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닥치고 내게로 와(Submit to Me)!: Chapter 161 - Chapter 170

182 Chapters

#158. 빌런과 손잡은 악녀가 되게 하소서

이 와중에 엘에프는 참 대단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고 있었다.“······선배, 혹시 쓰레기세요?”“이런, 진심이 느껴지는군. 넌 그 입이 정말 문제야.”현신은 방울방울 맺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거칠게 쓸어 닦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입술을 지그시 악다물었다.더할 나위 없이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으로 빚어낸 차가운 석상 같은 엘에프는 표정 하나 없이 덤덤하게 입술만 움직였다.“에스. 나랑 진짜 결혼해. 그럼 다 해결되는 거야.”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현신은 다시 입을 떡 벌린 채, 머릿속이 과부하로 치밀어 터지기 일보 직전의 표정으로 간신히 생각을 정리했다.결혼이라는 제도는 무엇인가.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것?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뜨거운 온기를 나누고, 시간이 흘러 아이를 낳으며 서로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누구랑? 그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닌 엘에프라고?이미 한비단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뇌리가 하얗게 타버릴 듯 혼란스러운데, 이 모든 황당한 상황에 대한 분노가 자칫 엘에프에게 폭발하듯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포식자가 자신을 끊임없이 휘두르고 있었지만, 현신은 이번만큼은 반드시 할 말을 해야만 했다.“절대 싫어요. 선배의 아내가 되다니, 그건 말도 안 돼요. 다른 건 몰라도 선배의 여자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뭐라도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으로 서늘하게 말을 내뱉자, 줄곧 침묵을 지키던 헤르만이 낮게 감탄사를 터뜨리며 현신의 옆으로 슥
Read more

#159. 눈먼 자들에게 환한 빛을 내려 주소서

다음 날이 되었다.현신은 평범하게 엘에프를 비롯한 헤르만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의논을 하게 되었다.자신이 벌인 일이기도 하고 자신의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현신이었다.하지만 마음 속 한 구석을 차지한 것은 가계영에 대한 미안함이었다.“켄즈 대표를 신경 쓸 때가 아니야.”엘에프는 번뇌에 가득 찬 현신을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그녀의 심장을 잔인하게 꿰뚫는 말을 던졌다.“알아요. 어차피 전······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으니까요.”“네가 원한 길이야.”“네, 맞아요. 감당해야죠.”심장에 날카로운 면도날이 스치는 듯한 고통이 일어 현신은 몸서리를 쳤다.도대체 이 세상은 왜 이토록 망가져 버린 걸까. 선과 정의를 수호한다고 믿었던 기관인 빅토리아와 한비단은 대체 언제부터 이리도 검게 물들어 있었단 말인가. 도무지 그래서인지 밥맛도 떨어졌다.“빅토리아도······ 한비단과 비슷한가요?”“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지.”현신은 자신이 걸어온 모든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깊은 한숨을 내쉬며 엘에프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 지옥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제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포식자이자 지금 제일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도 엘에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였다.“엘에프 선배, 제가 근사한 레이디가 되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상식적으로는 불가능
Read more

#160. 악마들의 제단으로 이끌지 마소서

그날 오후.가계영은 여렌을 김강무의 병원으로 옮기는 수속을 밟는 동안, 혹시나 보안이 흔들릴까 염려되어 병원에 계속 머물렀다.마침 병동 복도 옆 의자에는 한 여자가 목발을 세워둔 채, 잔뜩 움츠러든 몸으로 마리선의 일을 돕고 있었다.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리선이, 마침내 그 여자의 어깨를 다독이며 계영이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혹시 몸이 불편한가?”“네. 미션 수행 중에 다쳐 장애를 입었습니다. 지금은 조직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리선의 담담한 보고에 가계영의 시선이 느릿하게 여자의 부자연스러운 다리로 향했다. 문득 계영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현신이 책임감을 느끼고 돌보아 왔던 인물들의 이름 중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아······ 안녕하세요. 서시온이라고 합니다.”“이분이 가계영 켄즈 그룹 대표님이셔. 예전에 나를 후원해 주셨던 은인이자, 우리들의 거대한 라ON 선배님이시기도 하지.”리선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서시온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시온은 긴장 어린 숨을 삼키며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이무휼이라고······ 제 남편도 대표님 일을 돕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이 여자의 남편이 이무휼이라면.’그 순간 가계영의 머릿속에 잔혹한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현신이 오직 이 친구를 향한 눈먼 의리 하나 때문에 빅토리아를 탈출했고, 그 대가로 목숨을 건 임무를 전전하며 얼마나 처참하게 삶을 살아왔던가.순간, 가계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거대하고 뒤틀린 분노가 무겁게 솟구쳤다. 계영
Read more

#161. 악녀의 비상을 축복해 주소서

현신이 한비단의 직속 타깃이 되어 죽음의 위협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마당이었다.설마 제 발로 그 뱀굴 같은 대한민국에 들어오겠다니. 더욱이 그 철두철미하고 용의주도한 엘에프가 그리 무모하게 날뛰도록 놔둘 인간이 아니었기에, 계영은 한규련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깊게 좁혔다.“규련. 말이 안 되잖아.”“장난할 기분 아니니까, 이해가 되게 처음부터 설명을 제대로 해 봐.”황당함에 낮게 가라앉은 계영의 목소리만큼이나, 옆에 있던 강무 역시 규련을 향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그렇게 얼토당토않고 미친 소리 같으니까 내가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왔지! 너무 급해서 앞뒤 잴 겨를도 없었다고! 김 비서, 이거 확실한 정보 맞지?”“그럼요, 대표님. 제가 이 극비 사실을 입수하고 정말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습니다. 정보처를 통해 몇 번이나 교차 확인을 거친 내용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보고를 드린 거고요.”규련의 옆에 선 김 비서 역시 방금 막 엄청난 천기누설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규련은 마른침을 한번 삼키더니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계영아! 강무야! 우리 이모부 알지?”“JJ그룹 오너. 효진이 부친 되시는 분.”“그래, 바로 이모부가 매년 창립 기념 행사를 굳이 설날 마지막 날에 열어서 매번 업계에서 욕을 한 바가지로 먹잖아. 너희도 매년 초대장 받아서 가끔 얼굴 비췄었고.”계영도 불과 얼마 전에 서재 책상 위에 올려진 화려한 홀로그램 초대장을 확인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무 역시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온 초대장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잘 알고 있지.
Read more

#162. 지금 만큼은 달콤함을 허락하소서

자정이 지나갈 정도로 깊은 밤.상하이의 겨울바람이 스위트룸의 통창을 세차게 두드렸지만, 현신의 졸음은 밀려오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이성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가식과 기만이 총집결할 JJ그룹의 창립 기념 행사. 효진의 본가 정원에서 베일을 벗게 될 그 핏빛 제단 위에서 현신의 미세한 실수 하나는 곧 파멸을 의미했다.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자신은 물론, 백방으로 손을 쓴 효진과 엘에프, 헤르만까지 위신에 먹칠을 하게 될 터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이 무거웠기에 효진이 퍼붓는 폭풍 같은 잔소리는 살을 깎아 뼈를 채우는 극약 처방과도 같았다.“자자, 주목! 내 촉이 지금 상당히 좋아요. 이대로만 가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사랑에 빠진 연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거예요!”현신은 우아한 사교계의 레이디로 변신하고, 헤르만은 다정한 약혼자로 환골탈태하는 시간. 효진은 본인 스스로를 거장의 손길이라 믿으며, 한 땀 한 땀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내고 있었다.클래식 선율 위로 두 사람의 신체가 은밀하게 맞물렸다. 헤르만의 커다란 손이 현신의 가녀린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고, 지척에서 서로의 숨결이 얽혀들었다. 정교하게 짜인 연극이었으나, 살결이 닿을 때마다 묘한 텐션이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헤르만 씨! 눈빛 더 달콤하게! 녹아내릴 것처럼 쳐다보라고요!”“······대체 한국은 언제 가십니까, 미스 효진.”“안 가요, 안 가! 질문 금지! 우리 알바생 묵묵히 얼마나 잘하나 베껴 보기나 해요!”헤르만의 턱밑까지 다가간 현신이 고개를
Read more

#163. 짐승 소굴에서 숨 쉬게 하소서

다음 날 오전 11시.현신은 지난밤 단 한 숨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 엘에프와 가계영 사이에 오갔던 통화는 밀도가 너무 짙었고, 그 끝에 남겨진 “조만간 보지”라는 가계영의 나직한 음성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 ‘조만간’이 대체 언제일지 가늠하느라 밤새 매트리스 위를 뒤척인 탓에, 확장된 동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거실 테이블에 서늘한 브런치가 차려졌을 때였다. 식기를 미세하게 부딪치며 음식을 삼키던 헤르만이 먼저 침묵을 깼다.“엘에프. 한국으로 움직이기 전에, 켄즈 대표와 한 번은 준비 상황을 점검해야 하지 않겠어?”‘가계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얹어지는 순간, 현신의 신경이 칼날처럼 팽팽하게 일어섰다. 귀가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으나 현신은 전처럼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척 나이프를 쥔 손에 은밀히 힘을 주며 그들의 대화에 감각을 집중할 뿐이었다.엘에프가 잔을 내려놓으며 나른하게 받아쳤다.“한비단이 먼저 무너지느냐, 켄즈의 대표가 먼저 제거되느냐, 시소 게임에 판돈이나 걸어 볼까?”상황이 이토록 급박하게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니. 밀려드는 중압감에 현신은 미처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미간을 굳혔다.그리고 그 찰나의 흔들림을, 악마 같은 통찰력을 지닌 엘에프가 놓칠 리 없었다. 그가 입꼬리를 호선으로 말아 올리며 현신을 잔인하게 시선으로 옭아맸다.“에스. 상황이 이런데, 정작 한국 JJ 파티에서 켄즈 대표를 마주하면 아주 볼만하겠어. 안 그래?”대놓고 수면 아래의 감정을 흔들어보려는 투명한 도발. 현신은 그의 변덕스럽고 잔인한 성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감정을 걷어
Read more

#164. 포식자들의 아레나

순식간에 숨 막히는 브런치 타임은 기묘한 티타임으로 변질되었다.사방이 통제 불가능한 포식자들로 가득한 위험한 조합 속에서, 현신은 입술만 겨우 축이며 찻잔을 쥐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찻잔의 표면을 쓸어내리며 애써 갈무리했다.가계영과의 마지막 기억은 서로의 살결을 가장 뜨겁게 탐닉했던, 숨결마저 남김없이 집어삼킬 듯 탐욕스러웠던 그 밤이 끝이었다. 그런데 이 차가운 대륙의 스위트룸에서 다시 마주한 그는 어째서 이토록 생경하고 위험해 보이는지. 차가운 겨울 슈트를 입은 그의 전신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군주의 기세가 흐르고 있었다.한규련은 진심으로 반가운 듯 현신을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단정하게 가라앉은 슈트 차림 뒤로, 상대를 방심하게 만드는 능구렁이 같은 야수의 눈빛이 번뜩였다.“와, 알바생. 그새 더 예뻐지고 귀여워졌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네?”“안녕하세요, 사장님.”규련이 연신 현신에게서 풍기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흥미롭다는 듯 감상하며 중얼거렸다. 옆에서 강무 역시 날카로운 시선망을 현신의 전신에 침투시켰다. 셔츠 깃 위로 드러난 그의 단단한 목줄기가 낮게 울렸다.“몸은 좀 어때?”“현재 전 건강합니다.”한규련과 김강무를 완벽히 속이고 기만했던 과거가 가슴을 짓눌렀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현신의 온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가계영이었다.“신, 지난번 마카오에서 불미스러운 납치 사건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어. 걱정했는데.”계영과 시선이 얽히자 엘에프가 의식이 된 현신이었다.지금은 타인보다 못한 남남처럼 굴어야 했기에, 현신은
Read more

#165. 꽃밭에서 흘리는 피를 막아 주소서

현신은 정신이 아찔했다.자신이 계영의 옆으로 향하는 대가로, 그가 엘에프의 전력을 보태어 판을 짜주겠다니. 지금 한규련과 김강무까지 수하로 거느리고 대륙의 심장부까지 날아와 그 잔혹한 엘에프를 상대로 거래를 제안하는 가계영은, 어쩌면 엘에프를 능가하는 더 거대하고 무서운 포식자가 아닐 수 없었다.“내가 빅토리아를 무너뜨려 준다니까?”낮게 긁히는 강압적인 어조 속의 가계영은 이 지상의 규칙을 지배하는 신처럼 군림해 있었다. 그 모습은 당당함을 넘어 오만하기 짝이 없었으나, 동시에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 실려 있었다. 헤르만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확장되었고, 현신 역시 심장이 늑골을 부술 듯 거세게 요동쳤다.그 순간, 엘에프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침묵을 가르고 나왔다.“켄즈 대표. 지금 나랑 전쟁하겠다는 뜻인가?”그의 입꼬리는 유려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완벽하게 심사가 뒤틀렸고 불쾌하다는 가장 위험한 신호임을 현신은 직감했다.어떻게 해야 하나. 숨이 막혀오는 대치 상황 속에서, 김강무가 분위기를 완화하려는 듯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료 잔을 나직하게 집어 들었다. 잔과 받침이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서늘한 마찰음이 흘렀다.“자자, 오늘 우리가 이 위험을 무릅쓰고 한자리에 모인 목적은, 서로가 가장 완벽하게 윈윈(Win-Win)할 수 있는 조율점을 찾기 위해서입니다.”“그럼요. 우린 오랜 시간 밑바닥을 다지며 준비해 왔고, 이제는 가진 패를 맞출 때가 된 거죠.”강무의 매끄러운 중재에 이어 규련 역시 특유의 화사한 미소를 띠며 거들었다. 그러고는 현신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엘에프는
Read more

#166. 파멸을 막고 웃게 해 주소서

현신의 시선이 엘에프와 가계영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두 맹수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대치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켄즈 대표, 현실을 봐야지. 사랑스러운 에스도 언젠가는 우리들 중 누군가를 하늘로 영영 떠나보내야 할 테니까.”지독한 현기증이 밀려왔으나 현신은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처음에는 엘에프도, 헤르만도 저승사자처럼 두려운 심판자일 뿐이었다. 가계영과 한규련, 김강무 역시 한때는 신분을 속이느라 급급해 숨이 막히는 눈치 싸움을 벌였던 사내들이었다. 그러나 지독한 풍파를 함께 겪어낸 지금, 그들은 어느새 현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단 하나도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들이 되어 있었다.“물론 한비단을 쓸어버리고 빅토리아를 부수는 동안, 누군가는 기어이 대가를 치르겠지. 하지만 난 최악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아. 오직 완벽한 시나리오만 바라볼 뿐이거든.”결국 계영의 잔인하리치만큼 확신에 찬 어조가 현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짓눌려 있던 뜨거운 감정을 기어이 터뜨리고야 말았다.“다 잃지 않고 전부 살아남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현신은 앞으로 들이닥칠 피바람이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다. 그 누구의 죽음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고통받지 않고, 이 포식자들이 전부 살아남아 마지막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정답을 고안해 내야만 했다.“그런 건 없어, 에스.”마치 현신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엘에프가 가계영보다 한 걸음 더 가깝게 현신의 지척으로 다가왔다. 다시 현신의 머리칼을 나른하고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잔인한 진실을 속삭였다.“하나도 잃
Read more

#167. 때로는 무거움을 덜어 내어 주소서

어느새 상하이는 효진의 입을 통해 기묘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었다.“하하, 이 대륙 한복판에서 다 같이 모이는 날도 있네요, 어머, 그 강남역 멤버에 헤르만 씨까지 더 늘었네요?”해맑은 효진이 특유의 고집으로 사람들을 묶어놓은 덕에, 엘에프는 최고급 룸서비스를 시켜 크리스마스 만찬을 급조해 냈다.“그대가 내 지척에 있으면 참 웃을 일이 많아지는군.”“엘에프, 당신이 내 덕에 웃는다면 나도 아주 대만족이에요!”테이블을 가득 채운 화려한 만찬과 술, 그리고 지독하게 얽힌 사람들. 어느새 엘에프는 거실 한구석에 놓인 턴테이블에 빈티지 LP판을 걸어 진득한 재즈풍의 캐럴을 흘려보냈다. 조금 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졌던 살벌한 긴장감은 간데없고, 진한 위스키 향이 스며들며 객실 안은 묘하게 나른한 열기로 무르익어 갔다.“효진아, 너 상하이까지 날아와서 이 구역 미친 여자 1위 타이틀이라도 거머쥐려는 속셈이냐?”“규련 오빠, 뭐든 1등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 몰라? 맡겨줘.”“역시 넌 정상이 아니야.”규련과 효진의 살벌하면서도 유쾌한 설전에 사내들은 저마다 헛웃음을 삼키며 기묘한 볼거리를 감상했다.“우리 효진이는 술은 좀 적당히 마시렴. 글로벌하게 대형 사고를 치면 우리가 수습하기 곤란하니까.”“어머, 강무 오빠까지 이럴 거예요? 자꾸 그러니까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지.”“상관없어. 나는 단 한 사람에게만 각인되면 그만이니까.”강무는 나직한 저음을 흘리며, 시선 끝을 슬그머니 한규련 쪽으로 돌려 장난스러운 안광을 빛냈다. “이
Read more
PREV
1
...
14151617181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