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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개였던 당신에게: Chapter 21 - Chapter 30

55 Chapters

제 21 화

석호가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엎드린 은성의 코앞에 섰다.은성은 극도의 공포와 반가움이 뒤섞인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살기 위해, 아니, 주인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기 위해 석호의 차가운 가죽 구두코에 자신의 부드러운 뺨을 미친 듯이 비비적거렸다. 구두 가죽의 매끄러운 감촉이 뺨에 닿을 때마다 은성은 밭은 숨을 내뱉었다."하아... 네, 네에, 주인님... 흑, 식탁에 있는 거, 그거 다 봤어요... 세상이 나 죽었대요... 내 가족들이 나 버렸대요... 흐윽, 흐아앙..."은성이 바닥을 기어 와 석호의 발목을 생명줄처럼 꽉 껴안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그러니까 주인님은 나 버리면 안 돼... 나 진짜, 이제 세상에 주인님밖에 없어. 시키는 거 다 할 테니까, 개처럼 살 테니까 나 버리지 마... 제발요, 제발..."가장 오만했던 재벌가의 막내아들. 이제는 제 발로 기어들어와 주인의 구두를 핥으며, 쓰레기통에라도 좋으니 버리지 말아 달라고 구걸하고 있었다.석호는 척추를 타고 오르는 가학적인 희열을 억눌렀다. 은성의 은발을 거칠게 움켜쥐고 고개를 강제로 들어 올리게 했다."쉿. 누가 내 예쁜 짐승을 버립니까. 넌 영원히 이걸 목에 달고 이 집에서 평생을 숨 쉬어야 할 내 것인데."석호의 시선이 은성의 목에 걸린 백금 초커를 훑었다."대신, 오늘 하루 집을 잘 지킨 짐승이 주인이 주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겠지."석호는 손에 들고 있던 고급스러운 검은색 쇼핑백을 은성의 젖은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은성이 과거 VVIP로 대우받으며 드나들던 청담동 최고급 부티크 로고가 박혀 있었다.석호가 천천히 꺼낸 것은, 속이 훤히 비칠 정도로 얇고 부드러운 흰색 실크 가운이었다. 옷이라기보다는 나신을 더 음란하고 노골적으로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철저히 관음적인 천 조각이었다."네가 하루 종일 헐벗고 차가운 바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게 가여워서, 들어오는 길에 특별히 선물을 하나 사 왔지. 하지만 이 집의 짐승이 주인의 선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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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화

태성그룹 본사 최상층에 마련된 채권단 임시 집무실.과거 은성의 아버지가 그룹 전체를 호령하던 거대하고 화려했던 회장실. 이제 모든 명패와 장식품이 압류 딱지와 함께 뜯겨 나갔다. 삭막한 서류 더미만이 산처럼 쌓인 청산의 최전선으로 변해 있었다.그 서늘한 공간의 한가운데. 태성의 숨통을 끊어놓은 설계자, 윤 대표가 커다란 가죽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그는 새로운 회장이 아니었다. 태성이라는 거대하고 부패한 시체를 조각조각 해체하여 팔아치우는 냉혹한 권력자였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복잡한 재무제표가 아니라, 듀얼 모니터의 오른쪽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화면 속에는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펜트하우스 거실이 고화질로 송출되고 있었다.백 평이 넘는 적막한 공간. 거대한 카펫 한가운데에 하얀 생명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어젯밤 석호가 하사한, 얇고 투명한 흰색 실크 가운만을 걸친 은성이었다. 그는 석호의 낡은 셔츠를 생명줄처럼 끌어안고 죽은 듯 누워 있었다.오후 2시. 인간이라면 식사를 하거나 무료함을 달래야 할 시간.하지만 화면 속의 은성은 전원이 꺼진 인형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얇은 천 너머로 비치는 굴곡진 등선과 붉게 물든 살결, 하얀 목덜미에서 차갑게 빛을 발하는 백금 초커. 그것만이 그가 누구의 소유물인지를 소리 없이 증명했다.석호는 나른한 눈으로 피사체를 핥아내리듯 관찰했다. 카메라 줌을 당기자, 셔츠를 쥔 가느다란 손가락의 떨림까지 선명하게 포착되었다.석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마이크의 버튼을 눌렀다."도련님."낮고 서늘한, 짙은 소유욕이 배어 있는 음성. 거실의 천장 스피커를 타고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화면 속의 정적이 비명처럼 깨졌다. 웅크려 있던 은성의 몸이 감전된 것처럼 펄쩍 튀어 올랐다.은성은 허겁지겁 상체를 일으키며 핏발 선 눈으로 거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허공에서 들려온 주인의 목소리. 혼란과 반가움, 수치심이 뒤섞인 기괴한 맹목이었다."카메라를 보셔야죠. 거기, 텔레비전 위쪽입니다."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은성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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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화

"아이고, 윤 대표님. 이 태성의 마지막 유산을 정리하는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일가가 공중분해 되는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보게 되는군요. 이 펜트하우스도 곧 압류되겠지요?"노골적인 아부와 비릿한 웃음소리.과거 은성의 아버지를 보좌하던 자들. 태성이 무너지자마자 내부 정보를 석호에게 넘겨주고 목숨을 구걸한 탐욕스러운 배신자들이었다.석호는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안방 서재의 문을 열었다."이쪽으로 오시죠. 껍데기만 남은 태성의 마지막 처분 서류를 검토해야 하니까요."서재는 거대한 책장과 묵직한 책상이 놓인, 가장 권위적인 공간이었다.임원들은 가죽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석호는 방 한가운데 놓인 육중한 원목 책상 뒤로 걸어가 회전의자에 깊숙이 앉았다.단단한 다리가 책상 밑의 어두운 공간으로 뻗어지는 순간.그의 구두에 파들파들 떨리는 작고 따뜻한 덩어리 하나가 닿았다.책상 아래의 좁고 캄캄한 공간.얇은 실크 가운만 걸친 은성이 두 무릎을 가슴에 바짝 붙이고 몸을 둥글게 만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백금 목줄을 찬 채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은성. 그의 입에는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쑤셔 넣은 넥타이가 재갈처럼 깊게 물려 있었다.석호의 구두가 은성의 맨살에 닿았다. 은성은 반사적으로 그 가죽 구두에 뺨을 비비적거리며 주인의 온기에 매달렸다.책상 위에서는 자신을 배신한 자들이 떠들고 있었지만, 책상 아래의 짙은 어둠 속에서는 오직 석호의 발끝만이 유일한 구원이자 세상의 전부였다."자,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채 회장의 구속 영장 집행이 마무리되었고, 장남과 차남의 자산 압류도 끝났군요."석호가 위스키 잔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탁자 아래의 은성은 아버지와 형들의 파멸을 알리는 선고를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온몸으로 받아냈다. 덜덜 떨리는 마른 손이 석호의 수트 바지깃을 생명줄처럼 움켜쥐었다."하하, 윤 대표님이 장부를 터뜨릴 때부터 끝난 게임이었죠. 그나저나 그 철없던 막내, 채은성 그 쓰레기 같은 놈은 결국 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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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화

길고 피 말리던 시간. 마침내 석호가 임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현관문이 닫히고 완벽한 정적이 찾아오자마자, 석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서재로 돌아왔다.원목 탁자 아래. 극도의 공포로 탈진한 은성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석호는 픽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은성의 은발을 다정하게 쓸어넘겼다."수고했습니다. 아주 조용하고 예쁘게 숨어 있었네요.""하아... 흐아앙... 주인님, 주인님..."은성은 석호의 손길이 닿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품으로 파고들며 목놓아 오열했다. 세상이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뼛속까지 체감한 은성에게, 석호는 이제 유일무이한 신이었다.은성은 셔츠 깃을 꽉 움켜쥐고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울부짖었다."들었어... 저 사람들이 나 쓰레기래... 나 죽었으면 좋겠대... 흐윽, 주인님, 나 밖으로 내보내지 마... 평생 이 책상 밑에서 벌레처럼 살 테니까 나 숨겨줘... 제발 버리지 마요... 아아악..."석호는 완벽하게 부서져 내린 은성의 마른 등을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10년을 공들여 깎아낸 조각상이 마침내 심연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석호는 은성의 귓가에 소름 끼치도록 다정하게 속삭였다."걱정 마세요. 문밖의 세상이 당신을 전부 지워버렸지만, 내 세상 안에서는 당신이 전부니까. 영원히 내 새장 안에서 살면 됩니다. 나의 아름다운 도련님."석호는 얇은 가운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공포로 굳은 가슴 돌기를 지그시 비틀었다.은성은 그 고통 섞인 자극에 오히려 안도하며 주인의 목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밖으로 나갈 의지조차 완벽하게 거세당한 짐승. 그는 주인의 온기에 안겨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기괴한 안도감 속으로 깊이 침몰하고 있었다.어젯밤의 끔찍했던 방문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서재의 무거운 원목 책상 아래에서 석호의 품에 안겨 오열했던 밤이 지났다. 석호의 단단한 팔에 갇혀 절망을 토해냈던 기억은 이제 은성의 혈관 속에 끈적한 납덩이처럼 가라앉아 있었다.아침이 밝고 석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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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화

먼지 한 톨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결벽증적 완벽주의자 윤석호가 무언가를 덜 닫고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낯설고 이질적이었지만, 은성의 눈길을 강렬하게 잡아끈 것은 그 벌어진 틈새 사이로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었다. 서랍 안에 들어있는 전자기기의 대기 화면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명멸하며 은성을 유혹하고 있었다.평소 완벽하게 사육된 은성이라면 감히 주인의 은밀한 물건에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푸른빛은 묘하게도 짙은 어둠 속에서 은성의 남은 호기심, 혹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생존 본능을 잔인하게 자극했다. 은성은 파들파들 떨리는 마른 손을 뻗어 서랍의 차가운 금속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스르륵, 하는 부드럽고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서랍이 열렸다.그 안에는 석호가 평소 회사에서 쓰는 공식적인 스마트폰이 아닌, 아주 작고 납작한 검은색 구형 스마트폰 하나가 홀로 놓여 있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한 대포폰임이 틀림없었다. 은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그 검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자, 암호나 잠금장치조차 걸려 있지 않은 화면이 밝게 켜졌다. 화면에는 어젯밤 석호가 임원들을 만나기 직전까지 확인하고 미처 끄지 않은 듯, 재생 목록 하나가 덩그러니 띄워져 있었다.목록에 적힌 오디오 파일의 이름들을 본 순간, 은성의 심장이 바닥을 뚫고 끝없이 곤두박질쳤다.[음성 녹음_채동성(장남)\_통화내역][음성 녹음_채진성(차남)\_합의건]자신의 친형들 이름이었다. 어제 아침 조간신문을 통해 막내인 자신에게 모든 더러운 죄를 뒤집어씌우고 해외로 도망쳤다는, 자신을 이 지옥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은 그 끔찍하고 이기적인 핏줄들. 은성은 덜덜 떨리는 창백한 검지 손가락으로 파일을 꾹 눌렀다.치직, 하는 짧은 노이즈와 함께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고 서늘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선택하시죠, 채동성 전무님. 아, 이제 전무도 아니지."석호의 목소리였다. 언제나 은성의 귓가에 다정하고 끈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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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화

당장 이 스마트폰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이 미친 악마의 집에서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은성은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밖을 향해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온 세상은 채은성을 수천억을 훔친 지명수배자로 낙인찍었고, 이 현관 문밖을 나서는 순간 자신은 석호가 설계한 거대한 함정에 빠져 평생을 빛 한 점 안 드는 감옥에서 썩게 될 것이다.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끔찍한 진실은 은성에게 분노를 심어주기는커녕 석호라는 포식자가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인지를 뼛속까지 각인시킬 뿐이었다. 도망칠 수 없다. 석호가 모든 것을 알고 일부러 이 서랍을 열어두었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편집증적인 공포가 은성의 남은 이성을 완전히 짓뭉개버렸다.만약 내가 이 스마트폰을 본 것을 석호에게 들킨다면. 자신이 이 모든 추악한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저 완벽한 통제자가 눈치챈다면. 석호는 자신을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굴욕보다 천 배는 더 끔찍한 방법으로 남은 자아를 완전히 가루로 내버릴 것이다."안 돼... 들키면, 아는 거 들키면 끝이야.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해질 거야..."은성은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을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똑같은 각도로 올려두었다. 화면에 묻은 자신의 식은땀과 지문을 가운 소매로 미친 듯이 닦아내고, 서랍을 밀어 넣어 아주 미세하게 틈이 벌어져 있던 처음의 그 상태를 강박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은성은 필사적으로 카펫 위를 기어 어젯밤처럼 현관문 대리석 바닥 앞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머릿속에서는 윤석호를 향한 지독한 증오와 끔찍한 배신감이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목을 단단히 감싼 백금 초커의 서늘한 압박감이 그 비명을 잔인하게 짓눌러 죽였다.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속은 척, 진실 따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주인의 온기만을 갈구하는 맹목적인 개인 척 연기해야만 한다.오랜, 피를 말리는 기다림 끝에 거실의 전자시계가 저녁 8시 정각을 가리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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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 화

서랍 속의 추악한 진실을 목도하고 스스로 자신의 관뚜껑을 닫아버린 그날 이후, 펜트하우스의 공기는 이전과는 기괴하게 다른 밀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은성은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망칠 구멍을 찾지 않았다. 아니,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을 수천억의 횡령범으로 조작하고, 친핏줄들을 장기 말처럼 움직여 이 완벽한 밀실을 설계한 윤석호의 전지전능함은 은성의 얄팍한 자아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은성은 이제 살기 위해 스스로 뇌를 도려내고 있었다. 윤석호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가 입혀준 얇은 실크 가운 자락을 질질 끌며 현관으로 가장 먼저 기어 나갔고, 주인의 구두에 뺨을 비비며 맹목적인 애정을 연기했다. 속으로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위액이 역류할 것 같아도, 겉으로는 완벽하게 뇌가 순백으로 표백된 주인의 사랑스러운 반려 짐승으로 굴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기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너져가는 정신을 지탱하기 위한 자기 파괴적인 백치화였다.오후 7시. 거실 카펫에 엎드려 시계 초침의 무미건조한 움직임만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성의 귓바퀴에 현관 도어록이 풀리는 서늘한 전자음이 들려왔다. 은성은 반사적으로 파들파들 떨리는 몸을 일으켜 네 발로 현관을 향해 기어갔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겨울 공기와 함께 짙은 네이비색 수트를 입은 석호가 안으로 들어섰다."주인님... 오셨어요..."은성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석호의 가죽 구두 끝에 촉촉한 입술을 맞췄다. 주인의 짙은 우드 향 향수가 코끝을 찌르자 어김없이 등골에 예리한 소름이 끼쳤지만, 은성은 필사적으로 눈꼬리를 휘며 가장 순종적이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꾸며내어 석호를 올려다보았다. 석호는 구두를 벗으며 은성의 헝클어진 은발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은 10년 동안 공들여 조각한 예술품을 감상하듯 지극히 다정하고 나른했다."오늘도 집을 아주 잘 지키고 있었군요, 나의 도련님.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니 주인이 밖에서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입니다."석호가 은성의 하얀 목덜미를 빈틈없이 옥죄고 있는 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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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화

석호는 은성의 은발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세상 물정 모르고 짖어대던 멍청한 것들. 주인이 주는 먹이가 독이 든 고기인지도 모르고 덥석 물다니, 사냥할 가치조차 없는 버러지들입니다."석호가 은성의 파리한 뺨을 감싸 쥐며 자신의 눈을 맞추게 했다."자, 어떻습니까. 도련님을 버리고 도망친 배신자들이 가장 비참한 꼴로 썩어가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도련님을 위해 치워준 쓰레기인데, 보상이 마음에 듭니까?"다정하게 휘어진 석호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은성의 영혼을 꿰뚫어 볼 듯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 순간, 조금이라도 동요를 보이거나 두려움에 질려 도망치려 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은성은 덜덜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구역질을 삼키며 필사적으로 눈꼬리에 힘을 주어 환하게 웃는 표정을 억지로 빚어냈다."아... 하아, 주인님...!"은성은 석호의 목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를 연기했다."고마워, 고마워요 주인님... 저 나쁜 사람들 다 잡아줘서, 나 복수해 줘서 고마워요... 흐아앙, 나 주인님밖에 없어, 나 지켜주는 사람은 우리 주인님 하나뿐이야...!"자신을 생지옥으로 밀어 넣은 진범을 품에 안고 감사를 표하는 기괴한 촌극 속에서 은성은 석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의 수트 깃을 눈물과 타액으로 적시며 미친 듯이 매달렸다."나 진짜 말 잘 들을게요... 죽을 때까지 주인님 발만 핥고 살게요... 사랑해, 사랑해요 주인님..."속으로는 자기혐오로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었지만, 은성의 입술은 기계적으로 사랑을 지저귀었다. 석호는 은성의 귓가에 낮고 서늘한 웃음을 흘리며 가운의 매듭을 툭 풀어냈다."말로만 하는 감사는 짐승의 예절이 아니지. 도련님이 주인의 보상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몸으로 직접 증명해 볼까."부드러운 실크 가운이 은성의 하얀 어깨 아래로 허무하게 흘러내렸다. 차가운 거실 공기가 달아오른 맨살에 닿자 은성의 온몸에 예리한 소름이 돋았다. 석호는 은성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겨 소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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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화

"착하지. 넌 영원히 내 밑에서 이렇게 울면서 사랑받으면 돼. 나의 완벽한 개새끼."석호의 짙은 조롱과 함께 가차 없는 움직임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은성은 모든 자존심을 내다 버린 비참하고도 음란한 교성을 내지르며 그의 품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사출되는 뜨거운 액체가 은성의 배 위와 소파 시트를 더럽혔고, 은성은 탈진한 채 석호의 목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윤석호가 설계한 잔혹한 연극은, 이제 가장 농밀하고 탐미적인 육체적 타락의 형태로 펜트하우스에 영원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거실을 가득 채웠던 파괴적인 정사의 열기가 차갑게 식어 내린 아침. 펜트하우스의 거대한 통유리창을 넘어온 눈부신 햇살은 소파 위를 잔인하게 비추며, 어젯밤의 흔적들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었다. 엉망으로 구겨진 얇은 실크 가운이 카펫 바닥에 허물처럼 버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은성이 죽은 듯이 웅크려 누워 있었다.은성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시선은 허공의 먼지 하나에 고정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온몸의 뼈마디가 무거운 쇳덩이에 짓눌린 것처럼 산산조각이 난 듯 욱신거렸고, 하얀 허벅지 안쪽과 마른 허리에는 석호의 커다란 손아귀가 남긴 붉고 푸른 멍 자국들이 노골적인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벌어진 내벽 사이로 울컥하며 느껴지는 기묘한 잔여감에 은성의 하얀 발가락 끝이 수치심으로 가늘게 말려 올라갔다."하아..."갈라진 입술 사이로 마른 숨이 새어 나왔다. 어젯밤, 이 소파 위에서 짐승처럼 헐떡이며 석호의 목을 끌어안고 내질렀던 자신의 비참한 교성이 환청이 되어 귓가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형들이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뉴스를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원수의 타액을 받아 삼키며 사랑을 속삭여야 했던 밤. 살기 위해 스스로 이성을 마비시키고 쾌락에 절은 창부를 연기했던 그 소름 끼치는 기억이 밀려올 때마다 은성은 뱃속이 뒤틀리는 역겨움을 느꼈다.하지만 은성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위액이 섞인 헛구역질을 속으로 삼켜내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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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화

"이제 내가 펜트하우스 어디에 있든 도련님이 무얼 하는지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겠네요. 아주 잘 어울립니다."석호의 긴 손가락이 은방울을 툭 건드렸다.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은성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에 매달린 차가운 은방울의 무게는 고작 몇 그램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주는 심리적인 압박감은 수십 톤의 쇳덩이와도 같았다. 인간이 아닌, 완벽하게 소유당한 애완동물이라는 낙인. 이제는 걷고, 숨 쉬고, 몸을 떠는 그 아주 미세한 움직임조차 저 방울 소리를 통해 주인에게 실시간으로 까발려지게 된 것이다. 수치심에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지만, 은성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모아 석호의 손등에 끈적하게 입을 맞췄다."감, 감사합니다... 주인님. 예쁜 선물 주셔서 감사합니다... 딸랑거리면서, 집 잘 지키고 있을게요."은성의 목소리에 맞춰 은방울이 다시 한번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그 기괴한 복종의 소리에 석호는 깊은 만족감을 표하며 몸을 일으켰다."얌전히 기다리세요. 밥은 식탁 밑에 준비해 두었으니 배가 고프면 핥아 먹고."석호가 현관을 빠져나가고, 묵직한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펜트하우스의 적막을 갈랐다. 완벽하게 혼자가 된 거실. 은성은 그제야 억누르던 숨을 토해내며 카펫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 소리 없이 오열하는 은성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목에 매달린 은방울이 딸랑, 딸랑거리며 경박하게 울어댔다.나의 모든 움직임이 짐승의 소리로 치환되는 지옥. 은성은 미친 사람처럼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피부에 맞닿은 방울의 진동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같은 시각, 과거 태성그룹의 본사였던 거대한 유리 빌딩의 최상층 회의실.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도는 그곳에는 태성그룹의 남은 임원들이 사시나무처럼 떨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테이블의 상석, 과거 은성의 아버지가 앉았던 가장 거대하고 권위적인 가죽 의자에는 윤석호가 다리를 꼬고 앉아 서늘한 시선으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태성물산과 건설 쪽 지분은 오늘부로 전부 매각 처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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