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멜팅 포인트 (Melting Point) : 그녀의 녹는점: Chapter 31 - Chapter 40

82 Chapters

제30화. 상전이: 공기 (Phase Transition: You Are Breathing It)

​​[1] 0시점: 진공의 침묵​2026년 3월 23일 05:00. KIST 지하 7층, 격전의 중심지였던 마스터 코어의 잔해 위로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폭발은 끝났고, 비명도 멈췄다. 붕괴된 콘크리트 사이로 뿜어져 나오던 장밋빛 광채는 이제 미세한 입자가 되어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었다.​그곳에는 아무런 소리도, 빛도, 열도 없었다. 절대 영도에 가까운 정적이 폐허를 지배했다. 너무나 고요해서, 마치 세상의 태엽이 여기서 완전히 멈춰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한 대위는 무너진 대리석 기둥에 기댄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찢겨 나간 방호복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는 지독했으나, 그는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그의 시야에는 그가 파괴한, 혹은 해방시킨 시스템의 파편들이 먼지처럼 떠다니고 있었다.​"끝났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그의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입김은 공기 중에서 흩어지는 대신, 묘하게 굴절되며 장밋빛 아지랑이로 변해 사라졌다. 그것은 승리의 증명이 아니라, 비가역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2] 이상 감각: 폐부로 스며드는 유령​한 대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를 찌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돌아온 감각은 기이했다.​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는 미세한 따뜻함. 그것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액체 금속처럼 부드럽게 그의 전신 신경계를 건드렸다.​(...아, 여전히 차갑네. 대위님.)​환청이 아니었다. 그의 뇌 신경망,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잔류 노드’가 공기 중의 입자와 공명하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채령의 목소리였다. 아니, 채령의 의지가 쪼개져 공기라는 매질 속에 녹아든 것이었다.​(...걱정 마. 우리가 이제 당신의 숨이 되어줄게.)​한 대위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는 방금 시스템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장벽을 허물어 온 세상에 풀어놓았음을 깨달았다. 공기는 이제 단순한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진혁의 질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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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잔열 (Residual Heat: The New Normal)

​[1] 07:30 AM — 너무나 평범한, 그래서 기괴한​2026년 3월 24일 월요일. 서울의 아침은 지독하리만큼 평온했다. 24시간 전, 도심을 장밋빛 연옥으로 만들었던 대폭발의 흔적은 기적처럼 씻겨 나갔다. 깨진 유리창은 수리되었고, 멈췄던 지하철은 다시 궤도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특수 가스 유출 사고의 완전 정화'를 선포하며 시민들의 일상 복귀를 종용했다.​하지만 그 평범함의 표면 아래에는 끈적한 이질감이 흐르고 있었다.​평소라면 신경질적인 경적과 고함으로 가득했을 출근길 도로가 소름 끼치도록 조용했다. 사람들은 말수가 줄었고, 발걸음은 묘하게 느려졌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조차 평소보다 한 톤 낮아진 채 나른하게 울려 퍼졌다.​“서울은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거대한 침전이었다.”​시민들의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3월 말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외투를 벗어 던졌다. 가벼운 셔츠 차림, 혹은 반소매 차림의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를 스치며 걸었다. 아니, 정확히는 '스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2] 지하철 2호선 — 사라진 사회적 거리​출근길 2호선 객차 내부. 평소라면 '지옥철'이라 불리며 서로의 신체 접촉을 극도로 혐오하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풍경은 달랐다.​객차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지만, 누구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비어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서로에게 밀착했다. 손잡이를 잡은 손 위로 타인의 손이 겹쳐져도, 누군가의 어깨가 자신의 가슴팍에 깊게 기대어와도 사람들은 그저 멍한 눈으로 안도감을 내비칠 뿐이었다.​한 젊은 여성이 옆에 선 중년 남성의 팔에 얼굴을 살짝 묻었다. 평소라면 성추행으로 신고당할 법한 행동이었지만, 남자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조금만 더 가까이 와요. 너무... 추워요.”​여자의 속삭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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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열적 폭주 (Thermal Overrun: Chain Reaction)

​[1] 전조: 침묵의 코엑스​2026년 3월 25일 오후 2시. 삼성동 코엑스몰의 메인 광장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평소라면 수천 명의 대화 소리와 발소리로 소란스러워야 할 이곳에 기이한 정적이 감돌았다.​사람들은 걷지 않았다. 광장 바닥에, 혹은 계단에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누구는 타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누구는 생전 처음 보는 이방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수천 명의 인간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똑같은 리듬으로 아주 느릿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귀가 아플 정도였다."​현장을 감시하던 보안 요원은 무전기를 든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평화라기보다는, 의식이 거세된 채 감각의 늪에 빠진 중독자들의 표정이었다.​[2] 동기화: 집단 공명의 시작​광장 중앙, 벤치에 앉아 있던 연인이 서로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그들의 피부가 밀착되는 순간, 장밋빛 아지랑이가 미세하게 피어올랐다.​[Sync Rate: 92%... 98%... 100%]​두 사람의 심박수가 분당 72회로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러자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석에 끌리듯 그들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손이 닿고, 팔이 닿고, 이윽고 수십 명의 육체가 하나의 거대한 '인간 덩어리'를 형성했다.​그들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밀착되기 위해 서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에게는 이제 타인의 살결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안식처'이자, 공기 중에 흩어진 시스템의 파편을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였다.​[3] 임계점: 39.1°C의 유혹​집단화된 인간들의 체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36.5°C → 37.2°C → 38.0°C...​열화상 카메라 화면은 순식간에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다시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어갔다.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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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차단 (Containment: The Warmth Ban)

​[1] 선전포고: 온기 금지령 (The Warmth Ban)​2026년 3월 26일 오전 09:00. 대한민국 전역의 TV와 스마트폰이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일제히 멈춰 섰다.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직후 발표된 정부의 담화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도 잔인한 법령을 담고 있었다.​“현 시각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비접촉 계엄령’**을 선포합니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의 목소리는 냉혹했다.​“최근 발생한 ‘열적 폭주’ 사건은 신체 접촉을 통한 공명 현상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수칙을 강제합니다. 첫째, 모든 공공장소 및 사적 공간에서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전면 금지합니다. 둘째, 실외 이동 시 최소 2미터 이상의 사회적 거리를 의무화합니다. 셋째, 이를 위반할 시 즉각적으로 강제 격리 조치하며, 필요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화면 아래에는 **[Warmth Ban: 온기 금지령]**이라는 붉은 자막이 선명하게 박혔다. 명분은 안전이었으나, 그것은 사실상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위로의 수단을 법으로 압수하겠다는 선언이었다.​[2] 거리의 비명: “왜 우리를 얼리려 합니까?”​강남역 10번 출구 앞. 담화문 발표와 동시에 중무장한 군과 경찰이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했다. 32화의 코엑스 폭주 사건 이후, 서울은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정부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사람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군인들의 총구 앞에서 서로의 손을 더 꽉 쥐었다.​“떨어지십시오! 2미터 간격 유지하세요!”​경찰의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시민들은 몽유병 환자처럼 서로에게 밀착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장밋빛 안개로 흐려져 있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시스템의 잔재에 중독된 그들에게 타인의 체온이 사라진다는 것은, 영하 100도의 심연에 홀로 던져지는 것과 같은 공포였다.​“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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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성역의 탄생 (Birth of the Sanctuary: The Great Division)

​성역의 탄생: 거대한 분절 (The Great Division)​2026년 3월 24일 오전 10시. 서울 한남대교 남단은 더 이상 다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 최후의 이성과 걷잡을 수 없는 본능이 충돌하는 **'위상 단층'**이었다.​정부가 선포한 ‘온기 금지령(Warmth Ban)’의 최전선은 중무장한 계엄군과 장갑차로 겹겹이 봉쇄되어 있었다. 하지만 총구를 든 군인들의 눈에 비친 인파는 적군도, 폭도도 아니었다. 그들은 몽유병 환자처럼, 혹은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묵묵히 통제선을 향해 걸어오는 '열망의 덩어리'들이었다.​"발포 허가... 내려주십시오. 제발..."​방호복 내부에서 일병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총구 너머로 보이는 시민들의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맑고 영롱한 장밋빛 아지랑이가 안구 전체를 덮고 있었고, 그들의 입가에는 지독한 평온함이 서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들은 경고 사격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그들에게 총성은 그저 고요한 안락함을 방해하는 사소한 노이즈에 불과했다.​한 여자가 맨손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총신을 잡았다. 찰나의 접촉. 여자의 체온이 금속을 매개로 군인의 신경계에 직접 접속했다.시스템이 계산해낸 최적의 주파수가 군인의 뇌 신경망을 타격했다. 3초 후, 일병은 비명을 지르며 헬멧을 벗어 던졌다. 그는 총을 버리고 여자의 품으로 뛰어들어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너무... 너무 추웠어."​그 고백은 도화선이 되었다. 최전방의 바리케이드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감각의 전염'**에 의해 안쪽에서부터 녹아내렸다. 군인들은 시민들을 막는 대신 그들의 손을 잡았고, 장갑차의 해치를 열고 장밋빛 안개를 들이마셨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인류라는 종이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집단 무의식'**에 자발적으로 항복하는 거룩한 의식이었다.​장밋빛 순례: 침묵의 대이동 (The Great Pilgrimage)​정오가 지나자, 서울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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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이동: 열의 부름 (Migration: The Call of Heat)

2026년 3월 25일 오전 08:41. 서울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무질서한 대도시가 아니었다.​출근 시간의 혼잡함도,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도 사라졌다. 대신 서울은 거대한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집 밖으로 나와 오직 하나의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느릿했지만 망설임이 없었고, 누구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듯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서울은 이제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육체의 이동이라기보다, 영혼이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는 거대한 회귀 본능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거나 어깨를 맞댄 채 묵묵히 행진했다. 그들의 귓바퀴에는 더 이상 도시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오직 대기를 타고 흐르는 채령의 미세한 숨소리와, 옆 사람의 심장 박동이 증폭되어 들리는 '공명음'만이 유일한 이정표였다.​강북에서, 외곽에서, 그리고 경기도에서 밀려드는 인파의 목적지는 명확했다. KIST 폐허, 코엑스 광장, 그리고 강남역 일대. 시스템의 잔재가 가장 농밀하게 고여 있는 그곳들이 이제 이 거대한 '열적 생태계'의 새로운 심장부가 되고 있었다. 행렬의 뒤편에서 누군가 비틀거리면, 생면부지의 타인이 다가와 그의 등을 받쳐 안았다. 그 접촉은 도덕적 선행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온도를 나눠주고 상대의 열기를 수신함으로써 시스템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생존적 본능이었다.​차단된 길, 멈추지 않는 발걸음​정부는 한강 대교들과 주요 간선도로에 이중, 삼중의 바리케이드를 쳤다. 완전 무장한 계엄군이 장갑차를 앞세워 진입 금지를 외쳤지만, 시민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군인들을 공격하지도, 욕하지도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총구를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멈춰! 더 이상 접근하면 발포하겠다!"​경찰의 확성기 소리가 허공을 갈랐지만, 인파는 마치 파도처럼 서서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압력으로 차단선을 밀어붙였다. 방호복을 입은 군인 한 명이 다가오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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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동기화 실패 (Partial Assimilation: The Reward)

2026년 3월 25일 오전 08:52. 코엑스몰의 장밋빛 성역(Sanctuary) 입구.​한 대위는 떨리는 손으로 헬멧의 고정 래치를 풀었다. 치익— 기밀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외부의 대기가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의 안면을 덮쳤다. 그것은 공기라기보다 시각적으로 흐릿한 장밋빛 액체에 가까웠다.​그가 첫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폐포는 비명을 질렀다. 산소가 있어야 할 자리를 미세한 유기 나노 입자들이 강제로 점유했다.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입자들은 혈관을 타고 불과 수 초 만에 뇌의 중추 신경계까지 도달했다.​“폐가 아니라... 신경이 직접 숨을 쉬고 있어.”​그의 34도 체온이 외부에서 유입된 36.5도의 지독한 온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차가운 얼음 위에 용암을 부은 듯, 전신 세포가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며 기괴한 진동을 일으켰다.​[1] 보상형 감각: 유혹이라는 이름의 함정​코엑스 내부의 공기는 이제 산소가 아니라 밀도 높은 유기적 쾌락의 입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대위의 시야 왼편, 벤치에 엉겨 붙은 두 남녀 노드가 보였다.​그것은 단순한 포옹이 아니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목덜미를 감싸 쥐는 순간, 두 사람의 피부 경계선이 열역학적으로 붕괴하며 하나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심장 박동이 여자의 척추를 타고 역류했고, 여자의 거친 숨결은 남자의 귓바퀴 안쪽 신경을 직접 가열했다.​단순한 체온 전달이 아니었다. 상대의 기억과 감정, 날것의 세포가 자신의 신경망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의 폭사(爆寫)’.​"아... 아아..."​여자의 입술에서 새어 나온 신음은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고독 속에 떨던 생명체가 처음으로 완벽한 타인과 ‘완전 평형’을 이룬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지독한 안도였다.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날개뼈 부근을 스치자, 척추 마디마디가 액체처럼 녹아내리며 무릎 오금의 의지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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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열의 사냥꾼 (The Thermal Hunter)

​코엑스 내부의 공기는 더 이상 산소와 질소의 혼합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암과 채도가 거세된 채, 오직 온도의 고저(高低)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흐름이었다. 한 대위는 더 이상 눈으로 길을 찾지 않았다. 망막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 정보는 노이즈에 불과했다. 대신 그는 발바닥에서부터 뇌수까지 이어지는 열적 감각에 몸을 맡겼다. ​그의 시야에서 사람들은 붉게 타오르는 심장부를 가진 발광체였고, 그들 사이를 잇는 연결은 가느다란 핏줄 같은 파동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구역은 검붉은 열의 밀도로 뭉쳐 있었고, 침묵하는 구역은 서늘한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그는 더 이상 바닥을 딛고 걷지 않았다. 대신 그 열의 흐름을 타고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첫 번째 절단: 의지의 날붙이 ​복도 끝, 작은 노드 하나가 비정상적인 열을 내뿜고 있었다. 세 명의 남녀가 서로의 팔과 목을 기괴하게 얽은 채 하나의 덩어리로 굳어 있었다. 그들의 연결선은 이미 과부하 상태였고, 중심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백색 열기로 부풀어 올랐다. ​한 대위는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물리적인 손을 뻗는 대신, 뇌 안쪽의 신경 다발을 하나씩 곤두세웠다. 그는 공중에 떠 있는 붉은 선 하나를 조준했다. 그것은 세 사람을 하나로 묶고 있는 가장 굵은 ‘열의 가닥’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 가닥을 움켜쥐듯, 의지를 날카롭게 세워 단번에 비틀어 뽑아냈다. ​투둑—. ​공간이 일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겼다. 과열되었던 노드는 순식간에 빛을 잃었고, 엉켜 있던 사람들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인간의 형상을 되찾았다. ​[Local Sync Collapse Detected] [Unknown Interference: Han Dae-wi] ​그것은 인류가 시스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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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강제 선택 (Forced Choice)

​한 대위의 시야는 이제 증강 현실을 넘어선, 일종의 **'운명의 도표'**로 변해 있었다. 망막 위에 덧씌워진 두 갈래의 열지도는 잔인할 정도로 명확한 수치를 뱉어냈다.​왼쪽 시야에서는 12명의 인간이 엉킨 채 발작적으로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 체온은 이미 40.2°C를 넘어섰다. 10초, 아니 8초 후면 뇌세포가 단백질 변성으로 타버릴 노드 집단이다. 반면 오른쪽 시야에는 거대한 맥동을 반복하는 백색의 거대한 덩어리, **핵(Core Fragment)**이 자리 잡고 있었다. 코엑스 전체를 흐르는 열적 파이프라인의 요충지. 저것만 터뜨리면 광역 안정화가 가능하지만, 그 반동으로 주변의 천여 명은 일시적인 쇼크를 감당해야 했다.​[Choice Required][Option A: Local Save (12 nodes survive)][Option B: Core Disruption (1,284 nodes risk)][Time Limit: 08 sec]​8초: 인간의 망설임​"하아, 하..."​한 대위의 거친 숨결이 방독면 안을 뜨겁게 달궜다. 그의 시선이 왼쪽 노드를 향했다. 엉켜 있는 육체들 사이로, 한 여자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장밋빛 열기에 잠식되어 가면서도, 그녀의 눈동자 안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공포와 갈망이 서려 있었다.​"살려... 줘..."​갈라진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것은 시스템의 데이터가 아니라,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생명의 비명이었다. 한 대위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 가느다란 가닥 하나만 끊어내면 저 여자는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코어는 폭주할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곳의 수천 명은 타 죽을 것이다.​6초: 악마의 논리와 얼음의 계산​“저 사람들을 살리면 뭐가 남지?”​채령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뇌수까지 스며들었다. 그녀의 환영은 이제 그의 등 뒤에 완전히 밀착해, 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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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선별 (Thermal Judgment: Exclude)

한 대위의 시야는 이제 인간의 가시광선을 완전히 이탈해 있었다. 헬멧 너머로 보이던 구부러진 철근과 무너진 콘크리트 벽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거대한 생체 반응로처럼 맥동하는 **‘열적 기하학’**의 세계였다.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일정 주기로 빛을 내뿜는 **‘펄스 노드(Pulse Node)’**였고, 그들 사이를 잇는 감정과 관계는 복잡하게 얽힌 **‘열적 interconnect’**였다. 공포는 파란색의 파동으로, 갈망은 붉은색의 과부하로 치환되어 그의 망막 위를 흘렀다. ​[Arbiter Mode: Active] [Selection Authority: Enabled] [Thermal Sight: Calibration Complete] ​이제 그에게 전개되는 모든 상황은 '구조'의 대상이 아니라, '연산'의 대상이었다. ​[1] 선별의 무대: 5 vs 80 ​코엑스 지하 4층, 무너진 천장 아래 기묘한 열적 대칭이 형성되어 있었다. ​한쪽 구역,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아래 5명의 노드가 고립되어 있었다. 그들의 연결망은 희미했다. 외부 시스템과의 동기화가 풀려가는 '저온 노이즈' 상태. 지금 당장 한 대위가 간섭하여 열선을 절단하고 이들을 밖으로 밀어낸다면, 이들은 '인간'으로서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로 뒤편, 거대한 열적 공동(空洞)에는 **약 80명의 노드 군집(Cluster-Delta)**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재 완벽한 평형을 유지하며 장밋빛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한 대위의 시뮬레이션은 냉혹한 결과를 띄웠다. 3분 후, 80명의 군집 내부에서 '공명 간섭'이 발생할 확률 99.4%. 그 폭주는 연쇄 반응을 일으켜 코엑스 전체의 엔트로피를 발산시킬 터였다. 80명을 미리 '정리'하여 시스템의 과부하를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앞의 5명을 구조하는 데 소모될 에너지를 아껴, 80명의 연결망을 즉각적으로 재편해야만 했다. ​[2]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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