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은 홀린 듯 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명 스위치를 켠 순간, 심장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공포에 숨을 들이켰다. 그곳은 서재도, 옷방도 아니었다. 사방의 넓은 벽면이 기괴할 정도로 빼곡한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수천 장에 달하는 사진 속 피사체는 단 한 명, 채은성뿐이었다.은성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벽으로 다가갔다. 사진들은 최근의 것뿐만이 아니었다. 5년 전, 석호가 처음 수행비서로 들어왔던 시절의 앳된 모습부터, 파티장에서 누군가를 비웃던 오만한 찰나까지. 모든 사진은 은성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아주 집요하고 은밀한 관찰자의 앵글로 찍혀 있었다.은성의 붉은 입술, 땀에 젖은 목덜미, 셔츠 사이로 드러난 쇄골과 발목을 병적으로 확대한 클로즈업 사진들 앞에서는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은성이 버렸던 몽블랑 만년필, 뜯겨진 셔츠 단추, 타액이 묻은 냅킨까지 날짜별로 정갈하게 라벨링 되어 모셔져 있었다. 석호는 은성의 파편들을 수집하며 그를 박제해왔던 것이다."미쳤어... 넌 미쳤어..."지금껏 이것이 단순히 계급적 복수라고 믿었던 은성은 소름 끼치는 진실에 압도당했다. 석호는 태성을 집어삼키기 위해 은성을 짓밟은 게 아니었다. 채은성이라는 피사체를 영원히 자신의 박제상자에 가두기 위해, 방해물인 태성그룹 전체를 가차 없이 박살 내버린 것이다.띡, 띡, 띡.전자시계의 알람 소리가 정적을 깼다. 저녁 7시 50분. 석호가 예고한 심판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분이었다.공포가 은성의 남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이 기괴한 집착의 방을 보고 나니, 주인의 명령을 어겼을 때 닥칠 징벌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은성은 비틀거리며 거실로 달려갔다. 허벅지 안쪽의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현관 앞 차가운 대리석 바닥. 은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운의 매듭을 거칠게 풀어내었다. 얇은 실크 천이 바닥으로 허무하게 추락했다. 은성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된 채 서늘한 바닥 위로 두 무릎을 꿇고 납작하게 엎드렸다.
Last Updated : 2026-04-1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