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라는 마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듯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짙은 어둠이 깔린 방 안, 코끝을 스치는 낯선 향과 피부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은땀으로 젖은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깨질 듯 울렸지만, 이곳이 김도진의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당혹감이 전신을 지배했다.‘어떻게 된 거지? 분명 화장실 청소를 하고 음료를 마신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끊긴 기억의 실타래를 붙잡을 겨를도 없었다. 이 집에서, 특히 그의 침실에서 당장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적인 공포가 앞섰다. 유라는 헐렁한 티셔츠 자락을 움켜쥔 채 허겁지겁 방을 뛰쳐나왔다.텅 빈 거실은 고요했다. 유라는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죽이며 현관으로 향했다. 다급하게 구두에 발을 밀어 넣던 그때, 등 뒤에서 얼음장처럼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어딜 가게.”“앗…!”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유라가 뻣뻣하게 굳은 몸을 돌리자,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와인 잔을 돌리고 있는 도진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그의 눈빛이 유라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아, 안녕하세요…. 그게, 제가 지금 정신이 좀 없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왜 여기서 잠을 자고 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서….”횡설수설하며 고개를 숙이는 유라를 보며 도진이 어이없다는 듯 픽,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나 유라에게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유라는 뒷걸음질을 쳤다.“내 집에 들어와서 청소하라고 했지, 내 침대에서 소란 피우라고 한 적은 없는데.”“죄송합니다… 정말 드릴 말씀이 없어요.”“그리고, 그 꼴로 지금 집에 가겠다는 거야?”도진의 시선이 멈춘 곳을 따라 유라도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순간, 유라의 얼굴이 다시 한번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그의 커다란 셔츠 사이 아래로 맨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아, 옷은… 제가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آخر تحديث : 2026-05-06 اقرأ المزي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