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30

30 فصول

제21화

심해린은 말없이 젓가락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으려 했다.“상윤이는 왜 아직도 안 와?”맞은편에 앉아 있던 박진경이 비어 있는 자리를 힐끗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으며 어색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보려 했다.심해린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단정한 미소를 지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회사에 일이 좀 남았나 봐요. 처리하면 바로 올 거예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석에 앉아 있던 최명희가 탁 하고 젓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식탁에 있던 모든 사람이 동작을 멈추게 하기에는 충분했다.“쓸모없는 것!”최명희가 심해린의 얼굴을 날카롭게 훑었다.“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됐는데 어쩜 남편 마음 하나 못 잡아? 밖에서 여우 같은 계집이랑 놀아나게 내버려 두고 우리 집안 망신 다 시키고 말이야. 밥도 먹지 말고 나가서 무릎 꿇고 있어.”식당에 있던 도우미들의 시선이 일제히 심해린에게 쏠렸다.심해린은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한쪽에 비어 있는 구석으로 가서 허리를 편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식사가 극도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겨우 끝이 났다.고씨 가문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식탁을 떠났다. 넓은 식당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심해린과 찍소리도 못하고 그릇을 치우는 몇몇 도우미들만 남았다.박진경이 떡을 한 접시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 안쓰러움과 무력함이 가득했다.“무릎을 오래 꿇어서 얼굴이 다 하얘졌어. 이거라도 좀 먹어.”심해린이 박진경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려던 그때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가 먹으라고 했어?”최명희가 언제 왔는지 싸늘한 얼굴로 다가와 박진경의 손에서 접시를 빼앗고는 서랍장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지난번에 병원에서 감히 내 전화를 끊었지?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기세를 오늘 확실히 꺾어놔야겠어. 안 그러면 앞으로 점점 더할 거라고.”심해린을 내려다보는 최명희의 두 눈에 경멸과 혐오가 가득했
اقرأ المزيد

제22화

걸레가 이미 거의 마를 정도로 짜여 있었다. 심해린은 허리를 굽히고 바닥을 조금씩 닦아 나갔다.무릎이 감각이 무뎌졌다가 이내 날카로운 통증이 번지기 시작했고 허리도 끊어질 것처럼 욱신거렸다.심해린이 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조금만 더 버티자. 이혼 합의서에 적힌 시간만 지나가면 이 모든 것도 다 끝이 나. 그때가 되면 할머니랑 건우랑 떠날 수 있어. 더 이상 이 집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 필요가 없어.’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가슴 깊이 쌓인 서러움을 손에 쥔 걸레에 꾹꾹 눌러 담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최명희가 낮잠에서 깬 것이었다. 그녀가 느릿느릿 걸어와 바닥을 닦고 있는 심해린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다가 시선이 심해린이 막 닦아낸 한쪽 바닥에 멈췄다.“여기.”막 잠에서 깬 참이라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아직도 얼룩이 남아 있는데? 이런 일도 제대로 못 해?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야?”심해린이 움직임을 멈추고 최명희가 가리킨 쪽을 내려다봤다. 바닥이 반짝일 정도로 깨끗했다.하지만 그녀는 따져 묻지 않았다. 목이 너무 말라 한마디도 나오지 않아 그저 묵묵히 최명희를 쳐다보기만 했다.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명희의 표정이 더 못마땅해졌고 목소리도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벙어리 됐어? 내가 말하고 있잖아. 여기 다시 닦아.”심해린은 이미 감각이 사라진 무릎을 겨우 움직이며 낮게 대답했다.“네.”딱 한 글자였다.그녀의 반응에 맥이 빠진 최명희가 코웃음을 치더니 찻잔을 들고 소파로 가 TV를 봤다.심해린은 다시 걸레를 물에 적셨다. 그리고 최명희가 가리킨 그 자리로 가서 다시 닦기 시작했다.어느덧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하지만 고상윤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심해린이 속으로 생각했다.‘나랑 무슨 약속을 했는지 기억할 리가 없지.’“해린아, 이제 그만해.”머리 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심해린이 고개를 들어보니 고상윤의 어머니 박진경이 앞에 서 있었다.
اقرأ المزيد

제23화

의식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직전 심해린의 뒤에서 귀를 찢는 듯한 급브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고씨 가문 별장.고상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실에 벽 조명 하나만 희미하게 켜져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그를 따라 들어온 명서아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언니 오늘 집에 없어? 언니가 만든 닭백숙 먹고 싶었는데.”고상윤이 양복 재킷을 벗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머릿속이 윙 한 동시에 오늘 심해린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본가로 데리러 가겠다고 했었지? 어떻게 그걸 다 까먹냐...’“오빠, 왜 그래?”명서아가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걸 보고 물었다.고상윤은 대답하지 않고 현관 옆에 놓인 차 키를 집어 들어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나 잠깐 본가 다녀올게. 집에서 먼저 쉬고 있어.”오후에 명서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협력 업체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며 울먹이자 고상윤은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일을 처리해준 뒤에는 명서아와 함께 저녁까지 먹었다. 그러다 보니 심해린과의 약속은 완전히 까맣게 잊어버렸다.고상윤은 차에 시동을 걸고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본가에 도착했을 때 최명희 혼자만 있었다.“그 사람은요?”고상윤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물었다.“누구?”최명희가 얼굴에 팩을 붙인 채 눈꺼풀만 살짝 들어 올리며 못마땅하게 말했다.“왜 이렇게 소란이야, 버릇없이.”“심해린이요.”“아, 걔?”최명희가 느릿느릿 팩을 떼어내며 말했다.“나간 지 꽤 됐어. 오늘은 그래도 말 잘 듣더라. 무릎 꿇고 하루 종일 바닥 닦으라 했는데 한마디도 안 하더라고.”고상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하루 종일 무릎을 꿇었다고?’마음속에서 죄책감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할머니가 심해린을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를 본가에 혼자 내버려 뒀다.고상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돌아섰다. 일단 집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별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거실은 아까와 똑같이 조
اقرأ المزيد

제24화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며 희미한 새벽빛이 번지기 시작했다.심해린이 갈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목 안이 타들어 갈 정도로 바짝 말라 있었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힘겹게 눈을 떴다가 눈부신 빛에 본능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여긴 그녀의 창고 방이 아니었다.‘여기 어디야?’낯선 천장, 회색 벽, 방 전체가 차갑고 세련된 톤으로 꾸며져 있었고 공기 속에 은은한 시더우드 향이 떠돌고 있었다.심해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몸을 살폈다. 옷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이불을 젖히고 휴대폰을 찾으려 했다.휴대폰이 침대 옆 서랍장 위에 놓여있었다. 휴대폰을 집어 버튼을 눌렀지만 화면이 까맣게 꺼진 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었다.하긴 어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충전할 정신이 어디 있었겠는가?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그런데 오른발이 바닥에 닿은 순간 왼쪽 무릎에서 엄청난 통증이 번졌다.“쓰읍...”심해린이 숨을 들이켰다. 순간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그대로 앞으로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으악.”겁이 덜컥 난 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그런데 예상했던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힘 있는 두 팔이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기울어지던 몸이 그대로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남자의 체취가 코끝을 스쳤다. 깔끔하고 차가운 향이었는데 공기 속에 감돌던 바로 그 시더우드 향이었다.심해린은 몸이 굳어버렸다가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얼굴이 잘생겼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 같은 단정한 인상이었다. 부드러운 눈매와 높은 콧대, 완벽한 입술 라인까지 그야말로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고급스러운 회색 홈웨어를 입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다.고상윤처럼 칼로 깎아낸 듯한 거친 잘생김과는 달리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잠깐 넋을 놓은 심해린은 스스로를 한
اقرأ المزيد

제25화

진성혁이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니까 괜찮아요.”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같은 심해린의 모습에 진성혁이 물었다.“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아니면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요?”“아니요. 저를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해요.”심해린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부모님은요?”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저 고아예요.”진성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은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때 심해린이 벽을 짚으며 문 쪽으로 절뚝절뚝 걸어갔다.“하룻밤 재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가볼게요.”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릎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심해린이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낯선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등을 곧게 세우고 걸어갔다.진성혁은 자리에 서서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 붙잡지는 않았다. 그녀가 문 앞에 다다랐을 때 한마디 덧붙였다.“휴대폰 배터리가 다 된 것 같던데 거실에 충전기가 있어요.”심해린이 발걸음은 멈췄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괜찮아요.”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아파트에서 나온 뒤에야 심해린은 이곳이 가장 유명한 부유층 주거 지역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았다.“누리안으로 가주세요.”택시 운전사가 백미러로 심해린을 힐끗 쳐다봤는데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심해린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잘 알고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옷은 절인 배추처럼 구겨져 있었으며 얼굴빛도 아마 핏기없이 창백할 것이다.그녀는 유리창에 기대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릎의 통증이 계속 올라왔다. 이 통증은 어제 고씨 가문 본가에서 겪었던 모든 일을 떠올리게 했다.모욕과 고통들... 하지만 지금 떠올려도 마음에는 거의 아무런 파문이 일지 않았다.이젠 아마 무뎌졌을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 마음이 식어버리면 더 이상 아프지도 않을 테니까.택시가 누리안 별장 단지 입구에 멈췄다. 심해린이 요금
اقرأ المزيد

제26화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상윤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조금 부드러워졌다.“어제 회사에 일이 너무 많았어. 계속 처리하느라 끝이 안 났거든. 나중에 나도 본가로 갔었어.”심해린이 코웃음을 쳤다.“회사 일이었어요, 아니면 서아 씨 일이었어요?”고상윤의 목소리가 몇 톤이나 높아졌다.“넌 왜 항상 서아한테 이렇게 적대적이야? 여기에 가족도 없는 애를 우리가 조금 더 챙겨주는 게 뭐가 문제인데?”심해린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늘 이렇게 명서아의 편을 들었다.그녀는 등을 곧게 세우고 소파에 앉아 있는 고상윤을 쳐다봤다. 밤새 잠을 못 잔 탓에 눈 밑에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압박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어디 갔었어?”고상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밤을 새워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심해린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창고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았다.고상윤이 뒤따라 들어왔다.“묻잖아. 어젯밤에 어디 갔었냐고.”심해린이 계속 무시하자 그녀를 잡으려 했다. 그녀는 지금 무릎을 다친 상태였다. 고상윤이 잡아당긴 바람에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고상윤이 재빨리 그녀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멍으로 가득한 무릎을 본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시뻘게진 두 눈으로 쳐다봤다.“내가 본가에 가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당신도 알잖아요. 전화로 뭐라고 했었죠? 일 끝나면 본가로 오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해명 영상도 당신들이 찍으라고 해서 찍었고 난 협조 다 했어요. 그런데 왜 당신 할머니는 아직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건데요?”목소리가 높지 않았지만 정확하게 고상윤의 마음속 가장 약한 부분을 찔렀다. 고상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준비해두었던 비난의 말들이 목구멍에 막혀버렸다.창고 방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고상윤도 입을 굳게 다물렸다.바로 그때 명서아가 다가와 고상윤의 옆에 서더니 힘없이 그에게 기댔다.“언니, 어떻게 오빠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요?”명서아의 목소리
اقرأ المزيد

제27화

고상윤은 순간 가슴이 막힌 듯 답답해졌고 이유 모를 분노가 거세게 타올랐다.밖에서 더 이상 고상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심해린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바닥에 누웠다.정말 너무 피곤했다.배터리가 꺼져 있던 휴대폰이 조금 충전된 후 전원을 켰다.바로 그때 수많은 문자와 부재중 전화 알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휴대폰이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진동했다.화면에 고상윤의 이름이 도배되어 있었다.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심해린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문자가 열몇 통 와있었다.심해린은 화면을 보면서도 마음에 조금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초조해 보이는 문자들이 단지 통제하던 물건이 사라졌을 때 주인이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그 안에는 사랑이 아니라 죄책감과 소유욕이 섞여 있을 뿐이었다.그녀는 문자를 넘기다가 한 낯익은 프로필 사진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고혜연이었다.대화창을 열자 링크 하나와 밑에 짧은 글이 덧붙여 있었다.[해린아, 진일 그룹의 스타라이트컵 디자이너 대회가 시작됐어. 여기 응모 사이트야. 확인해봤는데 주제 제한은 없고 요구가 딱 하나야. 작품 안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대. 지금 많이 힘든 거 알지만 그래도 이건 기회야. 포기하지 마.]‘진일 그룹, 사랑...’심해린은 그 두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 증오만 가득한데 사랑이 남아 있을까?하지만 이건 고혜연의 마음이자 심해린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잠시 스스로를 다잡은 뒤 고혜연에게 알았다는 의미로 뽀뽀 이모티콘을 보냈다.휴대폰 배터리가 20%까지 충전됐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충전기를 뽑고 외투를 집어 들었다. 이곳에 단 한 순간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할머니가 걱정되어 병원에 가볼 생각이었다.그런데 별장 문을 나서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고상윤이라는 세 글자가 떴다.심해린이 전화를 받자마자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심해린, 지금 몇 시인지 알아? 왜 아직도 출근 안 해? 이번 달 개근 수당은
اقرأ المزيد

제28화

심해린이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안에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속이 그 냄새 때문에 더 울렁거렸다.복도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얬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솜 위를 밟는 것처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병실로 들어와 보니 할머니가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간병인이 심해린에게 말했다.“아까 의사 선생님이 보호자를 찾으시더라고요.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았어요.”간병인 장인숙은 예전에 병원에서 청소 일을 하던 아주머니였다. 심해린은 장인숙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곧바로 의사 사무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안녕하세요, 선생님. 전 39번 베드 환자의 손녀인데요. 할머니 상태가 어떤지 여쭤보려고요.”“할머니가 입원하신 뒤로 보호자를 몇 번이나 찾았는데 계속 안 계시더군요. 지금은 일단 상태가 안정됐습니다. 외상도 괜찮아졌고 각종 수치도 안정적이에요.”의사가 금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차분하게 말했다.심해린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제가 일이 좀 있어서 못 왔어요. 그럼 할머니는 언제쯤 깨어나실 수 있을까요?”의사는 들고 있던 필름을 빛에 비춰 보았다가 내려놓았다.“뇌에 혈종이 있어서 신경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언제 깨어나실지는 단정하기 어려워요. 현재 상황으로 보면 깨어날 확률은 대략 50% 정도입니다.”‘50%라...’심해린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의사의 입에서 직접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무거워졌다.그녀는 더 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그러고는 의사 사무실을 나왔다.병실 안이 아주 조용했다. 모니터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리만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할머니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누렇게 뜬 이마에 달라붙었다.언제나 다정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 눈은 지금 굳게 감겨 있었다. 그리고 눈가에 깊은 피로와 쇠약함이 내려앉았다.심해린은 의자를 끌어와 침대 옆에 앉은
اقرأ المزيد

제29화

‘차라리 잘됐어. 지금 가장 보기 싫은 사람이 고상윤인데.’심해린은 지친 몸을 이끌고 습관처럼 창고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이 지금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두 걸음쯤 걸었을 때 2층 계단 쪽에서 부드럽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왔어요? 할머니는 좀 어떠세요?”심해린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명서아가 맨발로 계단 위에 느긋하게 서 있었다. 이 집의 여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얼굴에 걱정이 적당하게 걸려 있었다.그녀와 연기할 생각이 없었던 심해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지나치려 했다.그런데 스쳐 지나가던 순간 심해린이 갑자기 굳어버렸다.명서아가 목에 붉은 실을 하고 있었는데 붉은 실 끝에 맑고 투명한 비취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이건 심해린이 예전에 고상윤에게 선물한 펜던트였다.심해린은 순간 머리가 윙 했다. 몸이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고 발바닥에서 올라온 차가운 기운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명서아는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가슴 앞의 펜던트를 무심한 척 손으로 어루만지며 환하게 웃었다.“언니, 뭘 그렇게 봐요? 이 펜던트 예쁘죠?”심해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명서아의 얼굴을 쳐다봤다.“그걸 왜 서아 씨가 하고 있어요?”심해린의 목소리가 아주 낮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이를 악물고 내뱉어서 무서운 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그 눈빛에 명서아는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곧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히려 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그녀는 펜던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랑하듯 심해린에게 보여주었다.“상윤 오빠가 준 거예요.”명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천진난만하면서도 잔인한 말투로 말했다.“이 색이 내 피부랑 잘 어울린대요. 오빠가 본 것 중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던데. 어때요? 예쁘죠?”고상윤이 줬다고 했다. 게다가 예쁘다고까지...그 몇 글자가 녹슨 둔탁한 칼처럼 이미 너덜너덜해진 심해린의 심장을 한 번 또 한 번 베어버렸다.심
اقرأ المزيد

제30화

명서아의 말에 심해린이 경악하며 바로 반박했다.“팔았다간 절대 가만 안 둬요.”“그러니까 더 팔기 싶은데요? 이건 오빠가 이미 나한테 준 거예요. 음... 색깔도 좋고 품질도 좋네요.”명서아의 목소리에 과시가 은근히 섞여 있었다.심해린이 흠칫하더니 더는 참지 않고 협박했다.“팔아버렸다간 두 사람이 나한테 해명 영상을 강요했던 일을 전부 다 폭로해버릴 거예요.”이 펜던트는 그녀가 기억을 하는 순간부터 항상 몸에 지녔던 물건이었다. 심씨 가문에 온 뒤 할머니도 비취의 상태가 좋다는 걸 알아보고 잘 간직하라고 당부했었다.심해린은 한때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믿었다. 하여 더는 가족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펜던트를 고상윤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고상윤이 그녀가 선물한 걸 명서아에게 줘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돌려줘요.”심해린이 명서아를 빤히 쳐다봤다.명서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고는 다시 펜던트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예요? 심해린 씨?”‘드디어 심해린한테서 무표정 말고 다른 표정을 봤어.’이 상황이 재미있었던 명서아는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쁜 장난기가 발동했다. 심해린이 어떻게 할지 너무나 궁금했다.“내 거라고 했어요.”심해린이 한 걸음씩 다가갔다. 시선이 펜던트에서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돌려줘요.”“해린 씨 거라고요?”명서아가 피식 웃더니 펜던트를 손바닥 안에 숨겼다.“지금은 내 손에 있잖아요. 그럼 내 거죠.”그녀의 눈에 노골적인 도발과 경멸이 담겨 있었다. 명서아는 심해린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심해린은 감옥에 있는 동생을 위해, 거의 죽어가는 할머니를 위해 뭐든 참고 견디는 사람이었으니까.“돌려달라고 분명히 말했어요.”심해린이 이를 악물고 글자마다 분노를 눌러 담아 내뱉었다.“싫어요.”명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일부러 심해린의 앞까지 걸어가 펜던트를 들어 올렸다.“어쩔 건데요? 상윤 오빠한테 가서 고자질할 거예요?
اقرأ المزيد
السابق
123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