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BL장르 "기대하겠습니다, 도련님. 당신이 얼마나 예쁘게 짖어줄지." 태성그룹의 오만한 막내아들, 채은성. 그의 발치에서 10년을 개처럼 기며 멸시를 견딘 수행비서, 윤석호. 하루아침에 가문은 공중분해 되고, 은성은 천문학적인 빚과 함께 길바닥으로 내몰린다. 비참한 빗속, 유일하게 손을 내민 구원자는 다름 아닌 석호였다. 은성의 가문을 제 손으로 완벽하게 파멸시킨, 과거의 충견. "갈 곳 없으면 저희 집으로 가시죠. 이번엔 도련님이 제 침대 밑에서 기어 다니시면 되겠네요." 지독한 애증의 끝에서, 진짜 목줄을 쥔 주인은 누구인가.
View More쏟아지는 폭우가 시야를 날카롭게 긋고 지나갔다.
채은성은 비에 젖어 이마에 질척하게 들러붙은 머리칼 사이로, 거대한 철제 대문에 덕지덕지 붙은 붉은 압류 딱지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이라 불렸던 공간. 대한민국 재계 정점에 서 있던 태성그룹의 권력을 상징하던 그 저택은, 이제 사지가 잘린 채 부패해가는 거대한 짐승의 사체처럼 보였다.
한때 그 위에서 오만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던 도련님의 영광은, 진흙탕을 뒹구는 오물보다도 가벼워져 있었다.
"하... 하하."
마른 기침과 함께 바스라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빗물에 흠뻑 젖은 얇은 실크 셔츠는 은성의 마르고 단단한 상체에 노골적으로 달라붙어, 유려한 육체의 윤곽을 적나라하게 훑어 내리고 있었다. 투명해진 천 위로 앙상하게 솟은 쇄골과 추위에 발딱 선 가슴의 돌기마저 숨김없이 드러났다.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길바닥의 냉기에 은성의 몸이 달달 떨렸다. 젖은 옷감이 민감한 피부를 스칠 때마다 예리한 소름이 돋았다. 평생 온실 속에서만 길러진 그에게는 생전 처음 맛보는, 뼈가 시리도록 비참하고도 자극적인 감각이었다.
'은성아.' 부드럽게 아양을 떨며 그 뽀얀 손을 만져대던 친척들도, 은성의 카드로 결제되던 최고급 파티룸에서 그의 발등을 핥을 듯 굴던 이들도 귀신같이 자취를 감췄다. 돈과 권력이라는 화려한 수의가 벗겨진 채은성은, 철저하게 발가벗겨진 채 눅눅한 어둠 속에 고립되었다.
추위와 절망에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때, 거센 빗소리를 뚫고 짐승의 그르렁거림 같은 낮은 엔진음이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쏘아진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은성의 처연한 실루엣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핥아 올렸다. 눈부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앞에, 빗물을 매끄럽게 튕겨내는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리고, 빗방울 하나 묻지 않은 수제 구두가 아스팔트를 디뎠다. 단정한 블랙 수트 차림에 검은 우산을 받쳐 든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은성의 호흡을 조여오는 저 특유의 걸음걸이.
과거 은성의 완벽한 그림자이자, 은성의 발아래서 묵묵히 머리를 조아리며 온갖 멸시와 폭언을 견뎌내던 수행비서. 그리고, 태성그룹의 숨통을 끊어놓고 이 모든 파멸을 치밀하게 설계한 포식자.
윤석호였다.
"...석호?"
은성의 파랗게 질린 입술이 달달 떨렸다. 반가움은 단 한 줌도 없었다. 그것은 거대한 포식자를 마주한 초식동물의 생존 본능이 경고하는, 피부를 찌르는 듯한 짙은 공포였다.
석호는 아무 말 없이 걸어와 은성의 머리 위로 커다란 우산을 기울여주었다. 쏟아지던 비가 멎은 자리로 석호의 몸에서 풍기는 묵직한 우드 향과 짙은 체취가 은성의 코끝을 파고들었다. 산소가 차단된 것처럼 숨이 막히는, 농염하면서도 서늘한 압박감이었다.
석호는 예전처럼, 은성이 지시를 내릴 때마다 하던 그 각도 그대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예전과 완벽하게 같았지만, 그 안에 담긴 끈적한 열기는 달랐다. 자신을 개처럼 부리던 오만한 주인을 기어이 제 발밑의 진흙탕 속에 꿇렸다는, 지독한 가학적 쾌감.
석호는 가죽 장갑을 천천히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빗물에 젖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은 은성의 뺨을 커다란 맨손으로 콱, 감싸 쥐었다. 얼어붙은 피부에 석호의 델 듯이 뜨거운 체온이 훅 끼쳐오자, 은성은 화상을 입은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흐릿한 신음을 냈다.
"읏...!"
"꼴이 말이 아니시네요. 그 귀하게 자란 몸뚱이가 길바닥에서 썩게 생기셨으니."
석호의 시선이 비에 젖어 속살이 훤히 투과되는 은성의 셔츠 앞섶과, 벌벌 떨리는 붉은 입술을 집요하게 훑어내렸다. 그 눈빛에는 예전의 맹목적인 순종 대신, 당장이라도 눈앞의 가녀린 살덩이를 씹어 삼킬 듯한 굶주린 탐욕이 번들거렸다.
"개처럼 빌어봐, 은성아. 그럼 내가 너 하나 정도는 거둬줄 테니까."
쏟아지는 폭우 속, 서늘하게 뒤집힌 반말이 은성의 고막을 때렸다. 비에 젖은 은성의 뒷덜미를 석호의 커다란 손이 거칠게 낚아채는 순간, 은성은 깨달았다.
이 남자의 손에 잡힌 순간, 자신의 세계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재호가 자란 도시에는 번듯한 이름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두 번 다시 파헤치고 싶지 않은 무덤과도 같았다.핏기 잃은 짐승처럼 지방 국도변에 위태롭게 기대어 선 낡고 병들어 가는 공단 도시.새벽마다 거대한 굴뚝에서는 폐부를 검게 찌르는 짙은 회색 연기가 토사물처럼 피어올랐고, 기름때에 절어 퇴근한 국적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공장 노동자들이 편의점 앞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에 주저앉아 맥주 캔을 따는 것이 그 도시의 유일하고도 비참한 황혼이었다.거리 어디를 걸어도 쇳가루와 썩은 오수가 뒤엉킨 눅진한 냄새가 끈적한 진물처럼 배어 있었다. 재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코끝을 맴도는 그 역겨운 냄새를 뼛속 깊이 혐오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다기 보단, 재호는 어린 짐승의 본능처럼 그저 직감했을 뿐이다.그것이 사람의 뼛속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영혼을 갉아먹는, 지독하고도 지긋지긋한 가난의 냄새라는 것을.그리고 가난이란, 재호에게 단 하나의 선택지조차 갖지 못하고 평생을 발밑에서 기어야 한다는 완벽한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어머니는 공단 인근의 허름한 함바집에서 일했다. 새벽이슬을 맞고 나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진흙탕에 구른 것처럼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어머니는 귀가할 때면 언제나 현관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유령처럼 소리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재호가 방문을 열고 건조한 시선으로 내다보아도, 먼저 다가와 온기를 건네는 법이 없었다. 단순히 고된 노동으로 육체가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가난이라는 무거운 형벌에 짓눌려, 타인과 감정을 교류하는 언어 자체를 거세당한 사람이었다. 재호 역시 그 지독하게 메마른 무감각함만큼은 제 어미를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빼닮아 있었다.재호는 공부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단순히 잘하는 수준을 넘어, 일반 학생과 그 궤를 달리하는 압도적인 1등이었다.이유는 간단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가 이 세상의 목줄을 쥘 수 있는 무기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이 썩어가는 시궁창 같은 도시를 벗어날
펜트하우스의 육중한 현관문이 등 뒤로 닫히는 순간에도, 재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지하 주차장을 가로질러 대기 중인 차량의 뒷좌석에 오르기까지. 재호의 보폭은 일정한 리듬을 유지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흐트러짐도 묻어나지 않는 서늘한 움직임. 방금 전까지 자신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던 윤석호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아내고서도, 이재호라는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바깥이 먼저 무너지는 법이 없었다.덜컹-.두꺼운 차 문이 닫히고, 완벽에 가까운 방음이 외부의 소음을 단숨에 차단했다. 귓가를 맴도는 건 오직 재호 자신의 무거운 숨소리와 미세하게 빨라진 심장 박동뿐이었다.운전대를 잡은 기사는 그저 이 차의 일부에 불과했다.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그 독립적인 공간에서, 재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넥타이 매듭을 풀었다. 거칠게 잡아당기지 않았다. 한 올씩, 아주 정교하고 느릿하게. 팽팽하게 목을 조이고 있던 실크 천이 풀리며 서늘한 공기가 맨살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풀어낸 넥타이를 옆자리에 아무렇게나 던지지 않고 자신의 손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눅눅하게 젖어 드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서울의 야경이 쏟아지는 봄비에 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굵은 빗방울이 사정없이 차창을 때렸다."어디로 모실까요."운전기사의 조심스러운 물음이 앞좌석에서 넘어왔다.재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의 궤적을 서늘한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서로 다른 길을 타고 내리다 어느 지점에서 질척하게 엉겨 붙고, 이내 다시 갈라져 바닥으로 추락하는 빗물. 그것은 마치 방금 전 펜트하우스에서 목도했던, 얽히고설킨 기괴하고도 관능적인 관계성 같았다."블루."짧고 건조한 한마디.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 네비게이션 조작조차 없이 묵묵히 핸들을 꺾었다.창밖의 화려한 불빛들이 빗물에 번지며 붉고 푸른 궤적을 질질 끌며 흘러갔다. 재호는 푹신한 가죽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눈을 감았다. 아니, 정확
검은 수첩의 절반 가까이가 빼곡한 글자로 채워진 어느 날 밤, 석호는 처음으로 태성그룹 외부의 선에 연락을 취했다. 상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자였다. 태성과는 일말의 접점도 없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에 몸담은 사람. 기업의 복잡한 재무 구조를 해체하고 치부를 발라내는 데 기계적인 정확성을 가진 전문가. 석호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패로 분류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제 검증은 끝났다.통화는 짧았다."만날 수 있겠습니까.""무슨 일입니까.""태성입니다."수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상대는 놀라움을 소리로 내뱉는 대신 침묵으로 갈음했다. 이내 건조한 목소리가 돌아왔다."언제가 좋겠습니까."석호는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한겨울의 서울은 거대하고 차가운 불빛들의 군락이었다. 저 무수한 빛의 중심에 채은성이 존재했다.시작이었다.밤의 석호가 은성의 세계를 해체할 도면을 그리는 동안, 낮의 석호는 변함없이 완벽하게 작동했다.아니, 오차율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제로에 수렴했다. 이제 석호에게 은성의 일과를 장악하는 일은 비서의 단순 업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냥감을 몰아넣기 위한 경로 설계였다. 은성이 삼키는 물의 온도, 마주치는 임원들의 동선, 결재 서류가 올라가는 타이밍. 그 모든 것이 석호의 손끝에서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은성은 자신이 걷는 길이 석호가 깔아둔 레일 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호흡하는 공기의 성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석호는 무해하고 완벽한 공기가 되어 은성의 주변을 감쌌다.어느 날 저녁이었다.유독 야근이 길어졌다. 43층의 모든 인력이 빠져나가고, 은성의 집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옅은 불빛만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올 무렵,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채은성이었다. 맞춤형 재킷을 한 손에 든 채, 답답한 듯 넥타이를 거칠게 끌어내리며 걸어 나왔다. 석호는 소리 없이 다가가 미리 준비해 둔 코트를 내밀었다. 은성
아침의 햇살은 간밤의 어둠 속에서 내린 결론처럼 선명했다.43층 복도 끝, 석호는 자신의 책상 앞에 섰다.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채 단정한 수트를 차려입은 모습,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 감정이 거세된 정갈한 몸가짐. 겉으로 보기에 윤석호라는 시스템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게 가동되고 있었다.하지만 그 견고한 시스템의 내부는 밤사이 완전히 다른, 단 하나의 명령어로 덮어씌워져 있었다.이제 석호에게 은성의 일정을 관리하고, 전화를 걸러내며, 문서를 검토하는 일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었다.그것은 사냥감이 지나갈 길목을 파악하고, 사냥감의 호흡을 계산하며, 사냥감의 시야를 통제하는 정교한 조련의 과정이었다. 자신이 비서라는 위치를 핑계로 은성의 하루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은성이 먹는 것, 만나는 사람, 머무는 공간, 심지어 그가 마시는 차의 온도조차 석호의 손끝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오전 10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은성이 출근했다.석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했다. 고개를 숙였다 드는 찰나의 순간, 석호의 시선이 은성의 전신을 핥듯 훑고 지나갔다. 흐트러진 은발, 미세하게 구겨진 셔츠의 깃, 나른함을 넘어 짜증이 묻어나는 발걸음. 예전 같았다면 '오늘의 기상도'를 파악하기 위한 정보 수집에 불과했을 그 모든 디테일들이, 이제는 망막에 화인처럼 찍혀 뇌리로 직행했다.“오전 결재 서류,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은성은 언제나처럼 석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무심한 뒷모습을 보며 석호는 묘한 해갈을 느꼈다. 저 오만함이, 저 무관심이 언젠가 자신의 발밑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그 무렵부터 석호는 은성이 남기는 '파편'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충동에 가까운, 아주 사소한 일탈이었다. 어느 날 오후, 은성이 외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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