인이 ‘가족’을 얼마나 갈망해 왔는지 알고 있었다.한때는 결혼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 이제는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다니.‘고태겸, 진짜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려 놓은 거야.’“어차피 형식일 뿐이야.”해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고태겸 부모님이 나한테 해 준 그 집도 살 사람이 정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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