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복된 균열: 새벽의 전도체 새벽 2시, 멜팅 포인트 본사의 공기는 지독하리만큼 차갑고 정적이 감돌았다. 모든 직원이 퇴근한 고요한 복도 위로, 장갑 없는 맨손을 가슴에 품은 채령이 유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평소의 명료함을 잃고, 불신이라는 지독한 노이즈로 충혈되어 있었다. 어제 한준호가 던진 한마디, "강진혁은 너를 구한 게 아니라 낙점한 것이다."라는 말은 채령의 신경계 내부에서 거대한 '격자 결함(Lattice Defect)'을 일으키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결정 구조를 가진 듯한 진혁과의 관계가, 사실은 설계된 불량품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잠식했다. 채령은 중앙 서버실의 육중한 금속 문 앞에 섰다. 이곳은 퀀텀 테크 시절의 기밀 데이터가 이관된, 멜팅 포인트의 심장부였다. 그녀는 자신의 맨손을 차가운 바이오 인식 패드 위에 올렸다. 지문이 닿는 순간, 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전류가 그녀의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되었다. ‘진혁 씨, 당신이 정말 나를... 실험체로만 본 건가요?’ 채령은 진혁이 공유해준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금지된 구역으로 파고들었다. 서버 랙들이 내뿜는 인공적인 열기가 그녀의 뺨을 스쳤다. 그녀는 장갑 없는 손끝으로 광섬유 케이블을 흐르는 데이터의 박동을 읽어내려 애썼다. 10년 전, 아버지의 사고. 그 프로젝트의 최종 승인권자가 정말 강진혁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자신의 변형된 뇌 신경계를 얻기 위해 그 사고를 방조한 것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파일의 보안 벽이 하나씩 허물어질 때마다 채령의 심박수는 임계점을 향해 치솟았다. 마침내, 10년 전 ‘프로젝트 아이스(Project Ice)’의 폴더가 열리려는 찰나였다. “데이터 분석에는 환경 변수가 중요하다고 가르쳤을 텐데, 은 수석.” 정적을 찢고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 채령의 전신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방의 공기를 단숨에 절대 영도로 몰아넣을 수 있는 남자, 강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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