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닥치고 내게로 와(Submit to Me)!: Capítulo 181 - Capítulo 190

225 Capítulos

#179. 타오르는 질투의 서막을 올리소서

현신은 마른침을 삼키며 제 손에 들려진 물건을 빤히 바라보았다.그것은 은발에 묘한 보랏빛이 감도는, 매끄러운 긴 생머리 가발이었다.“효진 님. 제가······ 이걸 진짜 써야 하나요?”“당연하지! 사람들이 모두 엘에프의 친동생으로 착각하게 만들 마법의 아이템이야.”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맞장구라도 쳐줄 텐데.현신이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을 떼지 못하자, 곁에서 지켜보던 헤르만과 엘에프 역시 질렸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엘에프는 이국적인 이목구비의 요정같이 아름다운 유럽 남자이고, 현신은 오밀조밀한 선이 가는 동양인 여성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두 사람이 닮은 남매라는 설정이 성립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효진은 그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현신이 입을 화려한 드레스와 치마를 양손에 든 채 춤을 추듯 나풀거렸다.“날 믿어보라고. 하하! 벌써 기대된다! 사람들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걸? 아, 이 스릴 만점의 변신 놀이! 세상을 놀라게 할 엄청난 일을 내 손으로 하게 되다니! 하하!”대체 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어야 이런 파격적인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걸까.묵묵히 서 있던 헤르만과 엘에프의 어이없는 시선이 효진에게 향했다. 기어코 두 남자의 입에서도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난 가끔 레드 레이디가 정상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 “헤르만, 가끔이 아니라 늘 이렇다는 것이 핵심이야.”두 남자의 저격에 효진은 발끈하며 두고 보라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비록 황당한 작전이었지만 거실 안은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온기로 가득 찼다. 현신은 눈앞의 동료들을 바라보며, 지난날 자신이 눈물을 쏟으며 떠나왔던 인천공항의 기억을 문득 떠올렸다.그때는 도망치듯 떠났으나, 이제는 금의환향하는 사람처럼 이 화려한 치장을 몸에 걸치고 당당히 돌아가게 되었다.“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지.”엘에프의 나직한 혼잣말에 현신은 묘한 감회에 젖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헤르만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거들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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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내가 딛는 길에 피로 얼룩지지 않기를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주효진, 유럽의 거부 엘에프 폰 루드비히와 동반 입국!][E기업 부사장이자 재력가 헤르만 반 뮐러, 약혼자 ‘에스 폰 루드비히’와 함께 입국!][최근 한국 HH그룹과 MOU 체결하며 투자 확대한 엘에프, 광폭 행보의 서막!][유럽의 큰손 헤르만, 결국 엘에프의 여동생과 이어지나······ 역대급 ‘로열패밀리’의 등장!]대한민국의 주요 포털 사이트 메인은 이미 메가톤급 속보들로 도배되어 있었다.가계영은 제 눈을 의심하며 모니터 화면 가득 쏟아지는 기사 헤드라인들을 짓씹듯 읽어 내렸다. 해외 반응도 심상찮았다. 세계적인 저널지와 경제 전문 언론사에서도 가십거리로 다루고 있어 가슴이 철렁했다.삼엄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는 그들의 빛나는 모습이 포털사이트 곳곳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JJ 창립 행사는 아직 한참 남지 않았나?”낮게 가라앉은 계영의 질문에, 마 실장이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다급히 브리핑을 이어갔다.“예상보다 훨씬 빨리 입국하신 듯 보입니다, 대표님.” “조용히 숨죽이고 들어와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 요란한 연극은 전부 엘에프가 노린 건가.” “어쨌든 일부러 언론을 이용해 판을 크게 짠 모양입니다.”계영의 턱끝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슴 한구석에서 겉잡을 수 없는 걱정과 초조함이 먹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대놓고 한비단을 향해 ‘어서 공격하러 오라’며 화려한 선전포고를 날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 미친 사내들이 제아무리 대단한 자들이라 한들, 한비단의 잔혹함을 과소평가한 대가는 피비린내로 돌아올 뿐이었기에 걱정이 앞섰다.초조하게 마우스휠을 내리던 계영의 손가락이 어느 한 사진에서 뚝 멈춰 섰다.고화질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기사 속 정중앙의 인물.보랏빛이 도는 은발의 긴 머리를 우아하게 늘어뜨린 채, 누가 봐도 세련되고 매혹적인 자태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여인.마치 은막의 스크린에서 걸어 나온 톱배우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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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재앙의 축복을 쏘아 올리소서

얼마 만에 마주하는 대한민국 하늘인지.현신은 제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폭풍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도리어 기묘한 고요함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인천공항을 벗어나 서울로 향하는 동안, 엘에프가 마련한 최고급 리무진 내부에는 오직 아늑한 평화로움만이 가득했다.“날씨도 좋고, 샴페인도 맛있네요.”효진의 나긋나긋한 말에 엘에프는 투명한 잔을 가볍게 흔들 뿐,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대는 취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이니까.” “어머, 이것도 임무인가요?” “그렇다고 해두지.”말도 하지 말고, 취하지도 말라니. 효진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임무라며 혼자 투덜거렸으나, 아쉬운 대로 샴페인 잔을 흔들며 나름의 풍류를 즐겼다.“오늘 꽤 잘 어울리는군.”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헤르만이 한마디 툭 내던졌다.현신의 착장은 완벽했다. 차분한 그레이 색상의 프랑스 명품 트위드 코트에 감각적인 검정 롱부츠, 그리고 같은 브랜드의 검정 금장 체인백이 자아내는 아우라는 독보적이었다. 곁에 앉은 헤르만 역시 그레이 톤의 맞춤 슈트에 검정 셔츠, 회색 타이를 매치하고 있어,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상류층 커플 그 자체였다.대대적으로 약혼을 공표한 사이에다가 엘에프의 여동생이라는 신분까지 덧입혀진 덕에 삼엄하기 이를 데 없는 JJ그룹 창립행사의 초대장도 무사히 발급받을 수 있었다.“모두 선배 덕분이죠. 헤르만 선배, 피곤하시겠어요.” “몸이 피곤한 게 아니라, 레드 레이디에게 시달리는 게 더 피곤해.”헤르만의 짓궂은 농담에 현신은 작게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슬며시 손으로 입을 가렸다.사실 헤르만은 지난주부터 이탈리아로 넘어가 빅토리아의 프리모들과 극비리에 회합했고, 그 세력을 엘에프 쪽으로 대거 흡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독일과 영국 측 넘버들에게 빅토리아 기관의 추악한 내부 고발 기사를 터뜨리기 위해 정치적으로도 영리하게 움직인 상태였다.이 숨 막히는 와중에 헤르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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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타인의 눈으로 숨겨진 진실을 밝히소서

얼마 만에 밟는 대한민국 땅인지. 현신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모두와 회포도 풀 겸, 주효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JJ그룹 계열사 호텔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전망 좋은 스위트룸 거실 테이블에는 현신과 효진, 엘에프와 헤르만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서울은 너무 오랜만이어서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낯설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마저 생경하게만 느껴졌다.“미스 효진, 객실을 좀 험하게 쓰게 될 텐데 괜찮겠어?” “엘에프, 이곳은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전용 객실이에요. 그동안 상하이에서 즐겁게 해 줬으니 이젠 내가 대접해야죠.” “영광이군. 그럼 잠시 실례.”엘에프는 늦은 시각임에도 호텔 최상층에 상하이에서처럼 정보통제실을 설치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헤르만 역시 부하들을 시켜 컴퓨터와 모니터 장비들을 세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며 현신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알바생, 아니 이제는 에스. 피곤할 텐데 일찍 쉬어.” “네, 선배.”헤르만은 현신의 안색을 살핀 뒤 엘에프를 도우려 거실을 벗어났다. 헤르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효진이 와인 잔을 들며 눈을 반짝였다.“정말 눈빛도 행동도 소 스위트해. 헤르만 씨는 얼굴도 잘생겼지, 몸도 좋지, 부자에다가 밤에는 짐승처럼 절륜할 것 같아······. 확 낚아채!” “하하, 효진 님. 저에게는 7월 말이 되면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요.”현신은 그 어떤 남자의 옆이 아닌, 가계영의 듬직한 등을 떠올리며 살며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효진은 그런 현신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 소녀처럼 환하게 미소지었다.“낭만적이야. 마성의 여인 에스.”오늘도 과음할 작정인지 슬슬 잔을 비우는 속도를 높인 효진은, 안주로 나온 카프리제를 집어 먹으며 현신에게 연신 궁금한 것들을 물어댔다.“그나저나 이제 계속 한국에 있을 거야?” “일이 끝나면 다시 엘에프 선배를 따라 이탈리아로 갈 거예요.” “어머, 언제?” “이번 임무가 끝나 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럼 갔다가 그 7월 말에 다시 돌아오는 거야?”현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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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마음의 경고를 울려 주소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현신이 모르는 시절의 가계영이라니. 주효진의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오자 현신은 피폐했던 자신의 과거 따위는 까마득히 잊은 채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아······, 계영 님 이야기라니. 벌써 흥미진진하네요.” “그래, 외모도 인성도······ 그 사람이 가진 능력도 전부 특별했으니까. 나 말고도 짝사랑하는 여자들이 엄청 많았지.”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 법. 현신은 어른이 된 계영의 모습만 보아왔기에, 그의 소년 시절은 어땠을까 깊은 호기심을 품은 채 효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어렸을 때도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 사실 계영 오빠 부모님도 대단한 사업가셨거든. 그야말로 찐 상류층이었지.” “······원래부터 대단한 분이셨군요.”역시, 계영에게는 남다른 귀티가 흐른다 싶었다.“그런데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계영 오빠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거기다 안타깝게 누명까지 뒤집어써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빚더미에 앉았지. 하루아침에 완전히 흙수저가 된 거야.” “······네?” “그래도 계영 오빠는 전혀 굴하지 않았어. 그 압도적인 추진력에 강무 오빠랑 규련 오빠도 매료돼서 군말 없이 믿고 따르게 된 거지.” “······와, 정말 멋지네요.”계영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현신의 가슴은 생경한 흥분으로 차올랐다. 그가 요원의 길로 접어들고, 전설적인 한국계 갑부 프리모가 되기까지의 비화를 듣자 술기운마저 싹 달아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계영 오빠는 차근차근 부모님 누명도 풀고, 빼앗긴 돈과 보상금도 되찾아서 기업을 사고팔며 세력을 키웠지. 군대도 다녀오고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아 미국 유학까지 마쳤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아.”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신의 머릿속에는 계영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는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왔을지,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깊은 존경심이 일었다.그렇기에 현신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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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안개 속으로 뻗을 칼날을 뽑으소서

이날 대한민국 언론은 채널을 틀 때마다 주효진의 아버지가 소유한 강남 모 특급 호텔의 화재 사건만 잇따라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얼마 전 홍콩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과 지나치게 흡사하여, 설 명절을 앞둔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거대한 공포감을 심어주었다.[지난주 강남 한 호텔 화재 사건! 테러인가, 단순 화재인가?][설 명절 앞두고 특급 호텔서 재난 사고 발생! 피해 조사 착수!][강남 소방서의 신속 대처와 평소 재난 대피 훈련 덕에 대형 참사 겨우 면해][홍콩 호텔 테러 사건과 판박이······ 경찰 당국 전격 수사 착수!]화재 경보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지던 그 아수라장 속에서, 그들은 비상계단을 타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을 뚫고 탈출해야 했다. 타오르는 불길보다 무서운 것은 은밀히 숨어들어 자신들의 목을 죄어오는 적들의 시선이었다. 숨 가쁜 도주 끝에 현신과 헤르만은 계영이 미리 마련해 둔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의 안전가옥으로 숨어들었다. 겉보기엔 산세 깊은 곳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사찰로 위장된 곳이었다. 한편 엘에프는 효진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본가로 향했다.계영은 정예 호위 가드까지 추가 지원하여 현신과 헤르만을 밀착 보위했고, 엘에프의 넘버들 역시 대규모로 입국해 주효진의 자택과 헤르만 측 방어선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산사에 밀려드는 서늘한 정적 속에서 현신은 차갑게 식어가는 손끝을 감싸 쥐었다.“헤르만 선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리를 향한 경고겠지.”현신은 계영이 미리 혹시나 하고 기민하게 대처한 덕에 미리 준비해 둔 짐은 무사히 챙겨 나올 수 있었다. 헤르만과 효진, 엘에프까지 전원 탈출을 완료하고 불과 5분 뒤, 호텔은 완전히 폐쇄되었다.“그래도 파티에는 가야겠죠?” “당연하지.” “그 문자는······.” “덫이거나, 혹은 사실이거나.”현신은 갑갑한 마음에 휴대폰 액정 속 그 문자를 보고 또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위치가 추적될까 싶어 휴대폰은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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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마주한 수평선 너머의 약속을 기억하소서

이무휼 제거 미션을 받아들인 것도 김강무.그리고 여렌을 공격한 배후 역시 김강무의 아버지와 연줄이 닿은 병원 관계자라니.최근 계영이 느끼던 묘한 거리감도 김강무의 의도된 행보였을 터였다.계영은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지만, 숨만 가빠질 뿐이었다.“그래, 수고했다. 너도 몸조심해.”— 넵.마리선과의 연락이 끊기자 계영은 복잡한 속내를 털어놓을 상대가 간절해졌다.문득 엘에프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는 쓴웃음과 함께 숨을 내쉬었다.창립기념행사가 열리는 저택에 엘에프가 있다는 사실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확실한 단서가 더 쌓이기를 바라며 계영은 결국 전화를 들었다.Rrr, Rrr, Rrr—. “엘에프 사장.”그는 지금 차마 현신에게 할 수 없기에 엘에프를 통해 그녀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다.휴대전화 너머에서는 습격을 당한 사람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심하면서 건조한 엘에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켄즈 대표. 뭘 하나 알아냈나 보군.“그래.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계속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어.”— 처음에는 순수했더라도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간에 변했겠지.역시 그는 모든 것을 직관적으로 꿰뚫고 있었다. 그래도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계영은 자신의 예감을 부정하며 말을 이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지금 우리는 키맨에 접근하고 있잖아? 본인이 제일 잘 알면서.통화 중이던 계영은 설마 엘에프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는 건가 싶어 의구심이 들었다.김강무와 자신은 오랜 벗이니까 말이다. 가까운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는 건 참기 힘든 고역이었다.그것이 목숨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면 고통의 크기는 더 큰 법이다.잠시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엘에프 사장, 내가 친구들을 의심해야 할까 봐 신경 써주는 거야?”— 설마, 난 그런 친절한 신사가 아니지.엘에프는 여유로운 태도로 설명을 이어갔다.“그냥 다 말해. 빙빙 돌려 말하는 건 별로니까.”— 좋아, 말해주지. 에스 휴대전화에 이런 문자가 찍혔더군.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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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운명의 주사위를 던져 주소서

대한민국은 드디어 설날 연휴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고, 무휼은 여전히 강무의 판교집에 갇혀 있다 드디어 내일 나갈 채비를 하게 되었다. “강무야, 이 녀석도 나도 돌봐주느라 수고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집이 내 펜트하우스보다 더 좋을까?” “무슨 소리야? 여기도 네 집이지.” “어? 진짜? 우와- 감동이네.” 강무와 규련은 모레 창립행사 준비를 하면서 주방으로 향해 냉장고부터 열었다. 그때 무휼도 주방으로 향해 냉장고 옆에 물끄러미 섰다. 규련은 맥주를 하나 꺼내 무휼에게 건네자, 무휼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술도 지겹습니다. 생수 하나 주십시오.” 무휼은 규련과 강무를 한번 쓰윽- 살피고는 생수를 들고 몸을 돌려 식탁으로 향했다. “그럼 나도 냉수 먹고 속 차려야지. 다들 그동안 애썼어. 이제 이틀 남았어. 모든 병력이 JJ창립행사로 몰려들 테니까 넌 아내한테 가.” 어느새 강무도 나타나 규련이 건네준 생수를 받아 들며 자리를 잡았다. 무휼은 강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의자 하나를 빼고는 자리에 앉아 입을 한번 삐죽거렸다. “강무 선생님과 규련 사장님은 사망 플래그입니까?” “뭐? 하하. 너 재밌는 녀석이구나? 결혼만 안 했으면 더 붙잡고 놀자고 할 텐데.” 규련은 강무와 눈을 마주하고는 연신 실없이 웃기만 했다. “음, 할 일 끝냈으니 달콤한 시간도 보내야지. 호랑이굴에 있느라 고생했어.” 규련과 강무의 농담에 무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여러분들이 제가 정보책이라 제거하지 못하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진짜 요즘 요원들은 겁도 없지.” 강무는 진지하게 무휼을 향해 그리 말하며 본인도 물을 마셨다. “나도 좀 조심해야겠네.” “그럼, 강무야. 우리 술은 언제 마실까?” “살아있으면 3일 뒤.” 남자 셋은 말없이 생수를 마시며 서로 눈을 마주했다. “강무 님. 어쨌든, 제 목숨 보전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고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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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가면을 던지고 적진을 들어가게 하소서

드디어 JJ그룹의 창립기념회 당일이자, 설 연휴의 마지막 날 저녁.대한민국 부유층의 상징이자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한남동 고급 저택가.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JJ그룹 오너의 딸 주효진의 저택은 이른 저녁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저택 주변은 고급 세단으로 에워싸여 있었고, 촘촘한 가드 라인 너머로 취재진의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저는 지금 대한민국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신년 회합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올해 명운을 쥐고 나라를 흔들 유력 정치인들과 경제계 인사들이 JJ그룹 창립기념회로 집결하고 있는데요.][특히 유력 대권 주자인 여당 대표 이운용 의원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최근 정계 입문설이 돌고 있는 김민철 대한종합병원 원장의 등장으로 연회장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젊은 재력가인 켄즈 그룹 대표와 H건설 한규련 사장의 모습도 포착되었습니다. 여기에 독일 IT 대기업의 젊은 수장, 엘에프와 그 가문의 방문으로 이번 행사가 끝난 뒤 경제계는 어떤 변화가 올까요.]중계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밤공기를 울리는 가운데, 현신은 엘에프 넘버들의 철통같은 호위 속에 독일 MB사의 스트레치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리고 곁에는 헤르만이 함께였다.“자, 쇼타임이다.” “네, 헤르만 선배.”다크 그레이 턱시도에 같은 계열의 보타이를 매치한 헤르만이 매끄럽게 손을 내밀었다.탐스러운 은색 긴 가발과 신비로운 보라색 렌즈, 그리고 실버 그레이 빛깔의 하이 네크라인 드레이프 드레스 차림의 현신이 우아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헤르만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등장한 현신을 향해 무수한 기자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엘에프의 여동생’이 헤르만과 함께 나타나자, 외신 기자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렌즈를 밀어 넣었다.주효진과 엘에프가 결혼으로 묶인다면 JJ그룹의 유럽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터. 시장의 기대를 반영하듯 설 이전부터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 소문의 중심에 선 두 사람은 저택 입구의 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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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숨어 있는 악(惡)을 찾게 하소서

훤칠한 피지컬에 고급스러운 블랙 턱시도를 차려입은 가계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현신은 심장이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옆에 선 헤르만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을 에스코트하는 파트너가 계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지만, 그걸 바랄 여유는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위험한 판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온 자신의 선택이 어떤 파국이나 기회를 불러올지, 머릿속이 지독하게 복잡해졌다.“에스, 표정 관리해.”“······네, 선배. 그럴게요.”이제 자신에게 허락된 자리는 계영의 곁이 아닌 헤르만의 옆이었다. 현신은 서늘한 가면을 써 올리듯 표정을 지워내며 허리를 바짝 폈다.“한비단의 일부는 네가 코드명 ‘에스’라는 걸 다 알면서도 속아주고 있는 것뿐이야. 긴장 풀지 마.”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 엘에프의 신분도 이미 노출되어 있고, 자신 역시 수면 위로 완벽히 끌려 올려진 상황.“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었어도 적들은 절 알아보겠죠.”현신은 송곳니를 악물었다.가계영과 엘에프가 서 있는 곳으로 모두를 이끈 건 현신이었기에 효진의 가르침대로 도도하고 차가운 가면을 더욱 굳게 고쳐 썼다.“너만 잘하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 너 원래 그거 전문이잖아.”헤르만의 지독한 경고가 현신의 머릿속을 깨웠다. “······꽤 스윗해지셨네요, 선배.” “사람이 상황 따라 변하기도 해야 사람이지.”그런가. 엘에프는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고 했는데.지금은 자신도 변해야 했고, 세상도 변하기를 바라는 중이었다.현신은 오늘 밤이 지나면 무언가 깨닫는 이치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단단히 발걸음을 옮겼다. *** 어느새 헤르만은 가계영의 바로 앞까지 현신을 이끌었다. 그는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연출된 약혼한 사이처럼 보이기 위해 현신의 허리를 감쌌다.계영의 앞에 멈춰 선 현신은 드레스 자락을 살짝 쥐어 잡으며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가계영은 천천히 현신의 머리끝에서부터 무표정한 얼굴, 깊게 파인 드레스의 가슴 라인과 허리, 골반을 거쳐 고운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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