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공기는 이제 비릿한 쇠 냄새가 아닌, 지독하게 정갈한 **‘무향(無香)’**의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은신처 구석에서 넘어진 아이가 무릎을 깼을 때, 아이는 단 한 마디의 울음도 터뜨리지 않았다. 대신 그 공간에 있던 수십 명의 생존자가 동시에 자신의 무릎을 만지며 낮게 신음했을 뿐이다. 아이의 고통은 수십 개의 신경망으로 분산되어 희석되었고, 지하실 전체는 마치 거대한 하나의 폐처럼 일정한 박자로 숨을 쉬었다.누군가 슬퍼하면 도시 전체가 비에 젖은 듯 침울해졌고, 누군가 희망을 품으면 골목마다 보이지 않는 온기가 돌았다. 대전은 이제 개별적인 인간들의 집합이 아닌, 거대한 하나의 정신적 유기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인류가 꿈꾸던 완벽한 구원이었다. 고통을 나누고 슬픔을 희석하는, 박막이 결코 뚫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유대. 하지만 그 완벽한 평화의 이면에서, 서윤은 아주 미세하고 기괴한 균열을 목격하기 시작했다.강토가 자신의 배를 움켜쥐며 혼란스러운 눈으로 서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위장은 분명 가득 차 있었지만, 그의 뇌세포는 은신처 밖 어딘가에서 굶주리고 있는 누군가의 허기를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강토의 떨리는 손등 위로 남색 잉크가 번졌으나, 그것은 더 이상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작가님... 배가 고파요. 그런데 저는 분명 방금 밥을 먹었거든요. 머릿속에서는 제가 가본 적 없는 시장 통로가 보이고, 제가 모르는 여자의 얼굴이 어머니라며 울고 있어요. 제 기억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거죠?”강토의 정체성은 이제 댐에 생긴 실금처럼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수천 명의 감정이 공명이라는 이름으로 뒤섞이면서, ‘나’라는 개인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민호는 미친 듯이 연산 장치를 두드렸다. 화면 가득 쏟아지는 주파수들은 더 이상 개별적인 파동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뭉개지는 진흙탕처럼 보였다
Last Updated : 2026-03-2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