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꼴로 나가면 감기 걸려요. 옷이라도 말리고 가야죠.”
“아뇨, 괜찮습니다!….”
“숙녀분을 이런 모습으로 보낼 순 없죠. 들어와요.”
김건의 커다란 손이 유라의 가느다란 손목을 낚아챘다. 거절할 틈도 없이 거실로 이끌려 들어온 유라는 전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보고 경악했다. 물에 젖은 하얀 티셔츠는 속옷 라인까지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웅크리는 유라를 보며 김건이 낮게 웃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도진의 방으로 들어가 검은색 티셔츠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우선 이걸로 갈아입어요. 미녀분이 감기 걸리면 안되죠”
김건이 능글맞은 제스처와 멘트를 날리며 웃음을 지었다. 이유라는 김도진과 마주치지 않게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유라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김건이 가져다 준 티셔츠로 갈아 입고 나왔다.
유라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김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라에게 음료 한잔을 건넷다.
그가 건넨 컵 안에는 달콤한 향이 감도는 따뜻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젖은 옷 때문에 온몸에 오한을 느끼던 유라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몸 안쪽에서부터 기이하고 낯선 열기가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기가 타들어 갈 듯 끈적한 온도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유라의 시야가 크게 일렁였다. 사방의 벽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다리에 힘이 스르륵 풀리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런 그녀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김건이 소리 없이 다가와 유라의 가녀린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얼굴이 너무 붉은데.”
“괜찮아요…… 살짝 어지러워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유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공포심에 억지로 정신을 붙잡으며 신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단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그대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
김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라의 가느다란 허리를 거칠게 감싸 안아 제 품으로 일으켜 세웠다.
“몸이 안 좋으면 좀 쉬다 가요. 무리하지 말고.”
“놔, 놔주세요……. 저 정말 가야 해요…….”
유라는 혀가 마비된 듯 꼬여버린 발음을 간신히 내뱉으며 김건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품에 갇힌 몸은 마치 물에 젖은 솜처럼 한없이 무겁기만 했고, 밀어내는 손길에는 밀리그램의 힘도 실리지 않았다.
귓가에 닿는 김건의 낮고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기분 나쁘게 울렸다. 컵에 담겨 있던 달콤한 향의 액체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음을, 유라의 본능이 뒤늦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도현의 집에서 깨어났을 때 느꼈던 무기력한 마비감과는 또 다른, 온몸의 신경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지독한 열기였다.
김건은 겁에 질려 제 품에서 파르르 떠는 유라를 내려다보며, 허리를 감싼 손귀에 은근히 힘을 주었다. 늘어진 도진의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하얀 어깨와 쇄골이 열기로 인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그의 사냥 본능을 미치도록 자극했다.
“이렇게 몸도 못 가누면서 어딜 간다고 그래요. 내가 도진이한테는 잘 말해 줄 테니까, 일단 방으로…….”
“아, 아니에요…… 갈 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라의 고개가 힘없이 툭 꺾였다.
살결이 닿을 때마다 전해지는 온기는 소름 끼치도록 다정했다. 유라 역시 밀려드는 애틋한 열기에 취한 듯 도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의 단단한 목덜미를 두 팔로 꼭 껴안았다.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약하고 소중한 유리잔을 대하듯 조심스럽고도 밀도 높은 움직임이었다. 도진은 유라의 몸속 깊은 곳을 부드럽게 채우며 그녀를 만족시켰고, 유라는 그의 어깨에 뺨을 묻은 채 아찔한 감각 속에서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다음 날 새벽녘, 어스름한 푸른빛이 방 안으로 밀려들 때쯤 도진은 먼저 눈을 떴다. 제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곤히 잠들어 있는 유라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엔 깊은 아쉬움이 교차했다.샤워를 마치고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채 욕실을 나온 도진의 시선이 자연스레 침대로 향했다. 그사이 잠에서 깬 유라가 이불을 몸에 감은 채 부스스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밤새 치러진 격렬하고도 다정한 정사의 흔적 탓에 유라의 하얀 어깨에는 붉은 자국들이 선명했다.도진은 침대맡으로 다가가 유라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며,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잘잤어?.”유라는 어젯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을 꼭 쥐었다.가방을 챙겨 거실로 나오자, 완벽한 정장 차림의 경호실장이 묵직한 가방과 대형 캐리어를 양손에 든 채 도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진이 현관문으로 향하자, 유라가 그의 뒤를 따랐다.도진은 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서서 유라를 제 품에 꽉 안았다.“딴생각하지 말고, 딱 기다려. 내일모레 공항에서 보자.”“네”유라의 배웅을 받으며 마침내 도진과 경호실장이 문을 나섰고, 현관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굳건하게 닫혔다.고요해진 펜트하우스에 홀로 남은 유라는 내일 있을 생애 첫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옷가지를 접어 넣을 때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뜨겁게 안아주던 도진의 은은한 체취가 몸에 배어 유라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다음날 늦은 새벽 도진에게서 파리에
어둠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도현의 고교 동창에게 유라의 행방과 일정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독이 바짝 오른 도현의 휴대폰에 띠링─ 하고 날카로운 문자음이 울렸다. 도현은 낚아채듯 휴대폰을 확인했다. 동창이 보낸 문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보들을 담고 있었다.[이유라 현재 김도진 펜트하우스 상주 중. 정문 상시 경호 인력 배치로 내부 접근 불가.2주 뒤 프랑스 항공편 예약 내역 확인 완료.]프랑스? 도현이 내용을 곱씹으며 이를 악물던 찰나, 타이밍 좋게 휴대폰 화면이 전환되며 동창의 이름이 떴다. 도현은 지체 없이 전화를 받아 귀에 가져다 댔다.“어, 말해.”[문자 봤냐? 뒷조사 좀 더 해보니까 아주 재미있는 틈이 있더라고.]수화기 너머 동창의 목소리에 삐딱한 흥분조가 섞여 있었다.[김도진이 2주 뒤에 프랑스 촬영 스케줄이 잡혔거든? 근데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못 가고, 그전날 김도진이 먼저 프랑스로 출발해. 그리고 다음 날에 이유라가 혼자 공항으로 출발하는 일정이야.]도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크게 확장되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지금은 경찰 조사 때문에 최대한 몸 좀 사려야 하니까, 2주 뒤에 이유라가 혼자 공항으로 이동할 때 길목에서 바로 작업 칠 거야. 그때 낚아채는 게 가장 깔끔해.]“……공항으로 갈 때.”도현이 나직하게 동창의 말을 읊조렸다. 목소리가 잔인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도현은 터져 나오는 광기 어린 웃음을 짓씹으며 동창에게 명령했다.“좋아. 네 말대로 해. 대신 실수 없이 진행해 .”[돈만 제대로 입금해 주면, 공항 땅 밟기도 전에 네 방 침대에 눕혀줄 테니까 걱정 마라.]도현은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툭 끊긴 휴대폰 액정 위로 비친 제 얼굴이 지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허공을 노려보던 도현이 잔인하게 읊조렸다.‘이유라 다신 널 놓치는 일 없어..‘그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도진이 프랑스로 출국하는 날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아…… 네, 우선 좌석 상황이랑 예약 내역 확인해 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도진의 난데없는 명령에 실장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의 휴대폰이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총괄실장의 이름을 확인한 도진이 바로 전화를 낚아챘다.“어떻게 됐어.”[도진 씨, 방금 확인해 봤는데요. 상황이 좀 난감하게 됐어요. 우선 이유라씨 현재 여권 자체가 없어서 신규 발급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가장 큰 문제는 그날 도진 씨가 타시는 비행기 좌석이 퍼스트부터 이코노미까지 전석 매진이에요. 정 같이 가시려면 유라 씨는 다음 날 비행기로 따로 보내야 할 것 같아요.]“다음 날 비행기라고……?”도진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 총괄실장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네, 도진 씨. 일정이 워낙 촉박해서 이것도 정말 겨우 구한 거예요. 우선 다음 날 비행기표라도 예약을 걸어둘까요?]“하아…….”도진의 붉은 입술 사이로 깊고 무거운 한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우선 알겠어. 그렇게라도 예약 걸고 빨리 진행해.”[네, 알겠어요! 바로 진행하고 다시 보고드릴게요.]전화가 끊기고 도진은 폰을 소파 위로 툭 던져버린 뒤,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소파 헤드 위로 고개를 툭 젖혀 기댔다.한참을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도진은 마침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오늘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완벽하게 핏이 떨어지는 수트를 챙겨입은 도진은 집을 나서기 전, 유라의 침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방 안에는 여전히 은은한 향기와 함께 유라가 침대 묻혀 부드러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진은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가 상체를 숙이고는, 유라의 이마 위에 자신의 입술을 지긋이 꾹 눌러 맞췄다. 샤워 후의 시원한 스킨 향과 낮선 감촉에 유라가 속눈썹을 가늘게 떨며 서서히 눈을 떴다.“스케줄 있어서 난 지금 나가봐야 하니까, 집에서 쉬고 있어. 연락할게.”“……네, 다녀오세요.”유라가 고개를 끄
“아……! 하아, 하 아……!”자신의 안쪽을 잔인하게 파고드는 강렬한 팽창감에 유라는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에 깊숙이 박혀드는 자극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찔했다.터질 듯이 감싸오는 유라의 뜨겁고 좁은 통로에, 도진 역시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강한 자극을 참지 못하고 가죽 같은 거친 숨을 내뱉었다.“하…… 젠장, 이유라…….”방 안은 숨 막힐 듯한 밀어와 두 사람의 날것 그대로의 신음, 그리고 살과 살이 거칠게 부딪히는 은밀한 마찰음으로 가득 찼다.“하…… 힘 빼, 이유라.”“흐윽, 앗…… 하아……”도진은 유라가 적응할 틈도 주지 않고 골반을 단단히 붙잡은 채 아래를 거칠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허리를 움직이는 도진의 움직임이 점차 빨라질수록, 유라의 몸 안쪽 가장 민감한 곳을 집요하게 짓밟고 파고드는 자극에 찌릿한 전류가 온몸을 강타했다.유라는 밀려드는 극상의 쾌감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하........하아....못.. 견디겠어요....”“조금만 참아”마침내 거칠었던 도진의 움직임이 멎고, 그가 유라의 몸 안에서 천천히 빠져나와 침대 옆자리에 묵직하게 누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유라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지, 가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기진맥진해 있었다. 새하얀 이불 위로 드러난 어깨와 목덜미에는 도진이 새겨놓은 선명한 보랏빛 낙인들이 붉은 꽃처럼 피어 있었다.도진은 땀방울이 맺힌 제 이마를 쓸어 넘기며, 곁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는 유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도진은 바닥에 흩어져 있던 이불을 끌어당겨 유라의 가녀린 몸을 목 끝까지 덮고는 커다란 팔을 뻗어 유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자신의 단단한 품 안쪽으로 훅 끌어당겼다.스스륵─.작은 몸집의 유라가 도진의 넓은 가슴팍 안으로 쏙 들어가 안겼다. 도진의 가슴에 뺨을 기댄 유라의 코끝으로 그의 진한 체취와 시원한 스킨 향이 밀려들었다.도진의 탄탄한 가슴팍에 뺨을 묻은 유라의 규칙적이고
도진과의 거리가 가까워 지자 유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도진의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압도감에 유라는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그게…… 읏,”유라가 고개를 돌린 찰나, 조명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하얗고 매끄러운 목선이 도진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순백 위에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이도현의 거슬리는 자국들.다시 한번 그 흔적을 마주한 도진의 이성이 완전히 끊겨 나갔다.도진은 유라의 목덜미로 거침없이 고개를 묻었다. 사정없이 맞닿은 도진의 입술은 타버릴 듯 뜨거웠고, 살결을 집어삼키는 숨결은 잔인할 정도로 거칠었다.“하아……! 앗,”예상치 못한 곳에 닿아오는 강렬한 자극에 유라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도진은 유라의 양 손목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쥐어 머리 위로 완벽하게 결박한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유라의 가녀린 허리를 바싹 끌어당겨 제 단단한 하체에 밀착시켰다.“연락하지 말란 내 말이…… 장난 같았나 보지, 이유라?”“그런게.....아니....읏....”유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진은 이도현이 남긴 붉은 흔적 위를 거칠게 빨아올렸다.목덜미를 파고드는 짜릿하고도 아찔한 통증에 유라의 하얀 발가락 끝이 꼿꼿하게 굳어졌다.가운 사이로 느껴지는 도진의 거칠고 탄탄한 가슴 근육이 유라의 부드러운 가슴을 사정없이 짓눌렀다.도진의 커다란 손이 유라의 얇은 티셔츠 밑단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잘게 떨리는 허리춤을 지나 그대로 위를 향해 미끄러진 손길이, 유라의 부드러운 가슴을 단숨에 움켜쥐고 제멋대로 헤집었다. 뜨겁고 커다란 도진의 손바닥이 살결을 마찰할 때마다 찌릿한 전류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도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한 손을 유라의 은밀한 곳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노골적인 자극에 유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하아…… 하…… 읏,”터져 나오는 숨을 집어삼키며 유라가 몸을 뒤틀자, 도진이 유라의 위에서 상체를 느릿하게 일으켰다. 거
바깥에서 나는 미세한 소음에 잠이 깬 것인지 유라가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이내 어두운 조명 아래 드러난 도진의 모습의 날 것 그대로의 위험한 아우라를 마주하자마자, 유라는 숨을 들이켜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젖은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긴 모습과 가운 자락이 반쯤 흐트러져 드러난 도진의 단단한 가슴팍은 숨이 막힐 정도로 치명적이었고, 동시에 본능적인 경계심이 들 만큼 위험해 보였다.당황한 유라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어…… 깨우려던 건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쉬세요”도진은 도망치듯 방으로 숨으려는 유라의 얄팍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캔을 내려놓은 도진이 시선은 고정한 채 나직하게 유라를 불러 세웠다.“이유라.”도진이 까딱 손짓을 하며 그녀를 제 곁으로 불렀다. 매혹적이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서늘한 지배욕을 풍기는 도진에게, 유라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자석처럼 이끌려 다가갔다.제 앞에 멈춰 선 유라를 올려다보던 도진이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의 상처를 한번 훑고는, 이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휴대폰은 왜 꺼놨어?”“아, 그게…… 배터리가 없어서 저절로 꺼졌나 봐요.”유라가 급하게 말을 지어내는 그 찰나의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도진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포착해 냈다. 도진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기묘한 호선을 그렸다.“그래? 가져와봐.”도진의 툭 던진 한마디에 유라의 가슴이 쿵 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아니요, 제가…… 제가 충전하면 돼요.”필사적으로 숨기려는 유라의 태도에 도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늑대처럼 돌변했다. 도진이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운 자락을 펄럭이며 유라의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오늘 스케줄을 나가기 전, 분명히 이도현과 연락은커녕 만나지도 말라고 잔인하게 경고했던 도진이었다. 전화를 급하게 끄는 바람에 미처 통화 내역을 지우지 못했던 유라는 정작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거대한 죄를 지
“신세 많았어요, 오빠. 연락드릴게요.”유라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적막한 집안에 무겁게 울렸다. 혼자 남은 도현은 유라가 누워 있던 온기가 남은 침대를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금방 다시 오게 될 거야, 유라야. 내 품 말고는 네가 숨 쉴 곳 따윈 없을 테니까.”택시 안에서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김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툭, 하고 전화가 연결됐다. 수화기 너머로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도진 씨? 죄송합니다! 제가 첫날부터 술을
[다시 현재 도현의 방]자책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유라를 내려다보던 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날 밤 김도진이 제게 뱉었던 소유욕 어린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유라를 그 지옥 같은 놈의 곁에 둘 수는 없었다.도현은 침대 옆 의자에 깊숙이 기댄 채 앉으며 낮게 읊조렸다.“거기 그만두고 우리 병원으로 와. 너 일할 자리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순간 유라의 마음이 세차게 흔들렸다. 시급 두 배의 꿈의 직장이라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이런 꼴이 되었으니 겁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보육원
도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라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도현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낚아채듯 품에 안아 올렸다. 바로 그때, 룸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이도현?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네.”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이는 김도진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지독한 라이벌이자 숙적이었던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도진의 시선이 도현의 품에 무력하게 안겨 있는 유라에게로 향했다.“내 신입 매니저가 왜 거기 안겨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도진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여유로웠지만, 눈빛만큼은 사납게 빛나고
평소의 도현은 냉정해 보여도 유라에게만큼은 눈빛에 다정한 온기가 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내려다보는 도현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을 만큼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랬구나…… 죄송해요, 오빠.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근데, 제 가방이랑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회사에 연락도 못했는데....유라가 침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초조하게 묻자, 도현이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실루엣이 유라의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현은 양복 주머니에서 익숙한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