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문이 닫히고, 다시 집무실에는 아르덴 혼자만이 남았다. 그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유리 너머로 공작저의 정원이 어둠에 잠긴채, 등불 몇 개만이 희미하게 길을 밝히고 있었다. 아르덴은 그 어둠을 가만히 응시했다. 곧, 판 위에 새로운 말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 말은,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운 칼날을 숨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 수도에서 가장 화려하고 은밀한 티하우스, ‘르 뤼미에르’의 3층은 귀족들이 비밀스러운 모임이나 정략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용되는 장소였다. 두꺼운 카펫이 모든 발소리를 집어삼켰고, 복도마다 피어오르는 비싼 향료 냄새는 이곳에서 오가는 추문과 음모의 악취를 교묘히 가려 주었다. 가장 안쪽, 굳게 닫힌 개별룸 안에는 어느 귀족 영애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레이스가 촘촘히 박힌 부채를 우아하게 쥐고 있었지만, 부채질하는 속도는 초조한 듯 미세하게 빨랐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창가로 비치는 햇살 아래에서 서늘한 미모와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가 걸렸다. “약속 장소를 이런 곳으로 정하다니, 지금 나랑 장난해요?” 미소는 곧 언짢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 드레스 대여료가 얼마나 비싼지 아냐구요! 내가 이 옷감 상할까 봐 계단 오를 때 얼마나 조심했는지 안다면 질색할걸.” 트리샤는 풍성한 치맛자락을 신경질적으로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아르덴은 그녀의 가벼운 타박에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그의 건조한 목소리가 테이블 위에 차갑게 내려앉았다. 트리샤는 부채를 탁 접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눈 속에 서린 장난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서, 공작님께서 먼저 보자고 연락을 주셨다는건,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겠죠?” 아르덴은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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