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샤는 대답 대신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숲바람이 그녀의 뺨을 거칠게 때리고 지나갔다. 한참 동안의 지독한 정적 끝에, 마침내 그녀의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이 힘겹게 달싹였다.“……바보 같은 노인네.”혼잣말처럼 나직하게 내뱉은 가느다란 목소리에는, 평생 자신을 버려두었다고 믿었던 아버지를 향한 짙은 원망과, 제 존재가 결국 아버지의 목을 죄는 덫이 되었다는 지독한 비참함이 복잡하게 뒤섞여 울컥 흘러나오고 있었다.어느덧 사방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아르덴은 위장 마차에 먼저 오르며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그가 수행한 임무가 무엇인지 모른다면서, 왜 그렇게까지 동요하는 거지? 생각보다 별 것 아닌 임무였을지도 모르지 않나?”트리샤는 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홱 돌려, 아르덴의 얼음 같은 눈동자를 서늘하게 쏘아보았다.이 비극적인 순간조차 결코 놓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진실을 떠보는 그의 지독하리만치 치밀하고 집요함에 완전히 질려버린 표정이었다.“부탁이니까 지금은 그냥 아무말 말고 조용히 가죠?”하늘이 온통 타들어 가는 듯한 짙은 주홍빛과 핏빛 노을로 무겁게 물들 무렵,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숲속의 비밀 별장에 가까스로 다다랐을 때였다.마차가 멈춰 서자, 줄곧 침묵을 지키던 트리샤가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따가…시간 좀 내줘요.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늦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르덴의 임시 집무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트리샤는 낮 동안의 충격과 동요를 어느 정도 가슴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정리한 듯, 얼음처럼 차갑고 건조하게 정돈된 얼굴을
Leer más