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를 들은 유지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정군왕의 예법은 숙태비께 배운 것인가. 과연 윗물이 맑지 않으니 아랫물도 탁하군.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았거늘 남의 집 귀한 규수의 청의를 망칠 작정인가?"유지영과 정군왕부의 원한은 하루 이틀 쌓인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애초에 물러설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영은 허지 앞으로 다가갔다. "허 낭자, 장원랑 방온의 정실부인으로 시집가길 원하는가?"허지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손수건을 꽉 쥔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질린 것으로 보아 몹시 격동한 것이 분명했다."현왕비, 지금 나와 사람을 두고 다투겠다는 건가?" 정군왕이 미간을 찌푸렸다.유지영은 허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허 낭자, 두려워할 것 없네. 낭자가 원한다고 한마디만 하면, 내가 오라버니를 대신해 끝까지 싸워줄 것이니!"방온은 유국공부에 은혜를 베푼 사람이었다. 유지영은 결단코 방온이 허 낭자를 잃게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현왕비 마마!" 허 대인이 갑작스레 말을 끊었다. "혼인이란 본디 부모의 뜻을 따르는 법입니다. 허씨 가문과 정군왕부는 이미 혼약을 맺고 절차까지 밟았거늘, 어찌 권세를 빌려 남의 사람을 빼앗으려 하십니까. 이리 억지를 부리시면 가장 곤란해지는 것은 우리 허지입니다."그 말에는 다분히 협박의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만약 두 가문이 끝없이 다투어 허씨 가문이 어느 쪽도 무마할 수 없게 된다면, 허지를 출가시켜 여승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허 대인이 냉혹하게 말했다.허지는 망연자실했다.유지영조차 허 대인이 친딸에게 이토록 모질게 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현왕비, 기어이 허 낭자를 죽음으로 내몰 작정입니까?" 정군왕비가 뒤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허 부인은 눈물만 그렁그렁 매단 채 차마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조령 장공주가 유지영의 소맷자락을 살짝 당겼다. "현왕비, 이 혼사는 그만 포기하거라. 방 공자처럼 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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