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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쿠라의 성벽: Chapter 31 - Chapter 34

34 Chapters

​제26화: 귀환의 항로 (The Course of Return)

인천국제공항의 새벽은 서늘한 안개에 싸여 있었다. 일반적인 출국 게이트가 아닌, 공항 외곽의 프라이빗 격납고. 사토미가 수소문해 준비한 낡은 비즈니스 제트기 한 대가 엔진의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대기하고 있었다.​서윤은 품 안의 궤짝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 안에는 아키라의 피 묻은 붕대가 들어있었다. K가 그토록 갈구하는 12자리의 암호. 그것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혹은 이 비극의 사슬을 끊어낼 수도 있는 마지막 열쇠였다.​“작가님, 타세요. 시간이 없어요.”​사토미가 방탄조끼 위로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 그의 뒤로는 전직 가디언즈 요원들이 중무장을 한 채 기체에 오르고 있었다. 레이 역시 휠체어를 대신해 보조 기구를 착용하고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K는 이미 도쿄 부도칸 지하 서버실에 도착했을 겁니다. 거긴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에요. 가디언즈의 태동지이자, 모든 인체 실험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저장된 솔브레인의 성소죠.”​레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에게 도쿄는 고향이자, 동시에 자신을 기계로 개조하려 했던 도살장이었다.​제트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자, 서윤은 창밖으로 멀어지는 서울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진우 씨, 제발 살아만 있어요. 서윤은 손바닥에 밴 잉크 자국을 어루만졌다. 펜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던 다짐은 이제 총구와 칼날이 난무하는 전장의 한복판으로 그녀를 인도하고 있었다.​같은 시각, 도쿄 부도칸 지하 7층.​차가운 금속 냄새와 수만 개의 서버 팬이 돌아가는 소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K는 의자에 묶인 진우의 턱을 잡아 강제로 화면을 보게 했다.​화면 속에는 전 세계 언론에 유출된 [Project: CUBE]의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삭제되거나 '조작된 정보'라는 딱지가 붙어 빠르게 희석되고 있었다.​“보이나, 강 기자? 진실은 유통기한이 짧은 생선과 같지. 내가 미디어를 통제하고 여론을 흔드는 건 아이들 장난보다 쉽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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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제국의 무덤 (The Tomb of the Empire)

도쿄 하네다 공항의 보조 활주로에 바퀴가 닿는 순간, 기체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덜컹거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쿄의 새벽하늘은 서울보다 훨씬 무겁고 붉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내장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습하고 미지근한 공기가 서윤의 뺨을 스쳤다.​“작가님, 장비를 챙기세요. 여기서부터는 전쟁입니다.”​사토미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그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밴의 문을 열었다. 서윤은 어깨에 멘 오동나무 궤짝의 끈을 다시 한번 조여 맸다. 궤짝 안의 [Project: CUBE] 장부와 아키라의 붕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만 명의 목숨과 바꾼 진실의 무게였고, 이제 그 진실은 K의 심장부인 부도칸으로 향하고 있었다.​차량은 잠든 도쿄의 도심을 가로질러 치요다구로 향했다. 멀리 보이는 부도칸의 팔각형 지붕은 새벽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려는 K의 거대한 ‘설계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레이 씨, 암호 해독은요?”​서윤이 묻자,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던 레이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삼촌 민호 씨는 정말 천재였어요. 붕대에 새겨진 나노 입자들은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아키라 오빠의 심박수와 뇌파의 리듬을 데이터화한 것이었어요. 즉, 아키라 오빠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순간과 가장 평온했던 순간의 파동이 겹쳐져야만 마지막 암호가 풀리는 구조예요.”​서윤은 가슴이 저릿해졌다. 삼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암호를 풀 수 있는 사람은 기술자가 아니라, 아키라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의 영혼을 복원하려 했던 서윤 자신뿐이라는 것을.​부도칸 지하 7층, 메인 서버실.​K는 거대한 수조 앞에 서 있었다. 수조 안에는 츠바시 유키, 아니 아키라가 마지막 순간까지 입고 있었던 피 묻은 백색 정장이 보존액 속에 떠 있었다. 그것은 K에게 있어 승리의 전리품이자, 미완성으로 남은 ‘여신’의 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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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거울의 역습 (The Mirror's Counterattack)

K의 긴 손가락이 메인 서버의 엔터 키 위에서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멈췄다. 그의 입가에는 세상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는 확신에 찬,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복원의 완성이라... 민호, 네가 죽어서도 지키려 했던 그 보잘것없는 기억들이 결국 내 성벽의 마지막 벽돌이 되는구나."​K가 키를 눌렀다.​띠링—.​서버실의 수천 개 모니터가 동시에 백색 섬광을 내뿜으며 점멸했다. 서윤이 가져온 12자리의 암호, 아키라의 고통과 평온의 주파수가 디지털 코드로 변환되어 솔브레인의 심장부로 침투했다. K의 눈동자가 데이터의 흐름을 쫓아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전 세계 뇌파 통제권' 대신, 화면에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구동되기 시작했다.​[PROCOTOL: MIRROR RESTORATION (거울 복원 프로토콜)]​"이게... 뭐야? 이건 내 설계도에 없는 명령어야!"​K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게 떨렸다. 서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등 뒤로, 의자에 묶여 있던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진우의 눈에는 희미하지만 강렬한 승리의 확신이 서려 있었다.​"삼촌은... 당신이 버린 파편들을 모아 거울을 만드셨지."​서윤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당신은 사람들을 가두는 성벽을 원했지만, 삼촌은 그들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거울을 원하셨어. 이 암호는 당신의 서버를 여는 열쇠가 아니야. 당신이 그동안 지워왔던 수만 명의 '진짜 기억'을 강제로 복구시켜 전 세계 네트워크로 송출하는 '미러링' 바이러스지."​그 순간, 전 세계의 TV와 스마트폰, 대형 전광판이 일제히 지직거렸다. K가 방금 전까지 조작하고 삭제했던 [Project: CUBE]의 데이터들이, 조작 불가능한 '원본 기억'의 형태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츠바시 유키가 남모르게 흘렸던 아키라의 눈물, 인체 실험실에서 비명을 지르던 피실험자들의 마지막 눈동자, 그리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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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폐허 위의 꽃 (Flowers on the Ruins)

부도칸의 지하 서버실이 내뱉는 마지막 폭발음은 비명이라기보다 낡은 시대가 찢어지는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뚫고, 진우는 서윤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등 뒤에서는 K의 절규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자신의 설계도가 완벽한 거울로 변해 스스로를 비추기 시작했을 때, K라는 남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진우 씨, 괜찮아요? 숨 좀 쉬어봐요.”​서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우는 대답 대신 피 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도달한 부도칸 정문 밖, 도쿄의 아침 공기는 차갑지만 지독하게도 맑았다. 밤새 내리던 비는 멈췄고,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부도칸의 팔각형 지붕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두 사람이 마주한 광경은 기이했다. 부도칸 주변을 포위했던 경찰과 사병들은 더 이상 총을 겨누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길거리의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윤이 설계한 ‘미러링 프로토콜’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전광판에는 츠바시 유키가 아닌, 아키라라는 청년의 진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솔브레인이 은폐하려 했던 수천 명의 인체 실험 명단과 고위층의 추악한 결탁 서류들이 끊임없이 스크롤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믿어왔던 성벽이 거대한 거짓의 모래성임을 깨닫고 있었다.​“우리가... 정말 해낸 건가요?”​서윤이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잉크와 피, 그리고 먼지로 얼룩진 손. 이 가녀린 손끝에서 시작된 문장들이 도쿄의 심장부를 도려낸 것이다. 진우는 그 손을 말없이 꽉 잡아주었다.​“작가님! 강 기자님!”​멀리서 사토미와 레이가 탄 밴이 급정거하며 달려왔다. 사토미는 요원들을 배치해 주변을 경계했고, 레이는 휠체어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데이터 송출은 완벽해요. 전 세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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