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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수 없는》全部章節:第 1 章 - 第 10 章

149 章節

1화

사방이 적막에 잠긴 어두운 방.이유라는 끊어질 듯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으며 깊은 늪 같은 잠 속을 헤매고 있었다.‘으음…….’그때, 문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인기척에 그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온몸의 세포가 본능적인 위기감을 맥질하며 그녀를 깨웠다.낯선 천장, 코끝을 찌르는 서늘한 약품 냄새.꿈인지 실제인지 분간하려 고개를 돌리던 유라는 당황해 몸을 일으키려다, 왼손등에 차갑게 꽂힌 링거 바늘을 보고 멈칫했다.“분명 어제…… 드라마 촬영팀 회식 후…….”필름이 끊긴 듯 그 이후의 기억은 새하얬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술을 입에 대본 적 없던 인생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그녀의 첫 직장 연예계 매니저로서의 첫 출근날이자, 담당 배우인 ‘김도진’과의 첫 회식 자리였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얕보이지 않으려고 긴장한 채 받아 마신 첫 잔.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의 가방이나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설마 병원인 건가?”그때, 굳게 닫혀 있던 커다란 방문이 열리며 날카로운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갑자기 환해진 시야에 유라가 눈을 찡그리며 문쪽을 바라보았다. 역광 속에 서 있는 건장한 남자의 실루엣. 유라는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당기며 몸을 움츠렸다.두벅, 두벅. 한 걸음씩 다가오는 발소리가 심장을 죄어올 때쯤, 익숙하고도 차가운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몸은 좀 괜찮아?”빛에 적응한 유라의 눈에 들어온 얼굴은 다름 아닌 이도현이었다.국내 최대 규모인 강해 병원 병원장의 아들이자, 냉철하기로 소문난 천재 의사. 그리고 유라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보육원에서 만난, 유일한 안식처이자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 이도현이었다.당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봉사활동을 따라왔던 도현은 유라를 처음 본 날 이후, 일 년에 한 번 오던 방문을 한 달에 한 번, 나중에는 매주 찾아오는 지독한 정성을 보였다. 차가운 얼음 같던 그가 유라 앞에서만큼은 미세하게 흔들리던 것을, 유라만 눈치채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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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평소의 도현은 냉정해 보여도 유라에게만큼은 눈빛에 다정한 온기가 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내려다보는 도현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을 만큼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랬구나…… 죄송해요, 오빠.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근데, 제 가방이랑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회사에 연락도 못했는데....유라가 침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초조하게 묻자, 도현이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실루엣이 유라의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현은 양복 주머니에서 익숙한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유라가 휴대폰을 받으려 일어나려 했지만 그 순간, 링거를 꽂은 왼손이 강하게 당겨졌고, 동시에 머리에 심한 현기증이 일며 다시 침대 위로 털썩 쓰러졌다.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도현은 침대 곁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하지만 쓰러진 유라를 붙잡아 주는 대신, 가만히 내려다보며 사납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유라를 나무라듯 이야기했다.“도대체 술을 입에도 대본 적 없는 애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술을 먹어?”“오빠…….”“그날 내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도현의 목소리에는 깊은 분노와 함께 차마 감추지 못한 아슬아슬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평소라면 유라의 기분을 먼저 살피며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었을 그였다. 하지만 유라가 쓰러지던 순간을 떠올린 듯, 도현의 미간이 잘게 좁혀졌다.사실 유라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 밤, 식당 복도에서는 폭풍 전야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보육원에서 나와 겨우 독립에 성공한 유라에게, 구인란에 뜬 그 매니저 보조 공고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정식 매니저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보조 역할이었지만, 시급이 다른 곳의 무려 두 배였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유라의 처지에는 도저히 놓칠 수 없는 ‘꿈의 직장’이었다. 그 기회가 당대 최고의 톱스타 김도진의 매니저 자리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첫 출근날, 온종일 현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로드 매니저 특성상 “무조건 편한 복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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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도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라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도현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낚아채듯 품에 안아 올렸다. 바로 그때, 룸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이도현?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네.”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이는 김도진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지독한 라이벌이자 숙적이었던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도진의 시선이 도현의 품에 무력하게 안겨 있는 유라에게로 향했다.“내 신입 매니저가 왜 거기 안겨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도진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여유로웠지만, 눈빛만큼은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었을 때부터 흥미를 자극하던 장난감이, 하필이면 평생을 증오해 온 이도현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은 그의 독점욕을 강하게 자극했다.도현은 유라가 깰세라 조심스럽게 고쳐 안으면서도, 도진을 향한 눈빛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혔다.“술을 입에도 대본 적 없는 애한테 이런 짓을 한 게 너였나, 김도진.”“짓이라니? 연예계 밥 먹으려면 이 정도 통과 의례는 거쳐야지. 그나저나 의사 선생님께서 남의 회사 매니저한테 관심이 아주 많네?”도진이 한 걸음 다가서며 유라를 빼앗으려는 듯 손을 뻗으려 하자, 도현이 그 손을 서늘하게 쳐내며 경고했다.“손 치워. 이 아이, 지금 알코올 쇼크 상태야. 의사로서 환자를 방치할 수 없어서 데려가는 것뿐이니까.”“의사로서?”도진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고교 시절부터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살던 이도현이었다. 그런 놈이 눈앞의 여자를 안고 있는 손귀에는 핏줄이 설 정도로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도진의 날카로운 촉이 발동했다.“글쎄, 네 눈빛은 환자를 보는 의사의 눈이 아닌 것 같은데. 재미있네, 그 대단한 이도현이 평정심을 잃는 꼴을 다 보고.”도진은 흐트러진 유라의 얼굴을 흥미롭게 응시했다. 이도현의 완벽한 아킬레스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조그만 매니저를 절대로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사라졌다.“급한 환자라니 일단 보내줄게. 하지만 착각하지 마, 이도현.”도진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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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다시 현재 도현의 방]자책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유라를 내려다보던 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날 밤 김도진이 제게 뱉었던 소유욕 어린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유라를 그 지옥 같은 놈의 곁에 둘 수는 없었다.도현은 침대 옆 의자에 깊숙이 기댄 채 앉으며 낮게 읊조렸다.“거기 그만두고 우리 병원으로 와. 너 일할 자리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순간 유라의 마음이 세차게 흔들렸다. 시급 두 배의 꿈의 직장이라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이런 꼴이 되었으니 겁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보육원 시절부터 이도현이라는 존재에게 받아온 지원이 너무나도 과분했기에, 더 이상 그의 인생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오빠.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힘으로 번듯하게 독립해서 해보고 싶어요.”그 단호한 대답에 도현의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지금 네가 하는 일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거야?”도현이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날이 서 있는지 유라는 의아했다. 하지만 당장 오늘 먹고살 생계가 급급한 유라로서는, 김도진의 매니저 일만큼 돈을 많이 주는 곳을 다시 구할 재간이 없었다.“……네. 저 잘할 수 있어요.”유라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도현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네 뜻이 그렇다면 강요하진 않겠어.”도현은 문가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마지막 경고처럼 서늘한 대사를 남겼다.“하지만 기억해, 유라야. 네가 선택한 그 자리는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추악해. 다음에도 내 눈앞에 이런 몰골로 나타난다면…….”도현의 시선이 유라의 가냘픈 손목에 잠시 머물렀다.“그땐 정말, 네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거야.”달칵.문이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깊은 적막에 잠겼다.자신이 선택한 이 꿈의 직장이, 두 남자 사이의 위험한 덫이라는 것을 유라는 아직 알지 못했다.“정말 가겠다고?”낮게 내려앉은 도현의 목소리가 유라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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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신세 많았어요, 오빠. 연락드릴게요.”유라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적막한 집안에 무겁게 울렸다. 혼자 남은 도현은 유라가 누워 있던 온기가 남은 침대를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금방 다시 오게 될 거야, 유라야. 내 품 말고는 네가 숨 쉴 곳 따윈 없을 테니까.”택시 안에서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김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툭, 하고 전화가 연결됐다. 수화기 너머로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도진 씨? 죄송합니다! 제가 첫날부터 술을 많이 마셨는지 여태 잠들어서.. 연락을 못 드렸어요. 지금 당장 회사로 가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숨도 쉬지 않고 사죄를 뱉어내는 유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진은 캄캄한 거실 소파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전화를 받지 않아 서늘하게 가라앉았던 그의 눈매에 순식간에 잔인한 흥미가 돋아났다.“이유라 씨.”낮고 부드러운, 그러나 뱀이 살갗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도진의 목소리가 유라의 귓가를 파고들었다.“첫날부터 무단결근에 연락 두절이라. 난 또 우리 신입 매니저가 도망이라도 친 줄 알았잖아.”“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있느라 그랬습니다.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간절하게 매달리는 유라의 반응에 도진은 나직하게 실소를 터뜨렸다. 의사 놈의 집에서 간신히 탈출해 기어코 제 발로 호랑이 굴로 걸어 들어오는 꼴이 제법 가여우면서도 짜릿했다. 이도현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던 보물이 지금 제 자비를 구걸하고 있었다.“처벌이라. 좋지.”도진이 소파 테이블 위에 놓인 차 키를 집어 들며 잔인하게 속삭였다.“지금 회사 말고 청담동 내 개인 펜트하우스로 와. 네 성의를 봐서 기회를 줄지 말지는, 얼굴 보고 결정하지.”유라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발을 들인 곳은 직장이 아니라, 빠져나갈 수 없는 깊은 늪이었다는 것을. 높은 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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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라는 로봇 청소기를 서둘러 가동시키고, 부엌에 널브러진 술병들을 정리했다. 이어 화장실 청소를 위해 뜨거운 물을 벽면에 세차게 뿌리던 중, 수압을 이기지 못한 샤워기 헤드가 제멋대로 돌아가며 유라의 온몸을 정면으로 덮쳤다.“아앗! 정말 되는 일이 없네, 진짜……!”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버렸다. 이유라는 젖어 축축해진 마스크를 벗어 주머니에 넣고, 대충 화장실 정리를 마무리했다. 뚝뚝 물이 떨어지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티셔츠 끝단을 잡아 물기를 짜냈지만, 얇고 하얀 면 티셔츠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물기를 머금은 백색 티셔츠가 살결에 투명하게 달라붙어, 유라의 매끄러운 어깨선과 하얀 속살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빨리 가야 해. 김도진이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일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성가시게 한다고 진짜 잘릴지도 몰라.’불안한 예감에 서둘러 짐을 챙기려던 그때, 도어락의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요한 집안을 울렸다.띠띠띠띠, 삐릭.유라의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나갔던 김도진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 그는 수트 실루엣을 세련되게 소화한,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남자였다.그 남자는 물에 젖어 엉망이 된 채 서 있는 유라의 모습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눈동자에 묘한 흥미를 띄우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마스크가 벗겨진 유라의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음에도 사방을 압도하는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고, 물에 젖은 옷새 사이로 드러난 가녀린 실루엣은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어라…… 도진이 이 자식, 집에 숨겨둔 여자가 있었어?”남자가 유라의 옷차림을 노골적으로 훑어 내리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그 눈빛 깊은 곳에는 도진이 느꼈던 것과 같은 강렬한 호기심과 소유욕이 스치고 있었다.“아, 아닙니다! 저는 새로 입사한 매니저 보조일을 맡고있는 이유라라고 합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샤워기가 고장 나서…….”유라가 다급하게 양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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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 꼴로 나가면 감기 걸려요. 옷이라도 말리고 가야죠.”“아뇨, 괜찮습니다!….”“숙녀분을 이런 모습으로 보낼 순 없죠. 들어와요.”김건의 커다란 손이 유라의 가느다란 손목을 낚아챘다. 거절할 틈도 없이 거실로 이끌려 들어온 유라는 전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보고 경악했다. 물에 젖은 하얀 티셔츠는 속옷 라인까지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웅크리는 유라를 보며 김건이 낮게 웃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도진의 방으로 들어가 검은색 티셔츠 한 장을 들고 나왔다.“우선 이걸로 갈아입어요. 미녀분이 감기 걸리면 안되죠”김건이 능글맞은 제스처와 멘트를 날리며 웃음을 지었다. 이유라는 김도진과 마주치지 않게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유라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김건이 가져다 준 티셔츠로 갈아 입고 나왔다.유라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김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라에게 음료 한잔을 건넷다.그가 건넨 컵 안에는 달콤한 향이 감도는 따뜻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젖은 옷 때문에 온몸에 오한을 느끼던 유라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몸 안쪽에서부터 기이하고 낯선 열기가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기가 타들어 갈 듯 끈적한 온도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유라의 시야가 크게 일렁였다. 사방의 벽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다리에 힘이 스르륵 풀리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런 그녀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김건이 소리 없이 다가와 유라의 가녀린 어깨를 붙잡았다.“괜찮으세요? 얼굴이 너무 붉은데.”“괜찮아요…… 살짝 어지러워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유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공포심에 억지로 정신을 붙잡으며 신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단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그대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김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라의 가느다란 허리를 거칠게 감싸 안아 제 품으로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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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지독한 열기를 품은 액체가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킨 듯, 유라는 김건의 단단한 어깨에 기댄 채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품에 안긴 유라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김건은 잠시 당황하는 척하더니, 이내 주위를 둘러보며 입가에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다정한 매너남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추악한 본능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는 가냘픈 유라의 몸을 가볍게 안아 들고 도진의 어두운 침실로 향했다.거대한 침대 위에 내팽개치듯 눕혀진 유라의 모습은 지독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도진의 커다란 검은 티셔츠는 그녀의 하얀 살결과 대비되어 잔인할 만큼 선정적이었고, 약 기운으로 붉게 달아오른 뺨과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김건의 눈동자가 정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유라의 가녀린 두 손목을 한 손에 움켜쥐고 강하게 침대 시트에 메치듯 제압했다. 그리고는 반항할 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우읍……! 읍……!”질척하고 강압적인 입맞춤에 유라는 숨이 막혀왔다. 의식 밑바닥에서 치민 공포에 필사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버둥거렸지만, 낯선 열기가 도는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거대한 체구로 위에서 찍어 누르는 김건은 요지부동이었다.막힌 숨 사이로 유라의 가느다란 신음과 눈물이 짓겨 나갈수록 김건의 손길은 더욱 대담해졌다. 마침내 그의 거친 손이 유라의 얇은 티셔츠 밑단 안으로 찰각 파고들어 부드러운 살결을 노골적으로 훑어 올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철컥, 쾅-짜증 섞인 목소리로 방 안에 발을 들이던 도진의 걸음이 그대로 얼어붙었다.김건의 넓은 등에 가려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침대 아래로 무력하게 떨어져 있는 가느다란 다리와 그 발목에 걸린 낯익은 검은색 티셔츠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 여자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울음 섞인 신음이 새어 나왔다.그건 분명, 조금 전 제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숙이던 신입 매니저, 이유라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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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도진의 시선은 침대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붉게 달아오른 채 떨고 있는 유라에게 꽂혀 있었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옷새와 눈물로 범벅이 된 맨얼굴. 다른 남자의 손길이 닿아 붉게 얼룩진 그녀의 하얀 살결을 보는 순간, 도진의 눈동자가 흉포하게 뒤틀렸다.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도의 분노와 지독한 독점욕이 그를 지배했다.도진은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이불을 거칠게 끌어당겨 유라의 몸을 목끝까지 꽁꽁 싸맸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주춤거리며 일어나는 김건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귀공자 같은 미소 대신, 금방이라도 사람을 찢어 죽일 듯한 맹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내 집에서.꺼져”도진이 한 걸음 다가서며 김건의 멱살을 터질 듯이 움켜쥐었다. 굵은 핏줄이 선 도진의 손귀에 실린 악력에 김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콜록! 야, 김도진……! 네가 여자에 관심 없는 줄 알고…… 난 그냥 장난 좀 친 거야!”“장난?”도진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갔다.“네 그 가벼운 손가락이랑 주둥이 때문에 네 인생이 날아가도 장난이라고 할 수 있는지 보자.”도진은 김건을 현관 바닥으로 거칠게 밀쳐버렸다. 대리석 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힌 김건이 신음을 내뱉었지만, 도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현관문을 열었다.“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도진의 서늘한 살기에 압도당한 김건은 더 이상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겉옷을 챙길 새도 없이 도망치듯 펜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거대하고 무거운 현관문이 닫히고, 넓은 펜트하우스에는 약 기운에 취해 밭은 숨을 내뱉는 유라의 신음과 도진의 거친 호흡소리만이 남았다.정적이 찾아온 방안, 도진은 침대 위에 쓰러져있는 유라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위해 옷을 정리해주려 침대에 앉자, 유라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방어 기제를 보였다. 그럴수록 가느다란 손목에 새겨진 붉은 멍은 더욱 선명하게 도진의 시야를 찔렀다.뜨거운 입김을 내뱉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유라를 보던 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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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그 순간, 약기운에 온기를 찾던 유라가 몸을 뒤척이며 도진의 품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차가운 도진의 가슴팍에 그녀의 뜨겁고 가녀린 숨결이 닿았다. 도진은 밀어내는 대신, 가만히 눈을 감으며 자신의 심장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폭풍이 쓸고 간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진은 침대 위에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유라를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못내 신경 쓰여, 옷가지를 정리해 주려 침대 머리맡에 묵직하게 얹어 앉았다.그 작은 기척에도 유라는 본능적으로 몸을 밀어내며 웅크렸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였다. 하지만 그녀가 몸을 비틀수록, 김건의 거친 악력에 짓눌려 가느다란 손목에 새겨진 피멍은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도진의 시야를 찔러왔다.자신의 영역 안에서 다른 흔적을 남기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못마땅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뜨거운 입김을 뱉어내며 신음하는 유라를 보던 도진이, 이윽고 홀린 듯 조심스럽게 그녀의 멍든 손목을 커다란 손으로 감싸 쥐었다.얼음장 같던 도진의 손에서 전해지는 서늘한 온기에 유라가 힘겹게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이성을 잃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신음하듯 가녀린 음성을 내뱉었다.“도와…… 주세요…….”지금 제 곁에서 손목을 쥐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계약서로 옭아맨 잔인한 포식자 김도진인 줄도 모른 채, 유라는 그저 당장 눈앞에 닥친 어둠에서 자신을 건져줄 유일한 구원자라 믿는 듯했다.유라는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여 도진의 커다란 손을 꽉 맞잡았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마치 생명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애원하듯 매달리는 손귀에 간절함이 가득했다. 제 손을 다 덮고도 남는 도진의 단단하고 넓은 손가락을 쥐자마자 거짓말처럼 안도감이 찾아왔는지, 유라는 이내 긴장을 풀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도진은 제 손을 악착같이 놓지 않는 그 작은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뭐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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