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Capítulo 61 - Capítulo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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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론체스터령

이후 몇 해 동안 밑바닥에서 별별 험한 일을 다해가며 아둥바둥 살아온 끝에 조직에서 제법 알아주는 정보원이 된 그녀는, 우연히 아버지 또한 녹스의 정보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그제서야 트리샤는 깨달았다. 그가 왜 그토록 차갑게 어머니와 자신을 외딴 산골에 꽁꽁 숨겨 두고 평생을 그림자처럼 살게 했는지를.녹스의 잔인한 손아귀로부터 소중한 가족을 연루시키지 않고 지키기 위한, 그 사내만의 처절한 사투였던 것이다.그토록 조심하며 숨겨 왔는데, 딸이 제 발로 그 피비린내 나는 소굴로 걸어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 무뚝뚝한 사내가 얼마나 화가 났을까.하지만 과거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당시, 트리샤의 얼굴에는 감동이나 안타까움보다는 세상의 뒤틀린 운명을 향한 차가운 조소가 먼저 스쳤을 뿐이다.이미 모든 것은 늦어버린 뒤였으니까.오두막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 이후, 서로 생사 확인조차 하지 않던 부녀가 다시 마주한 것은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지독하게 고단했던 삶을 끝내고 마침내 어머니가 차가운 방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을 때, 제이드는 마치 귀신같이 그 소식을 알고 장례식장에 나타났다.그것이 트리샤가 아버지를 오랜만에 마주한 순간이자, 사내의 살아있는 모습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장례를 치르는 내내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고, 트리샤 또한 그에게 단 한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그리고 부녀는 몇 년에 한 번씩 하부 조직의 장부를 통해 생사만 간신히 확인하는 기이한 관계가 되었다.​‘아직 어딘가에서 숨은 쉬고 있구나’ 하는 감각 하나만으로 위태롭게 이어진, 실낱보다 얇은 혈연의 끈이었다.‘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당신을 구하겠다고 내가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건지.’트리샤는 헛웃음을 삼키며 말 옆구리를 가볍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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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이상하네, 진짜

어젯밤 아르덴이 챙겨준 찻잎 주머니의 효능이 제법 대단했던 모양인지, 라리엘의 부어올랐던 눈은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화장대로 달려가 거울을 확인하며 손가락 끝으로 몇 번이나 눈가를 꾹꾹 눌러보았지만, 울었다는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붕어 같다며 놀려대던 아르덴의 얼굴이 떠올라 밤새 잠을 설치기까지 했는데, 이 정도 몰골이라면 합격점이었다. 덕분에 가슴 한구석에 무겁게 남아 있던 지독한 민망함도 조금은 옅어졌다.공작가의 식당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함이 감돌았다.높은 창문 너머로 비스듬히 비쳐 드는 겨울의 투명한 햇살이 식탁의 새하얀 천과 정갈하게 놓인 은제 식기 위로 부드럽게 부서지며 보석처럼 반짝였다.​먼저 자리에 앉아 서류를 훑던 아르덴이 우아한 손짓으로 하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식탁으로 다가오는 라리엘을 향해 무심한 어조로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눈은 이제 다 가라앉은거야?”순간 어젯밤의 부끄러운 기억들이 폭포수처럼 밀려와 라리엘은 뺨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들고 있던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평소보다 약간 기가 죽은 수줍은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응. 네가 준 것 덕분에. 고마웠어, 아르덴.”나름대로 큰 용기를 내어 건넨 다정한 감사 인사였다.그러나 아르덴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더니, 맞은편에 앉은 라리엘의 얼굴을 집요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그의 푸른 눈동자가 그녀의 눈가를 구석구석 훑었다.​“내가 보기엔 전혀 아닌 것 같은데.”​“뭐가? 어디가 아닌데?”“눈 말이야. 어젯밤이랑 별반 다를 게 없이 부어 있는 것 같은데?”분명 아침에 방에서 거울을 꼼꼼히 들여다 볼 때는 아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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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어둠 속 협상

​그날 밤, 론체스터 시외를 완전히 벗어나 북쪽의 가파른 산길로 향할수록 하늘에 걸려 있던 옅은 달빛마저 먹구름 뒤로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자정이 가까워진 겨울 산길은 작은 들짐승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지독하고 무거운 적막에 잠겨 있었다.사방을 집어삼킨 어둠 속에서 오직 트리샤의 단단한 가죽 부츠가 메마른 나뭇가지와 얼어붙은 흙바닥을 사정없이 짓밟는 소리만이, 마치 누군가의 뼈를 부러뜨리는 소리처럼 날카롭고 섬뜩하게 고요를 갈랐다.트리샤는 로브 속에서 단검의 자루를 쥔 손가락에 시시각각 힘을 주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완만한 산길 어귀에 다다르자,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처럼 우두커니 멈춰 선 낡은 물레방앗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사람들의 발길은 이미 오래전에 끊긴 듯 두꺼운 이끼와 마른 덩굴풀이 외벽을 통째로 잠식하고 있었고, 흐르지 않는 물 위에 멈춰버린 거대한 물레방아는 썩어가는 나무 특유의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며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낮은 신음처럼 들려왔다.트리샤가 물레방앗간 입구에 발을 내디뎠을 때, 고막을 긁는 서늘하고 날카로운 금속음이 나직하게 울렸다.“멈춰. 거기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그 가냘픈 목줄기에 바람구멍이 날 거다.”가래가 잔뜩 끓는 듯한 거친 목소리와 함께,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낡은 가구 더미 뒤에서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그는 사정거리가 짧지만 파괴력이 강력한 소형 석궁을 트리샤에게 고정한 채, 한 치의 경계도 늦추지 않고 있었다.시위에 걸린 화살촉이 달빛 없는 어둠 속에서도 불길하게 번뜩였다.트리샤는 로브 안에서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려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입가에 특유의 비릿하고 여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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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갑작스런 시찰

아르덴은 집무실 창가에 서서 낮게 깔린 수도의 겨울 안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조금 전 베르너가 가져온 작은 전갈이 놓여 있었다.베르너는 평소의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보고를 차분히 이어갔다.“트리샤 양으로부터 방금 막 당도한 소식입니다. 론체스터를 거점으로 한 녹스의 남부 지부 담당자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아르덴이 고개를 돌려 베르너를 고요히 응시했다. 베르너는 뒷말을 고르듯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그쪽 지부의 담당자가 트리샤 양 같은 일개 대리인과는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답니다. 거래의 규모가 큰 만큼, 반드시 그 배후에 있는 ‘윗사람’을 직접 대면하여 신용을 확인하길 원한다는 것이 그들의 절대적인 조건입니다.”아르덴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는 창가에서 벗어나 책상 위로 성큼성큼 다가와, 트리샤의 갈겨쓴 전갈의 행간을 다시 한번 훑어 내렸다.집무실 안을 무겁게 감돌던 침묵 끝에, 그가 짤막하고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트리샤에게 답신을 보내. 내가 직접 론체스터로 갈 테니 시간과 장소를 잡아놓으라고. 그리고 말을 준비해줘. 이틀 뒤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론체스터로 출발할 거니까.”그 말에 평소 평정심을 잃지 않던 베르너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떠졌다. 그가 급히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만류했다.“공작님, 직접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놈들은 법도 도덕도 없는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밑바닥 범죄 조직원들입니다. 굳이 공작님께서 그 위험한 곳까지 직접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 필요하다면 제가 공작님의 대역으로 대신 가거나, 가문의 가장 숙련되고 충성스러운 상급 기사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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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묻지 않을게

그 마음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듯, 라리엘은 일부러 평소처럼 퉁명스럽고 까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전에 오페라 보러갔을 때 네가 준거야. 진작 돌려주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쳐서 조금 늦어버렸네.”“겨우 이걸 돌려주려고 이 추운 새벽에 안자고 여기 나와서 기다렸다는거야?”“그래. 네가 이대로 시찰 가버리면 돌려주는게 더 늦어지잖아. 그러니까 군말 말고 얼른 받아.”아르덴은 잠시 멍하니 멈춰 서서 망설이다가, 그녀가 내민 하얀 손수건을 느린 손길로 받아 들었다.라리엘이 품속에 줄곧 소중히 가지고 다닌 탓이었을까. 손수건에서는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그녀의 달콤하고 따스한 향기가 아련하게 배어 있었다.잠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던 라리엘이 마침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내어 놓았다.“... 네가 남부에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라리엘은 잠시 멈추었다가,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그의 푸른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나직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덧붙였다.“부디 몸 조심히 다녀와, 아르덴.”그 짧은 한마디에 아르덴의 심장이 툭 내려앉았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그는 대답 대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평소처럼 차가운 말로 그녀를 밀어내야만 이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목구멍이 무언가에 꽉 막힌 듯 그 어떤 모진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긴 침묵 끝에, 결국 그가 내뱉은 것은 겉돌기만 하는 짤막한 대답이었다.“응.”​그것이 지금의 그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감정 표현이었다.잠시 후, 마차가 희미한 어둠을 뚫고 저택 정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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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가면 아래의 거래

아르덴과 트리샤의 기척이 방 안을 채우자, 먼저 자리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던 이들이 의자를 뒤로 밀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처음 뵙겠습니다. 로드릭 남작이라고 합니다. 주로 수도와 이곳 론체스터 영지를 오가며 작고 소소한 사치품 사업을 하고 있지요.”아르덴은 미리 준비해 둔 가명인 ‘로드릭 남작’이라 자신을 나직하게 소개하며,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함이 실린 단호한 목소리로 방 안의 공기를 단숨에 장악했다.그의 귀족적인 서슬에 낯선 사내는 사냥감을 탐색하듯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아르덴을 위아래로 집요하게 훑어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듯 피식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반갑소, 남작. 나는 탈레스라고 하오. 이쪽 구역의 책임자라고 보면 될거요.”모두가 삐걱거리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 탈레스가 먼저 기다렸다는 듯 화두를 던졌다.“자, 본론부터 시작해볼까. 당신 대리인을 통해 대충 이야기는 전해 들었소만, 요구하는 환각제의 밀수량이 꽤 어마어마하다고? 정확히 어느 정도의 물량을 원하시는 거요?”여유로운 몸짓으로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탈레스의 눈을 한 치의 피함도 없이 똑바로 직시했다.“수도에 계신 높은 귀족분의 환심을 사야 하는 처지라 말이죠. 그분들의 흥은 왠만한 양으로는 채워지지 않으니 양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가격은 얼마든지 쳐줄 테니, 당신들이 조달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군요.”탈레스는 탐욕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를 비죽 비틀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지금 당장 우리 창고에서 즉시 유통할 수 있는 건 10인분의 이틀치 분량이 전부요. 하지만 열흘 정도만 더 기다려준다면 10인분의 열흘치까지는 어떻게든 준비해볼 수 있지.”제국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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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탐욕의 움직임

아주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아르덴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옆에 있는 트리샤를 힐끗 보며 무심하게 물었다.“글쎄, 그 이름이 뭐였지? 취기가 오른 채로 건네받은 이름이라 가물가물하군.”트리샤는 뻔뻔함에 기가 찬다는 듯, 오직 아르덴만 볼 수 있는 각도로 입술을 깨물며 살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이내 탈레스를 향해 고개를 돌릴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매끄럽게 대답을 지어냈다.“마르세즈라는 이름의 사내였어요. 성까지는 모르겠네요.”탈레스는 그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마르세즈라, 알겠소.”아르덴과 탈레스는 형식적인 악수를 나누었고, 협상은 그렇게 끝났다. 여관방을 나서는 아르덴의 등 뒤로 트리샤의 따가운 시선이 박혔다.인적이 완전히 끊긴 한적하고 어두운 산길 초입 길목에 접어들었을 때였다.앞서 걷던 트리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홱 돌아서며 아르덴을 쏘아보았다.“미쳤어요? 거기서 아버지 이름을 그렇게 대놓고 꺼내면 어쩌자는 거예요!”트리샤는 목소리를 낮추려 애쓰면서도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자칫 교묘한 말장난 하나에 놈들이 의심을 품었다면 자신들의 정체뿐만 아니라, 녹스 내부 어딘가에 유폐되어 있을 제이드의 목숨줄까지 단번에 위험해질 수 있는 그야말로 대범한 도발이었다.그러나 아르덴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탈레스의 대답을 들었잖아. 그는 제이드가 ‘죽었다’거나 ‘도망쳤다’고 하지 않았어. 조직의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했지.”아르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론체스터 시내 쪽의 불빛들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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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쓸데없는 걱정

론체스터 영지 외곽,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별장은 불과 이틀 만에 완벽한 '로드릭 남작의 저택'으로 감쪽같이 탈바꿈해 있었다.웅장한 철제 대문에는 오랜 세월의 풍파를 맞은 것처럼 정교하게 급히 새겨 넣은 남작가의 문장이 걸렸고, 별장 내부는 방금 마친 공사 흔적 대신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적당히 손질된 때와 아늑한 온기가 감돌았다.알브릭 가문의 가신들이 그림자처럼 움직여 만들어낸 완벽한 위장이었다.트리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기가 찬 얼굴로 혀를 내두르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대대로 가문을 이어온 귀족의 취향이 묻어나는 고풍스러운 거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공작저에서 비밀리에 내려온 하인과 하녀 몇 명이 숨소리조차 죽인 채 분주하게 오가며 별장의 단장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공작님의 수하들은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네요.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대대로 이 땅을 지켜온 남작의 집이라고 믿겠어요.”트리샤는 말을 멈추고 창밖을 응시하는 아르덴의 뒷모습을 보았다.여관에서의 대담한 도발부터 이 치밀한 별장 준비까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제이드를 찾는 걸까.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제이드와 엮일 만한 고리는 그가 플로렌스 가문의 집사였다는 사실뿐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트리샤가 입을 떼려는 찰나, 아르덴이 고개를 돌렸다.“계획에도 없던 환각제 밀수를 하게 생겼군. 지불할 금화 8만 개야 가문의 자금으로 채우면 그만이다만, 거래가 성사된 후 손에 들어올 그 엄청난 양의 환각제는 도대체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중요한 질문의 타이밍을 놓친 트리샤는 아쉽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이내 본업으로 돌아와 자신만만한 태도로 손가락을 들어“수도에 가져가서 다른 귀족들에게 웃돈을 얹고 홀랑 팔아버리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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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덫

클로디아는 방금 전의 진지함은 어디로 갔냐는 듯, 이내 소녀다운 조금 들뜬 활기찬 목소리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오늘 이렇게 저를 귀한 저택에 초대해 주시고 환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가 알브릭 저택의 정원을 구경하고, 공작 부인과 차까지 마시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라리엘은 조잘거리는 클로디아의 모습이 귀여워,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가볍게 팔짱을 끼며 친근하고 다정하게 속삭였다.“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말아요, 클로디아 양. 앞으로도 마음이 답답하거나 혼자 나누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이 저택의 문을 두드려도 된답니다.”그 다정한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클로디아의 아래로 내리깐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빛났다.무언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한 찰나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들며 다시 반달처럼 휘어진 눈웃음으로 라리엘을 살갑게 바라보았다.“정말…… 너무나도 과분하고 감사한 말씀이에요, 부인.”두 사람은 이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응접실의 커다란 벽난로 앞에 폭신한 소파에 마주 보고 자리 잡았다.붉게 달아오른 참나무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며 내는 낮고 안정적인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기분 좋게 채웠다.고급스러운 대리석 테이블 위로, 시녀들이 정성스레 우려내어 향긋하고 붉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최고급 홍차와 오늘 아침 갓 구워낸 달콤한 냄새의 구움과자들이 정갈하게 차려졌다.클로디아는 따뜻한 온기가 절실했던 모양인지 찻잔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쥐고 한 모금 축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그러나 호기심 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공작님은 어떠신가요? 부인께서 결혼하신지 아직 일 년도 안되었다고 들었어요. 신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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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말단의 야심

자신의 말에 그 어떤 일말의 의심이나 경계의 기색도 전혀 담기지 않은 맑은 반응을 보이자, 클로디아는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을 풀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생긋 웃어 보였다.“어머나,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요! 부인의 귀한 휴식 시간에 제가 너무 눈치 없이 오래 머물러 폐를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그렇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해가 완전히 기울 무렵, 라리엘의 배웅을 받으며 클로디아를 태운 백작가의 고급 마차가 미끄러지듯 공작저 저택의 정문을 나섰다.마차는 수도의 화려하고 번화한 중심가를 빠르게 지나, 이내 인적이 뜸하고 사방이 컴컴한 한적하고 어두운 변두리 골목 어귀에 다다랐다.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외진 곳에 잠시 멈춰 서자,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 숨어있던 사내 하나가 소리도 없이 문을 열고 민첩하게 마차 안으로 휙 올라탔다.마차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아까 전까지 공작저 응접실에서 해맑게 웃던 클로디아의 앳된 얼굴에서 무해한 온기가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사라졌다.그녀는 혐오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으로 제 맞은편에 주저앉은 험악한 사내를 향해 딱딱하게 굳은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지시하신 대로 접근했지만, 그 여자에게선 별다른 의심스러운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던데요. 공작과의 정략결혼 생활은 본인 입으로도 별로 행복하지 않고 기대 이하라고 털어놓았고, 그저 틈만 나면 징징거리며 고향 플로렌스의 따뜻한 남부 땅을 많이 그리워하는 유약한 여자 같았어요.”어둠 속에 동공을 빛내던 사내가 낮고 거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단순한 감상 따위를 들으려고 널 그 철옹성 같은 곳에 밀어 넣은 줄 아나? 또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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